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고양이와 서울고양이

[차오르는말들]

 

충남 홍성군 지인의 집에 몇몇 친구들과 놀러 갔다. 서울 토박이고 시골에 아무런 연고가 없는 나로서는 무척 설렜다. 펜션이나 콘도가 아닌 벽면에 세간살이 다닥다닥 걸린 민가에서 하루를 묵을 수 있다니. 툇마루에 걸터앉아 무심히 지나가는 구름을 볼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그 시골집에서 가장 먼저 나를 반긴 건 고양이 두 마리. 눈사람처럼 전신이 하얀색 털로 덮인 흰 고양이와 갈색, 흰색, 검정색 얼룩덜룩한 무늬를 지닌 삼색이가 어슬렁어슬렁 나타났다. 두 마리 모두 사람을 따랐다. 흙마당에 쭈그리고 앉아 꽃구경하는데 다리 아래로 들어와 가르릉거리며 몸을 비볐다. 녀석들이 귀여워 쓰다듬어주는데 몸통 한쪽이 거슬거슬했다. 내가 고양이가 있는 시골집에 놀러간다고 했더니 고양이 박사인 딸내미가 대뜸 일러준 말이 떠올랐다.

엄마, 고양이가 따뜻한 곳을 좋아하잖아. 시골고양이는 부뚜막에 있다가 연기에 그을어서 몸통이 회색이래.”

자세히 보니 정말로 그 고양이의 흰 털에 노릇노릇하게 빈대떡만한 무늬가 새겨져있었다. 옅은 화상 흔적이다. 고양이들은 일행이 산책을 나가자 마당을 독차지하고 몸을 길게 뉘었다. 새파란 하늘 아래 노랗고 하얗게 핀 수선화 꽃무리 울타리를 등지고 고양이 두 마리가 데칼코마니처럼 대칭으로 누워 잠든 것이다. , 저것은 평화!

우리는 저녁거리를 준비하기 위해 천변 언덕에서 쑥과 개망초를 캐고 하우스에서 상추를 뜯어 마당 수돗가에서 씻었다. 어느 틈에 나타난 고양이들은 채소 씻을 때 콸콸 쏟아지는 물줄기 하구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할딱거리며 목을 축였다. 삼겹살 고기를 구워먹을 때도 주변을 맴돌더니 사람들이 던져주는 생고기와 구운고기를 넙죽 잘도 받아 얻어먹었다. 배가 찼는지 어둠속으로 스윽 사라졌다. 그리고 봄밤이 깊어 천지간 불빛이 사라지자 발정 난 고양이의 괴이한 소리가 들렸다. , 이것은 빵과 자유와 사랑!

자연의 품에서 등따시고 배부르고 자유로운 일상을 영위하는 시골고양이의 삶에 감화를 받고 돌아온 서울. 18층 아파트에 들어서자 나를 반기는 것도 역시 고양이였다. ‘모질개선용샴푸로 목욕을 해서 털이 반들반들 윤기가 흐르는 말쑥한 우리 고양이 무지. 중성화 수술로 욕망을 거세당한 얌전한 서울고양이. 정방형 거실과 직사각형 베란다를 오가고 네모진 침대 위 60수 순면패드에서 잠을 청하고 높은 책꽂이에 올라가 상승 욕망을 충족하거나 택배 상자에 쏙 들어가서 노니는 도시고양이. 타고난 야생성에 반하는 환경, 협소한 시멘트 건물에 길들여진 동선. 안 그래도 반려동물로 고양이를 키우려 할 때 가장 걸렸던 점인데 실제로 시골고양이의 다른 삶을 목도하자 우리 고양이가 더욱 안쓰러웠다.

며칠 뒤 홍성 지인은 흰 고양이가 직접 참새를 낚아채 입에 물고 유유자적 마당을 가로지르는 사진을 보내왔다. 딸과 함께 시골고양이의 생식장면을 한참 바라보았다. 그 뒤로 딸아이는 우리 고양이에게 사료를 부어줄 때마다 말한다.

