김포는 조용한 도시다. 한강을 끼고 펼쳐진 너른 평야에는 곡식이 알알이 익어가고 철조망 쳐진 땅위로는 무심히 비행기만 뜨고 진다. 삼팔선이 마음에도 그어진 때문일까. 오랜 세월 북녘을 등지고 살다보니 김포에는 어쩐지 소원했다. 풍광이 좋으나 여행자가 드물고 개발도 더디었다. 무명시절이 길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래서 평화롭고 그래서 아름답다. 전국 도시가 개발열풍에 고만고만하게 닮아가고 관광지로 닳아 가는데 비해 김포는 무공해 천연미인의 자태 그대로이다. 밖으로 품 넓고 안으로 옹골차다. 가만가만 걷기 좋은 김포. 한반도에 다시 냉전기류가 감도는 서늘한 여름날, 문수산 성곽길 따라 북녘 땅 바라보며 통일을 기원하는 나들이를 떠났다.
출발지는 문수산. 강화대교 입구 성동검문소 부근이다. 큰 냉면집 뒤로 문수산 등산로가 열린다. 월요일 아침이라 인적이 드물다. 간밤에 내린 비로 흙길은 차분하고 나뭇잎은 생동한다. 약숫물 같은 녹색바람이 골짜기를 가득 메웠다. 굴참나무, 작살나무, 소나무. 저마다 나무들이 네모난 명찰을 달았다. 선생님이라도 된 듯 하나하나 출석을 부르며 걸음을 옮긴다. 어디 만큼 왔을까. 이 좋은 산을 독점하기 미안해질 무렵 위에서 등산객이 내려온다. 몇 고개만 넘으면 정상이라고 알려주는 손미애 씨(53). 두 달 째 매일 아침 문수산에 온다고 했다.
“작은 산인데 아기자기해서 등산하는 맛이 나죠. 올라오는 코스가 여러 군데라서 매일 다른 산에 오는 거 같아요. 오염이 안돼서 공기가 아주 맑아요. 유산소 운동에 딱 좋죠. 왕복 3시간인데 기도하면서 오르면 금방이에요.”
나긋한 표정과 활달한 걸음 어디에도 병색을 찾아볼 수 없으나 투병중이라고 한다. 산에 다닌 뒤로 몸이 많이 좋아졌다는 말을 남기고 바람처럼 사라졌다. 날마다 고독의 봉우리, 불안의 비탈길 오르내리는 그 마음 얼마나 간절했을까. 시큰함에 고개를 드니 신의 말씀처럼 <화해합시다>라는 글귀가 들어온다. 곤충의 보호색인 녹색 나무간판이다. 화해할 것이 있는 사람의 눈에만 보이는 마법의 글씨다. 내 몸과 화해하고 남의 말과 화해하기. 삶을 살리는 불씨, ‘화해’를 정상까지 화두로 안고 간다.
7부 능선쯤 왔을까. 발아래 긴 성곽이 너울너울 펼쳐진다. 문수산성이다. 조선 후기 숙종이 ‘문수산은 형세로 보아 강도(강화도)를 내려다보고 있으니 만약 적이 먼저 점거한다면 강도를 지키기 어렵게 될 것이다. 따라서 성을 쌓지 않을 수가 없다’고 말함으로써 축성하게 되었다고 한다. 축성 당시에는 북문, 서문, 남문이 있었으나 병인양요 때 모두 불탔고 1993년부터 복원 중이다. 성곽길 따라 나부끼는 깃발은 사극의 한 장면을 연상시킨다. ‘진격하라!’ 고함소리가 귓전에 울린다. 열강들 틈바구니 속에서 살기 위해 몸부림쳐야 했던 선조들의 아픔이 전해온다. 성곽답게 위로 오를수록 조망이 빼어나다. 가까이 기름진 곡창지대가 펼쳐지고 좌로는 강화와 김포 사이 염하강과 강화대교, 우로는 임진강과 한강이 만나는 지점이 보인다.
빨갛고 파란 등산복 차림의 멋쟁이 여인 셋이서 성곽길 따라 두런두런 이야기꽃을 피우며 걷는다. 여고생처럼 뺨이 발그레한 이화자(58세 수산나)씨는 배경옥(58세)씨, 김남숙(50세 마리아)씨와 이웃사촌이다. 인천에서 왔다.
“여기만 오면 마음이 편안해요. 올라가는 길이 지루하지 않거든요. 강도 보고 바다도 보고 평야도 보고. 자연이 너무 아름다워서요. 한강 하구도 멋있고 맑은 날에는 북한 개성의 송악산까지 보여요. 막히는 데가 없어서 속이 시원하죠. 답답한 일도 풀리고. 그저 하루하루 살아가는 게 감사하죠.”
묵묵히 존재함으로써 삶과 화해시키는 산. 문수산은 사계절 경치가 아름다워 김포의 금강산으로 불린다. 정상에 오르면 천지사방 아름다움을 감상할 수 있고, 아름다움을 감상할 수 있어서 즐거움이 있고, 즐거움이 있어서 잊어버릴 수 있다. 여기가 바로 세상의 먼지와 마음의 번뇌 닦아내는 씻김의 자리다.
정상 부근 홍예문을 통과해 청룡회관 쪽으로 내려오자 책갈피를 빠져나온 느낌이다. 문수산은 잘 짜인 단편소설 같은 산이다. 높이 376m. 얇은 분량이나 여운이 길다. 발걸음이 쉬이 멈춰지지 않는다. 걷던 걸음 그대로 내맡긴다. 논두렁에 하얀 두루미가 춤추고 길가에 양귀비와 엉겅퀴가 흐드러졌다. 밀밭, 보리밭이 양 옆으로 탐스럽게 출렁인다.
“문수산이 코앞인데 그렇게 좋다고들 멀리서도 오더라만 우리는 못가. 일하느라고 언제가. 안 가도 좋아. 여기가 공기가 참 좋거든. 근처에 공장이 없어서 좋은데 곧 생긴다는 말도 있고....암튼 지금은 좋아.”
하얀 이 드러나게 웃는 몸뻬 차림의 어머니들. 그저 좋고 마냥 좋다고 하신다. 자부심을 가질 만하다. 김포는 북쪽으로 한강 하류에 임하여 토지가 평평하고 기름져 백성들이 살기 좋은 곳으로 <동국여지승람>에도 기록됐다. 우리나라 최초로 벼농사가 시작된 유서 깊은 고장이다. 황금쌀 익어가는 풍요의 땅. 허나 느긋하게 걷노라면 군용트럭이 쌀쌀맞게 지나가며 흥취를 깨뜨리고 민간인 통제구역 바리게이트에 덜컥 가로 막힌다. 어쩌랴. 맥없이 돌아 나올밖에. ‘대체 왜 못 갈까’ 우리는 불편해야 생각한다. 북녘 땅은 어떤 길일까. 누구를 위한 전쟁일까. 어떤 곳이 평화로운 세상일까. 질문하면서 기도하고 기도하면서 걷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