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치환은 내게 큰사람이었다 크다는 것은 세 가지 의미다. 시대의 노래를 부르는 큰 사람. 광장에 어울리는 매끄러운 고음을 가진 큰 사람. 길가의 플라타너스처럼 키가 큰 사람. 그런 안치환이기에, 세상에 눈 뜬 이후부터 줄곧 동네의 앞산 마냥 내 삶의 배경에서 흔들리고 있었던 그였기에, 나는 그를 잘 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난번 노무현 추모공연에서 그의 존재가 새삼스럽게 다가왔다. 온몸을 불태워 노래하는 그. 감동에 겨워 눈을 떼지 못하면서 바라본 그는 충분히 낯설었다. 마치 집에서만 보던 아버지를 지하철 인파 속에서 보았을 때처럼, 본래 모습을 본 것 같은 당혹감과 반가움, 애잔함과 미안함이 뒤섞여 감정이 묘했다. ‘큰 사람’ 안치환이 아니라 ‘노래하는 사람’ 안치환. 그가 지금까지 '흐트러짐 없이' 안치환으로 있는 것은 많이 고마운 일이었다. 짧지 않은 세월의 강 건너고, 쉽지 않은 질곡의 산 넘어 여기까지 함께 흘러 흘러온 그에게 나는 깊이 감사했다. 그리고, <안치환과 자유> 소극장 공연이 열리는 8월 25일을 기다렸다.
조계사 가는 길 서대문 지나면서부터 비가 내렸다. 오후 5시가 넘었을 뿐인데 갑자기 조명을 확 낮춘 것처럼 세상이 어둑어둑해졌다. 쓸쓸한 도심을 통과하는 친구의 표정도 점점 더 어두워갔다.
“왜 이렇게 마음이 휑하니. 두 분 다 돌아가시고 나니까 사는 게 뭔가 싶고... 너무 우울하다”
운전대를 잡은 그녀가 ‘서거우울증’을 호소한다.
“그러게. 김대중대통령 영결식 보니까 노무현대통령이 더 생각나더라. 안쓰러워. 저렇게 천수 누리고 가셨어야하는데 너무 일찍 너무 아프게 가신 것 같아. 속상해....”
광화문을 지난다.
"저게 새로 만든 공원이니?"
"응. 이제 광장에 모이기는 다 틀렸어. 답답해..."
차창유리 위로 쏟아지는 빗소리가 다듬잇소리처럼 가슴을 때린다.
나지막이 사는 고단함을 토로하는 그녀. 직장도 어렵고 사랑도 어렵고. 사는 일에 지쳤다고 했다.
“그 사람... 사랑하니?”
“모르겠어. 만나고 헤어지는 게 뭐 별일인가 싶기도 하고...”
“동의해. 그런데 니가 심신이 지쳐서 그럴 수 있어. 일단 좀 떨어져지내봐.”
“내가 힘들어서 그런 생각이 드는 걸까?”
“영향이 있지. 힘들 때는 고통스러우니까 빨리 결론 내리고싶잖아...”
소극장 안, 아담한 무대 조명에 마음까지 볕이 찬다 무대 중앙에 의자와 기타가 옹기종기 세워져 있고 무대 양 옆에는 분홍색 리본이 묶인 축하화분이 놓여 있다. ‘우리의 남은 인생을 위하여, 박수!’ 벽면에 쓰인 콘서트 제목이 우리를 위한 슬로건 같았다. 앞에서 세 번째 줄 정 가운데 앉아서 우리는 소녀처럼 좋아라 소곤소곤 떠들었다.
“완전 가깝다!”
“눈빛까지 보이겠다. 그 사람 눈빛을 보면 그 사람을 알겠지 않니? 눈빛이 다 말해주는 거 같아.”
이렇게 살 수도 저렇게 살 수도 없는 마흔 즈음의 여인을 위하여, 그가 과연 어떤 노래를 불러줄까.
안치환과 자유 멋진 모자를 쓰고 청바지에 검은 티를 입은 안치환. 그가 기타들고 노래한다. 가만히 듣는다. 남자들이 긴 생머리에 대해 그렇듯이, 여자들은 기타치는 남자에 대한 동경이 있다. 그가 기타를 바꿔가며 노래를 부르자 그의 등뒤로 음표들이 샴푸향기처럼 흩날린다. 선물 같은 작은 음악회에서 지리산으로. 침묵의 저 산. 이원규의 시를 노래로 만든 ‘행여 지리산에 오시려거든’을 부른다. “행여 견딜만 하면 제발 오지 마시라” “행여 견딜만 하면 제발 오지 마시라” “행여 견딜만 하면 제발 오지 마시라”... 살아오는 저 산, 지리산. 지리산이 꿈틀한다. 옆을 힐끔 보니, 견딜만 하지 못한 그녀가 눈물을 흘린다. 지리산 귀퉁이 음지식물처럼 작아진 그녀 위로 애달픈 그림자 진다. 생명을 살리는 태초의 빛처럼 따뜻함으로 되살아나는 안치환, 목소리.
‘운주사 와불님을 뵙고 / 돌아오는 길에 그대 가슴의 처마끝에 / 풍경을 달고 돌아왔다.
먼데서 바람 불어와 / 풍경 소리 들리면 보고 싶은 내 마음이 / 찾아간 줄 알아라.‘
정호승 시의 ‘풍경달다’에 곡을 붙였다. 노래와 그가 분리되지 않는다. 가슴에 시가 흐르는 남자. 그를 위한 곡이다. ‘풍경’이 이렇게 아름다운 말이었나. 자꾸 말하고 싶었다. 풍경. 풍경. 풍경이라고. 네가. 너무. 그리웁다고. 풍경소리 들리면, 내가 찾아간 게 아니라 내 마음이 찾아간 거다. 부디 들어라. 풍경의 노래를.
'인생은 나에게 술 한 잔 사주지 않았다' 정겨운 트로트곡 '내 이름은 비정규직' '3.8선은 3.8선에 있는 것은 아냐'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 '위하여' ... 앵콜 곡까지 한 자리에서 다 들려주었다.
“원래는 앵콜은 들어갔다 나와야하는데, 무대도 좁고 시간도 늦었고 하니 그냥 부를 게요.”
다같이 웃었다. 공연 중간에 노래와 노래 사이 기타를 바꿔 매며 또 넉살 좋게 그런다.
“예전에는 이렇게 조용하면 10초가 10분 같았는데, 이제는 마음이 편해요.”
말해주고 싶었다. "보는 우리도 편하다"고.
그는 또 인사하기 전 모자를 벗고 손을 올려서는 땀에 흠뻑 젖고 짓눌린 머리를 터프하게 여러번 탈탈 털었다. 소탈한 웃음과 함께. 좋은 사람. 그가 밝아보여서 좋다. 긍정한다는 것은 가벼워진다는 것. 총총히 사라지는 뒷모습이 가붓하다. 안치환은 우리에게 소주같은 노래를 사주었다. 촉촉한 이슬같은 미성으로, 때로는 폭포같은 소리로 가슴을 적셨다. 공연장을 나와 그녀와 나는 흡족한 미소지으며 맥주 한잔 들었다. '세상에 단 하나 뿐인 소중한 이름, 안치환의 남은 인생을 위하여, 건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