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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을린 예술>- 휴식과 재생산의 밤을 사유와 쓰기의 밤으로

[글쓰기퍼주기]

휴식과 재생산의 밤을 사유와 쓰기의 밤으로 지켜내야하는데 그러기가 얼마나 힘이든지 몸소 체험하고 있습니다. 새로 나간 직장에서 계속 컴퓨터로 뭔가를 쓰는 작업하다보니 집에 오면 컴퓨터 앞에 앉게 되질 않더라고요. 눈도 허리도 아프고. 몸을 가로로 눕히고만 싶은 거죠.

 

부디 직장인도 수업들을 수 있게 해주세요라는 말에 동조하여 토요일 6시에 수업을 마련해놓고 저는 성찰의 계기를 안게 되었습니다. 한국사회의 척박한 노동현실에서 일상의 불길로 그을린 예술 수행하기란 얼마나 어려운가. 자신의 삶에서 하나-를 무한히 욕망하고 추구하는 건, 삶을 살아가는 자의 본능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여러 분들도 글쓰기수업이란 새로운 영토에 자신의 몸을 들여놓았을 테고요. 그것이 점차 좌절되는 것을 집단적으로 같이 응시하고 겪어야하는 일이, 또 하나의 과제가 되었습니다.

 

애초 글쓰기의 최전선은 일상의 글쓰기입니다. 심보선 말대로 누구나 작가가 될 수 있다고 선동하는 게 아니라, 글 쓰는 사람 따로 있지 않다는 심심한 진실을 말하고 싶은 것입니다. ‘시인-독자의 분리, 문학-비문학의 분리, 전문가와 비전문가의 분리, 지식인과 대중의 분리, 정신노동과 육체노동의 분리, 전문가와 비전문가의 분리의 치안적 질서는 각 개인의 역능과 재미를 제한합니다. 그것 외부에서 세계의 비참에 대해 말하려는 의지, 말할 수 있는 감성적 역량을 시도하고 가꾸어나갈 때 최소한 자기중심을 잃지 않고 삶을 살아갈 수 있다, 자기 삶을 재건하는 창작의 기쁨을 느껴보자는 것이 일상의 글쓰기를 제안한 취지입니다.

 

 

그러나 말은 정교하지만 삶은 산만합니다. 심보선은 자크랑시에르의 말을 빌어 오히려 자신에게 부과되는 규범적이고 기능적인 역할과 정체성을 거슬러, 누구나, 자유롭게, 느끼고 표현할 줄 아는 역량을 선언하고 수행함을 문학의 정치라고 얘기하지만, 우리는 삶으로 확인합니다. 그 고유한 실천(“할 수 없는 것을 하기”)과 그 실천에 수반되는 탈 정체화(“될 수 없는 존재가 되기”)까지 가는 길은 너무도 가파르다는 것을요. 중간에 그만두거나, 과제를 내지 ()못하거나, 책을 앞부분만 읽거나, 과제를 안 했는데 출석해야 하나 말하야하나 고민하거나 등등 여러 상황에 직면하는 것 자체가 그래도 소중하다고 생각해요. 내가 나로 살아가기 위한 몸부림에서만 얻을 수 있는 자기인식이기 때문에요. 자기인식은 곧 자기(한계) 인식이죠. 한계는 또 출구입니다. 한계를 알아야 거기서 벗어나죠. (노예를 벗어나는 길의 첫 번째 조건은자기가 노예임을 아는 것이라고 하듯이요.)

 

 

수업시간에 직장인들-대학생들이랑 다시는 글쓰기 수업 안 해.”라고 삐져서 말했지만 어떻게 하면 함께 일하는 자들과 그 고단한 일상에 틈을 열고 리듬을 맞춰가며 그을린 예술이 가능할 런지 고민하겠습니다. ‘자기 삶에 대한 장인으로 등장할 수 있는가를 실험하는 무대를 준비해보려 합니다. 꽃이 빨리 피고 순간 져버린 이번 봄을 예측할 수 없었듯이, 그저 감내해야하듯이, 삶에서 일어나는 일은 대부분 그저 응시하고 견디는 것 외에 별 방법이 없네요. 그게 쓸쓸하고 또 어쩌면 그래서 살만한 것 같습니다. 마지막 수업시간 남산벚꽃나들이, 화사집, 그리고 사람이야기를 기약해봅니다.

 

 

 

배롱

나 이거 쓰면서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라는 글쓰기반 여성들의 목소리가 전해져옵니다. 저도 글 쓰면서 모니터 앞에서 닭똥같은 눈물 엄청나게 흘렸습니다. 혼자 보내는 애도의 작업이었겠지요. 울 수 있었던 그 말랑말랑한 신체의 상태가 그립기도 합니다. 지금은 더 속상한 일 많아도 예전처럼 눈물이 나진 않아요. ‘더 잘하고 싶을 따름이지요.’ 삶의 장인으로서 가장 멋진 슬로건이라고 생각해요. 쓰지 않을 수 없는 상태, 이 긴장을 잘 유지하시면 글이라는 반려예술과 재미난 시간 보낼 수 있을 거예요.

