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계동 올림픽> <행당동 사람들> 등 도시철거민을 기록영화화 했지요. 과거 정권에서부터 개발의 논리로 소외된 자들의 추방정책은 진행돼 왔잖아요. 지금은 눈에 안 띄고 사회적 이슈화가 되지 않아서 그렇죠.
= 80년대와 비교하면 2000년대는 개인이 파편화 됐죠. 개인주의적 경향이 강해졌고. 관심이 개인 삶의 질로 이동해서 소수자 문제 관심이 옅어진 게 사실이에요. 철거민도 눈에 안 보이고요. 우리 집 뉴타운 해달라는 주문은 있어도 개발 싫다는 얘기 안 하니까. 가치관이 물신화 됐죠. 연대감 약해지고.
하지만 인간 안에는 스스로 균형잡으려는 거 있다고 생각해요. 개인주의가 편하고 좋지만 허망하기도 하죠. 이웃을 찾고자 하고 봉사하고. 지금 촛불도 아무도 생각 못했죠. 아고라에서 이런 글을 봤어요. 최루가스 맡고 꽃병 들고 싸웠다. 자부심 있었는데 김대중 노무현 정권에 불만도 많았지만 사회구성원으로서 자부심 있었는데 이명박이 대통령 되는 거 보고 기대 접고 관심 끊었다. 돈 벌어 잘 살겠다고 결심했다. 절망감이 컸는데 촛불집회 보고 386 인정해주는 거 보고 많이 울었다고. 공감이 갔어요. 20년 동안 사람들이 한 쪽만 자극을 받다가 뭔가 이게 아닌데.. 싶은 거죠. 촛불집회 나가서 자기가 모르는 뭔가를 알고 확인하고 자기에게 힘을 준다는 걸 안 거죠. 촛불이 확 타올랐어요. 이주민 철거민 비정규직 등 조중동 실체 일 듯이 알아가겠지요. 난 별로 걱정 안 해요. 때가 되면 못 견디고 행동하니까. 근데 희망사항이었는데 요즘 확인해요.
소수자의 문제를 없애진 못한다고 봐요. 관심 갖고. 심리적 박탈감 덜 느낄 수 있도록 손 잡아 주고, 사회 구성원으로서 인정해주고. 그 정도면 살만하죠. 그 분들은 그 안에서 행복 찾는 기술이 있는 분들이거든요.
영화의 본령이 뭐라고 생각하세요. 사회에 귀 기울이고 질문을 던지는 것 정도를 생각해봤어요. 그런 것에 다큐가 맞아서 하시는 건지, 아예 극영화는 안 하실 생각이신가요?
= 극영화 환갑 전에는 하나 정도 할 거다. 농담 삼아 얘기하는데 만약 한다고 해도 몇 십억 그런 건 아니고요. 다만 지금 제가 하는 방법론을 활용한 논픽션 드라마 정도가 될 거에요.
지금 감독님 삶과 가장 부딪치는 부분이 어떤 문제인가요. 빈민..장애..교육..통일..뭐 등등 사회문제가 여러 가지 많잖아요.
= 저는 투사적인 사람이 아니라서...사람 문제에 관심 많아요. 송환에서도 통일보다 사람 얘기 했듯이 어떻게 살아야 잘 사는 것인가는 큰 질문이고 평생 가져갈 궁극적인 질문이죠.
가난하지만 의심 없이 사는 사람들을 보면 힘이 나고 날 보면 맥이 빠진다는 얘길 하셨어요.
= 뭔가 탄탄하게 삶을 가꿔가는 사람들. 제 주변에 그런 사람들 있거든요. 옛날에 빈민운동 그런 친구들 누가 뭐래도 자기 길을 가는 친구들이요. 내가 좀 더 열심히 살아야 하는데... 상계동에서 약속한 거 그게 제 기준이거든요. 내가 약해져 있다. 그런 생각 많이 해요. 예를 들어 산동네가 아파트가 보다 재밌고 인간답게 살 수 있는 곳이라고 확신하는데 그런데 지금 아파트 살고 있으니까요.
상계동 약속이 뭔지 말씀해주실 수 있으세요.
= 끝까지 같이 가겠다.
감독님은 철저히 어떤 주장에 힘을 실으려면 그렇게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시는 거죠... 교수가 되신 거 불편해하는 거 같은 느낌 받았어요.
