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재역에 있는 '최재민 소아과'에 취재를 갔다. 재개발을 앞둔 건물이라서 '강남'이라 하기 민망하리만치 허름했다. 요즘은 자기 이름을 내건 병원이 별로 없다. 연세치과, 리더스피부과, 꿈나무소아과, 속편한내과 등등의 병원들 사이에서 오히려 낡고 오래된 간판에 새겨진 이름 석자가 믿음직해보였다. 그리고 의사선생님을 만났는데 역시나, 소신파 의사선생님이었다. 무엇보다 반가운 것은 '모유수유'에 대한 의학적 소신이다.
"모유수유 반드시 해라. 누구나 할 수 있다. 동물의 왕국 사자를 봐라. 방법은 간단하다. 낳자마자 엄마 품에 올려놓으면 알아서 먹는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그걸 가로막는 장치가 너무 많다. 신생아의 필요량은 하루에 30cc. 그걸 10번에 나눠 먹이면 한번에 3cc. 아주 극소량이다. (아이들 시럽에 들어있는 스푼이 5cc다) 그러니 아이가 안 먹는 것 같고 엄마는 젖이 안 나온다고 생각하는데 대부분이 나온다. 왜 모유를 안 먹이고 설탕물을 먹이나. 나도 예전에 신생아실에서 근무할 때 그걸 처방했는데 후회스럽다. 모유수유 누구나 할 수 있고 해야한다. 원래 모유수유는 '2년'을 권장한다. 그런데 6살까지 먹여도 된다"
나는 아이 둘다 모유를 먹였다. 모두들 그렇겠지만 첫애는 융통성 없이 '육아지침서대로' '저명한 소아과의사의 처방대로' 뭐든지 따라했다. 그래서 '9개월 이후는 물젖이다. 영양이 부족해지니 분유와 이유식으로 대체해야 한다'는 이론을 적극 수용하여 9개월 즈음 젖을 끊었다. 그런데 아이를 키워보니 책이 다 맞는 건 아니었다. 내 아이를 가장 잘 아는 건 엄마다. 아이의 습성과 특성을 잘 아는 '엄마'가 의사가 되어 소신껏 해야하는 경우도 많았다.
그래서 둘째를 가졌을 때 '이제 아이를 더 낳을 것도 아니니 아이가 싫다고 고개를 돌릴 때까지 원없이 젖을 먹이자.'는 생각이 들었다. 자연스럽게 아이의 요구를 들어주리라 결심했고, 그대로 이행하다보니 6세가 되도록 모유를 수유하게 됐다. 물론 돌이 지나고 주식이 밥으로 넘어간 뒤에는 모유는 간식, 세살이 넘어서는 애피타이저, 디저트 정도였고, 더 커서는 취침 전 '수면유도제' 혹은 '심신안정제' 용도였다. 사실 모유수유의 행위에는 '자유의 몸'이 되고픈 엄마의 욕망도 투영됐다. 젖을 물리면 아이가 편하고 신속하게 잠이드니까 1분이라도 빨리 '육아'에서 해방되기 위해선 '모유수유'가 최고의 명약이었다. 물론 늘 엄마의 사랑을 갈구하고 확인하길 원하는 아이의 입장에서도 '얼씨구나~' 좋아라했다. 어느 날 의사표현이 자유롭게 된 아이가 "엄마 젖에서 미지근한 우유가나와~"라고 감격스런 표정으로 소감을 피력했다. 의외의 발언에 깜짝 놀라 지도 웃고 나도 웃었다.