 “참새도 못 먹는 가엾은 우리 무지...”

산업화시대 시골쥐와 서울쥐의 우화는 도시의 풍요를 동경하던 시골쥐가 그 이면의 불편과 소외를 감지하고 초라하고 소박해도 자기 삶에 만족하는 안분지족의 삶을 살아간다는 교훈으로 끝난다. 21세기 시골고양이와 서울고양이의 우화는 어떻게 쓰여야 할까. 기형도의 시구대로 서류뭉치 같은 건물에 갇힌 도시 생활에 싫증을 느낀 서울고양이가 시골로 내려가 가난해도 평안하게 안빈낙도하며 살갔다더라? 나는 어느새 고양이만이 아닌 열네 살 우리 아이까지, 사각형에서 놓여난 다른 삶을 상상하고 있었다.

 

* 한국방송통신대학보에 실림

 

 

내 마음의 부적

[글쓰기의 최전선]


잘 표현된 불행, 이라는 제목을 들었을 때 가슴이 마구 뛰었다. 그리고 황현산의 언어에 빠져들었다. 그 때 그 첫 설레임처럼, 나는 최근 또 두 차례나 벅찼다. 뭉클하고 송구했다. 선생님의 이름에 작은 흠이라도 남지 않도록 나는 성심껏 살아야한다. 그래야하는 이유가 생겼다. 내 마음의 부적. 

 

 







채널예스 인터뷰 - 비밀글만 쓰면 글은 늘지 않는다

[글쓰기의 최전선]

"책을 우연히 집어들었는데 계속 읽게 되었고, 그래서 인터뷰를 요청드린다."는 말을 두 사람에게 들었다. 

책을 내고 인터뷰한 두 군데 매체 '시사인'이랑 '채널예스' 담당 기자다. 

무명 출판사에서 책을 낸 무명 작가에게는 쉬이 오지 않는 기회이다.  

특히 나의 이야기를 사려깊고 섬세하게 들어준 채널예스 엄지혜 기자의 글은 더 소중하다. 

누가 내 마음을 알아준다는 것이 주는 기쁨을, 실로 오랜만에 느꼈다. 

이제 여기 나오는 말들을 배반하지 않는 삶을 착실히 살아야한다.




[글쓰기 특집] 은유 “비밀글만 쓰면 글은 늘지 않는다”

『글쓰기의 최전선』 펴내
세상에 나와서 부딪히고 넘어져야 글도 성장한다




은유 셀렉 (1).jpg

 

포털 사이트에 ‘글쓰기’를 입력하고 책을 검색하면 1만 5천 여권의 책들이 얼굴을 내민다. 팔리니까, 원하는 독자들이 있기 때문에 나오는 책일 텐데 ‘노하우’, ‘비법’, ‘매뉴얼’이란 카피를 맞닥뜨리면 다소 머뭇거리게 된다. 그래도 필요해서 책을 골라 읽다 보면 글쓰기가 더 어렵게 느껴진다. 신경 써야 할 게 많아서, 고쳐야 할 부분이 많아서 글을 쓰고 싶던 마음이 달아난다.


