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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오르는말들

이성복 시인을 만나다


좋아하는 시인을 만난다는 건 참 어색하다. 그가 낳은 자식과 연애하다 부모님 뵈러 가는 길처럼, 부담되는 자리다. 오래 편지를 주고받던 소울메이트와 만나는 자리 같기도 하다. 피하고 싶으면서도 궁금한, 보고 싶으면서 도망가고 싶은 수줍은 이중감정. 피고름 같은 시를 온몸으로 짜내는 그가 너무 반듯해도 이상할 거고 너무 헝클어진 모습이어도 서운할 거 같았다. 교수다운 노신사 분위기도 섭섭하다. 시인다우면서 시인의 모습을 배반하길 기대했다. 욕심도 많지.  

이번 자리는 문학과지성사에서 운영하는 문지문화원 <사이>에서 '내가 쓴 시 내가 쓸 시'라는 단기강좌다. 이성복, 김정환, 김혜순, 최승호 시인이 매주 초대된다. 첫 시간에 이성복 선생님이 오신 거다. 어울리게도, 가장 추운 겨울날, 살을 에는 고통의 날. 나는 까만 나무처럼 전신 까만색으로 꽁꽁 두르고 갔는데 선생님 역시 까만 연필심처럼 날카로운 눈빛으로 강의실로 납시었다. 교실을 꽉 채운 수강생들 30여 명과 난방장치의 텁텁한 공기 속에서 드디어 만났다.

선생님의 시집을 처음 산지 5년 만에, 5권의 시집을 가방에 담고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