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4년 이후 배구코트를 평정하며 오빠부대를 몰고 다니던 꽃미남스타 김세진. 온갖 진기록으로 뜨겁게 빛났던 21년 선수생활을 접은 그는, 현재 KBS N 스포츠 배구 해설위원으로 활약한다. 최고선수 출신답게 날카로운 해설과 재치 있는 입담으로 생생한 현장감을 전한다. “사는 거 같아 스포츠가 좋다”는 김세진의 끝나지 않은 배구사랑이야기를 들었다.
배구스타에서 해설가로 ‘김세진의 즐거운 배구인생’
파란 하늘에 담근 것 같은 물빛 셔츠에 정열의 빨간 카디건을 걸친 그가 저만치서 다가온다. 포토샵으로 늘려놓은 듯 비현실적인 키에 ‘주먹 만 한’ 얼굴이다. 코트를 휘저으며 대포 같은 스파이클 때리고 고른 치열 드러나게 좋아라 웃던 그 모습 그대로다. 이제는 민소매 유니폼 대신 패셔너블한 젊은 해설가로 돌아와 카메라 앞에 섰을 뿐, 여전히 그는 배구장의 함성과 함께 한다. 2007년 11월 일본에서 열린 세계 남자배구 선수권대회에서 해설가로 처음 나섰다.
“지금에서야 자리를 조금 잡아가는 거 같아요. 아직도 힘들긴 한데 이제 괜한 걱정은 안 하거든요. 처음 했을 때는 제가 성격이 급해서 이 말 하면서 다음 말 할 거 생각하고, 어떤 말 해놓고 아차 싶어 실수했을까봐 걱정하고. 한마디로 우왕좌왕 했거든요.(웃음)”
‘현장감’ 살린 3년차 해설가
해설이 이렇게 힘든 줄도 모르고 제의가 들어왔을 때 “한방에” 수락했다는 김세진. 해설가로 자리매김하기까지 그에겐 세 가지 벽이 있었다. 목소리. 나이. 삼성출신. 우선, 그의 목소리는 탁한 편이다. 열기 가득한 경기장의 함성을 뚫을 만큼 음성이 선명하지가 않아 해설가로서 메시지 전달력을 높이기 어려웠다. 또한 해설가의 위치는 모든 팀과 선수에 대해 공평하고 진실해야 한다. 그런데 ‘나이 어린 해설가가 오만하다’는 말을 들을까 성역 없는 비판이 쉽지 않았으며, 그렇다고 만날 칭찬만 하자니 진실해 보이지 않을까 조심스러웠다. 마지막으로 삼성출신. 몸 담았던 팀이라 아는 게 많아 자연히 말이 많아졌는데 ‘편애시비’로 오해를 받기도 했다. 이러한 크고 작은 사안에 대해 배려하고 노력하고 중심을 잡아나가면서 점차 ‘김세진 해설가’로서 입지를 구축한 것.
“제 캐릭터를 살리려고 노력했어요. 현장의 경험을 되살려서 경기 흐름과 분위기, 코트 뒷얘기를 최대한 생생히 전달하는 거죠. 예를 들어, 급박한 상황에 작전요청을 했다면 기록 같은 통계자료를 읽어주는 게 아니라 살아 있는 얘기를 해요. 저 선수들 표정만 봐도 선수들 지금 심정을 알 것 같다. 얼마나 부담이 가겠느냐 그런 식으로 시청자가 감정이 이입돼서 더 흥미롭게 경기를 관람할 수 있도록이요.”
그만의 중요한 해설 원칙도 있다. “안 된다”고 말하지 않는 것이다.
“해설 중에 저도 모르게 ‘아, 저기서 저러면 안 되죠’라고 무심코 말할 수 있거든요. 그 선수가 최선을 다해서 한 건데 제 기준과 방식을 잣대로 삼아 판단하면 안 되잖아요. 선수를 존중하고 객관적이 되려고 해요.”
배구 위해 태어난 ‘월드스타’
김세진 해설위원은 한양대학교를 졸업한 뒤 실업배구 삼성화재(현 삼성화재 블루팡스)에 입단해 신진식, 신선호 등과 함께 겨울리그 9연패 신화를 이끈 주역이다. 프로배구 원년리그인 'KT&G V리그 2005'에서는 최우수 선수로 선정됐다. 프로배구 2005-2006 시즌을 마지막으로 은퇴할 때까지 ‘월드스타’로 불리던 그다. 하지만 선수시절 내내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건 아니다. 오른쪽 무릎 부상과 수술, 재활로 2년여의 세월 동안 코트에서 자취를 감추고 좌절의 시간을 보냈다. 다른 사람은 물론 그 자신조차 재기에 대해 회의를 품고 있을 때 그는 배구인생의 ‘아버지’ 신치용 감독의 무서운 집념과 변함없는 신뢰로 화려하게 재기에 성공했고, 박수칠 때 떠나는 ‘아름다운 은퇴’의 영광을 누렸다.
