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살면서 대수롭지 않게 선악을 판단한다. 좋은 날씨, 나쁜 날씨. 좋은 학생, 나쁜 학생. 좋은 노래, 나쁜 노래. 하지만 이것은 사물 그 자체의 본성이 아니다. 예를 들어 눈 오는 날은 거동이 불편한 사람들에겐 나쁜 날씨이고, 눈싸움을 학수고대하는 꼬마들에겐 좋은 날씨일 것이다. 치매 걸린 시부모를 봉양하는 며느리는 시댁 식구 입장에서는 좋은 며느리이고, 그렇지 않으면 나쁜 며느리이다. 이처럼 사람들에게 일차적으로 주어지는 것은 원인이 아닌 결과들이고, 사람들은 그 결과가 자신들에게 유용한지 여부에만 관심을 두고 판단할 뿐, 그것의 원인에 대해서는 알고 싶어 하지 않는다.
“우리는 그것을 선이라고 판단하기 때문에 그것을 향하여 노력하고 의지하며 충동을 느끼고 욕구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노력하고 의지하며 충동을 느끼고 욕구하기 때문에 어떤 것을 선이라고 판단한다. 어떤 사물도 그 자체로 선하거나 악하지 않다.”
스피노자가 지적하는 선악개념의 문제는 단순히 사람들의 착오에 있지 않다. 문제는 그것이 사람들의 판단 능력을 박탈한다는 점이다. ‘선악개념’은 사물의 본성과 원인에 대한 이해를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모든 상황에 무차별적으로 적용되는 초월적 권한을 지니지만, 그것이 초래하는 것은 구체적 상황에 대한 판단능력의 상실이자 무능력이다. 그리고 이처럼 무조건 따라야할 당위와 명령에 의한 수동적 삶을 살아가면, 무엇이 자신에게 유익한지 혹은 그렇지 않은 지를 구분하지 못하게 된다.
스피노자가 말하는 선이란 우리의 활동능력을 증대시키거나 촉진시키는 것이며, 악이란 활동능력을 감소시키거나 억제시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선악과가 악하기 때문에 아담에게 독이 된 것이 아니라, 선악과가 아담에게 독이 되었기 때문에 악한 것이다. 게임이 악하기 때문에 학생에게 독이 된 것이 아니라, 학생의 학습의욕을 떨어뜨리고 산만하게 만들었기 때문에 악한 것이다. 그런 점에서 모든 개체들의 본성에는 악이 속하지 않는다. 악을 자신의 본성으로 삼는 개체는 없다. 마찬가지로 선한 개체도 없다. ‘악’은 다만 개체들 간의 관계 안에서만 이야기될 수 있을 뿐이다.
우리의 삶은 매순간 숱한 마주침 속에서 영위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자신에게 좋음과 나쁨을 판단하는 능력이다. 이의 판단력 부재가 바로 ‘예속’상태다. 예를 들면, 건강을 해치는 줄 알면서도 계속 술을 마시는 알콜 중독자, 스스로 공부하는 법을 잃어버리고 학원에만 의존하는 학원중독자 등은 삶의 자기지배력을 상실한 예속된 신체다.
스피노자는 예속으로부터 벗어나 자유로운 존재가 되기 위해서 기쁨의 정서에 주목하라고 말한다. 기쁨의 정서는 우리가 자신에게 유익한 신체를 만나게 될 때 갖는 정념이다. 모든 즐거움은 계속이라고 말하는 법. 기쁨의 정념은 우리로 하여금 자신의 능력으로부터 활동하도록 이끌며, 예속에서 벗어나 우리 자신을 능동적으로 작용하도록 만들어준다. 자신의 능력과 욕망을 긍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능력이 크거나 작다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자신의 능력이 확장되고 있는가, 아니면 축소되고 있는가가 중요하다. 작더라도 자신의 능력에서 출발하고 키워가는 것이 중요하다.
“자유로운 인간은 자신에게 중요하다고 판단되는 것, 자신이 욕망하는 것을 행하지만, 예속적인 인간은 자신이 알지 못하는 것을 행하며 자신이 원치 않는 일을 행하게 된다.”
정리하자면, 사람은 살면서 무작위적인 마주침을 피할 수는 없다. 좋은 마주침과 나쁜 마주침을 선별하는 안목이 있어야한다. 서로를 파괴하고 능력을 축소시키는 마주침으로 엮이고, 운에 의해 좌지우지 되거나 무조건적인 당위를 따르는 삶은 예속적이고 불행하다. 대학진학, 결혼, 내 집 마련, 영어유치원 등 절대적으로 주어지는 자본의 명령에 포획되면 빠져나오기가 어렵다. 평생 대출금 갚느라 허덕이면서 불행하고 불안한 삶으로 생을 마감할 수밖에 없다. 자본의 흐름에 예속된 상태에서는 삶의 활동력은 소진되기 마련이다.
행복이란 자신의 신체적 욕망을 어떻게 좋은 마주침으로 구성하는가에 달려있다. 삶은 근본적으로 공통적이다. 개체의 삶이란 없다. 한 개체의 생명활동은 언제나 이미, 다른 개체의 생명활동과 연결되어 있다. 욕망은 이러한 힘과 흐름들, 이질적 에너지들의 연합의 힘이다. 연결에 대한 인식, 사물의 본질 파악, 관계 형성능력이 중요하다. 다른 신체들과의 결합을 추구함으로써 능동적으로 기쁨을 만들고, 새로운 관계를 형성하고, 이를 통해 자신을 변화시키고 확장하려는 개방적이고 적극적인 노력이 이뤄질 때라야 인간은 자유롭고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