 

 

-글쓰기는 어느 날, 내 삶에 중요한 것으로 들어왔지만, 일순위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일순위가 51%의 비중이라면 글쓰기는 49%의 비중이었기 때문에 일순위를 하고 있으면서도 항상 목말랐다. 글쓰기를 삶의 전면으로 내세우기까지 개인적으로 긴 시간이 걸렸다. 그것을 바람이 일깨워 주었다. 지난 시간 숙제에 나오는 제천 휴게소의 바람이었다. 어느 봄날, 제천 휴게소에 갔는데 초라한 휴게소에 바람이 매우 심하게 불고 있었다. 그 바람이 나에게 말을 걸고 있는 것 같았다.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 달라고. 출발이 이러했기 때문에 지금은 그 길을 갈 수밖에 없다

 

 

 

나무와 강

영화 얘기였네요. 봄이면 무슨 기일 돌아오듯 이 영화가 떠오르곤 했는데. 덕분에 달리 생각해볼 수 있었습니다. 우선 글이 일목요연해지고 문장의 군더더기가 제거되어 수월하게 읽힙니다. 얼마나 퇴고를 정성스레 했는지 느껴집니다. 필자의 생각도 마지막에 정리해주셨고요. 저는 조금 결이 다르게 느꼈어요. 볕은 따뜻한데 바람은 스산하고 무척이나 변덕스럽고 느닷없이 사라지는, 그런 봄날처럼 얄궂은 상태가 사랑의 본질이라고 영화가 말하는 게 아닐까. 주인공의 캐릭터를 통해 극대화되었는데, 저런 인격을 가진 여자는 어른 아이다. 피터팬 증후군이다, 라고 인격의 문제로 드러내기보다는 어떤 성품, 성향적 특징들이 사랑이라는 사건을 통해 특징적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닐까요. 마치 봄날씨처럼요. 이영애의 문제라기보다 사랑의 문제.

 

 

이건 제 생각이고요. 나무와 강님처럼 선하고 모범생적인 성향, 저처럼 우유부단한 사람은 이영애처럼 그러지 못하겠죠. 그럼 인격의 문제인가? 그건 또 쉬이 단정지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사랑이라는 구조에서 어떤 충동과 성향이 어우러지는 게임 같은 거니까요. 결론을 끝까지 밀고 나간 시도는 좋습니다. 그것이 판관의 시선이기보다 조금 더 섬세한 결을 살피는 시선이면 좋겠어요.

 

 

-봄날은 참 짧다. 잠시 한 눈 팔면 언제 왔다 갔는지도 모를 만큼. 놓쳐버린 봄에 대한 아쉬움이 누구나 봄에 대한 환상을 갖게 하는지도 모르겠다. 이 남자는 자신에게 찾아온 짧지만 아름다운 봄을 온몸으로 즐겼고, 가는 봄날이 서러워 온몸으로 아파하며 보냈지만 그래서 미련 없이 보낼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여자는 가는 봄을 잡기위해 온몸으로 삶을 받아들일 수 없었고 마음이 붕 뜬 것처럼 어정쩡한 상태로 삶에 대한 권태와 무기력이 이어지는 시간을 보낸다.

 

 

 

 

멜로

정리를 잘 해놓고 말하고자 하는 바가 명확히 와 닿지 않는다라고 하시네요. 멜로님이 후기 쓰실 때도 가끔 와 닿지 않는다라고 말하는데. 흔한 비유로 머리에서 가슴까지 거리가 좀 떨어져있는 걸까요. 말할 수 있는 이성적 역량에 시간과 공을 들인만큼 느낄 수 있는 감성적 역량도 노력을 하면 발달할 수 있다고 봐요. 그런 점에서 웹툰을 찾아보고 일상적인 것에서 소수성을 발견하려는 노력으로 결론내린 글은 모범생의 답안지처럼 정확합니다. 교양이란 게 어려운 철학사 꿰고 값비싼 뮤지컬 보는 게 아니라 타인의 고통에 대한 감수성이 중요한 척도가 되는 이유도 그렇겠지요. 삶을 생을 세계를 세상을 풍부하게 느끼는 것만큼 나의 세계도 풍요로워질 테니까요. 멜로님의 멜로-소수 감수성 뻗치는 일상이야기^^ 멸치 다듬는 남자의 일상적이어서 정치적인 글쓰기 기대합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글로 된 일상물은 흔하지 않다는 것이다. 워낙 심심한 내용이다 보니 시각적인 자극도 없이 글로만 풀어내려면 그 만큼 일상을 깊이 바라보는 눈이 있어야 하는 게 그 이유가 아닐까 싶다. 목소리를 갖지 못한 자, 사회에서 소외된 자들이 그들만의 평범한 하지만 결코 평범하지 않은 일상을 비슷한 방식으로 풀어낸다면 웃음을 주는 재미는 덜하겠지만, 독자가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것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이다. 또한 평범한 사람이 별볼일 없어 보이는 일상에 관해 이야기하면서 자신에게 감춰진 소수성을 발견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더 많은 사람들이 서로를 공감하고 타인의 처지를 조금 더 이해할 수 있게 되면서 심보선이 이야기하는 정치적인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을 것이다.

