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학-철학 수고> 자연적 감성으로부터의 총체적 소외

[비포선셋책방]

최근 쌍용차사태를 지켜보면서 나의 의문과 분노는 한 가지였다. 경제상황이 좋을 때라고 해서 별다른 혜택도 못 누리다가 상황이 나빠지면 왜 잔혹한 고통은 노동자의 차지가 되는가. 고통 분담이 아니라 고통 전담. 뭐 이런 무경우가 다 있는가. 좋을 때 부려먹다가 단물 빠지면 버리는 식이다. 감탄고토! 무명시절 내내 내조하던 조강지처 버렸다고 설경구-송윤아 커플에 거품 물던 네티즌들은 이런 사회적 차원의 대대적 배신 사태에 대해선 둔감하고 관대하다.  

대다수 국민들은 선거 때마다 계급배반 투표하는 것도 부족해서 생존권 싸움을 벌이는 노동자들에게 ‘강성노조, 귀족노조 이참에 다 감옥에 가두라’고 욕까지 해댄다. ‘서민’의 생존권 문제가 위협받는 상황이건만 자기도 서민이면서, 월급 몇 푼 더 받고 대출 끼고 산 집 있고 차 있다고 ‘해고’를 남의 일로 여긴다.  

사람을 한갓 기계부품 취급하고 아무런 죄의식 없이 용도폐기 하는 세상. 자본주의는 원래 그런 거라고 묵인하기엔 좀 억울하다. 갑갑하다. 국가의 폭력적 개입에 속수무책이다. 먹고 살고자 일자리 구하고 죽어라 일한 사람들이 왜 이런 찬밥이다 못해 쉰밥 신세가 되는지. 열심히 일할수록 우리는 왜 현존을 위협받는지. 단지 노동자라서? 자본주의 시장경제 하에서 노동자는 원래 상품이니까? 이 구차하고 구슬픈 노동자로서가 아니면 인간은 무엇으로 살아야하는가?

답안지 뜯긴 참고서 붙들고 문제가 어려워 낑낑대는 가련한 인간 앞에 운명처럼 다가온 털 복숭이 아저씨 마르크스. <경제학-철학 수고>는 멋지고 친절한 해설서라기보다 기대어 울고 싶은 ‘등짝’이었다.

“사회의 부가 쇠퇴하면 노동자는 굉장히 고통을 당한다. 부유한 사회상태에서 노동자계급이 유산자계급만큼은 이익을 얻을 수 없다 해도, 사회가 몰락할 때 노동자계급보다 잔혹한 고통을 받는 이는 없다.”

2009년 대한민국에서 노동자에게 가해지는 폭력적인 상황들을 마치 아프리카로 생중계 하듯 묘사하고 있으니, 해법이고 뭐고 일단은 ‘난 지금 슬프다’는 사실 자체만을 누군가가 알아주는 것만으로도 위안이 되듯 구절구절 고마웠다.
(어쩌면 우리의 삶에서 필요한 것은 철학책이라는 두툼한 등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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