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살 버릇 여든 간다고 한다. 영유아기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한 말이다. 이 속담을 오경숙 원장은 '영유아는 돌에 새긴다'는 말로 바꿔 교육 소신으로 삼았다. 교사시절 아이들에게 좋은 가치와 바른 태도를 몸에 ‘새기기’ 위해 노력한 그는 원장이 되고서는 양질의 보육서비스를 실천할 수 있는 돌의 모양과 크기 ‘다듬기’에 주력했다. 그 결과 0세반, 방과후반, 장애아통합교육 제도마련 등 보육여건의 토대를 다지는 굵직한 성과를 일궜다. 어떤 엄마의 아이, 어느 어린이집 아이가 아닌 지역이 함께 키우는 아이라는 일념으로 초임 발령이후 지금까지 25년간 ‘면목동 아이들의 엄마’로 지낸 오경숙 원장을 만났다.
함께 만드는 교사, 함께 키우는 아동
“얼마 전 우리 어린이집을 졸업한 아이가 교사 실습을 왔어요. 제가 햇병아리 시절 가르치던 아이를 실습생으로 만나니까 감개무량했지요. 앞으로 5년 정도가 지나면 굳이 교사에게 직업적 소명의식을 가르치지 않아도 되겠다 싶더군요. 사랑을 받아본 사람이 줄줄 안다고, 각자 자기들이 예전에 받았던 교육경험을 되새긴다면 좋은 교사상을 저절로 갖게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오경숙 원장은 85년 ‘면목1동 새마을 유아원’으로 개원할 때부터 참여한 원년 멤버다. 96년 시설장으로 발령받았다. 아담한 단층 건물이 2층으로 올라가고 옥상에 그림 같은 정원이 생기기는 동안 오경숙 원장은 이곳에서 수천 명의 아이들과 부대끼며 탄탄한 교육관을 다져왔다. 현재 29명의 교사와 135명의 원아와 가족처럼 지내고 있다.
모든 영유아 행복 위해 보육토대 구축
“이 지역에 필요한 보육을 실천하자는 원칙으로 일했습니다. 우리는 저소득층 아이들이 많기 때문에 통합적 보육이 절실했지요. 그래서 처음으로 0세반을 신설하고 그 다음엔 방과후반을 만들고 장애아통합교육을 실시하는 등 하나씩 만들어갔습니다. 새로운 제도가 정착하기까지 월급도 못 받는 등 난관이 많았지만 아이들을 생각하면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
재미있어서 하는 일은 누가 하지 말래도 하기 마련이라는 오경숙 원장. 그에게 재미란 아이들의 행복이다. 지난 25년 간 모든 영유아가 행복해야한다는 소신과 기회의 균등을 고려해 일했다. 한 명의 아이라도 소외되지 않도록 마음 썼다. 이를 위해서는 각 시기별로 남다른 소명의식이 필요했다고 한다. 초임 교사 시절에는 ‘살아남기’를 목표 하나씩 배우고 익히는 과정지향적 직업관으로 일했다면, 5년차 이상부터는 성숙단계로 접어들며 업무성과를 내는 결과지향적 직업관을 따랐고, 원장이 된 이후로는 개인의 발전과 성취에서 보람을 찾는 업무주의적 직업관에 충실했다. 하지만 세 가지 직업관은 상호보완적이다. 과정에 충실하다 보니 성과가 나고 성과가 나니까 성취감을 느끼는 등 ‘좋은 보육’의 선순환이 일어나더라고 말했다.
인사위워회, 마을투어 등 면일교사 프로젝트
오경숙 원장은 현장에서 터득한 생생한 경험을 토대로 원내에 인적자원 구축 및 활용 시스템을 갖춰놓았다. 면일어린이집은 외부 인사를 영입해 인사위원회를 구성하는 기존의 관행을 깨고 현직 교사들로 조직을 구성해 채용과정에 참여시킨다. 현직 교사들이 다 함께 머리를 맞대고 뽑은 사람인지라 신입 교사도 조직에 자연스럽게 합류한다.
“우리 원에 필요한 사람을 뽑는 일이잖아요. 내부 일은 자체적으로 우리 안에서 충분히 해결능력이 있다고 봅니다. 면접에는 전문성과 성품을 보는데, 총점이 가장 높은 1등이 아니라 지금 우리 원에 가장 필요한 역량을 갖춘 교사를 뽑습니다. 그래서 작년에는 50세가 넘은 연륜을 갖춘 분을 방과후반 교사로 선출했지요.”
그렇게 뽑힌 교사는 면일어린이집의 최고참 아동들, 즉 0세반부터 방과후반까지 10년간 다닌 아이들과 함께 ‘마을 투어’에 나선다. 동네 놀이터, 구청, 병원, 가게 등 마을 구석구석을 돌아보는 시간을 갖는다. 그 과정을 마치고 나면 면일어린이집 ‘교사임명장’이 수여되고 현장에 투입된다. 이밖에도 교사들 간의 원활한 소통과 고른 친목 도모를 위해 회식을 할 때도 제비뽑기를 통해 좌석을 배치하는 등 오경숙 원장은 소소한 부분을 챙긴다. 교사들의 가족을 초대해 한 끼 식사를 대접하고 선물증정 행사도 마련했다. 유치원 마당에서 이웃 주민들과 삼겹살 파티를 열기도 했다. 일년 내내 면일 어린이집은 아이들의 웃음꽃이 도란도란 피어나고 사람의 발길이 북적북적 이어진다. 오경숙 원장의 확고한 교육철학과 일선 교사들의 헌신적인 사랑에 힘입어 면일어린이집은 명문유치원으로 통한다. 항시 100여 명의 예비 원아들이 대기 중이고 태아 때 지원하지 않으면 입학 기회가 없다는 후문이다.
좋은 시스템에서 좋은 교사 길러진다
“어느 한 개인의 뛰어난 능력도 중요하지만 좋은 교사는 현장에 있는 사람들이 같이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오경숙 원장의 교사관은 개인의 역량이 아니라 조직의 구조에 방점이 찍혀있다. 예를 들어 성품이 나쁘고 실력이 없는 불량 교사가 발령을 받았더라도 구성원들이 내 식구로 만드는 과정에서 그를 높여주고 교사로서 자질을 갖추는 일상적 시스템이 갖추어져 있어 그 안에서 일한다면 좋은 교사로 얼마든지 길러진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오경숙 원장은 보다 나은 교육환경을 위해 국가보육정책기관에 바라는 점을 밝혔다.
“의견수렴 과정이 탄력적이었으면 합니다. 일괄적으로 각 단체 대표의 의견을 청취하기보다는 각 정책과 사안에 따라 관련된 인력의 생생한 목소리를 말할 기회가 많아지면 좋겠어요. 다각적인 참여와 섬세한 의견조율이 더 좋은 정책을 만들어 가리라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