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화성 장명초등학교 앞. 건너편 아담한 단층 벽돌건물이 마주섰다. 항아리며 꽃이며 아기자기하게 꾸며진 너른 마당에는 삽살개가 먼저 나와 반기고, 정자에는 할머니 서너 분이 모여 담소를 나누고 있다. 더 없이 평화로운 정경에 보는 순간 마음 한 자락 볕이 들고 마는 이곳은 김근묵, 이경희 부부가 사비를 털어 세운 성산양로원이다.
헌혈유공장, 금장 받아
“조그만 집 한 채 팔아서 2억 원 정도로 양로원을 시작했습니다. 여기 계신 분들은 훗날 제 모습입니다. 마땅히 모셔야지요. 또 저 혼자 힘으로 하는 게 아니고요. 여러분들의 후원과 도움으로 지금까지 운영해 온 것입니다.”
7년 째 오갈 곳 없는 할머니 15명을 모시고 사는 김근묵 원장. 그는 ‘대수로운 일 아니다’는 말을 후렴구처럼 반복했다. 그러나 그의 삶은 어느 쪽부터 펼쳐서 읽어도 빠져들게 되는 감동적인 휴먼소설이다.
경기도 화성의 한 시골에서 태어나고 자란 김 원장은 어릴 때부터 거지를 보면 단돈 10원이라도 줘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었다. 따뜻한 심성으로 성장한 그가 ‘나눔의 삶’을 본격적으로 결심한 건 1971년 월남전에 자원입대한 후부터다. 전투에 같이 나갔던 동료들이 죽고 부상당한 것을 수없이 보면서 목숨이 다할 때까지 남을 위해 살기로 마음먹은 것.
“전쟁터에서 헌혈은 당연히 하는 것이었다.”는 그는 그 때의 헌혈이 ‘버릇’이 되어 제대 후에도 보름이 멀다 하고 피를 나누었다. 뿐 아니라 헌옷가지를 불우이웃에 전달하고 월급을 쪼개 양로원에 보내기도 했다. 이런 공로가 알려지면서 그는 1991년 대한적십자사로부터 헌혈 유공장 ‘금장’까지 받았다. 원장실 벽면을 도배하다시피 한 각종 표창장과 감사패 중 하나가 그것이다.
"한 사람이 삶이 달라지는데 당연히.."
지난 해 건강이 나빠져 그만 두기 전까지 그가 헌혈한 횟수는 총 160회. 마침내 그의 나눔은 헌혈에서 장기기증까지 나아갔다. “본래 헌혈과 장기기증은 하나로 이어진 것”이라고 말하는 그는 1995년 한 만성신부전증 환자에게 자신의 신장을 떼어 기증한 데 이어 2002년 2월 간의 일부도 조건 없이 주었다.
“한 개 있어도 잘 살 수 있는데 두 개 있는 것은 사치가 아니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만성신부전증 환자는 주 2-3회 투석을 하니까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합니다. 제 것을 나누어 한 사람이 자유롭게 살 수 있는데 당연히 해야죠.”
그는 또한 간은 생명과 직결된다며 사람을 살리는 일보다 더 가치 있는 게 있겠느냐고 묻는다. 물론 장기이식 수술이 아프긴 하지만 매사가 그렇듯 ‘봉사 역시 희생을 조금도 안 하고 할 수는 없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남편의 이 같은 생활에 감복한 부인 이경희 씨도 1997년 2월 신장기능 마비로 상급학교 진학을 포기하고 투병하던 한 고교생에게 신장을 기증했다. 이로써 그들은 부부장기기증자 국내 1호가 됐다.
“남편이 계속 권유했지만 제가 워낙 주사바늘도 무서워하는 성격이라 망설였지요. 그런데 남편이 신장이식하고 하도 아파하길래 호기심에 용기를 냈습니다. 수술 후에 남편은 일주일 내내 누워있었지만 저는 다음날 바로 걸어 다녔거든요. 의사들도 특이한 경우라며 놀라더라고요.” 호탕하게 웃는 이경희 씨. 그들 부부에게 나눔은 즐거운 일상이었다.
어르신들 가시는 길 동행 가장 보람돼
하지만 그녀에게도 불만은 있다. 남편이 할머니들에겐 봄바람처럼 따스하지만 자신에겐 가을서리처럼 차갑게 대한다는 것. “내가 뭐 먹고 싶다고 말하면 있는 거 먹으라고 하거든요. 근데 할머니들이 뭐 먹고 싶다고 하면 아무리 비싼 거라도 사드려요. 남편이 어르신들에게 워낙 잘해서 남편은 천사고 악역은 주로 제가 합니다.”
힐끗 남편을 바라보는 듯싶더니 이내 눈꼬리가 접혀 웃고 만다. 이처럼 금슬 좋은 부부가 운영하는 양로원이기에 어르신들에게까지 행복한 파장이 전해진다. “지금까지 할머니 세 분이 돌아가셨어요. 모두 아주 깨끗하게 주무시듯 가셨지요. 사람은 죽는 복이 중요하다고 하잖아요. 마지막 가는 길에 동행해드리는 게 저희 부부의 큰 보람입니다.”
김근묵 원장은 현재 대학에서 사회복지 공부를 하고 있다. 성산양로원에서 나아가 화성지역, 우리나라 복지시설의 질적 발전에 기여하고픈 꿈을 위해서다. 늦깍이 학생노릇이 힘들기도 하지만 이것저것 듣다보니 시야가 넓어지는 것 같다며 밝게 웃는다. 재산을 나누고, 몸을 나누고 마음을 나누는 김근묵 이경희 부부. 그들의 투명한 삶은 메마른 세상에 단비로 촉촉이 내리고 있다.
*대상그룹 사외보 <기분좋은 만남> 2006년 11/12월 호
# 이 분들 취재 후 나도 장기기증을 결심했다. 1년 뒤에 명동성당에 있는 천주교 NGO '한마음한몸운동본부'에서 안구, 장기, 조혈모세포기증을 신청했다. 사후에 의학해부용으로 쓰이는 사체기증까지 있는데 그건 왠지 좀 무서웠다..;; (기증의 단계는 본인 정하기 나름^^) 죽으면 빨리 병원에 데려가서 기증해야하니까 동네방네 장기기증 사실을 알리라고 하더라. 조혈모세포기증의 경우 피뽑는 시간이 잠깐 걸리지만, 장기기증신청서에 몇 자 적으면 되는 의외로 간단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