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10년 사이 한국영화를 한 편이라도 보았다면 그가 찍은 영화포스터 작품일 가능성이 크다. <올드보이>, <밀양>, <왕의 남자>, <공공의적> 등 대작들은 모두 그의 손을 거쳤다. 강렬함으로 시선을 붙들되 진실함으로 울림을 남겨야 하는 영화포스터. 두 시간짜리 영화를 ‘감동의 한 컷’으로 담아내는 이전호의 사진이야기.
“사진은 기억의 단상이죠. 인간의 뇌기능 중에 추억을 회상하거나 뭔가 기억하는 것은 동영상이 아니라 스틸컷이라고 해요. 인간의 천만가지 감정과 변화무쌍한 상황이 ‘찰칵’ 하는 짧은 순간에 집약된다는 것에 사진의 매력을 느낍니다.”
그와 사진의 만남은 러브스토리처럼 애틋하다. 중학교 입학선물로 카메라를 처음 접한 후 몇 차례 스치고 헤어지기를 반복했다. 부모님의 반대로 사진학과 진학에 좌절한 그는 대학교 3학년이 되서야 가까스로 ‘사진’과 인연을 맺었다. 지인의 부탁으로 사진작가 김중만씨 작업 현장에 아르바이트를 갔다가 당시로서는 파격적이었던 그의 작업스타일에 문화적 충격을 경험한 것. '사진, 그 놀랍고 화려한 세계'에 매료된 그는 “저 길이 내 길이구나” 운명을 직감하고 곧장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그러나 사진에 대한 환상을 깨뜨리는 데는 그리 오래지 않았다. 사진은 결코 쉽지도 재밌지만도 않았다. 정신이 번쩍 든 그는 입시를 준비하는 '고딩'처럼 학점 잘 따고 아주 열심히 '사진공부'에 전념했다. 그즈음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기댈 수 있는 커다란 산을 잃어버린 슬픔을 겪으면서 "사진에 대한 껍데기가 한 겹 벗겨졌다." 사진을 대하는 태도가 진지해졌으며 경험하는 모든 일들은 사진의 실체를 깨달을 수 있는 것들로 "확확 다가왔다."
"사진은 직업 아닌 라이프스타일이 되어야한다"
"교수님이 굉장히 엄한 분이었어요. 강의시간이 되면 지각생 못들어오게 강의실 문을 잠그고 시작했어요. 수업내용이나 과제도 강도높았죠. 35명이 수업을 듣기시작했는데 6명이 남았을 정도에요. 교수님이 어느 날 물으셨어요. 너한테 사진이 뭐냐고. 저는 전공해서 나중에 직업으로 사진을 할 거라고 아주 현실적으로 답했는데, 너는 사진을 직업으로 택하는 순간 싫어하게 될 것이라고 말하시더라고요. 사진이 직업이 되어서는 안 되고 라이프스타일이 되어야한다고요."
사진과 삶의 빈틈없는 일치. 사진이 직업이 되는 순간 주말에는 카메라를 내려놓게 되지만, 그에게 사진은 곧 삶이고 취미이자 여가였기에 일년 365일 숨쉬듯이 카메라가 하나되어 셔터를 눌렀다. '상업사진의 세계는 전쟁과 같다. 항상 무기를 잘 닦고 클라이언트를 만족시키기 위해서는 치열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가르침을 삶 전체로 받아들였다. 비로소 손이 자유로워지고 "상업사진가로서 일하는 공식"을 배운 그는 99년 한국으로 돌아왔다.
"귀국하자마자 잡지사를 다니면서 흑백인물컷으로 된 포트폴리오를 제출했죠. 가는 곳마다 거절당했어요. 그때만해도 우리나라에서 사진기자는 '전문성'보다는 인물, 풍경, 제품을 다 찍을 줄 아는 전천후 타입을 원했거든요. 제 포트폴리오 자체가 받아들여지지 않았어요. 낙심하던 중에 <바자>에 갔는데 편집장이 그 자리에서 다음주 인물인터뷰가 있다면서 스케줄을 잡더라고요."
