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 말씀의 절반은 맑으신 웃음’이라는 시구가 있다. 그가 그렇다. 절반 아닌 온 얼굴이 대보름 밝기로 환하게 웃는다. ‘나를 키운 건 8할이 바람’이라는 시구가 있다. 이 역시 ‘바람’을 ‘책’으로 바꾸면 그의 얘기다. 그를 키운 건 오직 책이다. 너무 많은 책을 읽은 나머지 책이 되었고, 너무 많은 행복을 전파한 나머지 행복해졌다. 그는 책 속에 보석처럼 알알이 박힌 좋은 글들을 모아 이메일로 띄우는 [고도원의 아침편지]를 운영한다. 구시대 감성을 지닌 신식 남자가, 디지털의 태에 아날로그의 향을 담아 보낸다. 그의 아주 특별한 편지는 2001년 8월부터 오늘까지 하루도 빠짐없이 170만 명의 아침을 열고 있다.
나를 키운 8할은 책, 그리고 아버지 고도원의 아침편지는 아버지의 서재에서 시작됐다. 늘 책 속에 파묻혀 사색하거나 책장을 넘기던 아버지. 시골교회 목사였던 그의 아버지는 박학다식한 분으로 통했고, 돌아가신 후에도 지인들에게 책과 함께 기억됐다. 자식은 부모의 뒷모습을 보고 자란다고 했던가. 그 역시 책을 살붙이처럼 맞대고 살았다. 게다가 아버지는 책 읽는 게 습관이 될 때까지 자식에게 회초리 들었다. “아버지께서 가장 좋은 유산을 물려준 셈”이라고 그는 말했다.
“어느 날 아버님이 돌아가신 뒤 물려주신 책을 보는데 밑줄이 그어져 있었습니다. 밑줄을 읽고는 마치 감전된 듯한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 때 깨달았습니다. ‘내가 읽은 책도 다른 사람들에게 행복과 감동을 줄 수 있겠구나’라고요. 누군가의 말 한마디, 책 한 구절이 인생을 통째로 바꿔 버릴 수도 있다는 믿음, 작은 씨앗 하나가 한 사람의 인생을 푸르게 바꿀 수도 있겠다는 가슴 부푼 희망에 아침편지를 시작하게 됐습니다.”
그는 독서를 통해 찾아내는 어록들을 '마음의 비타민'이라고 정의한다. 먹지 않아도 큰 탈은 없지만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영양소 비타민. 그런데 비타민은 한꺼번에 복용하는 게 아니라 매일 꾸준히 먹어야 효과가 크다. 그렇다면 좋은 글들도 홈페이지에 쌓아 놓는 것이 아니라 ‘일용할 양식’이 되도록 날마다 하나씩 보내자고 생각했다. 정신적 공황과 정서적인 갈증에 시달리는 사람들에게 작은 사연들을 통해 희망을 나누고 세상의 따뜻함을 나눌 수 있으리라 꿈꾸었다. 매일 아침 좋은 글을 메일링 해주는 ‘세계적 발명품’ 고도원의 아침편지는 그렇게 탄생했다.
7日 7色 아침편지의 감동 레시피 토인비의 ‘역사의 연구’로부터 함석헌의 ‘뜻으로 본 한국역사’에 이르기까지, 노자 ‘도덕경’에서 일본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村上春樹)의 에세이’까지, 그가 아침편지에 인용해 들려주는 글은 참으로 폭넓다. 향후 2-3년 동안 책을 읽지 않아도 아침편지를 보낼 수 있을 만큼의 데이터를 보관하고 있다. 매일 책을 읽기에 그렇다. 일상적인 독서가 곧 콘텐츠 생산과정이다.
“인터넷 서점도 있지만 저는 책방엘 자주 갑니다. 큰 서점에 가서 ‘책 사냥’을 하는데 그 시간은 저에게 가장 행복하고 달콤한 휴식이자 일입니다. 먼저 제목을 보고 저자를 보고 믿음직한 출판사인가를 보고 서문과 목차를 봅니다. 감동, 행복, 지혜, 지식을 줄 수 있느냐를 판단해서 책을 고릅니다. 책 읽기는 철저하게 속독, 정독, 다독의 원칙을 지킵니다.”
최소한 하루에 한 권을 읽는 ‘책의 달인’은, 축구나 피아노처럼 책 읽기 능력도 매일 반복하면 향상된다고 귀띔한다.
아침편지는 삶의 청량제가 될 만한 글을 뽑아 대개 1~2분 내에 읽을 수 있게 간략하게 정리한다. 또 한 책에서 3개 이상의 어록을 인용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지킨다. 특정도서나 이익집단을 홍보하는 느낌을 줘서도 안 되기 때문이다. 월요일과 금요일에는 시(詩)같은 감성적인 글을 올리고, 활동이 활발해지는 화요일과 목요일에는 이성적인 글을 올린다. 매주 토요일은 독자들이 보내온 아침편지를 배달, 독자가 참여하는, 독자와 함께하는 아침편지를 만들고 있다.
