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6월 17일, 민언련(민주언론시민운동연합)에서 노희경 작가와의 만남의 자리를 마련했다. KBS 창사특집극 [유행가가 되리] 란 드라마가 3월의 좋은방송으로 선정되었는데 그것을 기념한 간담회였다. 전날 그 소식을 접하고 노희경님의'사인'을 받으러 갔다. 사정이 생겨 늦게 가는 바람에 30분 지각생으로 빼꼼이 강의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정면에 노란 커트 머리의 작은 여학생 같은 분이 앉아 있었다. 바로 노희경님이었다! 오호! 지면을 통해서 사진으로만 보다가 실물로 보니 어찌나 반갑고 좋고 설레던지^^ 대략 50여명 정도 참석했다. 나는 노희경님 '글 팬' 이지만 '얼굴팬' 라인에 앉고 싶어서 조금 앞부분 구석에 자리를 잡았다.
인생은 덩굴 벗어나면 또 덩굴이다
"혼자 산다고 해서 짐이 덜어지는 건 아니에요. 마찬가지에요. 집에서 나가 산다고 가족 일에 신경 안 쓸 거 아니잖아요. 그렇게 살면 사는 대로 고충은 있고 삶의 무게는 비등한 거 같아요. 숨 쉬는 게 힘든 거지. 엄마가 만날 하시던 말씀이 있거든요. “삼시 세끼 밥 먹기 힘들다.” 결국 그거거든요...."
개인적으로 그즈음은 질풍노도의 시기였다. ‘언젠가, 기필코 혼자 살리라’ 밤마다 꿈을 꾸던 중이었는데 마침 들어갔을 때 노작가님이 '독립'에 대해 얘기하고 있었다. 덩굴 벗어나면 또 덩굴인 게 인생이라고. '끼니'를 중심으로 사는 것의 녹록치 않음에 대해 이야기를 풀어내시는데 듣고 있자니 정신 번쩍 들었다.
노작가님이 파란만장 인생사 박물관이자 기념비적인 삶을 살아온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야기 중에 기탄없이 터놓았다. 엄마는 60세에 암으로 돌아가시고 아버지가 바람을 많이 피우셨단다. [꽃보다 아름다워]에 나오는 탤런트 주현이 하는 대사들. 바람 피우는 남자들이 하는 뻔한 말들을 어려서 부터 듣고 자라서 잘 알고 있다면서 그 아버지를 지금은 용서했다고 말했다.
아버지가 비록 바람을 피웠을지라도 그건 그 문제이고, 한 사람이 여섯 남매의 가장으로서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면서 느꼈을 그 인생의 무게가 얼마나 컸겠는가를 생각하게 됐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아버지가 폐암 말기라서 얼마 못사는데 세월이 너무 허무하게 갔다고 “부모님이랑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많은 게 아니더라"고 했다.
가족은 인간존중으로 맺어진 복합멤버다 그 자리에 있던 어느 분이 “노작가님 드라마에 나오는 자식들은 너무 효자효녀라 부모님과 보기 부담스럽다. 그리고 주변에 실제로 그런 자식들 보기 힘든데 왜 그런 비현실적인(!) 캐릭터를 그리는가” 라고 물었다.
"사람들이 저보고 리얼리즘 작가라고 말하는데 저는 제가 판타지 작가라고 생각하고 앞으로도 판타지 작가하려고요. (웃음) 가족의 이상적인 모습, 가족 간에 자연스런 사랑표현, 이런 것들을 계속 말하고 싶어요. "
하지만 노희경님은 가족의 정의가 달랐다. 어차피 부부도 남과 남이 만나는 것이고, 남이 만나서 가족을 이루는 거니깐 친구나 옆집 사람도 가족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부모자식 간에도 그렇고 친구 간에도 그렇고 서로 기대 없이 친구처럼 지내면 가족이다. 실제로 노희경님도 조카들이랑 사신다고, 오빠가 이혼을 해서 애들을 맡게 되었다고 했다.
“너무 남과 여를 나누고 너와 나를 가르고 그런 거 없었으면 좋겠어요. 다 같은 사람, 인간으로 서로를 대하면 안 되는 걸까요.” 노희경님은 이런 대안가족이나 이상가족 등 복합멤버들로 이뤄진 다양한 구성으로 결성된 가족에 대한 드라마를 구상 중이라고 귀띔했다.
