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자유주의는 '엄마'가 대세다. 유모차부대의 등장은 이를 상징적으로 말해준다. 시대적 요청이다. 이제 ‘엄마’는 단순히 낳는 자와 기르는 자를 넘어 양육의 주체이자 소비의 주체, 노동의 주체, 노동력 생산(출산)의 주체이자 사회변혁세력의 주체로 그 지위가 변화되었다. 사회적 관계구성의 중핵이 엄마로 바뀐 것이다. 왜 여성도, 모성도 아닌 '엄마'인가.
왜 '엄마'의 주체화에 대해 사유해야 하는가
90년대 IMF 이후 사회는 급변했다. 서민층의 실직과 가계부채증가로 무려 300만 명의 신빈곤층이 발생했다. 실직가장이 늘어나고 상시적 정리해고가 횡행하면서 평생직장의 개념이 사라졌다. 구조조정으로 인해 기업과 상인이 도산하고 개발의 역풍을 맞은 농어촌은 사라졌다. 아빠들은 일터에서 쫓겨났다. 그전까지 아빠는 정년퇴직까지 가족의 생계와 교육을 책임지면서 집안의 권력자로 군림했다. 엄마는 시부모 봉양과 가사, 육아에 묵묵히 종사했다. 그런데 IMF 이후 아빠-생계, 엄마-가사라는 절대적 구도에 변화가 생겼다. 아빠의 권위가 추락했다. 또 그즈음 시기적으로, 부모에게 성차별을 받지 않고 자란 세대가 등장했다. 동등한 교육기회를 제공받고 자아실현 욕구가 높은 딸들의 사회적 진출이 늘면서 결혼=퇴사의 관행은 사라졌다. 집값 상승과 가계의 소비지출 증가로 맞벌이는 필수가 됐다. 기혼여성은 아이를 낳거나 혹은 낳지 않는 방법으로 삶의 주체이자 사회적 주체로 자리매김했다.
매스컴에서는 여성의 사회적 약진을 호들갑스럽게 보도했다. 각종 고시에서 여성의 합격비율이 높아지고 공직자의 여성비율이 늘고 각 분야 최초, 최연소의 여성인력들이 집중 조명을 받았다. 물론 여성문제에서도 양극화는 심화됐다. ‘서민들의 몰락’은 저임금․불안정 노동시장으로 여성인력의 유입을 야기했다. 남편의 실직 등 집안사정으로 인해 반찬값과 학원비를 벌기 위해 기꺼이 대형마트로 인력시장으로 공장으로 보험업계로 등등 노동시장에 진출했다. 사업장마다 무한경쟁 심화로 인해 고도의 ‘감정노동’이 강요되었고 연속고용은 보장되지 않았다. 여성인력은 대부분 ‘비정규직’이라는 열악한 근무조건에 처하게 됐다. 그렇게 문자로 해고를 통보받는 비정규직이든 고액연봉의 커리어우먼이든 여성의 경제활동은 보편화됐다. 그러면서 이전의 확고한 가부장질서는 일터를 점령한 억척스럽고 ‘쎈’언니들로 인해 조금씩 흔들렸다. ‘아버지’라는 존재가 약화되고 상대적으로 ‘어머니’라는 존재가 사회적으로 부각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자본주의 권력구성에 있어서든, 그것에 저항하는 권력의 구성에 있어서든 ‘엄마’의 주체화에 대해서는 사유되지 않았다. 오직 아빠-권력자, 아빠-노동자, 아빠-투사에 대해서만 이야기되어 왔다.
87년 6월 항쟁과 7․8월 투쟁에 넥타이부대와 현대자동차, 대우조선 노동자가 있다면 08년 촛불집회에는 유모차부대와 82쿡닷컴과 소울드레서, 하이힐부대가 있다. 연간20조에 달하는 사교육시장에서 실질적으로 지갑을 여는 주체는 엄마다. 출산파업으로 국가성장동력을 감소시키는 것도 엄마다. 아이러니하게도, 자본의 호명에 가장 열렬히 답하는 것도 엄마이고, 자본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것도 엄마다. 이 같은 현실의 요청에 따라 ‘엄마의 주체형성 과정'을 살펴보고, 왜 ‘여성’이 아니고 ‘엄마’를 사유해야 하는가, 왜 여성이 아니고 엄마가 변하면 세상이 변하는가에 대해 정리해보겠다.