 

 

 

한준

글이 일상으로 많이 하강했다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줍니다. 한준 글은 호수처럼 죽은 듯이 고요하지도 파도처럼 사납지도 않은 어떤 정서가 특징이에요. 가령, 한강에 잔파도 이는 날의 풍경이랄까. 잔잔하면서 약간 요동치는 그런 느낌이 들어요. 중요한 건, 한강. 서울 한강이 바다처럼 넓고 크긴 하지만 인공적인 기술이 많이 개입해서 인위적인 아름다움을 주거든요. 어떤 순간에 거대한 욕조처럼 보이기도 해요. 한준 글도, 난 더 자연스러우면 좋겠다. 특별히 폼을 잡으려고 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렇다고 더 심연으로 내려가지도 않아요. 이건 습관이 되지 않아서 그럴 거 같아요. 그럼에도 이번 글은 군데군데 성찰이 돋보여요. 지적할 부분은,

 

 

일단 일반론은 얘기하지 않는다. 취업의 어려움. 누구나 얘기하고 어디서 한번쯤 들어봤음직한 얘기는 제외한다. 친구, 가족 사이에서 오간 생생한 말과 사례를 엄선해서 대략적인 배경을 설명해준다. 그리고 본론. 딴 짓 예찬, 이라는 주제를 잡았으면 이 글을 읽은 사람이 딴 짓 하면 인생이 행복하구나, 풍요롭구나느낄 수 있게 해줘야죠. 딴 짓에 빠져든 이유(학과공부를 멀리한 이유), 보컬, 연극, 수영 등 딴 짓의 각각 재미까지 묘사합니다. 특유의 유머리스한 문체가 돋보이겠지요.

 

 

-어른들의 말이 거짓인 것을 알지만 벗어나기는 쉽지 않다. 언제나 무리로부터 이탈을 꿈꾸지만 이탈은 곧 낙오라는 불안이 항상 차오른다. 친구들이 하나 둘 기업에 입사 할 때마다 지금이라도 준비할까 하는 생각이 든다. 최근 들어 회사 다니는 친구를 여럿 만났다. 진로와 적성을 고민하는 내게 일단 입사 하고 생각해라라는 현실적 대답이 돌아왔다. 맞는 말 같았다. 어떤 친구는 사십이 넘어도 진로 고민은 언제나 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나이 들어서도 진로고민을 한다니 웃기지만 슬프기도 했다. 중년의 진로고민은 다른 직업에 대한 열망일까 퇴사와 치킨집 사이의 갈림길일까?

 

 

 

 

 

이상 권태_단 하나의 흥미진진한 생각 하나

[글쓰기퍼주기]

기원을 알 수 없는 바람처럼, 어디서 불어와서 제 마음에 감겼는지 모르는 글쓰기 잠언들이 꽤 있습니다. 많이 읽고 많이 말하고 많이 생각하고 많이 적용하다보니 제 생각처럼 되어버린 건데요. 그것들이 제 말에서 또 흘러흘러 여러분들 손끝에 이르면, 그래서 글 쓸 때 어떤 염력을 발휘하면 좋겠어요. 가령, 지난시간 내내 강조한 부분, “주제를 좁혀라하고 말이죠. 관련 글이 있어서 옮겨봅니다.

 

누구도 무언가에 대한책이나 글을 쓸 수는 없다. 톨스토이는 전쟁과 평화에 대한 책을 쓸 수 없었고, 멜빌은 고래잡이에 대한 책을 쓸 수 없었다. 특정한 시간과 장소, 그리고 그 시간과 장소에 있는 특정한 인물들에 대해서만 쓴 것이다. 모든 글쓰기는 시작하기 전에 먼저 범위를 좁혀야 한다.너무 부담스러운 과제는 열의를 고갈시킨다.좋은 글은 하나같이 독자에게 한 번도 해보지 못했던 흥미진진한 생각 하나를 던진다. 두 가지나 다섯 가지가 아니라 단 하나의 생각이다. 그러므로 독자의 마음에 어떤 점 하나를 남길 것인지 결정해야 한다. 그러면 여러분이 어떤 길을 따라가야 할지, 그리고 어떤 목적지에 도달해야 할지 더 잘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더불어 어조와 태도를 정하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다. 어떤 점은 진지하게, 어떤 점은 차분하게, 어떤 점은 유머를 써서 강조하는 것이 좋다.'

 

단 하나의 생각. 흥미진진한 생각 하나. 이상 수필을 읽으면서 글에 몰입하고 자극받을 수 있었던 이유도 이것이겠지요. '권태'의 압권인 지천이 초록인 자연 풍광. (녹음을 보고 '일망무제의 초록, 조물주의 몰취미'라고 한 것) 안경 쓴 학동들, 환자를 둘러싼 의사들의 회진 장면 등, 사진 찍듯이 한 장면을 찍어서 깊고 흥미롭게 파고듭니다. 아마, 이상이 글을 쓸 때 나는 꼭 완벽하게 써야지라고 마음먹었을 것 같지는 않아요. 그냥-일단 쓰기 시작해서 내용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한 문장이 다음 문장을 부르는 끝말잇기 문장버전 같은 느낌이었어요. 너무 걱정하지 말고 써야한다는 것, 그리고 하나의 문제의식으로 좁혀가는 것, 그런 방향성만 품고 써보는 게 좋겠습니다.

