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영문학관을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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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영문학관 입구. 과제일등 제출하는 초롱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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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찍 등교한 모범생. 생활은 고독한 것이다. 우습지? 웃는다. 시를 짓습니다. 시를 읽습니다. 시인을 만나러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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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 우리들 사이로 김수영 시인 얼굴이 보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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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풀이 눕는다. 선유님이 풀처럼 고개가 누워요. 해터님은 서 있는 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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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 우리들 사이로 김수영 시인 얼굴이 보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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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 우리들 사이로 김수영 시인 얼굴이 보이네요. <달나라의 장난>을 보고 계십니다. 뚫어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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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책 디자인이 참 소박하면서도 모던한 느낌을 줘서 예쁘다고, 벌꿀님이랑 얘기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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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영이 작업했던 대형 책상. 어떤 시인이 그렇게 부러워했다고 하죠. 유럽 귀족가구 같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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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옆에는 <의자가 많아서 걸린다> 깨알같이 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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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영의 책들. 시간들. 적들. 설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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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영문학상 수상시집들 (정희성, 황지우, 이성복, 장정일, 김혜순, 김경주...우리 시단의 보석같은 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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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영 시대의 모던니스트 여성풍 원피스 이총사  이슷과 벌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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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관에서도 사진 앞에 오래 머무는, 사진(을 사랑)하는 선미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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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영사전에는 모든 단어(시어)들이 설명이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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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움 : 서럽게 느껴지는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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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고지에 적힌 아이(들)의 글을 읽고 좋아라 입을 다물줄 모르는 강여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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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들이 수행평가 할 때 일어서야 잘된다고 했다며, 일어서서 긴-시 암송중인 내복곰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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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층 옥상 테이블. 저 멀리 삼각산이 보여요. 운무가 펼쳐져 더 운치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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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롱샘으로 시작한 사진 초롱샘으로 수미쌍괄식 마무리. ^^ 

(회식사진이 없네요. 낙지철판구이가 지글댔던 비오는 일요일은 마음에 담아둘게요)


나의 수줍은 기념사진 






3차시 리뷰_삶에 스미는 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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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선유

어쩐지 김승옥 소설 보는 것 같아요. 제목은 ‘2014년 서울혹은 가볍게 한 잔’ ^^ 극적 사건 없이 평범한 직장인의 일상이 그려지는 게 좋아요. 멋부리지 않은 슴슴한 문장들, “우리는 급한 얼굴로 맥주잔을 기울였다.” “나 역시도 시도조차 해보지 못한 그 말은 부끄럽게 사라져 갔다.” 같은 표현이 상큼해요. 비슷비슷한 듯 조금씩 다른 생각과 말투를 가진 직원들 캐릭터가 조금 더 살았으면 글이 더 짱짱했겠어요. 각 인물을 더 관찰하고 기록해보세요. ‘쉽게 말한다고 쉬운 것은 아니라는 말은 기억에 남습니다.

 

야외의 치킨에 맥주가 제 맛이라는 걸 누구나 아는지 불안한 날씨의 호프집에는 두 어 테이블 만이 차 있다. (이 문장이 좀 꼬이네요. 수식어가 딸린 주어를 쓰는 건 안 좋은 버릇입니다. 야외의 치킨에 맥주, 불안한 날씨의 호프집)

-> 치킨과 맥주는 야외에서 마셔야 제 맛이라고 사람들도 생각하는지, 비가 내릴 듯 불안한 하늘 아래는 테이블 두어 개만 차 있다.

 

 

나비

엄마가 딸을 옆에 앉혀놓고, “한 여자가 있었어하면서 자기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느낌이었어요. 독자는 착한 딸처럼 한 여자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게 되고, 후반부로 갈수록 그 여자가 엄마임을 알아가지만, 기꺼이 뭉클해진다고 할까요. 독창적인 구성, 격정이 제거된 덤덤한 서사가 돋보인 글이었습니다. 이 글의 아쉬운 점은, ‘아내의 인물은 확 드러나는데 반해 화자인 남편의 캐릭터가 살아있지 않다는 점입니다. 넉넉지 않은 형편에 장사하는 집에서 자란, 인내심 많고 소심한 남성 정도로 보입니다. 남편의 인물 형상화에도 공을 들였으면 자기변명의 혐의도 벗고 더 진짜남편의 목소리로 들렸겠죠.

 

 

천연나방

재밌고 유익한 글. 조금 다듬으면 멋진 칼럼이 되겠어요. 그런데 초반에 무리수를 두었어요. 결코 독해가 쉽지 않은 인용구절을 설명하기 위해 리비도, 타나토스, 원초아, 방어기제 같은 개념어를 잇달아 나열하다보니 사전 지식이 없는 독자들은 초반에 몰입이 어렵겠어요. 한꺼번에 전문용어를 방출하기보다 조금씩 내어주는 세심함이 필요합니다.

뒤늦게 맞은 사춘기, 인생의 고비는 적절한 사례제시로 이해가 잘 되었고요. 그 곡절 끝에 불혹의 나이에 얻는 한 구절. ‘자신의 신뢰도를 유지하기에 충분한 진실을 담으면서도 자신의 선택 가능성을 유지하기에 충분한 기만성을 담을 것.’ 삶의 기예로 채택한 이 말이 너무 크고 모호해서 또 부작위를 끌어다가 설명하려니 글의 흐름이 깨지는 느낌입니다. 타인과 나 사이에 여유와 역동의 공간을 만드는 것, 이런 일상용어로 그냥 풀어갔으면 좋았겠습니다. 심리상담가의 전문성을 살리는 글인데, 한번에 한 개념만 제대로 알려준다는 소박한 바람으로 글을 써보세요.