나를 이해해야 타인도 이해한다
‘자신에 대한 이해심’을 얘기했다. 자신을 솔직히 바라보고 이해해야 한다. 이것이 전제 되어야 타인도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노희경님은 드라마 쓸 때 자기 안에 있는 여러 면들 즉, 착한 면 음흉한 면 사악한 면 엉뚱한 면 등등 다양한 내면의 인격을 끄집어내 등장인물로 만든다며 꽃아름의 미옥이처럼 헌신하기도 했고, 미수처럼 돈으로 도리를 하고 외면하기도 했고, 흥수같은 면도 있었다며 모두 자기의 모습이라고 했다. 창작은 “경험과 상상력, 그리고 역지사지로 생각해보기”라고 정의했다.
또 노희경님은 어머님 암투병 할 때 속상해서 집을 나가서 살았단다. 한 집에서 만날 울고불고 하는 모습 보여주기 싫고, 차라리 따로 살고 자주 들러서 웃는 모습 보여드리고 싶어서 그랬다고. "그런데 제 속마음 모르는 사람은 엄마가 암인데 딸이 집을 나갔다고 욕했겠죠." 얘길 듣다보니 노희경님은 자신에게 솔직했다. 측은지심으로 사람을 대하고, 집착은 다 놓아버린 듯보였다. 작품에서 우러나는 내공, 그대로.
한 작가지망생이 선배로서 비법 내지는 조언을 부탁했다. "그런 질문을 많이 받는데 잘 모르겠어요. 어려워요. 저는 자연스럽게 됐거든요. 근데 책(을 통한 학습)은 아닌 거 같아요. 책으로 되는 문제는 아니고 자기 고유의 느낌을 아는 거, 그걸 계속 살려내야 해요. 자기만의 생각이나 느낌이요. 그게 중요한 거 같아요."
작가는 대본써서 밥먹고, 스태프는 책상나르고 밥먹고
노희경님이 처음에는 소설이랑 시를 썼는데 그 땐 굉장히 힘들었다고 고백했다. 그러다가 우연히 드라마를 썼는데 너무 편안하게 잘 저절로 (그런 뜻의 다른 표현) 써졌다며 자기 작품을 누가 돈 주고 사보는 것이 아니라 부담도 안 느끼고 너무 좋았다고 했다. 그 얘길 들으니 누구나 자기 몸에 맞는 옷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타고난 저마다의 소질.
“작가가 대단한 일이 아니에요. 책상 나르는 스태프는 그걸로 밥을 먹고, 저는 대본 써서 밥을 먹고요. 다 똑같은 거 같아요." 가장 감동적인 대목이었다. 자신에 대한 소중함은 지극했는데 작가라는 외양에 대해서는 큰 무게를 두지 않았다. 인간에 대한 존중심과 겸손함이 배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관계에서 애증이란 말 많이 하는데 우리는 너무 '증'만 표현하는 거 같아요. '애'도 잘 표현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부모님이나, 친구나 주위 사람들에게. 저도 쑥스러워서 잘 못하고 넘어가고 하는데 우리들 정서가 전체적으로 그렇다보니 사람들 삶이나 세상이 점점 삭막해져가는 거 같아요. 가까운 사이일수록 " 야, 내가 너 땜에 별 짓을 다해! " 이런 식의 격한 말들을 통해 서로 '자극적인 존재확인'을 해나가는 게 문제가 커요. 좋은 감정 많이 표현하면서 긍정적인 에너지가 많이 생성되면 좋겠어요.”
그러면서 연습한다고 고백했다. 친구가 칭찬 했을 때 "에이~뭘~;;" 이러는 대신 "너한테 칭찬 들으니깐 기분 좋다. 앞으로 또 해줘!" 이렇게 말하기로 했다며 웃었다.
이세상 모든 늙은여자 앞에 경배한다
이날 좋은 방송에 선정된 [유행가가 되리] 란 드라마는 정년퇴직 앞둔 부부의 삶과 사랑을 다룬 드라마다. 박근형, 윤여정씨가 주인공이다. 그 드라마를 보고 있으면 부모님 생각도 많이 나고 몇 십 년 후 나의 모습도 오버랩 된다. 우리네 삶은 후줄근한데 노희경님이 그걸 작품화 하면 이상하게 인간미 물씬 흐르고 따뜻해진다.