 

자기 삶에 대해서는 누구나 권위자이고 전문가죠. 내가 내 삶을 캐스팅하는 겁니다. 수업시간에 밤밤님이랑 라피스님을 주축으로 환경과 건강이라는 분리불가능한 주제로 이야기를 나눌 때, 우리만 듣기가 참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건강은 공동체-환경의 문제인데도, 식습관이나 운동 같은 개인의 의지와 실천의 문제로 귀속시키려 한다는 것, 방송에서 커트된 정보를 더 널리 공유하고 진실을 알리고 제도화해야한다는 것, 크게 공감했습니다. 반면에 건강-위험사회는 개인의 경제력이나 주의력으로 돌파하기는 불가능합니다. 계급적 접근과 실천의 문제도 고민해봐야 할 지점이고요. 아무튼 우리는 삶에서 보고 듣고 느끼고 경험한 것을 기록할 의무가 있음을 다시 한 번 확인했습니다. 건강과 존엄을 뺏기지 않고 살기 위해서, 두루두루 모든 존재가 어우러지는 더 나은 조화로운 삶을 위해서요. 귀한 얘기 나눠주신 분들에게 감사드려요. 수업시간이 끝나가니, 아쉬워서 애틋해서 사진 또 찍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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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과노동에 시달리는 ㅇㅈ, 노트필기 황제 한준, 감기 낳으시고 스타일 변신한 ㅎㅂ사랑,

봄처녀 스카프를 맨 의약업계의 잔다르크;; 밤밤, 새초롬 이요르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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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개숙인 남자 열공모드 백납, 양복빨 댄디즘의 구현 박님, 날쌘돌이 탐험가 정신의 부반장 조리퐁, 세살 젊어진 학구파 멜로님, 지구를 구할 환경파수꾼 라피스님,

경청신공 보여주시는 소녀같은 모범생 나무와강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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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살아가야할 이유, 내고향 만두. 박님의 회사 앞에서 파는 맛난 만두!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

 

 

 

박님

혼자살이의 보릿고개가 있었다. -> 이게 첫 문장으로 오는 게 더 긴장이 생겨요. 호주에서의 일이다, 는 평이하죠. 첫 문장은 가능한 팽팽하게. 그 다음, 가난한 유학생으로서 가져온 돈도 바닥나고 생계의 압박이 조여들었다, 라고 이어지면 흥미롭겠죠. 이번 글의 리드문단이 좀 어수선했습니다. 정보제공에 충실하고 친절해야 독자가 안 읽어버리는 일이 없겠지요. 어쨌든 좋은 글은 (고싶)합니다.

끊어치기가 글쓰기의 경제성의 원리를 잘 구현한 것이기는 하나, 자칫 조밀한 맛이 없어 글이 헐거워지기도 하죠. 박님이 문장을 감각적으로 잘 쓰시는데 항상 글 호흡이 짧아요. 조금 더 문장과 문장 사이에 문장을 채워 넣어보세요. 이런 이색체험을 주제로 원고지 20매도 못 채우면 아깝잖아요.

 

-넘어보지 못했던 벽이 있다. 어느 순간에고 그 벽을 넘고 싶었다. 이게 맞다 틀리다 옳다 그르다를 논하기 앞서 그래 난 할 거야라고 말하고 싶었다. 이제와 생각하니 '한다'가 아니라 '한다고 말하고 싶어'였구나.

 

 

나무와강

자기성찰적 글쓰기, 자기탐사의 재미에 푹 빠져든 나무와 강님. 지난번 글의 속편처럼 느껴지기도 하네요. 제목도 노골적으로 내면의 얼굴. 일단 글을 써놓고 여러 번 소리 내어 읽으면서 늘어지는 부분은 줄여주세요. 중요한 부분 직접인용으로 글의 시각적 지루함을 덜어주시고요. 문단을 주제별로 가르면서 쓰면 훨씬 글이 구조적으로 보입니다. 퇴고가 쉬워지고, 다듬으면 갈수록 좋아질 것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 무엇에 대한 글은 아무 이야기도 전하지 못합니다. 그러니 내면의 얼굴이 드러나는 지점, ‘공적인 일’ ‘사적인 일이라는 추상적인 표현보다는 구체적으로 어떤 장소 어떤 사람과의 일인지 알려주셔야 글이 실감나고 주제가 부각되겠지요. 주제문장에 밑줄 긋는 연습도 해보시면 도움 될 것입니다.

 

-누구를 만나느냐, 어떤 상황이냐에 따라 마음과는 다르게 필요에 따라 얼굴 표정만 바꾸며 카멜레온처럼 변신했었다. 얼마 전 불쾌한 일이 있어서 어두운 표정으로 마트에 다녀오는데 아는 사람과 우연히 마주쳤다. 그러나 얼굴 표정이 빨리 수습되지 않아서 내 진짜 얼굴을 들킨 것 같아 뜨끔했다. 내면의 얼굴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만들어지고 드러난 것이다.

 

 

한준

조금 못생기고 삐뚤하고 투박한 글을 쓸 각오를 하고, 한준은 글을 써야한다 생각해요. 글 쓸 때 어깨에 힘을 빼라. 글쓰기의 중요한 원칙이에요. 잘 쓰고 싶다는 의욕은 독이죠. 필자의 사유의 몰입을 방해하니까. 필자가 몰입하지 않으면 독자도 몰입하지 않는 것은 당연지사. ‘사람이 견딜 수 없을 때, 헐어버린 마음에 어떤 것도 담을 수 없을 때, 여행을 떠난다.’ 이런 선언적 문장 앞뒤에는 허물어져서 남루하고 엉망인 구체적 일상이 나와야 힘을 발휘하는데 계속 일반론으로 이어지니까 붕뜬 글이 됩니다. 잠언투로 된 글이 성공하기는 힘들지만(법정스님, 니체 같은 종교인의 경지), 일상어투로 좋은 글을 쓸 가능성은 훨씬 높답니다.