 

 

 

강준혁

글을 읽어 내려가는데 가슴이 콱콱 조여와요. 120쪽자리 보고서. 싱거운 발표. 치킨집 회식. 국장님의 합석. 그리고 어느 순간에도 과장님의 편이 되어야 한다는 당부. 평판과 인정의 노예로 길들이는 조직문화. 외부기관 파견공고의 유혹까지, 모두가 실감나게 다가옵니다. 국장님 과장님 나빠요. 하지만 개별 인격보다 그런 인격을 지속적으로 양산해내는 구조가 문제겠지요.

타인의 인정과 평가에 대한 갈구는 내 삶에 있어 끈질긴 역사를 가지고 있다는 고백에서는 마지막 퍼즐 조각처럼 뭔가 맞아 떨어지네요. 그 퍼즐조각 다시 드러내는 설정. “그 자리를 스스로에 대한 존중과 자신의 욕망으로 채울 수 있을까하는 대목에선 응원하게 됩니다. 우선은 2차를 희망하는 듯한 과장님께 "오늘은 피곤하니 그냥 일찍 들어가겠다"란 말을 하는 것부터 시작해봐야 겠다,는 마지막 문장 좋습니다. 1막에서 자기인식이 완결적으로 이뤄졌기에, 2막을 기대하게 됩니다.

중간에 아담스미스가 말한 푸줏간 아저씨의 이기심 대목은, 인용구가 나오면 부연설명 한줄 정도 곁들이는 게 좋습니다. 글은 약간 친절해야 끝까지 독자를 끝까지 데려갈 수 있어요.

 

 

초롱

드디어 초롱샘의 논리동화가 시작되는 건가요. 재밌네요. 중간에 대화 장면이 좀 복잡하긴 하지만요. 엉뚱한 의견, 감정과 의견을 창의성으로 둔갑시켜 칭찬하지 않겠다는 선생님의 다짐에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그런데 논리적인 아이가, 감정과 의견을 남발하는 아이와 어떤 차이가 있는지 더 명확히 구별해주세요. 정답을 잘 맞추는 것과, 답은 틀렸지만 논리적인 아이도 있을 테고요. 유형별 특성, 수학적인 사고를 하는 아이의 유형의 예를 들어주어야, “논리적이지 말아다오라는 주제의식이 더 살아납니다.

초롱샘의 장점은 군더더기 없는 서두에요. 거두절미하고 일문일사의 원칙을 지키며 글을 전개하는 것. 칼럼 서두의 모범답안입니다.

 

 

 

효진

참음은 위대하다” “싸움은 공멸이다등 전하고자 하는 말이 분명한데, 메시지 수용에 혼란을 줍니다. 전쟁, 싸움, 분노, 싸우는 것, 화내는 것, 분노하는 것, 참는 것, 참음 등 비슷한 단어가 여러 버전으로 혼용되어 글을 모호하게 합니다. 문장의 구조의 문제점도 보이네요. “참는 능력은 화내야하는 순간에 화내는 것보다 진화한 능력이다.” 이런 문장들 요주의입니다. 참음은 화냄보다 진화한 능력이다. 이렇게 대칭을 이루게 써야하고, (참는 능력/화내야하는 순간에 화내는 것-> 이건 비대칭입니다.) “싸우는 능력보다 참는 능력이 위대하다는 것은 과학적으로 증명됐다.” 이건 구절이 대칭을 이루긴 했지만 (싸우는 것/화내는 것) 앞의 단어와 다른 표현을 사용해서 헷갈려요. 중요한 개념의 단어는 꼭 통일해서 사용해야 합니다.

 

 

이 글을 고치려면, 단어를 한 세트를 정해서 밀고 나가세요. 참음/싸움 혹은 싸우는 능력/참는 능력. 영화의 스토리도 저 틀에 맞게 재구성하고 효진님의 깨달음-가치의 전환-을 공유할 수 있다면 좋은 칼럼 될 것입니다. 싸움이나, 참음이나 상황에 따라 선택해야하는 삶의 기예 문제일 텐데요. 그 부분을 언급하지 않으면 도덕교과서 되어버리니 주의하셔야합니다.

 

 

톰슨가젤

하이틴로맨스. 완전 재밌게 읽혀요. 처음엔 A가 여자인줄 알았어요. (경선처럼) 이루지 못한 사랑에 안타깝기도 합니다. 드라마나 소설에서처럼 너무좋아해서 외면하고 멀리할 수도 있군요. 그런 감정 실감하지 못했는데 이 글로 이해했습니다. “건드렸다는 표현이 폭력적이면서도 건조하면서도 또 몹시 에로틱한 표현으로 울림을 줍니다. 그런 장치도 좋아요.

이 경험이 톰슨가젤님을 연애소수자가 되게 하는데, 좋은 감정을 느끼고 표현하는데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요. 그 점이 궁금합니다. 그 부분이 드러난다면 이 글을 통해 하고 싶은 말이 정리될 것 같아요. 이 글은 관음증은 충족시켜주는데, 그야말로 엿본 기분에서 끝나는 듯하여 조금 허탈합니다. 잘 쓰여진 글이라 아깝고요. 솔직하게 말하는 것과 말하지 않는 것. 나의 삶에는 어느 것이 유리했다, 판단 내려주세요. 그 생각은 또 변하겠지만요.