"저는 스무 살에서 서른 넘으면 완전히 다 늙어버리는 줄 알았어요. 그런데 서른 살 넘으니깐 똑같은 거예요. 지금 마흔이 되어서도 그 맘 그대로고. 앞으로도 그러겠죠? 제가 마흔 되고나서 '이렇게 여전히 여행도 가고 싶고, 연애도 하고 싶고, 맛있는 것도 먹고 싶고 그 맘 그대로인데 이 나이에 우리엄마는 그런저런 맘 다 억누르고 바람피우느라 남편은 없고, 여섯 아이들 키워내느라 얼마나 힘들었을까를 생각하니 불쌍해서 제가 삼박사일을 울었어요."
가슴 아팠다. 이렇게 역지사지가 자유롭고 사람에 대한 연민이 넘치다 보니 실제나이 보다 이삼십년 윗 연배의 어른들의 감정묘사도 탁월하게 해낼 수 있겠다 싶었다. 이쯤되면 ‘삶에 대한 경배’ 수준이었다. 노희경님은 “이 세상 모든 늙은 여자 앞에 경배한다.” 이런 감동적인 말이 부지불식간에 툭툭 튀어나왔다.
노희경님에게 질문하는 시간에 어느 분은 "저는 아직도 우울할 때면 드라마 ‘거짓말’을 보곤 해요. 그러면 영혼이 따뜻해지는 걸 느낍니다. 그래서 노희경 씨를 꼭 한번 뵙고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었어요." 라고 인사를 했다. 그분의 감사의 말이야말로 따뜻하게 와 닿았다.
간절히 원하면 지금 움직이세요
간담회가 끝나고 사인받는 시간. 나도 줄서서 받았다. 나는 예정에도 없이 이런 말을 했다. "좋은 글 쓰는 사람 되고 싶어요..."라고 개미만한 목소리 말했다. 그랬더니 이렇게 써주셨다. "간절히 원하면 지금 움직이세요." 눈물나게 고마웠고, 거짓말처럼 힘이 났다.
그리고 그날 같이 가려다가 못간 친구의 사인도 챙겨야하는데 줄이 길어서 맨 뒤로 가 있다가 기다려서 받았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어찌나 지극정성으로 써주시는지 그 모습이 참 보기 좋았다. 내 친구 사인에 써주신 내용이 또 너무나도 소중했다.
"당신은 참으로 좋은 친구를 두셨네요. 당신의 친구가 당신을 위해 서먹함을 이기고 다시 제게 왔네요. 참으로 예쁘게."
‘작가와의 만남’을 처음 가보는 건데 노희경님의 좋은 얘기 많이 듣고, 참석한 사람들도 진지하고 허심탄회하게 이야기 많이 하고 좋은 시간이었다. 부모님에 대해서, 자신에 대해서, 사람에 대해서, 삶에 대해서, 세상에 대해서, 일에 대해서, 이런 모든 것들과 살아간다는 것에 대해서, 감사드려야 할 것 같았다. 노희경님은 말했다. 인생이 괴로운 것은 그것이 대단한 것이라는 착각에서 온다고. 결국은 세끼 밥 먹고 사는 문제인데 말이다. 노희경님을 만나고 집으로 오는 길에 계속 몽테뉴의 말이 생각났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은 스스로 생각하는 것 보다 훨씬 더 소중한 존재다.”
>>> 2005년 6월에 쓴 글이다. 노희경님이 그날 들려준 이야기들이 삶의 난해한 문제를 푸는데 많은 도움이 됐다. 지금 다시 삶이 갑갑하게 옥죄여 오는 느낌이 들어 그때 쓴 글을 꺼내보았다. 역시나 주옥같은 얘기들. 노희경님은 얼마전 <지금 사랑하지 않는 자, 모두 유죄>란 책을 냈다. "나는 드라마 쓰는 사람"이라면서 고집스럽게도 숱한 출판 제의를 거절했는데, 지금 이 책을 낸 출판사 대표께서 불경기임에도 불구하고 북한어린이 돕기애 3천만원을 내는 걸 보고 감동했고, 그 대표분이 "책내자"고 제안해와 거절할 수 없었다고 한다. 책의 인세 일부도 좋은 일에 쓰인다고 한다. 나의 좋은 인생스승이자 글스승 노희경님의 행복을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