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시인을 만난다는 건 참 어색하다. 그가 낳은 자식과 연애하다 부모님 뵈러 가는 길처럼, 부담되는 자리다. 오래 편지를 주고받던 소울메이트와 만나는 자리 같기도 하다. 피하고 싶으면서도 궁금한, 보고 싶으면서 도망가고 싶은 수줍은 이중감정. 피고름 같은 시를 온몸으로 짜내는 그가 너무 반듯해도 이상할 거고 너무 헝클어진 모습이어도 서운할 거 같았다. 교수다운 노신사 분위기도 섭섭하다. 시인다우면서 시인의 모습을 배반하길 기대했다. 욕심도 많지.
이번 자리는 문학과지성사에서 운영하는 문지문화원 <사이>에서 '내가 쓴 시 내가 쓸 시'라는 단기강좌다. 이성복, 김정환, 김혜순, 최승호 시인이 매주 초대된다. 첫 시간에 이성복 선생님이 오신 거다. 어울리게도, 가장 추운 겨울날, 살을 에는 고통의 날. 나는 까만 나무처럼 전신 까만색으로 꽁꽁 두르고 갔는데 선생님 역시 까만 연필심처럼 날카로운 눈빛으로 강의실로 납시었다. 교실을 꽉 채운 수강생들 30여 명과 난방장치의 텁텁한 공기 속에서 드디어 만났다.
선생님의 시집을 처음 산지 5년 만에, 5권의 시집을 가방에 담고서.
아버지 같았다. 드라마에 나오는 자식한테 잘해주고 멋진 말도 가끔 하면서 머리 쓰다듬어주는 자상한, 또 서재에서 고독을 씹는 서울대 나온 아버지. 뭐 좋았다. 시를 쓴 사람과 쓰고 싶은 사람들이 만나 창작에 대해 좀 더 내밀한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가 되길 바란다고, 진행을 맡은 김진수 문학평론가는 말했고, 선생님은 편안히 '시'에 대해 말씀을 풀어가셨다. “시는 말해질 수 없는 것인데 사람들은 시가 가두어지기를 바란다. 왜 그래야 편하니까.” 선생님은 시란 농구골대처럼 틀이 있는 게 아니라 야구에서 스트라이크 존처럼 심판마다 시의 정의에 대한 가늠이 다른 것 같다며 칠판에 네모를 그렸다.
시는 '말'이라고 단언했다. 말의 비틀림. 말의 짜임새. 쓰는 사람의 어조. 나무젓가락 쪼갤 때 두 개가 벌어지는 것처럼 말이 쪼개지고 그 사이로 의미가 흘러드는 것이 시라고. “시는 인생의 의미발견이 아니다. 음악성과 시각적 이미지도 좋지만 어디까지 말의 뒤틀림으로 인한 의미창출이다.” 선생님이 불문학을 공부했기 때문에 상징주의 원류인 랭보, 보들레르, 말라르메의 시에 영향 받았다 하셨다.
강의도중 수차례 '공감코드'를 발견했다. 시에 대한 정의다. 나도 ‘시는 말맛이고 언어의 긴장과 배반’이라고 생각한다. 잠언집 같은 시집은 굳이 시가 아니어도 접할 수 있는 이야기들이고 구성이 헐거워 맥이 빠진다. 선생님은 이를 두고 '잠옷 같다' '고무줄 늘어난 빤스같다'고 표현했다. 또한 시를 읽을 때 새로운 차원이 열리지 않으면 그 시를 좋은 시라고 느낄 수 없는데 선생님도 차원 얘길 하셨다. 손바닥 사이 공백을 두고 위 아래로 포개듯이 놓으시고는 위에서 보면 붙은 것처럼 보이지만 옆에서 보면 사실은 틈이 벌어져 있다며, 선생님이 문학을 하는 이유는 이게 붙은 게 아니라는 걸 보여주는 것이라고 설명하셨다.
"요즘 어디 에세이를 기고하는데 그렇게 쓰기 싫을 수가 없습니다. 한글 파일 열면 무조건 열 줄은 씁니다. 그럼 2.5매인데 그렇게 6단락 쓰면 15매가 되지요. 10줄을 채워가면서 쓰면 꼭 국화빵 기계 같아요. 한 칸 붓고 또 붓고 그렇게 채워갑니다."
아, 실감나는 저 남루하고 비루한 창작의 온몸뒤틀림. 선생님은 글쓰기가 힘들 때 수첩에 4가지 원칙을 써놓고는 한번 읽어보고 쓰신다며 받아 적어도 좋다고 권하셨다.