 

 

 

다리

경찰공무원 수험생 친구->노량진 수험생의 (지질한) 일상-> 호주의 목수를 동경하는 서러운 청춘. 글의 소재가 좋습니다. 3인칭 관찰자 시점에서 노량진 고시생으로 대변되는 친구의 삶을 보여주고 지지하는 따스한 시선이 느껴집니다. 글의 구성이 다소 산만하죠. 불필요한 정보가 직접 인용으로 잇달아 제공되어서 그렇습니다. 첫 문장에서 4월이라는 시간이 그리 중요하진 않으니 빼도 돼요. 5월에 친구가 찾아오는 신도 이 글만으로는 불필요해 보입니다.

떨어졌다. 다시 노량진으로 가야겠다.”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는 것. 5년째 준비중이라는 것. 학창시절 무용-체육을 하는 자유롭고 역동적인 성향이었다는 것. 그런 아이마저 공무원 시험을 준비한다는 것. 등등 필요한 정보를 속도감 있게 알려주시고요, 주제가 포함된 부분은 상세히 풀어주세요. 제목이 지질해도 괜찮아. 라면, 지질함에 대한 글쓴이의 해석이 들어가야겠죠. 수업시간에 얘기한 공무원 수험생을 속물로 보았는데 그게 아니더라는 인식의 전환이 들어가면 글이 더 울림이 있을 거예요.

 

 

강여사

가치가 있는 삶과 월 백만원이 있는 삶의 공존이 이렇게 힘든 건가요. 참 속상하고 마음이 아픕니다. 최저생계비도 보장받지 못하면서 추구해야하는 가치는 또 무언지. 울화통 터지는 상황을 큰돈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큰돈이 아니기에 나는 더, 작아졌다.” 이렇게 차분한 말투로 풀어내니 글이 더 설득력 있네요. 동의하게 합니다. 이 글을 교장선생님이나 편집장님에게 보여주면 뭐라고 할까요. 그분들이 자본가는 아니지만 그렇기 때문에 동료로서 같이 이야기해볼 수는 있다고 생각해요. 뾰족한 해결책이 없으니까 말이라도 해야죠.

가치로 남는 인생을 위해서 얼마나 많은 것을 포기하고 가야하는 삶인가했을 때, 포기해야하는 것은 연극배우기같이 배우고 싶은 것을 배우고, 신념을 느긋하게 표현하는 삶인가요. 그 부분에 대해 더 밀고 나가보세요. 옆에 있는 오래 남아있는 동료는 그 갈등을 어떻게 해결하는지에 대해서 사례도 참조해보세요.

가난에 대해 싸우나 나는 사실 가난해 본 적 없다.” 그래서 나는 적어도 3개월은 가난하게 살아보기로 했다. 뭐 이런 결론이 날 수도 있는 글입니다. 삶을 다른 과점에서 해석할 논리를 얻어 스스로 납득만 시킬 수 있다면요. 아무튼 이 글을 통해 에 대해서 자기처지를 객관적으로 풀어내는 것은 삶을 설계하는데 꼭 필요한 작업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박선미

열무김치 단상. 전원일기 열무김치 편으로 손색이 없는 글입니다. 군침 돌아요. 다라이에 담긴 항아리, 양푼에 맵게 빨간 밥, 동생 손잡고 앉아있는 풍경이 눈에 선하게 그려지고요. 다만, 먹고는 했다. 먹이곤 했다. 기다리곤 했다. ‘-하곤 했다가 빈번하니 글이 걸립니다. 자주 먹었다. 먹였다. 늘 기다렸다. 등으로 표현을 달리해주시고요. 열무김치 먹던 어린 시절 나를 마주하고 어떤 얘기가 전개될지 기대됩니다.

 

 

 

김설리

발뒷꿈치 군살 같은 관계의 벽이라니. 절묘한 표현입니다. 근데 벽은 아니고 표피도 아닌 우툴두툴한 껄끄러움 정도 되겠네요. 거칠면서 유약한 성품이니까요. 서두 한강에서 신은 영화적이네요. 퀴어영화의 부치(레즈비언 커플의 남자 역할) 같다고나 할까. ^^ 설리는 글감이 많아요. 글에 깊이와 결이 생기고 있어서 표정도 더 다양해질 테고요. 김수영처럼 폭로적인 자기고백-성찰의 멋있는경지를 기대합니다.

 

 

 

 

 

2차시 리뷰_감정의 근거를 발굴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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톰슨가젤

한여름 제주도의 숲은 매미 소리를 삼킬 만큼 짙다. 잎과 잎이 맞대고 수만(萬)의 겹을 이룬다. 그물처럼 햇빛을 가두고 한 뼘도 들이지 않는다. 대신 잎의 그림자가 내린다. 그림자와 그림자가 어깨를 걸고 바닥에 내려앉는다. 계곡과 골짜기에 어둠이 깔린다. 그 속에서 풀과 나무들은 여름을 오롯이 난다. 잡초에도 날이 서 있다. 풀 냄새가 공기에 배어 있다. 서늘한 여름이다.

 

->위의 단락에는 요소가 많아요. 한여름. 제주도. 숲. 매미소리. 그물. 햇빛. 그림자. 계곡, 골짜기. 풀. 나무. 잡초. 풀냄새…. 시각, 청각, 촉각 요소가 충돌하고, 숲-계곡-골짜기 공간이동이 되고요. 문장의 흐름이 끊겨 하나의 장면으로 이미지화가 되지 않아요. 언뜻 수려한 미문인 것 같지만 뜻이 모호하고요. 멋진 글보다 쉬운 글이 좋습니다. ‘한여름 제주도 숲은 서늘하다.’ 정도로 직접 보고 듣고 느끼고 경험한 것에 대해 한 가지씩 찬찬히 풀어주세요.

