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키워드는 재미와 의미다’ <퀴즈 아카데미>등의 프로그램으로 스타PD 시대를 연 주철환. 그가 교수로서 대학 강단에 서다가 다시 방송으로 돌아왔다. 오는 12월 개국하는 OBS경인TV 대표이사다. 외형상 직업은 바뀌었지만 사람들과 부대끼며 재미와 의미를 나눈다는 알맹이는 그대로이고, 꿈꾸는 소년 같은 표정도 여전하다. “행복한 사람은 일터가 놀이터”라는 그만의 FUN철학을 들어본다.
‘의미와 재미’ 찾는 일상탐험가
경인방송 사장실. 너른 평상 크기의 책상에 갖가지 문건이 가득하다. 결재할 서류와 스케줄 표, 행사 안내문, 책 등이 하얀 눈처럼 뒤덮였다. 그의 눈빛 또한 눈사람 만들 생각에 들뜬 아이의 그것처럼 초롱초롱 빛난다. 단지 일이 많아서 행복하다면 워커홀릭이겠지만, 저 산더미 같은 일이 사이사이에 박힌 재미를 찾아내는 그는 즐거운 ‘일상탐험가’다.
“자잘한 부분에서 어떻게든 의미를 찾으려고 해요. 우리가 재미를 발견 못할 뿐이지 일상에 널린 게 재미입니다. 사물과 현상을 관찰할 수 있는 눈이 있고, 꼭 음악이 아니더라도 히터소리, 발자국 소리도 재밌게 들을 수 있고요, 입으로 먹고 손으로 만지고 머리로 생각하면서 재미는 얼마든지 만들면 됩니다. 세상에는 수 억 가지의 재미가 있는데 막상 우리가 몇 가지로 한정해 버리는 경향이 있죠. 끝없이 발굴하고 또 그것을 공유하면 재미는 더 커집니다.”
한 가지 더 당부하자면, 재밌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히면 절대 재미를 느낄 수 없다고 그는 말한다. 아무리 어려운 수학문제라도 풀릴 때의 희열이 있게 마련이고, 사진 찍히는 건 쑥스럽지만 또 다른 내 얼굴을 보는 신기함을 느낄 수 있다. 낯선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새로운 사실을 알아가는 기쁨도 또한 크지 않던가. 순간에 집중하면서 일상의 리듬을 탈 때 자연스럽게 재미를 만날 것이라고 그는 귀띔한다.
“행복한 사람은 일터가 놀이터다. 즐겨라”
즐거운 일터 만들기 역시 그는 사소한 것, 쉬운 것, 그리고 가까운 것부터 출발한다.
“아침에 출근하면 비서가 똑똑 문을 두드리고 따뜻한 녹차를 가져다줍니다. 아주 평범한 일이지만 영화의 한 장면이라고 생각하면 기분이 달라집니다. 오늘 헤어스타일이 멋지다는 덕담을 건넬 수도 있고요. 아주 작은 관심이 소통의 물꼬를 트고 서로를 알아가면서 조직의 하모니가 생겨나는 겁니다. 이렇게 서로 배려하는 분위기 속에서 각자 소질을 한껏 발휘하고 자신의 일에 자부심을 느낀다면 그게 바로 최고의 일터겠지요.”
그는 ‘행복한 사람은 일터가 놀이터’라고 정의한다. 이는 일을 안 하고 마냥 놀자는 게 아니라 일을 즐기라는 뜻이라고 덧붙인다. “어떻게? 스텝 바이 스텝으로 한 단계씩 밟으면서 가는 거죠.”
평범한 말들이 나긋나긋 춤추듯이 흘러나오니 흥겹다. 그의 삶도 리드미컬하다. 주철환은 MBC 예능국 PD로 재직하며 <일요일 일요일 밤에>와 <테마게임>, <퀴즈 아카데미>, <우정의 무대> 등을 맡았고, 매번 새롭고 독특한 감성을 창출해내 인기프로그램 제조기로 명성을 날렸다. 이후 2000년대 접어들며 이화여대 언론홍보영상학부 교수로 7년을 지내다가 지난 7월 OBS 경인TV의 대표로 선임되었다.
“사람들이 자꾸 물어봐요. PD가 좋은지, 교수가 좋은지, 지금 사장이 좋은지. 그런데 이렇게 단순히 비교하는 질문은 우문입니다. 비유는 좋아도 비교는 나빠요. 더 좋은 게 어디 있어요. 매 순간 즐기는 것이고 고유의 즐거움이 있는 거죠. 교수나 PD나 달라보여도 어차피 똑같습니다. 사람을 만나고 사람을 변화시킨다는 점에서는 매 한가지입니다.”
OBS의 무기는 기획력과 아이디어 “자신 있다”
주철환. 그는 어디서 무슨 일을 하던지 일터를 놀이터로 만들고 재미와 의미를 직조하는 일에 능통한 사람이다. 그래서 더 기대가 된다. 그에게 OBS경인TV의 재미있는 방송 만들기 전략을 물었다.