 

-영화는 말한다. 아무도 듣지 않는다고 해서 외치지 않으면 절대 살 수 없다고. 외치다보면 누군가 듣게 되서 살 수 있다. 그것이 본능으로 주어진 삶을 살아갈 방법이다.

 

 

짱아치

장애인활동보조에 대해서 막연히 짐작했는데 이 글을 통해 조금은 알게 되었네요. 끝에서는 괜히 같이 가슴이 콱 막히기도 하고요. 정보적 가치, 정서적 가치가 있는 글입니다. 삶이 삶을 보조한다는 것, 칼 같이 금 그을 수 없는 애매한 경계가 있을 거 같아요. 그것에 대한 덕규의 어지러운 마음 한 자락 잘 나타나요. 이런 사례가 일상의 다른 경우에는 없었을까요? 남편과 집안 일로 신경전 벌이는 제 모습도 떠오르고, 직장에서 일할 때 역할 소재가 모호해서 할 수도 안 할 수도 없어 속상했던 일도 떠오르네요. 생의 모든 고민은 이렇게 살 수도 저렇게 살 수도 없는데서 오겠지요. 이런 감정들이 단지 찝찝함과 고단함은 아니지 않을까 싶어요. 이 글에 살 붙이면 아주 좋은 글 되겠어요. 덕규만이 할 수 있는 경험의 고유성을 더 차분히 밀고나가서 완성시켜 보길.

 

그리고 난 덕규 글에 하지만이 너무 많다고 생각해요. ‘하지만이 많으면 글이 어딘가 감정적인 느낌을 주고, 억울함을 호소하는 듯한 해명하는 뉘앙스가 발생해요. 접속사 없는 글에 도전해보는 것도 권하겠음.

 

-장애인이 취직한 직장에서 장애인의 상사가 활동보조인도 자신의 직원인 마냥 부리려 한다는 이야기는 활동보조인의 업무 경계와 관련하여 흔한 충돌 사례이다. 그 집사는 교회청소도 나의 업무로 생각하는 것이 확실하다. 그렇다면 나는 그에게 그것은 나의 일이 아니라고, 당신이 전산실을 청소해야 한다고 말해야 하는 것일까?나는 나의 일도 아닌 것을 가지고 태업을 하는 것과 비슷한 감정을 느낀다. 바닥에서 올라오는 먼지가 숨을 막는다.

 

 

배롱

바람이 전하는 말, 이라는 조용필의 노래가 생각나네요. 바람이 주된 소재로 쓰이는 글 같아요. 휴게소와 바람, 운구차, 하얀 양복. 제천휴게소라는 이름도 어쩐지 바람이 부는 것처럼 스산하게 느껴져요. 정서적 느낌을 자아내는 점은 좋습니다만, 바람의 등장이 비율적으로 좀 과하지 않나 싶습니다. 대략 추려보았더니, 다음과 같습니다.

 

죽령을 타고 올라온 바람이 갈 길을 잃은 채 휴게소 마당을 마구 할퀴어 대고 있었다.

바람이 자신 주변으로만 더욱 성가시게 부는 것 같아 괜히 짜증이 났다.

아저씨……, 우리 엄마 모자 좀 찾아 주세요. 바람에 날아갔는데 아무리 찾아도 없어요.”

소녀의 말소리는 바람에 이리저리 흩어졌다.

바람은 혼자 다니는 법이 없다. 거부하면 할수록 더욱 거칠게 머리채를 휘어잡고 끌고 다닌다. 때로는 묵직한 것을 들어 올리려고 휘몰아치지만 십중팔구 머리채를 휘어 잡히는 것은 바스라져 사라지는 것들이다.

봉쇄된 문을 따고 들어온 바람은 여기저기에 진을 치고 점령군의 위세를 한껏 떨치며 매점 안을 약탈하고 있었다.

오늘따라 바람이 더 세게 부는 것 같다며 칠흑 같은 바람 속으로 삿대질을 해댔다.

여자는 하얀 양복들의 말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모자를 갖고 숨기에는 바람 속이 참 안성맞춤이었다고 생각했다.