 

숲을 좋아하는 아버지와 여름을 보낸 기억이 많다. 우리는 등산하러 다녔고 트래킹을 즐겼다.

지난 주말엔 대학 동기들과 경기도 양주 근방의 계곡으로 피서를 갔다.

 

-> 아버지, 등산, 트레킹. 대학 동기, 양주, 계곡. 역시 요소가 과하죠. 아버지와의 이야기가 전개되는 줄 알았는데 동기들과 여행으로 급격하게 이야기가 틀어집니다. 또 흐름이 단절돼요. 불필요한 정보를 빼야합니다.

 

이후에도 글은 공간적 배경, 서사의 흐름이 계속 단절됩니다. 양주 계곡에서 불행한 일상, 시 읽히는 밤, 거리, 마트, 떠들썩한 밤, 설치작품과 건축 등 서울 관상으로 마무리됩니다. 김수영 언어로 ‘계통 없는 글’이 되고 말았어요. 떠나고 싶은 곳이 (양주계곡처럼) 조악한 공간인지, (서울처럼) 번다하고 떠들썩한 곳인지조차 전달이 되지 않아요. 톰슨가젤님은 문장에 대한 기본기가 있으니까 다 말하고 싶은 조바심, 글보다 앞서가는 마음을 조금 누그리고 ‘한 가지 주제에 집중하자’는 목적을 갖고 쓰면 좋은 글이 나올 것입니다. 애썼어요. 양념이 많긴 했지만, 정성이 그득그득 느껴지는 글이었습니다.

 

 

임선유

이렇게 해야만 올바른 사회가 된다는 무거운 도덕의식이 아닌 개개인의 호불호로 선택을 하라는 대답에 나는 마치 목을 답답하게 하던 셔츠 첫 번째 단추를 푼 기분이었다.

 

-> 하고픈 말이 적절한 비유로 잘 표현했어요. 근거와 뒷심이 부족한 것이 아쉽네요. 스스로에게 지운 시민의식의 부담과 자유로운 선택이 갈등하다가 누군가의 말에 홀가분해졌다는 게, 좀 허무하다고 할까요. 필자의 도덕의식의 강박이 얼마나 강했는지 독자는 실감하기 어렵습니다. 그간 어떻게 생활했고 어떤 판단을 내렸고 어떤 상황에서 억압을 느끼고 회의감이 들었고 어떻게 지쳐갔는지가, 사례가 필요합니다.

 

무거운 열 마디 말보다 가볍게 보이지만 가볍지 않은, 아이러니가 있는 한 마디 말에서 상대방의 진중함을 읽는다. 개그나 드라마, 대중문화에서 볼 수 있을법한 이런 경박함의 미학이 현대를 사는 나에게 틈이 되어주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 강박감 아닌 경박함 예찬은 좋은 글감입니다. 그런데 그 분이 어떤 근거로 개인의 자유로운 신념의 중요성을 설파하는지, 그걸 선유님은 어떤 측면에서 진중하다고 느끼고 수용하는지 궁금합니다. 금방 잠재울 수 있는 갈등은 갈등이 아닌 경우가 많습니다. 전체주의 대 개인주의의 대립구도. 상황을 이분법으로 구조화시키면 사유가 자라날 틈이 없지요. 내용 없고 앙상한 글이 됩니다. 삶에는 이도 저도 아닌 무수한 상황과 조건에서 사건이 일어나니까요. 도덕적 책무의식에 대한 피로감 같은 어떤 정서와 느낌은 잘 표현되었어요. 사건과 사례 중심으로 글을 쓴다면 더 좋은 글이 나올 것입니다.


 

나비

처음엔 그랬다. 자격이 없다고만 생각했다. 등단비가 100만원이라는 말에 권유가 순수해보이지는 않았지만 스스로에게 부여하는 자격 반, 의심 반. 그렇게 2년을 끌다가 못이기는 척 등단을 했다.

 

-> 놀랍네요. 돈을 받고 등단시켜주는 곳이 있다는 사실이요. 회원들 작품을 서로 발표하고 비평하는 동인 모임이 아닌가봅니다. 일간지나 문예지 등의 등단과 저곳의 다른 점을 설명해주세요. 그래야, ‘등단이 왜 필요하죠? 여러분의 의견을 듣고 싶네요. 왜 하셨어요?’ 하는 나비님의 문제제기가 힘을 얻습니다.

 

그리고 왜, 나비님은 등단을 하고 싶었는지, 사람들의 의견이 왜 궁금했는지, 그들의 말에서 무엇을 확인하고 싶었는지, 나비님의 욕망의 고백을 넘어서는 진지한 자기성찰이 궁금합니다. 글감이 생생하고 특이해요. 고유한 경험과 감정에 대해서 사려 깊게, 김수영처럼 자기객관화 시켜보는 작업이 곁들여진다면 금상첨화일 테죠.

 

김수영에게 도움을 청하고 싶다. “당신은 내 편임을 압니다. 당신의 순수한 용기, 열정과 통찰력, 의지의 발칙함을 보여 주소서. 내게 힘을 주소서. 약간의 경박성을 놓치지 않도록 뜨거운 감성의 강물을 부어주소서…부디”

 

-> 경박성과 발칙함에 대한 뜨거운 애정도 설명해주세요. 왜 경박과 발칙을 갈구하는지. 경박과 발칙은 뭐라고 생각하는지.