패션잡지를 중심으로 지면광고를 시작하며 이름을 알리던 중 2002년 월드컵 당시 안정환을 모델로 푸마 광고를 찍은 것을 계기로 ‘영화관계자’의 눈에 들어 영화판에 진출했다. 결과는 상상 이상이었다. 때마침 한국영화 부흥기에 등장한 운 좋은 남자는, 물 만난 고기가 되어 ‘이전호표 포스터’로 극장가를 도배하기에 이르렀다. 지금까지 모두 100편이 넘는 작품을 탄생시켰으며, 지금도 <불꽃처럼 나비처럼>이 극장에 걸려있다.
“먼저 작품의 시나리오를 한 번 읽고 딱 떠오르는 핵심적 이미지를 그리죠. 여기까지는 감성의 영역이고 그 다음 이성적으로 접근해요. ‘과연 이 한 컷의 사진이 영화를 말해주는가’에 대해서 논리적으로 따져보는 거에요. 누구보다 제가 먼저 설득이 돼야 해요. 또 미팅현장에서 제가 아이디어를 설명했는데 한 번에 이해하지 못하면 그건 실패한 시안이죠. 그런 식으로 제작자, 배우들과 계속 회의하고 수정하기를 반복하면서 아이디어를 발전시키고 최적의 절묘한 조합을 찾아냅니다.”
세계적인 영화가 된 <올드보이>는 그가 지금까지 한 작업 중에서도 미팅을 가장 많이 한 영화였다. 박찬욱 감독이 영화의 핵심 이미지로 제시한 ‘보랏빛’과 최민식이 제안한 두 남자의 먹이사슬과도 같은 관계를 한 컷에 담아내 명작을 탄생시켰다. 정우성, 차태현, 임수정 등 특급배우들이 총출연한 <새드무비>는 십인십색 배우의 개성을 살리면서 복받치지만 터지지 않는 슬픔의 서정을 담아냈다. "3일에 걸쳐 촬영한 잊지 못할 작품"이라고 한다. 수애와 주현이 출연한 <가족>은 골목 어귀에 서 있는 부녀의 모습이 아련한 향수와 따뜻한 울림을 표현해 호평을 받았다.
“포스터에 끌려서 영화를 봤다는 얘기를 가장 많이 들었던 작품이 바로 <가족>”이라고 귀띔했다.
<가족> “포스터 땜에 영화봤다”
“영화는 늘 경쟁작이 있잖아요. 여러 편의 영화들 중에서 ‘어 저게 뭐야?’ 하는 말이 나오도록 이목을 집중시켜야 해요. 영화 포스터는 눈에 띄지 않으면 그 가치를 상실하니까요. 포스터 때문에 영화를 보게 한다면 사진작가로서는 정말 최고의 보람이죠.”
한 장의 사진에 무수한 이야기가 담긴 ‘결정적 순간’을 찍는 비결은 무얼까. 그는 "잘 알아야 잘 본다"고 말했다. 일상의 소소한 경험과 생각을 아이디어와 접목시키는 깨어 있는 감성, 카메라와 조명을 다루는 정교한 기술은 기본이다. 거기에다 고유의 작품 해석력과 콘셉트 이해력, 스태프들의 다양한 아이디어를 조합하는 소통능력 등이 더해졌을 때 좋은 사진이 탄생한다는 것.
어느 날 혜성처럼 나타나 광고와 영화 사진계를 평정한 이전호. 짧은 시간에 각광을 받은 터라 '젊었을 때'는 기고만장해서 주위를 둘러보지 못했다는 그는 “나이가 드니까 변하더라”며 “단 한명의 스태프라도 일일이 이름을 불러주고 의견을 존중하며 작업장이 즐거움의 공간이 되도록 하기 위해 노력한다.”고 터놓는다. 서로가 즐겁게 일할 때 좋은 에너지가 흐르고 멋진 아이디어도 꽃핀다. 그 위를 나비처럼 춤추다가 벌처럼 ‘찰칵’ 쏘는 것이 자신의 역할임을 깨달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