포털 사이트에 ‘글쓰기’를 입력하고 책을 검색하면 1만 5천 여권의 책들이 얼굴을 내민다. 팔리니까, 원하는 독자들이 있기 때문에 나오는 책일 텐데 ‘노하우’, ‘비법’, ‘매뉴얼’이란 카피를 맞닥뜨리면 다소 머뭇거리게 된다. 그래도 필요해서 책을 골라 읽다 보면 글쓰기가 더 어렵게 느껴진다. 신경 써야 할 게 많아서, 고쳐야 할 부분이 많아서 글을 쓰고 싶던 마음이 달아난다.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을 끝까지 유지하게 만들어주는 책은 없을까? 고민하던 찰나에 『글쓰기의 최전선』을 만났다. 글쓰기 책에 전쟁용어를 사용한 까닭은 무얼까. 치열하게 쓰라는 의미일까? 책 표지에는 7개의 가지각색 펜이 사이 좋게 누워있다. 두께도 길이도 펜촉도 모두 다르다. 다만 촉이 바라보는 방향은 같다. 7개의 펜은 독자들에게 단 한마디를 던진다. “’왜’ 라고 묻고 ‘느낌’이 쓰게 하라.” 어렵다. 역시, 글쓰기는 심오해야 하는가? 저자는 ‘나는 왜 쓰는가’라는 제목의 글로 여는 글을 대신했다. 미셸 푸코의 말로 시작되는 17쪽 장문의 글. 밤마다 구직 사이트를 헤매다 글을 쓰게 됐고 자유기고가가 된 저자는 “삶이 굳고 말이 엉킬 때마다 글을 썼다”고 고백한다. “글을 쓰고 있으면 물살이 잔잔해졌고 사고가 말랑해졌다”는 그는 글쓰기를 ‘요리’에 비유했다. 이어지는 서문의 글 ‘글쓰기의 최전선으로’. 저자가 글쓰기 수업을 열게 된 까닭을 차분히 밝힌다.

 

글쓰기 수업은 내 생애 최고의 배움의 장소였다. 학인들이 ‘이런 삶을 살았다’고 불쑥 내미는 글은 늘 압도적이었다. 질박하고 진지하고 열띠었다. 철학과 문학에서 읽지 못하고 신문과 라디오 사연에서 들을 수 없었던 삶의 진귀한 이야기는 많고도 많았다. 그 비밀스러운 생의 이야기들 덕분에 나는 선입견을 내려놓고 타인과 관계하는 법을 배울 수 있었다. 인간에 대한 나의 무지를 깨우치고 인간에 대한 이해를 깨칠 수 있었다. 인간은 삶을 의미 있게 만들려는 본능을 가진 존재임을 믿게 되었다” (33쪽)

 

최근 문학평론가 황현산은 『글쓰기의 최전선』을 읽고 자신의 트위터에 “읽기와 생각하기와 글쓰기에 대해 매우 깊은 성찰을 담고 있다. 삶의 최전선에서 글쓰기를 가르쳐온 경험집약. 책 뒤 ‘글쓰기 수업시간에 읽은 책들’은 아주 잘 짜인 추천도서 목록이다”라고 적었다. 은유 저자는 친구로부터 이 소식을 듣고, “어디 신문에 대서특필 난 것보다 만 배쯤 더 좋았다”고 했다. 무명작가의 책을 꼼꼼히 읽어준 선생의 평에 평소와 다른 달뜬 기분을 느꼈다고.

 

‘글 쓰는 사람’ 은유는 2011년부터 연구공동체 수유너머R에서, 2015년부터 학습공동체 가장자리에서 글쓰기 강좌를 진행하고 있다. 평소 니체와 시(詩)를 읽으면서 질문과 언어를 구한다. 월간 『나.들』에 성폭력 피해 여성 인터뷰를 1년간 연재했고, 산문집 『올드걸의 시집』과 인터뷰집 『도시기획자들』 등을 펴냈다. 황지우 시인의 「산경」 시구인 “아픈 세상으로 가서 아프자”를 마음에 새기고 글을 쓰는 저자 은유. 그녀의 이야기가 더 듣고 싶었던 건, 『글쓰기의 최전선』이 가져다 준 감응 때문이었다. 진짜 글을 쓰고 싶은 감흥 아닌, ‘감응’.

 

 

글쓰기 수업을 시작한 후, 사람에 대해 조심스러워졌다


서문만 읽었을 때부터 막 설렜다. 글쓰기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한 건 처음이었다. 책을 내게 된 과정, 계기가 궁금하다.


