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환과정, 가치존재는 사회존재다

[스피노자맑스]

<자본>을 읽는 방법으로 스토리를 만들어가보라고 고병권샘은 권유했다. 첫부분은 맑스가 시장을 걷고 있는 것이다. 시장은 자본주의가 발현되는 곳이다. 시장에 갔더니 수많은 상품들이 진열돼 있다. 사람들은 그것을 팔고 산다. 구두와 밀은 재료도 쓰임도 다른데 그것들이 상호 교환된다. 그럴 때 저들의 교환이 이뤄지는 기준은 무엇일까. 등등 맑스는 예리한 눈으로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은 것들에 의문을 가지며 유심히 관찰해본다는 설정이다.

“상품교환은 공동체의 경계선 즉 공동체가 다른 공동체 또는 다른 공동체의 구성원과 접촉하는 지점에서 시작된다. 그러나 물건들이 한 번 공동체의 대외적 관계에서 상품으로 되기만 하면 그것들은 반사적으로 공동체 안에서도 상품으로 된다.” (113)

교환은 어디에서 일어나는가. 공동체 안이 아니라 공동체 밖에서 일어난다. 물건들의 사적 소유자로서 개인. 그들 상호간에 ‘타인’이라는 관계는, 자연발생적인 공동체의 구성원 사이에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공동체가 해체되는 곳, 거기서 ‘사회’가 출현한다. 공동체적 관계가 해체되고 사회로 전환됐을 때 공동체 안에서 독립된 타인들이 발견된다. 원자화된 공리적 개인(오직 화폐적 관계로만 연결된)이 나타난 것이다. 맑스에 따르면 사회 속에서만 인간은 개인화된다. 공동체에서는 개인도 사회도 따로 없다. 만약 누군가 '난 쓸모없는 존재야' 라고 비관할 때는 사회구성원으로서 의미를 담고 있듯이 ‘가치존재’는 ‘사회존재’다.

자본주의 생산양식에 있는 한 우리는 상품을 만들 수밖에 없다. 그리고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팔고 사지 않으면 안 된다. 노동력을 팔든 국박을 팔든 옥수수를 팔든 그것을 팔아서 다른 것을 사야한다. 물건들의 양적 교환비율은 최초에는 우연적이다. 물건 소유자들이 서로 양도하려다가 그러는 사이에 타인 소유의 유용한 물건에 대한 욕망이 점차 확립되고 교환의 끊임없는 반복이 일어난다. 이는 교환을 하나의 정상적인 사회적 과정으로 만들었다. 이로부터 물건의 사용가치와 교환가치가 구별되기 시작했다. 사용가치가 뛰어나도 교환가치가 없으면 상품이 될 수 없다. 가치는 교환가치의 내용을 이루는 것으로 사회적 필요노동시간으로 산정된다. 

가치와 사용가치의 분리가 <자본>을 이해하는데 아주 중요하다. 사용가치는 물건의 유용함이고 가치는 사회적 필요노동시간에 의해 측정되는 교환가치의 내용이다. 처음에는 상품에 가치와 사용가치가 함께 들어있었다. 그러다가 화폐형태가 등장하면서 가치가 분리된다. 소를 팔아 자전거를 사아햐는데 자전거 갖고 있는 사람이 소가 필요할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므로, 제3의 상품(쌀, 가축) 등이 일반적 등가물(화폐형태) 의 역할을 맡게 된다. 화폐형태는 자연스럽게 적합한 상품인 귀금속으로 옮아간다.

"가치가 상품체로부터 금체로 건너 뛴 것은 상품의 결사적인 도약이었다. 화폐상품으로서의 금이 가치의 화신이 되었다. 가치모습을 취하면 상품은 그 본래의 사용가치의 온갖 흔적을 벗어버리고 무차별적 노동의 한결같은 사회적 체현으로 전환된다. 화폐형태 하에서는 모든 상품이 동일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가치의 담지체가 대표적인 생산물에서 금으로, 나중에는 주화의 단순한 표지로 정착되어가자 가치는 사용가치로부터 분리되기 시작했다. 점점 더 발전하여 아예 아무런 노동량도 담고 있지 않은 종잇장이 가치의 얼굴을 한 화폐의 역할을 수행했다. 화폐가 나타내는 '가치'가 원래 사용가치와 결합되어 있었다는 사실은, 즉 상품이 가치와 사용가치의 모든 원천이라는 사실은 점차로 묻혀갔다. 가치는 사용가치로부터 분리되었고, 가치는 화폐 속에만 사용가치는 상품 속에만 존재하는 것으로 되어갔다.

그러나 잘 생각해보면 화폐형태는 모든 상품들 사이의 관계가 한 상품에 반사한 것에 불과하다. 외관상으로 나타나는 것은, 다른 모든 상품들이 자기들의 가치를 하나의 특정한 상품으로 표현하기 때문에 그 특정 상품이 화폐로 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한 상품이 화폐이기 때문에 다른 모든 상품들이 일반적으로 자기들의 가치를 그 상품으로 표현한다는 것이다. 화폐형태로서의 금 또는 은은 지하로부터 나오자마자 모든 인간노동의 직접적 화신으로 된다. 여기에 화폐의 신비성이 있다. 화폐와 국가는 닮았다. 자연적 진화의 산물이 아니라 '역사적 현상'이다. 신이 존재하므로 믿음을 갖는게 아니라, 신에 대한 믿음이 실재하므로 신이 실존할 수 있다는 것이다. 화폐는 화폐라고 믿을 때만 화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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