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관원 배다리술도가 - 욕심 없이 빚어야 좋은 술

경기도 고양시에서 5대 째 술도가를 운영하는 박관원 옹. ‘술 익는 마을’에서 나고 자란 그는 ‘배다리박물관’ 지어 전통주의 맥을 잇고 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즐겨 마셔 유명해진 고양 쌀막걸리도 그의 손맛이다. 선조들이 욕심 없이 술을 빚었듯이, 깨끗한 쌀을 주재료로 정직한 양조비법을 준수하는 것이 배다리家막걸리의 비결이다.

“술은 거짓부렁을 안 해” 

마지막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8월 중순. 오후 2시의 폭염에 눌려 새도 나무도 정지화면처럼 활동을 멈춘 가운데 이곳만은 유독 활기차다. 배다리박물관 앞. 뜨거운 아스팔트를 달려온 차들이 즐비하고 막걸리를 사가는 발길이 이어진다. 하긴, 더위에 지친 심신을 달래고 기력을 차리는데 막걸리 한사발보다 더 좋은 약은 없을 터. 막걸리 중에서도 박관원 옹이 운영하는 배다리술도가의 고양 막걸리는 맛좋기로 유명하다. 좋은 쌀과 정확한 비율 등 제조방법 그대로 정직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막걸리에는 효모균이 살아있거든. 그것들도 엄연히 생명이야. 살아 있는 생명체니까 자식처럼 잘 키워야지. 내가 먹겠다는 마음으로 원칙대로 정직하게 만들어야 항상 일정한 맛이 나지. 술을 만들다가 잘못되면 다 버려. 술에는 거짓이 들어가면 안 돼요. 술은 거짓부렁을 안 하거든.”

고희를 훌쩍 넘긴 박관원 옹. 한 평생 외길인생을 걸어온 양조장인의 철학은 잘 익은 막걸리처럼 부드럽고 명쾌했다.

5대째 정직한 생막걸리 “나랏님도 감동”

그는 고양시 토박이다. 배다리는 주교(丹橋)동의 옛 지명이다. 할아버지가 양조장집 아들이었기에 비교적 호강하면서 유복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러다가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같은 해에 돌아가시는 바람에 열네 살에 양조장 면허를 승계 받게 된다. 1915년 박승언 옹이 ‘인근상회’로 창업한 배다리 술도가를 4대째 잇게 된 것이다.

그 후 6.25를 지나며 공장이 불타버려 잿더미에서 움막 짓고 시작하는 등 험난한 시절을 보냈다. 양조장에 먹을 게 하도 없으니까 쥐새끼 한 마리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곤궁한 살림살이에 숱한 유혹이 있었으되 “양조장 면허만큼은 목숨처럼 끝끝내 버티며 지켰다.”

1966년 초여름의 어느 날. 그는 양조장으로 걸려온 낯선 전화 한통을 받았다.

“여기 청와대요. 곧 갈 테니 좀 기다리쇼.”  원당에서 골프를 친 박정희 대통령이 지난 봄 ‘실비옥’이란 음식점에서 막걸리를 맛있게 먹었고 어느 양조장인지 수소문해서 직접 찾아온 것이다. 이를 계기로 그의 양조장에서는 1979년까지 14년간 청와대에 막걸리를 납품했다. 좋을 때나 힘들 때나 대대손손 정직하고 바르게 빚은 막걸리가 나랏님의 입맛까지 감동시킨 것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즐겼다는 고양 쌀막걸리는 숙취가 없고 유산균이 살아 있는 생 막걸리로 잘 알려져 2005년 경기으뜸상품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배다리박물관 개관.. 매월 천여 명 다녀가

우리 전통술에 대한 애정과 자부심이 남달랐던 박관원 옹은 1999년 일본 삿뽀로 맥주공장을 다녀와 문화적 충격을 경험한다. 그곳에는 100년 전 일본 전통주점의 간판, 술 제조기구, 술병 등이 전시되어 있었던 것. 이를 계기로 “사라져가는 우리 전통술의 맥을 잇고 소중한 역사를 보존 계승하고자 전통주 박물관을 짓기로 결심했다.”

전국 방방곡곡을 돌며 전통술에 관련된 역사와 유물을 수집해서, 현재 5대째를 잇고 있는 아들 박상빈 씨와 함께 2004년 7월 배다리박물관을 개관했다. 박물관에는 배다리 술도가에서 소장해온 전통 술도구를 중심으로 탁주, 약주, 청주 등을 빚을 때 사용된 누룩틀, 소주고리, 옹기술독 등 양조기술의 발달상을 볼 수 있다. 전통술 제조과정도 일목요연하게 전시 연출해 놓았다. 입장료 없이 무료로 운영되며 무료시음의 기회도 주어진다. 해를 거듭할수록 입소문을 타고 알려진데다가 최근 막걸리가 맛 좋고 몸에 좋은 웰빙술로 각광받으면서, 이곳 배다리박물관은 월평균 천 여 명이 다녀가는 지역 명소로 자리 잡았다.

“막걸리는 고약한 술, 싸구려 술이란 인식이 강해요. 못 살던 시절 쌀이 귀했고 식량난 때문에 쌀로 막걸리를 빚는 것이 한동안 금지되면서 쌀 대신 밀, 보리 등 잡곡을 넣어 술을 만들었거든. 재료가 안 좋으니까 소화가 안 돼 트림이 나고 머리 아픈 증상이 나타난 거죠. 지금은 좋은 쌀과 좋은 기술로 만드니까 맛 좋고 머리도 안 아프고, 특히 외국 사람들이 더 좋아해.”

요즘 막걸리의 인기는 국경을 넘는다. 이웃나라 일본에서는 한국 드라마가 인기를 얻은 뒤한국 음식에 대한 일본인들이 관심이 늘면서 막걸리가 와인처럼 대접받고 있다. ‘전통주조 백년사’를 집필하기도 한 박관원 옹은 우리 전통술의 발전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며 오랜 동안 익히고 빚어온 양조장인의 꿈을 밝혔다.  

“박물관 개장하는 날 화환이 330개가 들어왔어요. 한 열 개 들어오려나 했는데 너무 놀랐지. 만약에 내가 식당을 했으면 그렇게 들어왔겠소. 고맙게 생각하고 사회에 환원한다는 마음으로 사명감 갖고 해야죠. 5대, 6대 대를 이어 연구해서 프랑스의 와인, 일본의 사케처럼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세계적인 술을 만들고 싶어요.”

* 대상그룹 사외보 2009. 9. 테마인터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