 

이 문장들은 표현의 생생함에서 좋은 문장을 추려놓은 것으로 봐도 무방합니다. 소설가의 내공이 엿보이기도 하는데, 그래도 과유불급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단지 양적으로 많아서 문제라기보다는, 바람이 머리칼을 헝클어서 앞이 잘 보이지 않는 것처럼 저는 내용파악이 약간 어렵네요. (제 문제가 아닌가 싶기도 해서 말씀드리기 조심스럽고요.) 아무튼 워낙 배롱님이 추리소설적 기법으로 직접적 메시지 전달보다 단서를 던지는 글을 쓰시는데, 왜 이 글이 쓰여져야 하는가, 조금 친절한 힌트 부탁드릴게요. 저도 주제파악을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조리퐁, 지난번에 올린 글감 목록으로 틈틈이 글쓰기 해보아요. 뒷풀이에서 한 얘기들,노동의 경험들, 활자로 변환된 글을 기다리겠쎄요 ^^

 

 

 

경철수고 - 인간이 가져야 할 인간적인 과제

[글쓰기퍼주기]

왜 이렇게 어려운 걸 교재로 택하느냐는 원성을 듣는 책들이 있습니다. 맑스, 벤야민, 니체의 책, 지난 기수에는 에드워드 사이드. 그리고 장르로는 시집등등. 그런데 쉬운 책이 꼭 좋은 책은 아니거든요. 나의 인지적 정서적 관습적 토대에 아무 이물감 없이 스미는 책은 혼자서 읽어도 무방하잖아요. 공적독서의 장에서는 좀 낯선 책이 좋습니다. 어려운 책이 곧 나쁜 책은 아니며, 불편한 책일 따름이죠. 화를 돋우는 의미에서요. ^^ 기존의 가치와 충돌을 일으키는 새로운 것과 접속할 때 인식의 지평이 흔들리고 그러면서 새로운 사유의 공간이 만들어집니다. 기존의 삶이 답답할 때는 뭔가 새로운 논리 근거, 인식의 틀이 필요한 거고요. 그것이 사람이든 책이든 사물이든 화나게 하는 존재를 가끔은 의도적으로 접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저 역시 경철수고를 읽을 때, 못 알아듣겠는 백 마디 말이 있었지만 그 와중에 알아듣겠는 한 줄 문장에 반해서 빠져들곤 했어요. 분업, 화폐, 사적 소유, 감성 등에 대한 통찰이 돋보이는 문장이 가슴을 뛰게 했으니까요. 더군다나 25세 청년 맑스가 자본주의라는 당대 삶의 토대를 이루는 질서를 낯설게 바라보고 집요하게 밀고 나가면서 소외된 노동의 비밀을 밝혀냈다고 생각하니까, 너무 신기한 거죠. 존경스럽고요. 그 팔딱이는 사유들이 완전 모둠으로 담겨있는 이 책이 저는 철학책, 경제학책, 사회학책이 아닌 아포리즘으로 읽혀요. 그 감흥을 같이 나누고자 했습니다. 어디서는 이 책으로 10주 내외 강의도 열리니까 꼼꼼히 읽자면 한도 끝도 없겠지만, 어떤 것을 배울 때 처음부터 끝까지 완전 정복의 대상으로 바라보고 관계 맺기보다 지속적인 대화를 한다는 자세로 접하는 것도 하나의 책 읽기 방법이 아닐까 싶습니다.

 

 

소외라는 말. 일을 한다고 다 소외가 일어나지는 않습니다. 맑스의 사적유물론(역사유물론)은 그것을 밝혀낸 거죠. 노동은 어느 사회나 있어왔는데, 똑같이 보여도 반딧불과 번갯불만큼 어마어마한 차이가 있다는 것이요. 우리는 자신이 만든 노동생산물의 일부를 빼앗기고 노동에 대한 간섭을 받습니다. 그러나 자본주의가 시작되기 전엔 이런 통제가 본격적이고 체계적이지 않았습니다. 농노도 농기구와 자기 땅을 갖고 있었으니까요. 자본주의 들어서 체계적으로 노동 소외가 시작되었습니다. 소외는 외부의 세계를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을 뜻한다고 보시면 됩니다. 공사장에서는 내가 일을 하는 건지 모자와 삽이 일을 하는 건지 모르겠다고 한탄하고, 재봉틀 앞에서 누가 잘랐을까되뇌이며 퇴근할 때가 되어야 제 정신이 돌아온다고 한 전태일이 느낀 감각이 바로 소외죠. 생산과정의 소외. 노동생산물로부터의 소외. 이 소외는 심리적 박탈만 이르는 것이 아니라 경제적 박탈도 포함합니다. 이게 다 사람이 분업체계의 한 부속품이 되는 바람에 생긴 일입니다. 분업으로 인해 타인과 관계도 차단되고, ‘공감능력도 상실합니다.

 

 

맑스가 참 정이 가는 이유가, ‘인간적인 것 가운데 나와 무관한 것은 없다는 경구를 가장 좋아했다고 합니다. 가슴 따뜻한 사람인 거죠. 전태일도 일기장에 이렇게 썼습니다. 어떠한 인간적 문제이든 외면할 수 없는 것이 인간이 가져야할 인간적인 과제이다.’ 맑스와 전태일은 말해줍니다. 최고의 감성은 최고의 이성과 통함을, 가장 인간적인 것이 가장 진보적임을. 맑스의 (인간에 대한) 사랑이 우리를 경유하여 되돌아오는 사랑을 불러일으킬 때 우리는 맑스를 잘 읽은 것이겠지요.

 

 

배롱- 딱 맞는 비유가 아니면 쓰지 마라

수사법이 몇 군데 묘합니다. ‘한물 간 가수의 얼굴처럼 처량하고 몽롱하다.’-> 한물 간 가수의 얼굴이 처량한 건 맞는데 몽롱하다는 어색해요. ‘코끼리만 한 몸집을 가진 당나귀의 귀는 작고 귀여웠다.’-> 코끼리만하다는 것과 작고 귀엽다는 모순적이에요. ‘나는 그 해가 애매한 것들을 불러온다고 생각했다. 목요일마다 서는 아파트 장터 같은.’-> 장터의 이미지는 활기참, 북적임 같은 건데 애매하다는 게 (당나귀 땜에 그런 거겠지만) 고개를 갸웃하게 합니다.