6세까지 모유를 먹이자 주위에서 조선시대 여자냐고 놀림 꽤나 받았다. 허물없는 사이면 웃도리를 훌쩍 올려 일미터쯤되는 아이를 가로로 뉘여 젖을 물리곤 했으니 핀잔 받을만 하다. 그러면 이렇게 말했다. "소신이 있어서 계속 먹인 게 아니라 굳이 끊을 이유가 없노라고"
아이가 OK할 때까지...굳이 끊을 이유 없다
사실이었다. 모유수유의 좋은 점은 널리 알려졌지만, 정말이지 아이를 키우면서 절실히 느꼈다. 첫째 아이가 건강하다. 면역력 때문인지 잔병치레 없이 컸다. 둘째 분유값, 젖병값 등 육아비용이 절감된다. 첫애는 모유 먹이고 천기저귀 채웠더니 돈이 많이 절약됐다. 셋째 엄마 건강에 좋다. 유방암 걸릴 확률이 줄고 살빼기에도 좋다. 모유를 한 번 먹이고 나면 어질하고 몸에서 '진액'이 빠져나간 느낌이 드는데 그게 몸을 가볍게 한다. 모유수유를 하면 지방분해가 잘돼 살이 빠진다고 한다. 나 역시 애 둘을 낳고는 임신전 몸무게를 거의 회복했다. 물론 아이 둘을 키우면서 가랑비에 옷젖듯이 일년에 조금씩 늘어 지금은 첫애 낳기 전에 입던 옷이 안 맞지만 그건 일명 나잇살이라고 하는 '자연증가분'일 뿐이다. 이 외에도 외출, 여행시 모유수유를 하면 짐도 가볍게 꾸릴 수 있다.
이러한 좋은 점 때문에 주위에 동생들이나 아는 사람에게 모유수유를 권해주었는데, 앞서 말했듯이 '애가 싫다고 할 때까지 모유를 먹여라'라고 하면 다들 나를 미개인 쳐다보듯 대했다. 그럼 난 속으로 생각했다. '쳇 소아과 전문가 말이 아니라 이거지...' 세상엔 너무도 많은 전문가가 있다. 아침프로엔 다들 빼입고 나와서 가정문제 건강문제 상담해주고 권위를 자랑한다. 그런데 사는 일이 그렇게 간단한 메뉴얼과 전문지식으로 해결이 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원론은 그야말로 원론이고 일상은 돌발변수 투성 아닌가. 내가 언제 행복한지를 가장 잘 아는 건 당사자다. 역시 내 삶의 문제를 가장 잘 아는 것도 역시 자기 자신이고. 그래서 '잘 살기' 위해서는 내 삶에 이로운 법을 만들고 나에게 이로운 진리를 생산해야한다.
암튼, 둘째는 내 스스로 '야매' 육아매뉴얼을 만들어 키웠다. 예방접종도 기본만 했다. 임신 중기에 기형아 검사로 '양수검사'라는 걸 하는데 병원에선 '돈'이 되니까 권장한다. 8년 전 당시 50만원이었다. 배에 바늘을 찔러 양수를 뽑아낸다는데 검사받기가 왠지 찝찝해서 아는 산부인과 의사에게 물었더니 '모든 검사에는 득과 실이 있다.'고 충고했다. 결국은 검사를 안했다. 생명을 담보로 모험을 하는 기분이들어 매우 심란했다. 모든 선택에 따른 결과는 겸허히 받아들이리라는 숭고한 다짐도 했었다. 예나지금이나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불안과 공포'의 심리를 조장해 너무도 많은 돈을 거둬들인다.
자연스런 생명활동 가로막는 가진자들의 이익
모유수유를 가로막는 장벽 중에 하나로 '난 분유회사 광고'의 책임도 크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선생님에게 넌지시 물었다. 분유회사의 이권도 개입되어 있지 않을까요. 선생님은 분유통에 잘생기고 예쁜 아이 사진 넣어놓고 이 분유를 먹으면 마치 우리아이도 저렇게 예뻐지는 것처럼 유혹한다고 지적하셨다. 외국에는 간단히 분유통에 MILK라고만 써 있고, 분유광고도 금지한다고 했다. 좀 놀랐다. 어린이프로 시간에 패스트푸드 광고 못하게된 것처럼 분유광고도 법으로 금지해야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돈보다 생명이다. 아이의 기본권과 건강권을 담보로 재벌의 이익에 복무해서야 되겠는가.