“지금은 많이 편해졌어요. 선수생활엔 정말 예민했거든요. 방도 혼자 쓰고 누가 말 붙이면 꺼려하고 내가 했던 그대로 하나하나 신경 썼어요. 몸가짐은 물론 신발까지 가지런히 놓고 커피마시고 화장실 가는 시간까지 계산해서 그대로 살 정도였죠. 너무 어렸을 때부터 제 이름을 가졌고... 그건 누가 지켜주지 않는 거니까 마음 흐트러질까봐 스스로에게 엄격했죠. 부상이 심할 땐 자존심 때문에 중간에 포기할 생각도 수차례 했는데 지도자를 잘 만났어요. 신치용 감독님이 옆에서 좋은 얘기 들려주시면서 길잡이가 돼 주셨고 덕분에 선수생활을 잘 마쳤죠.”
배구계에 몸담으며 ‘거목’의 자리를 지킨 김세진. 그는 스스로를 일컬어 “운동하기 위해 태어났다”고 말한다. 운동량이 많아 부상도 잦았지만 모든 부분에 회복이 빠르고 큰 키에 비해 스피드와 순발력도 좋았다. 조상님에게 물려받은 우월한 신체조건에다가 승부를 즐기고 미친 듯이 경기에 몰입하는 스포츠스타의 ‘끼’까지 더해진 김세진. 그는 한 분야의 최고로 살 수 있었던 비결에 대해 ‘긍정적인 사고’를 꼽았다.
최고의 비결은 긍정적 사고
“생각이란 것이 평소 떠오를 때 만들어가는 것인데 하면 할수록 부정적인 생각이 떠오르지 긍정적인 게 떠오르진 않더라”며 “그걸 계속 반복하면 그건 생각이 아니고 걱정”이라고 강조한다.
“어떤 사안이든 과제, 리스크, 해결 방법으로 삼등분해서 생각합니다. 리스크쪽에만 생각이 치우치지 않도록 경계하죠. 효율적으로 미리미리 준비하고 대비를 하는 편이에요. 선수시절에는 꾸준한 훈련과 그리고 동료 선수들에 대한 믿음을 갖는 게 중요했어요. 배구는 혼자서만 잘해도 소용없잖아요. 팀의 에이스로서 자기의 몫을 다하면서 다른 선수들을 이끌고 밀어주고 좋은 팀워크를 형성하려고 노력했어요.”
오로지 사각 코트에서 상대편만 집중하던 선수시절에 비하면 지금 그는 배구를 보는 눈이 달라졌다. 해설가의 배치에서는 양쪽 팀과 감독 스태프가 다 시야에 들어와 배구를 넓게 보게 된다고 한다. 이제는 최고 선수의 깊이에 좋은 해설가의 넓이를 가지려고 노력중이다. 그에게 좋은 해설가란 현장감을 살리는 재밌는 해설을 전달하는 것이다.
“해설가 역할이 궁금한 거 풀어주고 양념만 가미하듯 맛깔스럽게 만들어주는 거라고 봐요. 최대한 쉽게 풀어서 친절한 해설을 곁들이고 농담을 많이 써요. 한 번은 스파이크가 세게 들어갔는데 아나운서가 ‘대단한 파워’라고 감탄하고 저는 그랬죠. "제가 볼 땐 주먹으로 때린 거 같아요!" 주위에서 빵 터지죠. 가끔 썰렁한 농담도 하는데(긁적) 무게 잡는 것보다는 편안하고 가벼운 친구 같은 해설가가 되고 싶어요.”
배구해설가 외에 건설업체 이사를 겸하는 그는 여가 시간이면 축구, 골프 등 다양한 스포츠를 즐긴다. 동적인 것만 아니라 사격, 양궁 같은 정적인 운동도 좋다는데, 이유가 이렇다. “승부에 몰입할 때 생기는 ‘긴장감’이 좋아요. 온 몸이 깨어 있고 사는 거 같잖아요.”
승부본능이 남다른 타고난 스포츠맨, 영원한 배구인 김세진. 훗날 최고선수의 감각과 해설가의 혜안을 갖춘 배구감독 김세진을 기대해도 좋을지 그에게 묻자 “욕심난다”는 답이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