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젝 덕분에 요즘 ‘혁명’을 자주 접한다. 혁명. 철지난 추억의 7080용어를. 지젝은 모두가 신념을 버린 시대에 신념과 혁명을 주장한다. 그래서 그를 좋아하고, 그래서 그는 미움 받는다. 지젝의 생각을 정리해보자. 지젝의 정치적 기획은 레닌의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결합한 국가체제 수립이다. 서로가 서로에 대해 미지의 타자로 존재하는 상징적 질서 속에서 “인간의 욕망, 그것은 타자의 욕망이다.” 지젝 역시 상징적 질서 속에서 만인은 만인에 대해 미지의 타자이며, 평화로운 이웃들의 이면에는 ‘괴물’이 도사리고 있다고 한다. 이 욕망의 시장 체제를 초극하는 유일한 방법은 보편적 주체 형식으로서의 국가 체제를 수립하는 것이다. 모든 작은 타자들을 하나의 총체적 집합으로 통합하는 예외적 큰 타자, 곧 헤겔의 입헌군주와 모든 작은 괴물들의 욕망을 중화시키는 보편적 욕망의 괴물, 곧 레닌의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결합한 글로벌한 국가체제(제국)를 수립하자는 것이다.
정신분석은 무의식 속에서 객체화된 외상을 주체 자신의 창조물로 되돌리는 작업이다. 객관성의 형식으로 환자를 괴롭히던 외상이 주체 자신의 창조물이라는 것을 깨달을 때 환자는 치유의 길로 들어선다. 객관적 실재처럼 보이는 것을 주체의 창안물로 되돌려놓는 것, 이것이 지젝의 사유방법이다. 지젝의 이데올로기 비판. 이데올로기는 집단적 환상이다. 환상가로지르기를 통해서 끔찍한 향락과 마주하는데 지젝은 라캉의 가르침에 따라서, 이 향락을 정치의 핵심적 요인으로 본다. 이데올로기의 궁극적 지탱점은 향락이라는 것이다.
몇달전 <한겨레> 지식논쟁에서 박정수는 지젝 비판자로 나서 로쟈와 맞섰다. ‘주인의 욕망을 저주하는 시장의 노예가 되지 않는 유일한 길은 단 하나의 상징적 주인 밑에서 보편적 노예가 되는 것이라고 결론 내릴 때 지젝은 더는 지배적 현실의 환상성을 비판하는 헤겔 좌파가 아니라, 유일한 지배자의 환상으로 수립된 현실을 추구하는 헤겔 우파의 자리에 선다.’고 말한다. 분명 지젝의 논의는 우리시대의 이념적 지형을 이해하고 돌파하는데 어떤 기여를 하고 있다. 하지만 “세계를 바꾸는 것은 해석이 아니라 새로운 세계를 창안하는 실천”이다. 그래서 박정수는 지젝의 질문을 바꾼다. ‘우리는 어떻게 이 일상의 현실을 벗어날 수 있는가’ 묻지 말고, 차라리 ‘이 일상의 현실이 그토록 확고하게 실존하는가’ 물어야 한다고. 화폐의 물신적 힘은 그것에 대한 믿음에서 생긴다는 걸 알아도 대안적인 교환 방법을 찾지 못하면 화폐 물신주의는 계속되며, 자본의 잉여가치가 노동력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알아도 자본 권력을 대체할 자유로운 생산자들의 연합체를 구성할 욕망과 능력이 없으면 자본가에게 좀 더 많은 지분을 요구하는 것 말고는 다른 도리가 없다. 신ㆍ민족ㆍ자본이라는 초월적 환상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들의 욕망이 구성하는 공통적(commune) 삶의 형식, 그것이 마르크스가 기획한 코뮨주의다.
구성하는 것과 구성된 것의 관계는 정치 철학의 핵심논쟁 지점이다. 사회를 구성하는 것은 무엇인가. 권력(힘, 욕망)이 구성하는 것은 사회적 신체이다. 국가권력은 주권권력에 예속된 인민이라는 사회적 신체를 구성한다. 자본은 자본의 흐름에 예속된 노동자와 소비자의 신체를 구성한다. 남근은 남근의 결여를 각인한 남/녀의 신체를 구성한다. 노조는 노동자의 이해관계로 결합된 신체를 구성한다. 권력이 있는 곳에 신체들이 있다. 사회를 구성하는 권력들이 하나가 아니듯이 사회를 구성하는 신체들도 하나가 아니다. 그 다수의 집합적 신체들(공동체)은 각기 다른 욕망의 양과 속도(질)을 갖고 있다. ‘매순간 운동의 벡터와 미분계수를 주목해야 한다. 그 중층적 운동방향을 내포한 미분계수의 결정적 구성인자는 실천이다.’ 이 부분이 가장 꽂혔다. 기울기와 방향에 민감할 것. 지금 힘은 어디로 향하는가. 시방 어디로 힘을 모아야 할까.
헤겔좌파로서 지젝은 사회를 구성하는 힘을 물질적 생산력으로 보지 않고 정신적 표상력, 즉 법과 이데올로기로 본다. 지젝에게 존재하는 사회적 신체는 집합적 유기체이다. 사회적이고 이데올로기적인 환상의 목적은 진정으로 존재하는 사회에 대한 하나의 비전을 구축하는 것이다. 상이한 계급들이 신체의 각 부위들처럼 자신의 기능에 따라 서로 하나의 전체에 기여한다. 이러한 하나로 통합된 유기적인 통일체로서의 사회는 이데올로기의 근본적인 환상이다. 지젝은 인간의 조건상 환상을 걷어낼 수 없다고 한다. 환상은 해석될 수 있는 게 아니라 오로지 ‘횡단’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어떻게 그것 뒤에 아무것도 없는지를 체험하는 것뿐이다. 어떻게 환상이 정확히 그 ‘아무 것도 아닌 것’을 감추고 있는지를 체험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