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고라에서 글 읽는 재미가 솔솔하다. 죽은 글이 없다. 농수산물시장처럼 팔닥팔닥 살아있다. 최근 용산참사를 비롯해 주로 정치적인 사안이 핵심 이슈가 되고 노골적인 집회공지나 선동글도 많지만, 아고리언들이 던지는 대개의 화두는 (정당)정치가 아닌 삶의 문제로 인식된다. TV나 신문을 통해 접하면 같은 사안이라도 '국회'나 '청와대'의 것. 즉 나와 먼 얘기처럼 느껴지는데 반해 아고라의 복닥거림 속에 빠져 있노라면 금세 정치적인 회로로 사고의 흐름이 세팅되어 '세상일에 열받고 화내고 욕하면서' 공감하게 된다. 이 감정들이 얼마나 소중한지 모른다.
현대인은 늘 수많은 자극적 영상과 사건에 노출되다보니 험한 일을 겪거나 보아도 화내지 못하고 무덤덤해진다. 마치 짖지 못하는 개처럼 무기력하기 십상이다. 보아도 보지 못한다. '볼 수는 있지만 보지 않는 눈먼 사람들'의 도시다. 그러니 보는 것, 보려 애쓰는 것, 분노할 줄 아는 것, 나쁘다고 욕할 줄 아는 것 자체로 참 대단한 미덕이 되어버렸는데 아고라에선 그런 원시적 감정들이 승하다. 공간을 장악하고 있다. 치열한 생각들의 오고감, 부딪힘을 보면서 자연스레 사회적 사안에 대해 정보를 취하고 올바름과 부당함을 고민한다. 이것은 정치적인, 너무도 정치적인 행위다. 사람들이 사고할 때, 전쟁도 아닌데 6명의 목숨을 앗아간 이 살인정권을 어찌 그냥 두고 보겠는가.
피가되고 살이 되는 아고라. 베스트를 차지하는 글의 공통점은 무게잡고 가르치려드는 글이 없다. 솔직담백한 표현과 단순한 상식적인 논리, 인간적인 호소가 버무려진 민중표 글이 대세다. 독자투고의 정제됨이 없고 지식인의 세련됨이 없다. 백인백색의 글맛만이 살아 있다. 한 문장을 두번 읽지 않아도 된다. 생각놀이다. 편안하고 부담없다. 눈치 안 본다. 무슨 대표 무슨 교수 타이틀이 안 붙고 아이디로 활동하니 격의없다.
우연히 용산참사 즈음 읽기 시작한 <눈먼자들의 도시>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이름이 우리에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개는 이름을 가지고 다른 개를 인식하는 것도 아니고 다른 개들의 이름을 외우고 다니는 것도 아니잖아. 개는 냄새로 자시의 정체성을 드러내고 또 상대방이 누군지도 확인하지.' 아고라가 그렇다.
물론 유명 논객도 있지만 이름을 지키려 하거나 적어도 이름에 갇혀 연연하는 모습은 안 보인다. 지난 촛불집회 때 맹활약하신 아고리언 '권태로운창'님이 어제 글을 올렸다. '긴급 2차 설문조사 그렇다면 어떻게 강력한 투쟁을 원하는가?'란 내용이다. 용산참사 투쟁방법에 대해 강력한 투쟁인가, 평화로운 집회인가를 찬반투표 형식으로 물었다. 아니나 다를까 엄청난 댓글이 달렸고 알바생들과 아고리언들 양쪽에서 무지막지한 인신공격과 비방을 당했다. '분열책동 일으키느냐' '너가 뭔데 설치느냐' 등등.
본인이 그런 상황을 짐작 못했을리 없다. 그래도 묻고 싶었던 것이다. 그것 자체로 참 건강한 분이란 생각이 든다. 대책위에게도 "시민들 남겨두고 왜 11시에 칼퇴근 하느냐"고 신랄하게 비판하고 큰 소리로 질타한다. 박수치고 싶다. 그의 말이 다 맞다거나 그가 전적으로 옳다는 게 아니다. 적어도 그의 판단착오나 부족함이 드러난다는 것은, 그만큼 그가 치열하게 맨몸으로 고민하고 부딪히면서도 뛰고 있기 때문이다. 좌충우돌한다는 것은 곧 수시로 자신을 해체하고 재배치 하면서 매순간 새로 태어난다는 것. <눈먼자들의 도시> 버전으로 표현하자면 '자신을 조직한다는 것은 어떤 면에서는 눈을 갖게 되는 것'이다.
아고리언이 되는 순간 새로운 관점을 얻는다. 어제 아고라 자토방에는 용산참사 백분토론을 본 후 재개발의 진짜 목표가 드러났다는 후기가 많았다. 재개발 후 뉴타운에 원주민 입주율이 10%도 안된다는 사실을 알렸고, 집값상승의 환상에 대한 각성을 촉구하는 내용도 있었다. 택시기사님과 토론하고 내릴 때는 거의 설득했다는 후기를 올리며 '한 사람의 생각이라도 바꾸자'고 독려하는 글도 있다. 사람들은 댓글과 찬성으로 공감을 표했다. 보이는 것 이면의 깊은 세계를 함께 관찰하고 일상의 실천방법을 공유한다. 나부터도 6명의 희생을 치르고서야 진짜로 '뉴타운'의 환상과 허상에 눈을 뜰 수 있었던 것 같다. '세상을 바꾼다'는, 안지켜도 티 안나는 거창한 대의보다는 옆사람의 생각을 바꾸는 입아픈 실천이 필요함을 절감했다. 가슴 아프고 죄스럽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해주는 '아고라'에게 고맙다.
'가장 심하게 눈이 먼 사람은 보이는 것을 보고 싶어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말은 위대한 진리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