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는 살기도 힘들지만 떠나기도 힘든 곳’이라고 브레히트는 말했다. 그녀에게 서울이란 도시가 그렇다. 서울에서 나고 자란 그녀는 서울을 벗어난 삶을 생각해보지 않았다. 4년 전, 집안에 IMF가 닥쳤을 때도 채무를 정리하고 나니 네 식구의 서울살이는 도저히 불가능했다. 주위에서는 서울 근교로 이사를 권했지만 그녀는 악착같이 살던 동네를 고수했다. 지금도 적은 평수에서 네 식구가 성냥갑 속 성냥처럼 끼어 산다. 일인당 할당 면적도 좁고, 도로는 엄청 막히고, 매연 심하고, 물가도 비싸고, 사교육 극성이고, 인심은 각박한 서울. 하지만 그녀는 도도한 한강은 물론 서울의 먼지마저도 사랑한다. 아니 싫은 만큼 좋아한다. 인간다운 삶이 가능한 세상을 바라는 김씨에게, 이는 지극히 모순적인 태도일지 모른다.
서울은 자본주의의 ‘생얼’이다. 자본주의가 배태하는 착취, 불공평, 소외와 같은 악의 표상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곳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왜’ 서울을 고집하는가. 살기 힘든 것을 참을 만큼 무언가 ‘끌림’이 있다는 얘기다. 아마도 서울이 주는 달콤 쌉싸름함 때문이 아닐까. 서울시민으로서 누릴 수 있는 문화적 혜택, 각종 첨단 시설의 편리함, 친교생활의 충만함 등은, 씁쓸하고 역한 소주 같은 서울살이를 수월하게 해주는 궁합이 잘 맞는 안주거리다. 이미 삼십 년 넘도록 그리 살았다. 미운 정 고운 정 흠뻑 배인 서울이다. 그녀의 신체는 서울에 길들여졌다. 불안하면서도 풍요로운 도시복합체에서 휘청거리는 육신의 지탱 요령을 터득한 그녀는, 그 모순적인 상황이 주는 변화무쌍한 자극을 골똘히 즐기고 있다.
# 도시와 벤야민(1892-1940)
21세기 초 서울, 그녀가 인간소외와 알량한 풍요 속에서 그저 비비적대고 살아가고 있다면, 19세기 말 혼란한 도시에 던져진 벤야민은 예민하고 치열하게 ‘도시’를 사유했다. 벤야민은 도시생활이 필수적이었는데 무척 견디기 힘들어했다. 사랑하면서도 싫어했다. 이러한 역설과 팽팽한 긴장 때문에 현대 대도시에 더욱 매료된 그는 ‘대도시’라는 유럽의 마지막 공룡을 과학자처럼 해부했다.
모더니즘이 탄생한 19세기 파리를 통해 ‘자본주의의 유년’을 탐색했다. 현대 대도시의 건축물들, 공간, 거리에서 펼쳐지는 삶, 도시 거주민들, 일상생활을 애인 얼굴 보듯 끈끈하게 더듬었고 그것들 간의 의미연관을 분석했다. 13년간에 걸쳐 이뤄진 그 방대한 기록을 집대성한 책이, 그 유명한 <아케이드 프로젝트>다.
벤야민의 문제의식은 도시의 ‘기괴한 성격’과 대도시 일상생활의 ‘비인간화’ 경향에 있었다. 대도시는 인간 행위를 위한 틀이자 무대이다. 그러한 도시를 이루는 건축과 발명품이 인간의 행위와 의식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또 어떻게 서로를 형성하고 상호침투 하는가를 연구했다. 예를 들어 “백화점의 설립과 더불어 역사상 처음으로 소비자들이 스스로를 군중으로 느끼기 시작했다. (과거에는 오직 궁핍만이 그것을 가르쳐줄 수 있었다). 동시에 장사가 가진 요부 같고 눈만 자극시키는 요소가 터무니없이 확대된다.”는 식으로 말이다.