 

 

민지

뭐라도 해야겠다는 강박. 그 와중에 놓칠 수 없는 외모 관리. 그렇기에 공부와 운동을 시작했다. 운동도 세달 전부터 요가를 하고 있지만, 그것으론 부족해 아침에 근력 운동을 더 하는 것이다.

 

-> 지성과 미모를 겸비한 여자 되기 프로젝트 인가요. 현재를 잘 살고 있으면서 왜 그렇게 미래를 걱정하나요. 언제부터 열심히 살아야한다는 생각을 하게 됐는지, 그게 어떤 계기로 강박이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나름 피곤한 생활을 즐기고 있으니까.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게으르게 생활하는 건 정신적으로 더더욱 피곤하다. 그렇기에 나는 몸을 피곤하게 만들고 있다. 정답은 없지만 이렇게 생활 하는 것이 지금 나에게는 최선이라고 생각 하고 있다.

 

-> 피곤한 몸만들기. 일상의 피로감(무료함)에 벗어나기 위해서 공부를 통한 피로로 전환한다는 게 무얼까요. 아무 것도 안 해도 피곤하고 뭔가 해도 피곤하고. 아마도 똑같은 피곤은 아닐 거 같아요. 두 개의 피곤은 무엇이 어떻게 다른지, 더 섬세하게 관찰 묘사해보세요. 그럼, 공부의 피곤함은 마땅한 ‘다른 언어’로 대체해야 합니다. 지금은 같은 단어가 많이 반복되어 표현이 명확하지 않습니다. 언어를 세분화해야, 감정도 섬세해집니다. 무료함, 피로함, 승부욕, 성취감, 존재감 등 여러 단어가 있겠지요.

피곤한 몸으로 열정적으로 살아가면서 생긴 변화가 무얼까요. 핸드폰 분실에 초점을 맞추기보다, 토요일에 친구 안 만나고 혼자 있을 줄 알게 된 것, 소비가 줄어들 수도 있겠고 등 삶의 양태 변화에 관해 더 탐구해보세요. 사람이 달라진다는 것은 무얼까. 제 기준은 곁에 있는 친구가 바뀌는 것, 카드명세서가 달라지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열심히 사는 삶이 무엇을 낳는지, 무엇을 위한 열심인지는 두고두고 좋은 글감이 될 거예요.

 

 

초롱

직장이라고 할 것까지는 없다. 파트타임으로 일하러 나가는 날이 일주일 중 4일이다. 일은 주로 오후에 시작한다. 그래도 아침 9시에는 어머니께 “다녀오겠습니다.” 인사하고 집을 나선다. 도서관이나 서점, 카페 등으로 출근한다.

 

-> 나는 수학학원 강사다. 직장이라고 할 것까지는 없다. 일주일에 4일 파트타임으로 일한다. 학원 수업이 오후에 시작하지만 매일 아침 9시에 어머니께 “다녀오겠습니다” 인사하고 집을 나선다. 도서관이나 서점, 카페 등으로 출근한다.

 

나는 뻔뻔스럽다. 어머니께서 집안일을 하고 계실 때도 종종 도와 드리기는커녕 내 할 일에 몰두한다. 내 만족이다. 그래야 내가 산다고 생각하는 이기주의자다. 돈 생기는 일이 아니어도 책 읽으러, 글을 쓰러 도서관에도 가고 카페에도 다닌다. 책 읽는 것이 예전에는 취미였었다.

 

-> 재밌고 생생한 초롱님만의 글입니다. 그런데 처음부터 뻔뻔스럽진 않았을 테고, 살면서 생긴 변화겠지요. 애초의 갈등, 그리고 서로의 암묵적 동의하에 공존의 지혜를 터득하게 된 사연 등이 한두 단락 곁들여져도 재밌을 것 같습니다. 책 읽기와 글쓰기가 초롱님의 취미가 된 계기, 그것이 고부갈등을 견디거나 풀어가는 데 좋은 점 등에 관해 곁들여지면 더 재밌을 것 같습니다. 아래 파스 에피소드도 앞의 뻔뻔함과 대비되어 글이 균형이 맞춰집니다. 너무 착한 며느리스럽지 않게 표현되어 진짜 사는 이야기 같고 참 좋습니다.


 

강준혁

그렇게 내 인생의 첫 사춘기, 유예기로 기억되던 시간은 1여년의 뒤 군 입대와 함께 끝이 났다. 다시 어딘가에 소속이 되고, 의미 없이 반복되던 일상이었지만 오히려 그래서 의미를 찾을 필요가 없었다는 측면에선 편안함을 느꼈던 것 같다.

 

-> 걱정과 불안. 의미의 추구. 잔잔한 문체에서 어떤 치열함이 느껴져요. 은밀하고 불안하고. 저 멀리서 지지직 전선줄이 타들어가는 느낌입니다. 준혁님 만의 문체가 살아나는 글이네요. 그런데 제대하는 날 바로 도서관을 찾게 하는 그 힘이 무엇일까요. 저는 무척 놀랍네요. 일상을 강제하는 그 힘이요. 흔들릴 때는 어떻게 마음을 다잡는지, 공부하는 능력은 언제부터 어떻게 형성된 건지.