글쓰기 수업을 하기로 했을 때, “내가 글쓰기를 어떻게 가르칠 수 있을까. 내가 아무리 가르쳐도 사람들이 글을 안 쓰면 그만인데”라는 생각을 했다. 일단 내가 아는 걸 말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내가 왜 글을 쓰는지를 고백하고, 사람들로 하여금 감응을 이끌어내야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마치 글쓰기에 관한 진리의 터득자인 양 수업하는 건 있을 수 없고. 나도 고민하고 방황하고 회의하고 질문하는 가운데, 글을 쓰고 있었으니까. 그 생각을 정리했던 글이 서문이었다. 글쓰기 수업을 3년 정도 했을 즈음, 글쓰기 책을 내고 싶다는 제안을 조금 받았다. 글쓰기 책이 워낙 많이 나오는데, 나까지 낸다는 게 민망해서 유보적인 태도를 취했는데, 일반인들이 글쓰기 과정을 통해서 세상에 관심을 갖고 자기 자신에 대해 알아가고 눈떠가는 과정이 신비로웠다. 배움과 우정이 일어나는 걸 눈으로 보고 있으니까, 혼자만 알고 있기 아까웠다. 그래서 좀 써보자고 생각했다.

 

연구공동체 ‘수유너머R’에서 시작해 올해는 학습공동체 ‘가장자리’에서 글쓰기 강좌를 하고 있다. 책에 글쓰기 수업에 오는 수강생들을 ‘학인’으로 지칭했는데, 대개 뚜렷한 목적 없이 오는 경우가 많았다.


처음 이 책을 ‘목적 없는 글쓰기’라고 지을까도 생각했다. 소설가 되기, 기자 되기, 시인 되기도 아니고 치유 글쓰기도 아닌, 특정한 목적 없는 글쓰기 수업이었다. 목적 없음에서 드러나는 쓸모 없음의 쓸모랄까? 수업을 하면서 그런 부분들이 발견됐다. 글쓰기 수업에 참여한 가장 많은 수강 동기는 “나를 알고 싶어서”였다. 책을 내고 싶은 구체적인 목표를 가진 사람들도 있었지만, 홈스쿨링을 하는 고등학생도 있었다.

 

블로그 인사말이 황지우 시인의 시구, “아픈 세상으로 가서 아프자”다.


사람들이 개인적으로 다 아프지 않나. 우울증도 많고 공황장애도 많고. 글쓰기 수업에 오는 분들이 모두 정상적인 직장생활을 하는 것 같이 보였지만 아프다는 내밀한 고백을 해오는 사람이 많았다. 그게 질병이기도 하고 병적으로 정의되지 않은 고통이기도 했다. 다 개별적으로 아픈 거다. “아픈 세상으로 가서 아프자”고 한 건, 나의 아픔을 사회에 나가 말하고 이야기하는 과정에서 좀 나아지니까. 치유가 된다기보다 아픔을 견딜 수 있게 된다는 ‘약간’의 믿음이 있다. 글 쓰면 다 좋아지는 것처럼 말하고 싶지 않다. 개인차가 있으니까.

 

글쓰기를 가르치면서 학인들에게 오히려 배운 것도 많았을 것 같다.


사람에 대한 공부일 거다. 사람들이 대개 자기 개인의 경험의 폭을 넘기 어렵다. 그래서 영화도 보고 문학작품을 접하면서 사유의 지평을 넓히는데, 글쓰기 수업에 온 학인들의 구체적인 삶의 상세한 이야기를 통해서 삶이란 게 개개인에게 어떤 무게로 다가오는지를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사람에 대해 좀 조심스러워졌다. 쉽게 단언하지 않게 된 것 같다. 이를테면 “노력이 부족해서 그런 거야”, “이렇게 하면 되지 않아?”라는 생각을 덜하게 됐다. 모두 저마다 삶의 고유한 배경과 조건에서 고통이 발생하는 거고, 이게 그렇게 간단치 않다는 걸 알게 됐다. 조금 더 섬세해질 수 있었던 것 같다. 조심스러워진 것도 같고. 그동안 지은 죄도 생각나고 그랬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변했나?