# 벤야민과 보들레르(1821-1867)
현대 대도시 연구에 천착했던 벤야민에게 보들레르는 19세기 파리를 바라보는 하나의 근사한 창이었다. 보들레르의 저작들은 19세기 파리 사람들의 사회생활에 대한 가장 정확하고 값진 통찰을 제공해준다고 벤야민은 평했다. “파리의 심장부에서 무력감을 느끼고 그 무기력감이 파리 시민에게 어떤 작용을 했는지 감지한 유일한 사람은 보들레르”라고 말했다.
보들레르는 대도시의 서정 시인이다. 스스로가 작업실의 고요함이 아니라 거리에서 일어나는 소동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고백한다. 거리의 빛깔과 소음 그리고 군중의 소동과 혼잡 등 파리의 삶은 ‘경이로운 시적 주제’라고 찬미했다. 그러니 도시의 관상을 살피던 벤야민에게 보들레르의 시는, ‘인간 내면’을 훤히 보여주는 엑스레이와도 같은 귀한 자료였던 셈이다.
내가 새로 생겨난 카루젤 광장을 지나고 있을 때, 불현듯 내 풍요한 기억을 살아나게 했다. 옛 파리의 모습은 이제 보이지 않는다! (도시의 모습은 아! 사람의 마음보다 더 빨리 변하는구나) ... 파리는 변한다! 그러나 내 우울 속에선 무엇하나 끄덕하지 않는다! 새로 생긴 궁전도, 발판도, 돌덩이도, 성문 밖 오래된 거리도, 모두 다 내게는 알레고리 되고 내 소중한 추억은 바위보다 더 무겁다.
보들레르의 유명한 시 ‘백조’다. 백조는 대도시로 유배된 존재의 불행을, 추방당한 자의 운명을 상징한다. 그들의 향수의 감정을 아름답게 묘사한 작품이다. 보들레르의 훌륭한 점은 사람들이 새로 생긴 휘황찬란한 것들에 시선을 빼앗길 때 도시로 밀려드는 ‘뿌리 뽑힌’ 군중을 보았다는 점이다. 그래서 보들레르는 가난한 자들, 고통 받는 자들을 노래한 최초의 시인으로 꼽힌다. <악의 꽃> ‘파리풍경’ 단락의 제목들을 보라. ‘지나가는 여인들’ ‘일곱 늙은이들’ ‘가여운 노파들’ ‘장님들’ ‘지나가는 어느 여인에게’ 등등이다. 보들레르는 도시의 고아, 늙은이, 장님과 거지들, 늙은 광대 등 화려한 삶 변방에 처박힌 서민들을 한 사람씩 붙잡고 스케치했는데 그의 호기심은 잔인할 정도로 세심하고 섬뜩할 만큼 기괴하다.
보드레르에게 도시는 ‘어스름 저녁’이면 커다란 지옥, 사창가, 거대한 병원으로 변한다. 인생의 패잔병들이 모여든다. “인간에게서 먹을 걸 훔쳐내는 구더기처럼 진창의 도시 한복판에 우글거린다.” 그들은 “대부분 가정의 단란함을 맛본 적도 없고 아예 살았다고 할 수도 없지 않은가!”라며 탄식한다. 도시의 안개 낀 새벽을 고통으로 맞고 있는 자들을 묘사하면서 보들레르도 함께 아파하며 떨었음을 작품에서 진하게 느낄 수 있다.
벤야민이 그랬던 것처럼, 야수적인 도시와 아름다운 도시의 상호작용은 보들레르 시의 본질적인 주제이자 영감의 근원이었다. <악의 꽃> 제2판 에필로그 초고에서는 아예 파리를 ‘연인’이라고 묘사했다. “오 내 예쁜 매혹적인 그대.... 하잘 것 없는 것에서 정수를 빼내듯, 그대 내게 진흙을 주었지만, 난 거기서 금을 끌어내었소.”
현란한 것의 이면에 어둠을 보는 사람,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는 사람, 개인의 내적 상처를 분석하여 보편적 의미를 부여하는 사람. 진창 같은 세상에 연꽃을 피워내는 것이 예술가의 역할이다. 위대한 영웅과 위대한 발명 위주로 편집되는 자본주의 역사에 소외된 인간의 ‘허기진 신음’과 ‘차가운 눈물’을 아로새긴 보들레르는, 그래서 위대한 시인이라고 말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