 

내 안에 안정감에 대한 희구와 함께 그것에 대한 불편함도 공존하는 것이 사실이란 것을 아니까. 어차피 도돌이표처럼 고민만 하다가 일상에 머물러 있을 수밖에 없다면 차라리 고민이 없이 사는 게 편한 것 일 테니.

 

-> 이 결론은 급마무리 같아요. 내용이 충돌하고요. 안정이 주는 달콤함과 지루함. 인간의 영원한 딜레마죠. 안정된 환경이 편안하지만 나른하고 변화 없는 것은 참기 어려우니까요. 그런 고민과 딜레마를 안고 일상을 살아야한다면 그 조건에서 어떻게 살 것인가, 의미를 만들어야겠지요. 고민은 쉽게 떼어버릴 수 있다면 고민이 아닐 테고요. 준혁님은 고민 없이 살 수 있는 분이 아닌 거 같은데요, 무의미한 것도 못 참고요. 가치에 대한 해석, 삶의 의미에 대한 해석이 달라져야, 글이 순환구조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지난주의 글보다 한결 편안하게 읽힙니다. 다음 글도 기대할게요.

 

 

효진

누군가는 지친 부모님의 어깨의 짐을 덜어주기 위해 나를(->자신을) 숨기고 부모님이 원하는 사람이 되기도 한다. 나도 한 번이라도 그런 고민을 했으면 어땠을까. 하지만 그건 애초부터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는지 나도(->나는) 한 치도 양보하지 않았다. 부모님이 내 색깔에 자신들이 색깔을 덧입히려 할수록 (나는->생략) 더 과격하게 나의 색을 표현했고 잦은 충돌로 이어졌다.

 

그래도 기분이 여전히 언짢고 뭔가 찜찜하다. (내가->생략)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를 마치 그들이 포상하는 격이 됐고 나는 아쉬운 소리를 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 ‘나’라는 주어가 반복되면 글이 어지럽습니다. 가정에서 부모님과의 투쟁, 효진님 표현대로 ‘삶의 주인자리’ 사수에는 성공했는데 회사에서는 그게 어렵게 된 현실이 대비적으로 잘 그려졌습니다. 문장다듬기 퇴고의 과정을 거쳐서 말끔히 만들어주세요.

 

직장 생활이란 게 노예 생활도 아닌데 부당한 건 부당하다, 이야기하고 안 될 때는 싸우기도 하고 그런 게 의견이 다른 사람들이 한 가지 의견으로 모아서 살아가기 위한 방법이다.

-> 내용 전달이 안 돼요. 의견이 다른 사람들이 한 가지 의견으로 모인다는 건, 헷갈립니다. 단어를 달리해서 표현을 구분해주세요. ‘직장생활이 노예생활은 아니다. 부당할 때는 말하고 관철이 안 되면 싸워야 한다. 그게 의견이 다른 사람들이 더불어 살아가기 위한 방법이다.’ 이런 정도로요.

평생 다닐 회사도 아닌데 그냥 남의 일처럼 넘어갈지, 부당하다고 생각되는 일에 소신을 걸지. 언제나 피를 요구하는 자유는 혹독하게도 아름답다. 그럼에도 내가 유일하게 지켜야할 게 있다면 그건 삶의 자유 의지다. (-> 삶의 주인자리를 지키는 것이다,)

 

-> ‘삶의 주인자리’로 일관되게 표현을 통일하는 게 좋죠. 삶의 자유의지는 모호한 표현입니다. 가정과 회사는 생사여탈권을 쥐고 힘없는 한 사람에게 권력을 행사하는 공통점이 있죠. 단순한 삶의 배경의 이동이 아닌 그 부분을 구조적으로 접근하면 내용이 더 탄탄하겠습니다. 야무지고 치열한 글, 잘 읽었습니다.


 

설리

최근 읽었던 백영옥의 소설 『실연당한 사람들을 위한 일곱시 조찬 모임』에서 지훈은 이렇게 말했다. “… 전 한순간 사랑에 빠지는 게 가능한 일이라고 믿지 않았어요. 대단한 영감으로 순식간에 걸작을 써내는 작가를 좋아하지도 않아요. 트루먼 커포티는 『인 콜드 블러드』를 쓰는 데 육 년이나 걸렸어요. 그런 거예요. 누군가를 이해하기 위해서 죽도록 시간이 많이 걸리는 일, 우연히 벌어지는 환상이 아니라 서로를 이해하기 위해 철저한 노동을 필요로 하는 일, 그게 제가 알고 있는 연애예요.”

 

-> 백영옥 소설에서 커포티 소설로. 동영상에서 다큐멘터리 영화로. 그리고 다시 커포티의 책으로 이어지는 흐름이 계절의 순환처럼 자연스러워요. 매체의 시점 이동으로 자칫 글이 어수선할 수 있는데 완벽하게 전달되네요. 설레는 마음으로 따라가면서 읽었습니다.

 

커포티는 스미스가 사형당하는 것을 막지 못했다. 스미스가 사형당한 이후 그는 소설을 완성했다. 지금까지도 그의 최고의 작품이라고 손꼽히는 모양이다. 그의 숨소리가 담겨있을 문장들을 기대하며 오늘은 밤을 새워 ‘이해하기 위해 철저한 노동을 필요로 하는 일’이라고 생각되는 책 읽기에 돌입해야겠다.

 

-> 설리의 글이 무척 좋아졌어요. 이럴 때 꾸준히 써서 어느 단계로 올려놓으세요. 창작은 최고수준보다 중요한 게 최저수준입니다. 나는 이 정도는 자유롭게 쓴다는 믿음을 스스로 갖도록.