= 원칙을 배반했으니까요. 오래 있을 거 같진 않고 여기 있는 동안 해야 되는 게 뭔지 고민 중이에요. 개인적으로 제도권 안에 안 들어 갈 거라 생각했는데... 교수대접 받는 것도 불편하고.
결벽증 있으신가 봐요.(웃음) 학생들 가르치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인데.. 유목 하셔야죠. 그래야 안 보이는 것도 보이고. 사람이 너무 한 틀에만 오래 있는 게 꼭 좋은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마음 편히 가지세요.
= 푸른 영상이 본거지인데 요새는 거기보다 여기 더 많이 있으니까...
교수로서 하고픈 일은 무엇인가요.
= 다큐 특화 계획 있어서 온 건데. 중요한 일이죠. 연구 체계적으로 할 수 있는 근거지 생긴다는 건 개인의 힘으로 어려운 건데 센터 역할을 하니까요. 다큐제작 노하우를 축적 전달하면 좋을 거예요. 여기 와서 학생들에게 배우는 것도 많아요. 말하자면 어떤 소재 선택도 나랑 너무 다르고 방법에 있어서도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아이디어를 내고.
그나저나 술값 많이 내시겠어요..^^
= 좀 내죠.(웃음) 동료들한테 미안하고. 안 달라지려고 노력해요. 보다시피 차림도 이렇고. 가치관 안 변할 거고.
푸른영상이 회원제로 운영하시죠? 요즘 어떤 작업을 하나요.
= 감독 7명이 다큐 찍고 영화제에 발표하고. 푸른 회원이라고 회원 가입하면 작품 보내주고 그러면 회원들이 주변인에게도 보이고 비평도 해주고 소제도 제공해주고 더 능동적인 형태의 후원이죠.
작업은 할매꽃..이란 것도 있고 대추리 2편, 비정규직은..학습지 재능교사 파업투쟁..등 있어요. 독립영화 전용관 생겨서 최소한 극장에서 만나는 계기는 되니까. 외국처럼 도서관에서 일괄 구입하면 참 좋을 거 같아요.
#4 촛불, 끝나지 않은 영화
촛불집회 어떻게 보고 계세요. 뭐가 제일 눈에 들어오시던가요.
= 뭐가 사람을 절망하게 하고 희망을 주는지.
촛불현장에서 카메라로 기록하는 친구들 엄청 많던데 조언 해주세요.
= 촛불은 사건이라고 봐요. 너무나 굉장한 거죠. 쇠고기 문제 둘러싼 신자유주의적 국제교역질서..이명박 정권의 부도덕성. 권력의 본질 등 무궁무진해요. 카메라는 여러 대가 필요해요. 시위생중계는 생각도 못했는데... 중요한 신나는 작업 해낼 수 있는 장이 생겼죠. 자기 능력이나 관심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기록 자체만으로도 중요하죠.
이것이 상황이 끝난 후에도 힘을 가질 수 있는 작품으로서 가치를 지녀야죠. 다큐로 만들 계획이라면 단순 기록이 아니라 관점 투사해서 좀더 시사적 가치보다 보편적인 생명력 있는 가치로 승화시켜야죠. 큰 작품 말고 경화는 이미 다 알고 언론이 하니까 다른 걸로. 촛불집회 구석에서 목격한 일이라던가 촛불집회 가지 못했던 사람들이라던가. 카메라가 몰리는 데만 몰리지 말고 독특한 시선으로 담아내면 좋을 거 같아요.
감독님 꺼 계획 중이거나 진행 중인 작품 있으세요.
= 상계동 뒷얘기. 그 사람들 지금 어떻게 살고 있다 그런 뒷얘기보다 투쟁 겪고 나서 생활에 어떻게 묻어 있는지. 저도 상계동에서 보고 배우고 느낀 거 정리해서 얘기 하고픈 것도 있고요. 철거에 관한 건 아니에요.
# 인터뷰가 끝나가는데 학생들이 "교수님"을 부르며 들어온다. 뒷풀이 자리에 오란다. 전화번호를 적고 곧 가마 약속을 잡는다. 그가 교수였다는 사실이 새삼 상기되었다. 감독님 소리만 듣다가 교수님 소리 들으니 기분이 어떠냐고 물었다. 그가 싱긋 웃으며 답한다. “닭살 돋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