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노동자는 죽도록 일해도 가난한가’ 이것이 맑스의 문제의식이 아니었을까 싶다. 맑스는 1818년생이다. 영국의 수공업자와 노동자들의 기계파괴운동이 1811년에 발생했다. 격동기에 태어난 맑스는, 산업혁명으로 기계를 통한 생산이 비약적으로 증대하던 시대를 통과했다. 공업생산을 통해 ‘부’가 증가하고 ‘신분’중심 사회에서 ‘부’중심의 사회로 변화했다. ‘좋은 신분’ 대신 ‘많은 부’가 사회의 작동원리가 됐다. 부의 획득방법을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학문 - 정치경제학이 탄생했다. 자본론은 ‘정치경제학비판’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 맑스는 이 ‘부의 학문’을 비판하기로 한다. 왜? 부가 생산되는 그 관계로부터 빈곤과 착취가 생산된다는 것을 맑스는 간파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전과 달리 필요한 것은 시장에서 구입하게 됐고, 교환과정이 사회전체로 확대됐으며 생산수단이 토지가 아니라 토지를 포함한 모든 것을 구매할 수 있는 자본으로 바뀌었다. 노동자는 노동력을 팔아서 생활수단에 필요한 것들을 살 수 있는 화폐를 손에 넣었다. 자본이 모든 활동의 중심이 되는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에 대해 21세기를 사는 우리는 지금 너무도 당연히 여기는데 맑스는 여기에 ‘착취와 빈곤’의 문제가 있고 해결의 실마리도 있다고 판단했다. 이 생산양식은 고정불변의 것이 아니다. 어느 사회나 노동은 했지만 노동이 전부 이러한 인간소외의 형태는 아니었다는 것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근대사회의 경제적 운동법칙을 밝혀낸 대작, 자본론은 1867년 출간됐다.
‘흑인은 흑인이다. 어떤 일정한 관계들 속에서 비로소 그는 노예가 된다. 면방적기계는 면방적을 위한 기계이다. 어떤 일정한 관계들 속에서만 그것은 자본이 된다. 이 관계들로부터 떼어놓으면 그것은 결코 자본이 아니다. 마치 금이 그 자체로는 화폐가 아니며 설탕이 설탕가격이 아닌 것과 같다...자본은 하나의 생산관계이며 동시에 하나의 역사적 생산관계이다.’ <임노동과 자본>(1847)
자본론 제 1장은 ‘상품’이다. 익히 듣던 대로 난해하다. 수학의 정석을 ‘집합’에서 포기하고 성문종합영어를 '투부정사'만 하다가 관두듯이 자본론도 '상품'에서 많이들 책장을 덮는다고 한다. 맑스에게도 민원이 많이 제기됐나보다. 어려워도 참고 읽으라고 서문에 신신당부를 해놓았다. 자본론의 첫 구절은 이렇게 시작한다.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이 지배하는 사회의 부는 상품의 방대한 집적으로 나타나며 개개의 상품은 이러한 부의 기본형태로 나타난다. 그러므로 우리의 연구는 상품의 분석으로부터 시작한다.”
상품이 왜 중요한가. 상품생산이 등장하면서 사회적 생산의 구조는 변화를 겪게 된다. 상품생산 이전에는 모든 생산물이 공동체 내부의 소비를 위한 것이었다. 생산은 그 자체로 소비와 직결됐다. 그런데 교통이 발달하고 십자군 원정 등 교역이 부를 가져다준다는 사실 드러나자 교환은 사회 내에서 중요한 위치 차지하게 됐다. 상품생산 확대되고 분업이 발전했다.
처음 상품의 교환의 기준은 유용성 측면의 ‘사용가치’였다. 그런데 교환의 규모가 사회적으로 커지면서 기준도 달라졌다. 이제 교환의 기준은 사적인 쓸모가 아니라 객관적인 것이 되어야했다.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는 하나의 기준. ‘가치’가 대두됐다. 이 교환할 수 있는 가치를 무엇으로 정했냐하면 양적기준이다. ‘사회적 평균노동시간’이 상품의 가치를 결정했다.
“가치로서는, 모든 상품은 일정한 크기의 응고된 노동시간에 불과하다.”
상품은 사용가치와 가치를 갖게 됐다. 상품의 유용성을 만드는 노동은 개별적 노동이고, 교환가치로 나타나는 노동은 추상적 노동, 사회적 평균으로 합의한 노동 즉 사회적 노동이다. 이것이 바로 서로 비교될 수 있는 동일한 질을 가진 노동 ‘가치’이다. 자본주의 생산양식 하에서는 사용가치를 생산하는 노동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사회적 노동의 크기 ‘가치’가 중요해졌다.
이것이 상품에 투하된 노동의 이중성이다. 상품에 투하되어 있는 노동은 사용가치와 관련해서는 질적으로만 고려된다. (도자기 만들기와 구두 만들기는 다르므로) 그런데 가치와 관련해서는 (노동이 순전한 인간의 노동으로 환원되어 있으므로) 양적으로만 고려된다. 사용가치는 노동이 어떻게 수행되며 무엇을 생산하는가 문제로 되며, 가치의 경우에는 노동력이 ‘얼마나’ 지출되는가, 즉 노동의 계속시간이 문제로 된다. 이와 같은 노동의 이중성을 중심으로 자본론이 전개된다.
“상품은 첫눈에는 자명하고 평범한 물건으로 보인다. 그러나 상품을 분석하면, 그것이 형이상학적 궤변과 신학적 잔소리로 차 있는 기묘한 물건이라는 것이 판명된다.”
상품의 물신성. 부의 세계는 상품의 세계로 바뀌었다. 재화가 오로지 ‘교환’을 위해서 생산된다. 이것이 상품이다. 어떤 상품이 사용가치인 한은 거기엔 신비한 요소가 없다. 상품의 신비한 성격은 상품의 사용가치로부터 나오지 않는다. 그러나 책상이 상품으로 나타나자마자 그것은 초감각적인 물건으로 되어버린다. 가치가 인간의 노동으로 구성된 것이 아니라 책상 속에 원래 내재해 있는 어떤 책상의 속성인 양 보게 되는 것이다. 가치가 인간의 노동에 의해 생산이라는 과정을 통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자연 속에 원래부터 주어져 있는 것으로 보이는 것, 이러한 착시현상이 상품의 물신성이다. 황금을 거울에 비추어 거울이 빛나는데 마치 거울이 빛을 내는 듯 착각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