첫째. 니가 쓰는 글은 너의 글 이상도 이하도 아닌 정확히 너의 글이다. 왜냐하면 너의 글은 너이기 때문이다. 잘 써야겠다는 생각은 글쓰기를 가로막는 가장 큰 적이다. 니글 좋다고 해서 니가 올라가는 것도 아니고 니글 나쁘다고 해서 떨어지는 것도 아니다. 글은 정확히 너 자신이라는 것을 상기시키는 의미. 둘째. 니가 지금 쓸 수 없는 것들은 다른 때 다른 방식으로 쓸 수 있을 것이다. 다른 때 다른 장소에서 쓸 수 있을 것이다.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다. 지금 꼭 쓰지 못하더라도 안타까워 말고 조급증을 버려라.
셋째. 너는 너 자신을 위해서, 그리고 다른 사람을 위해서 니가 보고 듣고 생각한 것을 글로 써야할 의무가 있다. 왜냐하면 니가 거기 있었기 때문에. '내가 거기 있었기 때문에'는 바르트의 <카메라 루시다>에 나오는 유명한 문구라며 사진가가 그렇듯이 글 쓰는 사람도 그래야한다고 역설하셨다. 지금 내가 이걸 안 쓰면 영원히 잊어버리기 때문에 꼭 써야한다는 소명의식을 자각시켜주는 얘기다. 넷째. 무조건 빨리 써라. 아무 생각 없이 빠른 속도로 써라. 이는 글쓰는 법에서 자주 나오는 내용으로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니가 글을 쓸 때는 너의 몸과 체험이 함께 하기 때문이다. 글의 51% 이상은 몸이 쓰는 것이다.
이상 네 가지다. 내 경우도 대개 어떤 강렬한 느낌과 체험을 했을 경우 글로 기록하고픈 욕망과 의무감을 심하게 느끼는 편인데 그것을 선생님은 롤랑바르트의 표현을 빌어 '내가 거기 있었기 때문에'라고 정리하셨다. 맞다. 지금도 이성복선생님의 주옥같은 말씀을 혼자 알기 아까워 열심히 쓴다.
"내가 아는 것을 굳이 쓸 이유는 없습니다. 내가 무엇을 써야하는지 아는 글을 왜 쓰겠어요. 뭘 써야할지 모르니까 쓰는 거예요. 글은 번짐입니다. 화선지에 잉크 떨어지듯 순간적으로 갈라지는 선의 아름다움. 나는 내가 무얼 써야할지 모르기에 씁니다. 문학은 내가 얼마나 별 볼일 없는 놈인가를 알기 위해 하는 것입니다. 저는 접니다."
나를 위해서 쓰라고, 나에게로 돌아오라고. “컴백홈” 나에게서 출발하라고 했다. 하지만 글은 명예욕이 따르기에 괴롭다고 하셨다. “내가 아무리 잘 해서 당대를 주름잡는 시인이라도 괴로울 것입니다. 왜? 위에 보면 죽은 놈이 또 있으니까.” 이 순간 모두 웃었다.
“돌은 쪼개지는 순간 산화됩니다. 내 친구가 돌의 내부를 쪼개지 않은 그 상태로 파악하는 걸 연구하고 있습니다만. 감정도 꺼내드는 순간 아닌 것이 되어버립니다. 시인은 감정을 표현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감정이란 게 표현하자마자 그게 아니라는 걸 알기 때문이지요. 상처와 고통에 대해 냉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글 쓰는 사람은 엄살쟁이지요. 내 엄살에서 실제 고통을 빼고 그 잉여치는 내가 책임져야 합니다.”
고통에 주의할 필요가 있다는 말씀이 귓전을 울렸다. 고통을 주의하라. 고통주의보. 시는 위험한 것이라고도 하셨다. 철부지 엄살쟁이가 하는 것이니까. 또 상처를 지가 받은 상처만 얘기하고 지가 준 상처에 대해서는 대부분 말하지 않음도 꾸짖으셨다. 뜨끔했다. 나도 그랬구나. 내가 준 상처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 고통의 잉여치에 대해 책임질 것이 숙제가 됐다.