이를 테면 엄마로서 아이들을 키우면서 쉽게 말했던 것들이다. 글쓰기 수업에 17살 소년이 오는 경우도 있었고 20살 학생이 오기도 했다. 그들이 어릴 적 엄마와 겪었던 갈등 상황들을 듣고 ‘이런 것도 아이들한테는 상처가 되는 구나’를 알게 됐다. 다양한 세대가 모여있으니까 학인들도 서로 인지가 되는 거다. 나이를 좀 드신 분들은 ‘엄마 입장에서는 그렇겠구나’하고 공감하기도 하고. 다양한 입장에서 볼 수 있었다.

 

최근에 “글 쓰는 사람들은 어느 정도 불행해야 한다”는 말을 들었는데, 꽤 공감했다. 저자도 그러한가?

 

처음 글쓰기 수업을 열었을 때, 토요일 오후 2시에 시작했다. 강의실에 젊은 친구들이 와 있는데 마음이 짠했다. “이 화창한 봄날에 왜 여기에 와 있냐? 행복해지면 잡지 않을 테니 언제든지 나가라”고 했다. 행복한 사람은 굳이 글을 쓸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글쓰기, 정말 힘들지 않나.

 

요즘은 SNS 시대다. 사람들의 자기표현도 많아졌는데.


페이스북 같은 곳에 올리는 글은 사소한 자기표현인데, 자기과시적인 측면이 없지 않다. 내가 좋고 행복할 때는 말을 많이 할 수 있다. “나 책 나왔어”, “좋은 일 있어”, “나 상 받았어” 같이 이야기할 수 잇는데, 어두운 감정, 고통이나 상실에 대해서는 사회적으로 발언할 장이 별로 없다. 왜냐면 내 아픔, 약점, 상실을 이야기했을 때 개인에게 불리하게 작용하는 경우가 많다. 사회적으로 이해관계가 얽혀 있으니까. 우리는 불행을 받아들이는데 훈련이 안 되어 있다. 연습이 안 되어 있어서 큰일날 것처럼 반응한다. 불행도 해석된 고통을 앓고 있다. 어쩔 줄을 모른다. 그래서 글을 쓴다고 생각한다. 행복한 감정이든 불행한 감정이든 밖으로 나오는 게 중요한데, 우리 사회에는 공론의 장이 없다. 기껏 하는 게 술 먹고 친한 사람들이랑 하소연하는 일인데, 그건 상황을 있는 그대로 푸념을 늘여놓는 거다. 이걸로는 고통에서 벗어나기가 어렵다. 불행한 일이나 개인의 고통은 공적인 자리에서 안전한 장에서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테면.


부모가 “우리 아이가 대학을 안 가서 슬퍼.” 이런 이야기를 했는데, 탈학교 아이가 밖에 나와 잘 지내고 있는 걸 보면 “이렇게도 살 수 있는데?”라고 생각할 수 있는 거다. 다른 관점으로 볼 수 있다. 우리 글쓰기 수업에도 알고 보니 부모님이 이혼한 친구들이 많았다. 부모의 이별을 받아들이는 게 힘들어서 오랫동안 말하지 못하다가, 어느 시점에 말할 수 있게 되면 홀가분해진다. 그런 게 좋은 거다. 지지해줄 수 있고 다독거려줄 수 있으니까. 내가 처한 불행이 하나부터 열까지 다 불행한 건 아니다. 행복적인 요소도 줄 수 있다. 그래서 불행한 사람이 글을 쓰는 게 아니라 불행이 글로 드러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답답하니까.

 

은유 셀렉 (2).jpg

 

 

전문보기:  http://ch.yes24.com/Article/View/28118





티스토리 툴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