한 사람의 삶을 바꾸는 운명의 책 한 구절 고도원은 전직 대통령 비서관출신이다. 청와대에서 대통령 연설문 담당했다. 그 전에는 연세대 '연세춘추' 편집국장, '뿌리깊은 나무' 기자, '중앙일보' 정치전문기자, KBS, SBS 등에서 시사평론가와 기자 등 20년 넘게 언론에 종사했다. 그의 화려한 이력은 ‘아침문화재단 이사장’에서 화룡정점을 찍는다. 170만 아침편지 독자들과 함께하는 ‘마음산업’의 행복한 CEO가 된 것이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맛있는 음식을 다 먹을 수 없습니다. 산해진미 다 먹을 필요도 없습니다. 책도 마찬가지 입니다. 책에 있는 자식이 전부다 필요하고 누구에게나 필요한 건 아닙니다. 딱 한 사람만 이라도 그 구절이 필요한 사람이 있습니다. 아침편지는 모든 회원에게 보내지지만 어쩌면 그 한 사람을 위한 편지입니다.” 실제로 그는 인생의 교차로에서 방황하는 영혼들에게 ‘푸른 신호등’이자 ‘구급차’ 역할을 해주고 있다.
나는 네가 인생의 가장 밑바닥에서 시작하여 우뚝 서기를 바란다. 한 분야에서 최고가 되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다. 그 길은 아름다운 길이고, 치열하고 힘든 길이다. 그 힘든 일을 즐겁게 할 수만 있다면 그게 바로 성공일 것이다. 싫은 일에서 새로운 창조의 힘이 솟을 리 없다. 늘 말하지만 네가 즐겁게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라.
- 김용택의 《아들 마음 아버지 마음》중에서 -
* 김용택 시인이 아들에게 해주는 말이지만 사실은 우리 모두에게 해당되는 말이기도 합니다. 즐겁게 하는 일이라면 지금 밑바닥이어도 상관없습니다. 힘든 일도 즐겁게 하다보면 언제인가 최고의 자리에 우뚝 서는 날이 반드시 찾아옵니다.
지난 8월 그는 [밑바닥에서 우뚝 서기]라는 아침편지를 보냈다. 며칠 후 어느 20대 후반 여성에게 메일이 왔다. ‘삶을 접으려고 했습니다. 은행 통장을 정리하고, 책상과 옷장을 정리하고, 메일함을 정리하려다가 아침편지를 보았습니다. 그리곤 생각을 바꾸었습니다. 아침편지가 저를 살렸습니다.’라는 내용이었다. 생의 끈을 놓으려던 사람이 아침편지를 받고는 생각을 바꿨다는 사연이다. 이 외에도 백혈병 걸린 고등학교 2학년인 아들이 절망상태에 있었는데 아침편지를 읽으면서 희망을 갖기 시작했다는 사연, 공부를 안 하던 애가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는 얘기 등등 회원수만큼 사연도 각양각색이다. 이는 그의 큰 보람이다. 지치고 힘들 때마다 일어서게 하는 힘이다. 사람과 삶에 대한 숭고함으로 다져진 그의 마음바탕에서 또 그렇게 날마다 아침편지가 고운 명주실처럼 뽑혀 나온다. 170만 '마음공동체' 안에서 나눔의 아름다운 순환이 일어나는 것이다.
“나눔은 물질만 나누는 것이 아닙니다. 시간을 나누고 재능과 꿈도 나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쉽고 단순한 나눔이 지금 바로 하지 않으면 어려운 일이 되고 맙니다. 무엇을 이루고, 성취하고 나눠야지 하면 평생 못 나눕니다. 나눔은 생활이고 습관입니다. 삶의 결과가 아니라 과정입니다. 나눌수록 커지고, 쌓이면 기적이 되는 게 바로 나눔입니다.”
깊은 산속 옹달샘의 ‘꿈은 이루어진다’ 그는 서슴없이 ‘기적’을 말한다. 이는 매우 온당하다. 아침편지를 통해 희망의 씨앗이 울창한 숲을 이루는 ‘나눔의 기적’을 몸소 체험했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거창하게 백만 독자를 목표로 아침편지를 기획하고 추진했으면 아마 중도에 포기했을 겁니다. 여럿이 함께 한발자국씩 내딛다보니 여기까지 오게 됐습니다. 그 과정에서 머릿속에 그림으로 그린 것들이 하나하나 이뤄지는 신비한 체험을 했습니다. 아침편지 덕분에 꿈도 나무처럼 자란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저마다의 영혼에 물을 주는 ‘아침편지’의 소박한 시작은 백만 회원을 돌파하며 ‘아침문화재단’으로 거듭났고, 이제 그는 세계 최고의 명상센터 ‘깊은 산속 옹달샘’을 꿈꾸고 있다. 산 좋고 물 좋은 대한민국 어느 깊은 산속에 자리한 그곳은 휴식, 운동, 명상, 마음 수련이 잘 짜인 프로그램에 의해 진행되는, 그야말로 환상적인 마음 치료 센터가 될 것이라고 한다. 이를 위해 현재 십시일반으로 ‘1평의 기적’ 후원회를 모으고 있다. 과연 그의 꿈은 이루어질 것인가? 정답은 아침문화재단 건물 입구에 새겨져 있는, 그의 삶을 아우르는 큰 테마이기도 한 루쉰의 글에 있다.
‘희망이란 있다고도 할 수 없고 없다고도 할 수 없다. 그것은 마치 땅 위의 길과 같은 것이다. 처음 땅 위에는 길이 없었다. 다니는 사람이 많아지면 그것이 곧 길이 되는 것이다.’
* 증권예탁결제원 사보 2006년 11월호. 너무 오래 전에 쓴 글같다. 2년 전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