소비의 핵심주체, 엄마 - 영수증으로 세상을 바꾸자고?
기른 정이냐 낳은 정이냐의 팽팽한 대립이 말해주듯, 엄마는 낳는 자이면서 기르는 자이다. 24시간 아이와 붙어 있지 못하더라도 내 몸에서 분리된 아이의 육아의 주체로 살아가게 된다. 대부분 엄마들은 먹이고 입히고 공부시키는 양육의 문제를 자신의 절대적 과제이자 삶의 전부로 삼는다. 한 가정에 많아야 한 둘 있는 자녀의 양육에 ‘올인’한다. 시시각각 세상이 빠르게 변하고 있다. 자고나면 새로운 상품과 정보가 쏟아지고 각종 정책과 사고가 발표되는 시대인지라 양육에 있어서 엄마들의 인터넷 의존도는 매우 높다.
첫아이 출산 후 육아상식도 시어머니나 친정엄마가 아닌 지식검색과 육아사이트를 통해 클릭으로 전수받는다. 엄마들의 양육패턴은 첨단화되었고 커뮤니티는 활성화됐다. 이유식 정보를 나누고 유기농식단을 공유하고 싸고 예쁜 옷과 헌책이 매매된다. 좋은 유모차 정보와 돌잔치와 생일파티 장소, 아이랑 외식하기 좋은 음식점 등 수시로 들락거리며 정보를 나누고 물품을 거래하며 서로의 욕망을 복제한다.
‘내 아이도 남들 하는 만큼’의 기준은 점점 높아진다. 소비의 규모는 커지고 늘어간다. 기업들은 외친다. ‘엄마들을 잡아라’ 엄마들의 입소문은 가장 강력한 기업의 홍보수단이 되었고 양육의 전권자인 엄마들은 소비의 핵심주체로 부상했다. 작년에 미국 광우병 쇠고기 수입에 반대하는 촛불집회에서 유모차부대 등 엄마들의 참여가 두드러진 것도 이 때문이다. 인터넷 의존도가 높고 커뮤니티가 활성화되고 아이의 먹거리와 교육에 민감한 양육의 주체-엄마들이기에 '시방 대한민국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내 아이의 생존과 직결되는 문제'라는 것에 빠르게 공감한 것이다.
이 땅에서 안전한 먹을거리가 사라지는 상황에서는 ‘내 집에서 내 아이’만 유기농으로 챙겨 먹인다고 안심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얇은 생활비에서 유기농 식단의 지출을 감당할 수 있는 계층도 극히 일부다. 당장에 유치원과 학교급식을 안 할 수 없고 외식 한 번 안 하고 살기란 불가능하다. 그러니 엄마들이 자식을 위해 나설 수밖에 없는 것이다. 나쁜 음식, 나쁜 언론, 나쁜 교육에서 자식을 지켜주고 싶은 엄마의 마음에, 유모차 끌고 나서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날로 환경오염이 심각해지고 식품안전사고가 빈발할수록 소비의 주체로서 엄마, 즉 주부의 역할은 중요해진다. 아토피로 고생하던 첫 아이를 자연요법으로 완치시키는 등 에코라이프를 실천하는 환경운동가 신근정씨의 말을 들어보자.
“주부의 소비는 참 중요합니다. 생각해 보세요. 유전자 조작된 콩으로 만든 기름을 쓴 제품을 소비자가 사니까 만드는 거예요. 상품이 팔리지 않는다면 기업에서도 만들지 않을 것입니다. 해로운 걸 사용해도 팔리니까 계속 만드는 거겠죠.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윤리적인 기업의 제품, 안전하고 질 좋은 먹거리를 고르는 엄마의 선택이 중요합니다. 4년에 한 번 하는 ‘투표’로만 세상을 바꾸는 게 아니라 내가 산 물건의 ‘영수증’으로도 세상은 바뀝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