“재미의 원리는 간단합니다. 스타와 스토리죠. 그런데 스타라고해서 꼭 강호동이나 송혜교 같은 유명인만 스타가 아닙니다. 일반인도 스타가 될 수 있고 평범한 삶에서도 풍부한 이야깃거리를 끌어낼 수 있죠. 관습과 관성보다는 신선한 것과 낯선 것에서 재미를 창출해내는 방법을 모색해야죠. 결국 새로움이라는 건 접근방법의 싸움입니다. 그래서 각도와 속도가 중요합니다. 옆 자리에서 나란히 출발한 사람과 경쟁이 안 될 것 같으면 다른 각도에서 시작하면 됩니다. 돌려보고 다르게 보는 훈련이 필요하지요.”
이것이 그가 말하는 ‘1등급 우유론’이다. 마트에 가보면 1등급 우유가 있다. 1등은 하나지만 1등급은 여러 개가 될 수 있다. 1등급이 되는 게 OBS경인TV의 목표라는 것이다. 이를 통해 시청자들이 선택할 수 있도록 방송의 수준을 높이고자 한다. 이제 막 시작하지만 빠른 기간 내에 자리를 잡을 거라 생각한다며 그는 선배들과 어깨를 겨루며 즐거운 선의의 경쟁을 펼칠 그날을 기다린다.
“기존 방송사와 아이디어와 기획력의 싸움을 한번 해보고 싶습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결코 뒤지지 않을 거라고 자신합니다.”
Creative⦁Communication⦁Harmony⦁Humanity
1등급 방송 OBS경인TV. 이를 위해 대표이사 주철환은 남다른 노력을 기울인다. 우선 매월 한 차례 250명 직원들과 대화의 자리를 마련한다. 회사의 비전을 제시하고 프로그램에 대한 아이디어도 나누는 등 허심탄회한 소통의 장으로 이끈다.
“어젯밤에는 신입사원들이 뒤풀이를 한다고 연락이 와서 그 자리에 나갔습니다. 직원들에게 말했지요. 내가 사장이라고 해서 내 아이디어가 나쁜데도 좋다고 말하지 말라. 용비어천가를 부르는 건 OBS가 망하는 지름길이라고요.”
이 밖에도 전 직원 퀴즈대회와 가요제를 열기도 했다. 가요제는 ‘오정동가요제’라는 정식 타이틀을 내걸고 직원의 가족까지 초대한 한마당 큰잔치로 치렀다고 한다. 이런 식으로 참여와 소통의 기회를 자주 마련하고 또 재밌는 추억거리를 만들며 직원들의 사기를 충전시킨다. 그는 이어 경영철학을 소개했다.
"이러한 일련의 일들은 모두 OBS의 비전을 담은 4가지 핵심요소에 근거합니다. Creative크리에이티브와 Communication커뮤니케이션. Harmony하모니와 Humanity휴머니티. 네 글자 모두 제 이름 철환의 이니셜에서 따온 말이지요. OBS는 이 4개의 키워드를 가지고 갑니다.”
능란한 어휘구사가 녹음기를 틀어놓은 듯 막힘없다. 그 자신도 살면서 배운 모든 단어가 내 삶의 원동력이라고 자부한다. 분명 그는 달변가다. 논점을 벗어나는 일이 없고 마지막에 항상 핵심을 짚어준다. 또한 비유와 상징에 탁월하고, 언어의 조탁능력이 뛰어나다. 인터뷰 중에서도 1등급론, 놀이터론, 각도와 속도론 등 ‘주철환 어록’은 수시로 업데이트됐다.
인생은 거울이다. 네가 웃으면 인생도 웃을 것이다.
언어의 연금술사이자 영원한 청년정신의 소유자 주철환. 그는 하루에 두 차례 아침저녁으로 꼭 샤워를 하는데 이 때 주로 아이디어가 떠오른다고 한다. 또한 사실 재충전을 위한 별도의 행동도 없다. 오직 사람과의 만남으로 짜인 일상 자체가 아이디어가 콸콸 솟아나는 ‘생각의 유전’이다.
혹여 힘겹고 어려운 일이 생기면 죽은 사람을 떠올린다. 살아있다는 사실을 상기하고 병원이 아닌 회사에서 일하고 있음에 감사하면 다시 힘이 솟는다며 웃는다.
“아직 개국하기 전이라 직원들과 한 자리에 모이기도 하지만 이제 개국하고 나면 정신없이 바빠질 것입니다. 그 땐 제가 뛰어다닐 생각입니다. 취재현장, 녹화현장, 편집현장마다 맛있는 거 사갖고 다니면서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는 거죠. 대표가 우울한 얼굴로 있으면 직원들 사기가 어떻게 되겠습니까. 항상 명랑, 쾌활, 발랄해야죠. 긍정의 힘이 기적을 만든다고 생각합니다.”
같은 대표라도 리더는 희망을 주지만 보스는 겁을 준다. 기꺼이 리더가, 그것도 웃는 리더로서 신명나는 일터를 만들겠다고 그는 오롯한 소망을 밝혔다. 마지막으로, 그의 인생철학의 한 줄 요약을 부탁했다. 주철환 어록의 결정판은 이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