 

 

원래 딱 맞는 비유가 아니면 안 쓰는 게 낫습니다. 어설픈 수사가 메시지 수용을 방해하는 경우가 많거든요. 글이 산만해져요. 특히나 직유법은 작가의 바닥을 드러내는 가장 빠른 수사법이라는 말이 있어요. 진부한 수사법이 그만큼 위험하다는 거겠죠. 이 글에는 암웨이 동생, 속물적인 동네 엄마들, 신문아저씨, 분식집, 건어물, 아이들, 남편, 3층 아줌마까지, 글의 분량에 비하면 등장인물이 너무 많습니다. 실제로 만나보고 싶어지는 생생한 인물 한 두명만 등장시켜 공을 들이는 게 좋습니다. 이 글이 어딘가 소설적인 요소를 모아놓긴 했는데, 조금씩 다 애매하게 부족한 듯하고, 무엇보다 작가의 가치관을 파악하기 어려워 아쉽습니다. 그것을, 즉 말하고 싶은 결론적 부분을 배롱님이 독자의 짐작과 추론과 상상에 맡기는 경향이 있어서 말씀드리기 조심스럽긴 합니다. 그래도 소설적인 것의 완결성에 욕심내기보다 인물 캐릭터, 어떤 장면 등 한 가지에 도전하는 게 더 좋겠습니다.

 

 

밤밤- 개인적인 것이 보편적인 것이다

장래희망이라는 이름의 사기극. 제목 좋아요. 주제의식으로 다가가는 노력도 좋고요. 다만 너무 설명으로 서사를 끌고 가니 글이 딱딱하고 지루해요. 읽고 나서 정말 사기극이네...’하는 허탈함을 안겨주려면 하나의 주된 인물이 등장해야합니다. 전태일을 통해 소외된 노동을 실감하듯이 그렇게요. 그게 자기 자신일 때 가장 생생한 이야기와 묘사가 가능하겠죠. 그것은 절대 개인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우리는 사회적인 존재이고, 희망도 고통도 사회적인 의미망에서 만들어지는 부산물이니까요.

주제가 좋은데, 문장이 군데군데 지뢰밭입니다. 복문과 비문이 많아요. 일문일사. 글 쓸 때 상기하세요. 아주 의도적으로 끊어치기 해야 합니다. 한 가지 문장에 하나의 정보를 담겠다. ‘직업이 행복을 결정하는 것은 아니야!라는 생각을 실천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런 문장 가장 피해야합니다. -> 직업이 행복을 결정하는 것은 아니야. 말로는 외쳤지만 행동은 아니었다. 유사고시에 매달렸다. 이런 느낌으로 다듬어보세요. 아래 문장은 좋습니다. 자기 이야기를 풀어갈 때 글이 엉키지 않고 힘이 있죠.

 

 

-이후 대학은 막연히 자유를 느끼며 노는 곳이라고 생각했던 나는 학교 수업을 적당히 듣고, 남는 시간에 꽹과리나 장구를 치고, 그래도 남는 시간에는 술이나 마셨던 것 같다. 돌이켜 보고서야 알게 된 것이지만 직업을 향해 달려가야 할 동기를 잃은 순간 방황이 시작되었던 것 같다. 정말 황당한 일이었다. 나는 어리고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사실 직업을 향해 달려 가는 것 외에는 해 본 것도, 할 줄 아는 것도, 하고 싶은 것도 없었다. 앞으로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에 대해서 생각하는 일을 오직 장래 희망에 가둔 채 생각한 결과였다. 나에겐 살고 싶은 삶이 없었다.

 

 

이요르 표정이 있는 이야기의 힘

성장소설의 한 페이지를 보는 것 같았습니다. 흥미롭고 신서하고 궁금해요. 엔딩이 착한 결말이 나서 좀 당황스럽지만 그 마저도 어떤 통일감 속에서 읽힙니다. 자기소개연습의 첫 장면부터 생생하고요. n수생을 보면서 느끼는 대학진학의 어려움, 경쟁이 일상화된 세대들에게서 나타나는 쓸쓸한 풍경과 내면의 혼란이 잘 드러납니다. 사람은 고유성을 갖고 싶은 본능이 있기에 타인과 차이를 만들어내려고 하게 마련인데, 그게 왜곡되어 천박한 경쟁심으로 변질되기 쉬운 세상인 것 같습니다. 치열한 입시경쟁을 치르고 대학에 들어오다 보니 위계질서의 혼란이 오고, 그 안에서도 또 계급화하려고 하죠. 삼수생이 될 뻔한 자신이 처지를 떠올리면서 겸손을 다짐하는 결말이 아니라, 자신의 복잡한 감정을 더 길게 써보길 권해요. 글에서 어떤 표정이 읽히는 건 좋은 징조거든요.