 

천연나방

(그러나 그렇다고 했을지라도) 그의 적극적인 대쉬가 귀찮기 보다는 반갑기 일쑤였고 그 후 우리는 누구라 할 것 없이 서로 챙기고 연락하고 만나게 되었다. (그렇게) 데이트를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관계가 만들어졌고(->만들어졌다.) 세 번의 헤어짐과 두 번의 와병을 거친 후 이제는 안간힘을 써도 헤어져 지지가 않는 사이가 되어 버렸다.

 

-> 천연나방님의 러브스토리가 아름답습니다. 존재 자체만으로 상처난 자존심을 달래주고, 삶의 중심을 잡아주는 사람이라니. 직접적인 애정표현이 많은데도 글이 남사스럽지 않고 뭉클하고 수긍하면서 읽게 됩니다. 사랑이 싹트고 관계가 만들어지는 과정이 자연스럽게 드러납니다.

 

돌아보니 내 자리라고 생각했던 많은 부분이 원래부터 그 아이 자리였다. 이제부터 난 잠시 착각하고 있었던 그 아이 자리를 그 사람한테 돌려줄 준비를 해야 한다. 그 자리를 잘 돌려줌으로써만 그와 오래 함께 할 수 있을 게다. 왠지 마음이 허전해진다. 그 사람이 웃는 것, 안심해 하는 것, 행복해하는 시간을 함께 보내려면 내 것일 수 없는 부분을 원래의 자리로 돌려주어야 한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은 무엇을 얻는 것도 잃는 것도 아닌데 난 무언가를 얻으며 또 무언가를 잃는 것 같다.

 

-> 이 부분이 좀 모호합니다. 정체 모를 섭섭함을 더 파헤쳐주세요. 사랑이 괴로운 것은 독점욕 아니던가요. 사랑하니까 이해하고 배려하고 착한 반려자가 되고자 마음을 다독이시는 느낌이 드는데, 더 깊게 들어가 보면 어떤 마음이 펼쳐질지. 글쓸 때는 자기를 억압하지 않는 게 관건 같아요. 추악하거나 성스럽거나 초라하거나 이런 것들이 어지럽게 공존하는 내면의 풍경이 궁금합니다. 얻으면서 잃어가고 사라졌다가 나타나는 그것들. 천연나방님의 사랑을 많이 축복합니다.

 


이슷

행인 1은 민중이라는 배역을 욕심 부리며 그 틈에 끼었다. 경찰들의 헬멧에 내 입김이 부옇게 서린다. 모두와 한몸으로 엉켜 붙었다. 머리만 간신히 움직일 수 있을 정도다. 내 앞에도 머리, 옆에도 뒤에도 다들 비명과 입김을 내뿜는 머리들로 가득하다. 언뜻 진정한 혁명의 주역이었던 이들을 히드라에 빗대었던 책이 지나갔다.

 

임신했나, 그렇다면 이번 참의 그것은 존재하지 못할 것이다. 존재하지 못한 존재들은 어디로 가게 될까? 존재 하지 못한 것들에 대한 기억의 처리 방식은 무엇일까? 또 불쑥 떠오른 생각들이 뒤섞인다.

 

<안녕들하십니까><가격숙청!!!> 지폐가 칼로 베어진 합성사진 위에 써있다. 파업 동안 북한에서는 서열 2위 장성택이 숙청되었다며 뉴스에서 한참을 떠들어댔었다. 무엇이든 될 수 있는 힘없는 글자들의 치욕에 대해 생각해본다.>

 

나는 그들로부터 언젠가는 멀리 떨어지기 위해 최대한 가까이 가 본 것이다. 저 멀리 튕겨져 나오기 위해 일부러 거세게 부딪혔던 것이라고. 오늘 이 방안에 마음 편히 누워 있을 이유를 찾기 위해, <아니>라는 판정을 내리기 위한 증거들을 찾으려고, 그리고 세월이 흐른 후, <변하는 건 없더라. 다 부질없는 짓이지>하며 많이 살아본 인생의 전리품인 <무상함> 을 수집하기 위하여 그 싸움터에 갔다는 생각이 슬며시 들었다.

 

-> 이슷의 글이 (덕규의 표현을 빌자면 좀 더럽다가) 무척 간결하고 깊어졌어요. 웃음과 슬픔의 공존. 웃픈 글을 쓸 수 있는 고유한 미덕이 살아났습니다. 이제 꾸준히 쓰면 더더더 좋아질 것. 독자가 되어드리겠습니다.


 

 

강여사

일 년 전부터 나는 많이 지쳐있었다. 서울과 용인을 오가는 시간 속에서, 일상처럼 일어나는 죽음의 빈도 앞에서, 매일 무언가를 써야 하는 압박에 밀려, 이리저리 치이는 긴장과 도회의 삶 안에서 숨이 막혔다. 얼굴은 표정없음으로 닫혀갔고 눈은 빛을 잃었으며 갑갑함에 자꾸 깊은 숨만을 들이마시게 되었다. 한 달에 한 번 겨우 마주하는 정인은 빠른 속도로 지쳐가는 내 낯빛을 보는 것을 나만큼 힘들어했다. 그는, 이런 내 눈빛이 싫다 하였다.

