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가구가 아니다. 묵직한 몸체에 분홍꽃 무리 흐드러지고 기차와 연필 오밀조밀 새겨진 동화나라다. 바라볼 때마다 미소가 이는 사랑스러운 연인이요, 십년 이십년 좋은 추억을 함께 만들어가는 가족같은 가구이다. ‘노느니 일하자’는 자유로운 열정과 거침없는 상상력에서 태어난 이종명 가구는, 가장 가구답지 않은 방식으로 가구의 지평을 넓혔다.
이종명style그림같은 집에서 사랑하는 사람과 살고픈 건 누구나의 로망이다. 가구디자이너 이종명은 그 꿈을 이룬 사람이자, 이뤄주는 사람이다. 그는 경기도 광주의 전원주택에 산다. 현관문의 ‘DREAM HOUSE'라는 문패가 말해주듯이 실내공간은 꿈과 사랑스러움이 넘친다. 그가 직접 만든 식탁, 책꽂이, 조명 등은 천연색감과 아기자기한 그림으로 꾸며져 있어 집안에 봄날의 생동이 넘친다. 아련한 동화나라에 온 듯 기분이 좋아지는 가구. 이를 일컬어 그는 ‘한 번 보면 생각나고, 두 번 보면 갖고 싶은 가구’라고 표현한다.
편하고 즐겁고 오래 써야 명품 “옷이든 가구든 똑같아요. 편해서 자꾸 손이가고 쓸 때마다 즐거워지는 게 명품입니다. 외관이 너무 화려하거나 매끈하면 쓰기에 부담스럽고 불편하죠. 하지만 유치한 걸 보면 사람들은 마음이 편해져요. 제 가구는 묵직한 덩어리감에 소소한 디테일을 표현합니다. 누구나 이해하기 쉬운 그림이고 손때 묻은 정겨운 느낌이 들어서 쓸수록 만족도가 높지요.”
이종명가구의 경쟁력은 차별화된 디자인이다. 앤틱스타일도 모던스타일도 아닌 예쁜 꽃과 나비 등 알록달록한 비주얼이 가미된 이종명스타일. 그의 무궁무진한 ‘창작본능’에 의해 온갖 만물이 거침없이 살아난다. 아울러 그만이 가진 독특한 디자인에 누구든 불편하지 않게 쓸 수 있도록 튼튼하게 만들었다. 가구디자인은 생활 속에서 나온다고 말하는 그는 제품의 기본적인 기능성, 실용적 측면을 강조한다. 가구라면 견고하고 사용함에 불편이 없어야 하고 그릇이라면 음식을 담고 물로 씻는데 편리해야 한다는 것이 창작지론이다.
그는 초등학생 때부터 가구디자이너로서 ‘심미안’을 키웠다. 육남매 속에서 자란 탓에 ‘내방’에 대한 동경이 있었고 틈나면 가구 보러 다니길 즐겨했다. 손재주도 남달랐다. 무언가를 끊임없이 그렸고 뚝딱 만들어냈다. 학창시절에는 줄곧 환경미화를 도맡아 선생님들의 총애를 한 몸에 받았다. 그러다가 고2 때 소원대로 ‘나만의 방’을 갖게 된 그는 침대에 누워서 옷장의 넓고 밋밋한 면면을 보면서 “아, 저기에 그림이 있으면 얼마나 예쁠까”하는 상상의 나래를 펴게 된다. 이종명가구의 꽃씨가 뿌려진 것이다.
“가구디자인을 위해 홍익대학교 목공예학과에 입학에 들어갔는데 가구디자인을 가르치는 과목은 없더라고요. 그래서 혼자 그동안 구상했던 생활 속에 필요한 것들을 만들기 시작했어요. 아무리 만들어도 만들어도 질리지 않고 너무너무 재밌는 거예요.”
대학원 때부터 전시회마다 ‘매진열풍’
일단 아이디어가 딱 떠오르면 밤새워서라도 만들고 친구들과 수다 떨면서도 손으로는 꼼지락꼼지락 작품하나를 뚝딱 완성해냈다. 하루에 서너 시간밖에 못자면서도 피곤한줄 모르고 왕성한 창작활동을 펼쳤다. 대학원에 진학해서도 작업실이 집이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이종명가구’는 전시회에 출품,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대학 등록금 60-70만원이던 당시 200만~300만원에 다 팔렸다. 하나 만들어서 돈 벌면 그것으로 열 개를 만들고, 또 팔아서 재료와 설비를 사고 다음엔 작업실을 마련하는 등 하나씩 이종명가구의 틀을 갖춰나갔다.
“서른 살 이전에 번 돈은 고스란히 ‘재투자’에 사용됐다.” 새로운 작업을 위한 재료를 구입하고 아이디어와 디자인 구상을 위한 서적을 사들이고, 국경을 넘어 유럽으로 여행을 다녔다. 재료비를 아까워하지 않고 구상한 것은 무조건 다 만들었다. 어떤 것에도 구애됨 없이 작업에 몰두했다. 틈틈이 아름다운 것을 보고, 좋은 음악을 듣고 좋은 책을 보면서 감성을 단련시키는 일에 집중적으로 투자했다. 다양하고 폭넓은 체험을 통해 각자의 감성과 능력에 따른 디자인이 나올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전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자신있다”
그의 창작동력은 도전정신이나 의무감이 아니다. 끊임없이 새로운 재미를 추구하는 호기심과 상상력, 그리고 아름다움에 대한 열망이다. “나 자신이 궁금해서 만들고 즐거워서 만든” 이종명가구는 영화 <중독>에 소개되면서 본격적으로 매스컴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또한 매년 '리빙 디자인 페어'에 참가하며 '이종명 가구'를 사람들에게 알렸다. 2006년 1월에는 '파리 세계가구박람회'에 참가, 해외시장에도 도전장을 냈다. 대부분 해외 전시회 때는 정부에서 지원을 받지만 그는 해외 전시회 참가하는 전 과정을 배우고 싶어 4000만원 자비를 들여 직접 진행했다고 전한다. 밀라노 가구박람회 등 해외로 자주 다니면서 더욱 자신감을 얻었다며 “내 작품을 전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사랑받을 자신이 있다”고 말했다. 무릇 작가란 자신을 가장 먼저 감동시켜야하는 법. 그는 “내가 만들어놓고도 사랑스러워서 다시 한 번 눈길이 가는 작품”이라며 ‘이종명가구’에 대한 긍지를 드러냈다.
요즘은 몇 해 전부터 간간히 작업 해오던 ‘조명’으로 창작영역을 확장했다. 화사한 이종명가구와 조화를 이루는 ‘이종명조명’은 은은한 한지의 색감과 독특한 질감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이외에도 ‘T-money' 카드의 디자인을 담당하는 등 자유롭고 폭넓은 작업세계를 구축하고 있다.
이종명의 모토는 ‘노느니 일하자’이다. 또 ‘이론적으로 가능하면 실제로도 가능하다.’는 믿음으로 임하고, 성취해왔다. “올해가 작가로서의 인생에 새로운 전환기가 될 것”이라는 그는 날이 풀리면 일단 일에 파묻힐 생각이다. 생각하고 일하는 게 아니라, 일하면서 생각하던 ‘습관’대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