 

 

-줄곧 좋아해온 우울한 노래, 삼수생이 되면 정말 싫다. 우울한 문구도 싫다. 무기력, 진짜 싫다. 예전엔 쓸데 없다 생각했던 웃긴 게시글, 엄청 필요하다. 그거 없으면 죽는다. 공부하다가 점심을 먹을 때면, 밥이 맛있을 때 정말 행복해서 눈물 나온다.

 

 

나무와 강 다 아는 얘기는 과감히 줄여라

이 글이 칼럼이 되려면 우선 지하철 에피소드를 세 줄로 줄여야합니다. 지하철을 탔다, 자리를 노렸다, 아이가 가로챘다, 엄마가 야단치지 않았다. 이게 배경이면서 글감이 되겠지요. 이 정보가 너무 장황하게 나와서 글이 늘어집니다. 모두가 한번쯤 경험했을 예측 가능한 상황을 오래 끌고가면 글에 긴장이 떨어지죠. 그 다음, 이 글감으로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은가. 모임에서 털어놓았더니 아무도 호응하지 않아서 당황스러웠다. 내가 지나치게 규범적인 인간인가, 를 중복해서 자문자답합니다.

 

필자의 자기반성이 어떤 보편성을 획득하려면 더 구체적이어야지요. ‘지하철에서 자리를 가로채는 아이는 버릇이 없다는 관습적 해석에서 벗어난 새로운 해석이 제시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 글은 그게 없어요. 모임에서 들은 말들에서 번뜩이는 해석-나를 찌른 말들 하나를 다듬어야죠. 또 하나. ‘나이 들면 고지식하고 자기고집이 강해진다를 이 글의 주제로 삼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려면 지하철 에피소드와 유사한 사례, 옳다고 믿었던 판단이 흔들렸던 에피소드를 병렬로 간단히 두서너 가지 제시해주면 좋겠지요. 일단 길게 잘 써주셨고 칼럼-시도를 했다는 점이 매우 고무적이고 돋보입니다. 자기반성하는 사람의 모습은 아름답지만 자기성찰, 자기연민을 넘어서는 무언가 발견이 있어야 좋은 글이지요. 조금씩 시도해보셔요.

 

-갑자기 내가 정답이라 알고 살았던 것들이 정답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에 머리가 혼란스러워진다. 어쩌면 처음부터 무엇인가 정해진 것은 없었던 것처럼 정해진 정답도 있을 수 없다. 단지 시대가 변함에 따라 사람들의 생각이 바뀌면 자연스럽게 변화된 생각에 맞추어 삶의 방법도 달라질 뿐이다. 그런데도 여전히 나는 무엇이 옳은 것인지 정답을 찾고 있고 그래도 지킬 것은 지켜야 하지 않는가?’ 하는 마음속 작은 외침을 지울 수가 없다. 왜 살수록 삶이 선명해지는 것이 아니라 헷갈림의 연속이 되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짱아치 청소년 노동문제란 없다

청소년에게 학교는 삶과 가장 밀접한 주제다.(->‘장소다혹은 화두다’ ‘문제다가 나아 보여요. ‘이 동적인데 주제라는 단어는 정적이고 추상적임) 꿈을 이루기 위해 학교를 다닌다. 꿈이란 무엇일까. 직업이다. 글의 초반에 학교, , , 직업 등 너무 큰 말과 무거운 질문을 계속 던지면서 글을 시작하네요. 과해요. 청소년을 설명하기 위해 학교를 학교를 설명하기 위해 꿈을 꿈을 설명하기 위해 직업을 가져오지만, 정작 아무 것도 설명되거나 화두로 던지고 있지 못하는 꼴이죠.

 

글의 서두는 작고 구체적인 일화로 시작하는 게 좋아요. 바로 청소년 꿈을 이야기하고 싶으면 암울하든 발랄하든 바로 어떤사람, ‘어떤현장으로 데려가야죠. 청소년 노동 문제에서 웹툰의 캐릭터 예를 든 시도는 참신합니다. 이야기 초반에 윤아이, 나일등 등 캐릭터를 정리해주는 건 좋은데 이들을 통해 이야기하고자 하는 게 설명형식이라 쟁점부각이 안 되고 문제설정이 식상하고. 뒷부분 알바생의 증언이 외려 생생해서 문제의식이 잘 드러나고 잘 읽히네요. 월급 떼어 먹는 사장들, 온갖 부당한 대우들. 그것에 맞서 청소년 유니온을 만들거나 어떤 움직임도 있는 걸로 아는데, 그걸 소개해주면서 끝냈으면 어땠을까요.

 

청소년 노동문제를 어른에게만 맡겨둬야 할까이 질문 역시, 선동도 아닌, 계몽도 아닌 애매하고 아쉽네요. 청소년의 꿈과 노동문제 일반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아요. 그보다는 학교 밖 청소년의 아르바이트생의 현실이라고 주제를 명확히 해야 글이 제 방향을 찾아갑니다.

 

 

 

 

-노동문제는 누구도 비껴나가지 않는다. 우리는 꿈꾸지만 그 꿈마저 착취의 대상으로 여기는 기업들이 있다 교육의 이름으로 인력을 동원하는 일들이 취업준비생들을 넘어 대학생들에게까지 이제 고등학생들에게까지 일어나고 있다 청소년의 꿈을 어른들에게 맡겨둬야만 할까 청소년들은 자신의 노동에 관한 문제를 어른들에게 맡겨놓기만 해야 할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