“시 생각을 계속 하는 건 아니에요. 하지만 바닥에 깔려 있죠. 갓난이 재워놓고 장보러 나간 엄마같은 심정이랄까.” 그리고는 “링에서 내려오고 싶다.”는 표현을 하셨다. 고통은 길고 행복은 짧은 글쓰기의 강밀도의 고단함을 말한 것. “90년대는 시에 대해 원한이 많았다. 하지만 지금 원한이 없고 감사하다.”라고 선생님이 말씀하셨고, 이 대목에서 살짝 서운했다. 시는 원한이 서리고 예민하고 처절해야 더 시답다고 느끼기에. 선생님도 써놓고 이해가 안 된다고 한 첫 시집 <뒹구는 돌은 언제 잠깨는가>같은 시집은 더 이상 나올 수 없다고 생각하니 슬프다. 편안하고 감사한 시는 영혼의 머리채를 잡고 뒤흔들지 못한다. 시는 미치고 싶을 때 읽는 건데.
시는 말의 비틀림이란 얘기가 마지막에 또 나왔다. 언어를 타고 넘어라. 말에 실리는 사람. 내 노래방 18번 민해경의 <어느 소녀의 사랑이야기> 가사의 예를 들으셔서 깜짝 놀랐다. “내 인생의 반은 그대에게 있어요. 라고 하면 아, 그럼 나머지 반은 내것이겠구나 하는줄 알았는데 ‘그 나머지도 나의 것은 아니죠’라는 가사가 나왔을 때 ‘아..’하고 가슴을 치는 것. 언어에 민감한 사람은 정신이 굶어 있는 상태여야 합니다. 잘 거 다 자고, 먹을 거 다 먹고 트림 다 하고 뭘 어떻게 하겠어요.”
저 한심함의 목록의 유기체가 바로 최근 나의 모습이다. 슬펐다. 무엇을이 아니고 어떻게에 천착하라고 해법도 알려주셨다. “이제 더 이상 못해”라고 할 때 한 순간 더 나아가는 것. 그러면서 영화 <너를 보내는 숲>예를 들었다. 아버지 이야기를 하려면 저정도는 밀어붙여야한다고. <너를 보내는 숲>은 억지스러운 일본식 강박과 결백주의 영화라고 난 치부해버렸었는데 이 부분에선 선생님과 어긋났다.
“(여전히) 내가 낙관할 수 있는 자리를 찾을 수가 없어요. 시는 이다 아니다를 알아가는 과정입니다. 우리가 쓰지 않은 것은 모르는 겁니다. 진리는 모든 시공간에 적용되는 게 아니에요. 시간 공간에 레떼루(라벨)가 붙어 있는 것이지요.”
두 시간 정도. 강의와 질의응답이 끝났다. 선생님은 “한번 뿐인 인생이라서 시를 쓴다”고 하셨다. 너무 인생이 아까우니까. 두 번이면 이번에 못 쓴 거 다음 생에 쓰겠지만, 그러지 못하니 내가 느낀 거 본 거 다 쓴다고. ‘한번 뿐인 인생’이란 얘기는 일할 때 인터뷰이들에게 참 자주 듣는 말이다. 경영컨설턴트 구본형 씨도 그 얘길 몇 번이나 강조하셨다. “한번 뿐인 인생인데 아깝게 왜 낭비합니까.” 이어령 선생님은 괴테도 80세 까지 글을 썼고 피카소도 그림을 그렸다면서 여전히 뜨거운 창작열정을 보이셨다. 동물학자 최재천 교수님은 밤무대 활동(퇴근 후 친교활동)을 전혀 안 하고 저녁이면 집으로 돌아가 새벽까지 책 보고 글 쓰면서 서재를 지키신다고 하셨다. 시골의사 박경철 씨도 술, 담배, 여자, 골프, 도박 등 5금의 신조 하에 여가시간에 책 읽고 글 쓰면서 인기경제학자로 등극했다. 직접 만나진 못했지만 서태지는 음악 할 때 집밖에 나오지 않기로 유명한데 자신이 천재라면 곡 작업을 단시간에 하겠지만 자신은 평범한 사람이라 오래 걸리고 맘에 들 때까지 계속한다고 신해철과의 인터뷰에서 밝혔다.
결국 창작은 시간과의 싸움, 자신과의 싸움. 딸꾹질을 참을 때처럼 삼세번 숨을 참고 이정도면 됐다싶을 때에서 한 발 더 나아가는 것. 뚝심, 우직함이다. 글은 엉덩이로 쓰는 것. 다시 이 묵직한 결론에 도달하는가. 싫다. 멋있지 않아서 싫다. 반대하고 싶다. ‘문학에 천재란 없다’는 말은 잔인하다. 쓰고 싶은 사람들을 계속 쓰고 싶다고 ‘생각’하게 하니까. 감정과 느낌과 시간의 잔해들에게 포박당하는 것. 발밑의 불안함. 그 절실함. 어떤 절실함이 누구에게나 있는 건 아닌데. 아, 입이 없는 것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