우리나라가 과하게 의약품을 소비한다는 건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진료실에 7세 가량의 남아가 아이가 배가 아파서 왔는데, 엄마가 상담 도중 '성장호르몬'을 먹인다는 얘길했다. 무려 20만원짜리란다. 또 '비타민' 등 건강보조식품을 먹인다고 했다. 의사선생님은 물었다. "그게 모두 어디로 갈까요? 네, 똥으로 나오죠!" 그런 거 먹일 돈으로 반찬을 잘 해먹이라고 타이르셨다. 균형잡힌 식사가 최고라고. 정 먹이고 싶으면 '비타민C'정도만을 권하셨다. 그리고 순살코기를 매일 50그람씩 먹이라고 권했다.
동의한다. 나는 '집착적으로' 아이 식사와 간식을 챙겨서 해먹이는 편인데, 큰애 어릴 때 소아과에 가보고 질려서이다. 아파서 병원다니면 잘 낫지도 않고 오래 기다리고 형식적인 진료만 해준다. 아이 아픈 것도 서러운데 여러모로 화가났다. '그래 밥이 보약이지' 싶었다. 히포크라테스도 말했다. ‘약이 아니라 음식이 병을 낫게 한다’고. 소아과에 갈 시간과 돈과 에너지를 먹이 는데 쓰는 편이 훨씬 낫겠다 판단했다. 병원비 1만원을 들이기 전에 귤 5천원과 고기 5천원을 매일 먹이는 것이다. 나름대로 성공적이었고 좋은 방법이라고 평가한다. 모유수유를 6세까지 한 둘째는 소아과를 예방접종 외엔 안 갔으니.
의사 절대로 시키지 마라?
대기실에서 만난 한 엄마는 최재민선생님이 친절하고 약도 과하게 처방하지 않아 동네에서 유명하다고 귀띔했다. 과연 환자마다 '부모처럼' 꾸짖고 '선생님처럼' 가르치는 등 성심껏 대했다. 그러니 "소아과는 노가다"라고 푸념할만 하다. 선생님은 나이가 들수록 힘들다며 하루종일 진료를 보면 녹초가 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애들 절대 의사시키지 마세요!" 이 얘길 여러번 반복하셨다. 특히 요즘은 동기들도 병원이 안 되서 문닫는다고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무조건 시키지 말라는 게 아니다.
"환자가 돈으로 보이면 이 일을 절대 못합니다. 본인도 재미없고 재미없으니까 의료사고도 많이 나고 환자도 불행하고 길게 못합니다. 절대 안 됩니다. 근데 자기가 정말 아픈 사람 낫게 해주는 일에 기쁨을 느끼고 사명감을 갖고 의사가 되길 바란다면 정말 좋은 직업입니다. 최고지요."
요즘은 수능고득점 순으로 서울부터 제주도까지 각 대학의 의대정원이 다 차고, 그다음 성적순으로 서울대로 몰린다는 말이 생각났다. 그 똑똑한 아이들이 자신의 정체성 고민도 없이 급류에 휘말리듯 등떠밀리듯 의대에 입학해 고소득과 안정된 노후를 바라면서 두꺼운 원서를 파고 있을 생각하니 참으로 씁쓸했다. 확실히 다양한 직종군의 나름 '잘나가는' 사람들 만나면서 느끼는 것은 '무슨 직업'인가는 중요치 않다. '어떤 의사인가' '어떤 회사원인가'가 중요하다. 삶의 질은 연봉, 재테크,경쟁력, 스펙과는 무관하다. 세상은 격변한다. 뜨는 직업 종사자라고 모두 행복하지 않고, 직업의 유행이 천년만년 이어지지도 않는다. 그러니 세속적 잣대에 휘둘리지 말아야 한다. 잘 먹고 잘 자고 건강한 몸이 우선이다. 그리고 평생을 해도 지겹지 않은 일, 자긍심이 느껴지는 일, 새록새록 즐거울 '나의 일'을 찾는 사람이 결국은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