 

-> 마음이 시큰해집니다. 그런데 우리야 강여사의 직업 등 사회적 정보를 알고 있지만, 이 글을 처음 읽는 불특정 다수를 생각하면 더 친절해야합니다. 장애인언론 비마이너에서 일하고 하루 근무시간이 얼마고 누가 어떤 일로 죽어가고 출퇴근은 몇 시고 야근은 몇 번하고. 그런 팩트 없이 감정만 나열되면 글이 빈약하죠. 공감을 얻기도 어렵고요. 시간이 부족했겠지만 뼈대를 세우고 근육과 살을 붙여주세요.

 

나는 농담처럼 말했다. “우리가 바라는 미래는 도래하지 않을 것이다.” …삶이 만만했으면 좋겠다, 이 바람은 언제부턴가 습관이 됐다. 그렇게 혼란은 바깥 세계로부터 내 안으로 침투해 들어왔다. 바깥이, 바깥이, 혼란스럽고 나는 그걸 감내할 힘이 부족하다.

 

-> 우리가 바라는 미래에 대한 설명 없이 이런 표현은 위험해요. 비장미가 강조되는 글은 실없어 보일 수 있어요. 혼란스러움, 허탈함과 허무함, 노곤함 등 감정어들의 나열이 아니라 생생한 사실과 사건이 앞서 진술된다면 기침처럼 터져나오는 어떤 말이라도 공감이 될 테지요. 강여사의 눈빛이 생기로 복원될 수 있기를, 바라며.



 

내복곰

중국에서 가져온 신묘한 약을 팔고 나온 경험인 것처럼 기억된다. 부정확한 지식들도 정확히 진실인 것처럼 말했다. 내 맘대로 철학자들을 꾸역꾸역 엮어댔다. 그 건물 안에서 일단 나는 동서양철학계의 절대군주였다. …나는 6,25때 군인들이 압록강 물을 처음으로 마셨다는 청성부대 옆 한 중학교로 발령을 받았다.

 

-> 표현이 위트가 넘칩니다. 살아있는 문장들. 재밌어요. 저도 같이 윤리수업을 받는 학생이 된 기분이네요. 얼마나 잘 하셨을지 그려집니다.

 

왜 교사가 되고 싶으냐? 넌 이미 자격증을 가졌으니까 시험에 얽매이지 말고 행복할 순간들을 많이 만드는 게 중요하다, 나처럼 20대를 피해의식 속에 살지 않기를, 그 안에서 이 아이가 입을 상처가 얼마나 큰 지, 시험합격이후에 얼마나 많은 교사들이 초심을 잃고 레저형 교사로 변하는지 우리는 그렇게 되지 말자. 라는 말들을 해줬어야 함을 이제야 안다. 임용고시는 공무원이 되는 시험이지 교사가 되는 시험이 아니라는 것을 말해줬어야 하는 건데..

 

-> 레저형 교사가 뭔가요? 그것에 대한 설명이 부족하네요. 동료가 된 제자와의 관계, 내복곰님이 느끼는 심리적 부채감, 만남을 유예하는 이유가 더 구체적이면 좋겠어요. 그러기 위해서는 내복곰님의 20대 피해의식, 교사생활의 갈등이 진술되어야 합니다. 임용고시는 공무원 시험이라는 말로는 약해요. 일반인이 막연히 느끼는 제도교육의 붕괴를 넘어서는 현장에서 몸담은 사람의 얘기가 글의 중심이 되면, 그걸 중심으로 다른 재미난 에피소드가 자리를 잡겠죠. 내복곰님의 학교 이야기, 시리즈로 완주해주세요. 웃을 준비 되어있습니다.



 

벌꿀

비켜라. 세월호 특별법을 제정하라. 경찰은 물러가라. 잘게 내리던 비가 어느새 작달비가 되었다. 비켜라. 비켜라. 빗살이 날콩 튀듯 머리 위로 거세게 퍼붓는다. 우비도 우산도 무용지물이 되었다. 나도 너도 머리부터 발끝까지 흠뻑 젖었다. 빗소리에 고함이 섞이고 함성에 빗소리가 섞이니 귀청으로 들려오는 모든 소리가 개굴개굴 거렸다. 청개구리가 왜 울었더라. 개굴개굴. 귀청이 멍해진다. 거기에 오한을 더하니 꿈꾸듯 몽롱해진다.

 

갑작스런 활기. 하나의 우산 아래 모인 비에 젖은 수 십 명이 깔깔대며 웃는다. 대박. 이런 거 처음이야. 비닐 아래에서 어떤 이는 머리를 털고 어떤 이는 젖은 옷을 벗는다. 심지어 어떤 이는 칫솔을 꺼내 양치를 하기도 한다. 그의 동행들은 하하 웃고 머리도 감아라 놀린다. 멀리서 들리는 확성기에서는 라면과 버너가 곧 올 거라 한다. 조금 더 함께 있자고 한다. 함께 쓴 우산은 아름답지. 그러나 추웠다. 하늘은 새벽 내 비를 잦아들게 하는 방법을 잊었다.

 

-> 시위 후기가 이토록 시적이고 몽환적이고 동화적이다니요. 그 와중에 “몇 시간동안 마이크를 쥐고 무대 위에 서 있으면서 세월호 특별법에 대해선 입 벙긋도 안하네.” 같은 표현들이 자연스럽게 도드라져서 첫 빗방울처럼 피부에 착 와 닿아요. 맺혔다가 스미네요. ‘누군가들’의 고유한 목소리로 자분자분 기록이 되었다는 것이 감사해지는 글입니다. 미완의 흑역사에서 한걸음 걸어 나오신 것 축하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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