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오웰의 믿음

[은유칼럼]

“다른 모든 것을 압도하는 강력한 첫인상은 석탄을 나르는 컨베이어벨트에서 나는 무시무시한 소음에서 비롯된다. 갱도 안에서는 멀리까지 볼 수가 없다. 램프 불빛은 뿌연 탄진에 막혀 얼마 뻗지 못한다.” 조지 오웰이 쓴 <위건 부두로 가는 길>의 한 장면이다. 1936년 영국 북부지역 탄광노동자의 실상을 기록한 오웰은 그곳은 “내가 마음속으로 그려보던 지옥 같았다”고 말한다.

오웰이 묘사한 지옥을 얼마 전 나도 보았다. 석탄 먼지 어둑한 공간을 밝히는 희미한 손전등. 굉음을 내며 굴러가는 컨베이어벨트. 그 아래 수십개 구멍에 몸을 반으로 접어 머리를 넣어 살피고 바닥에 떨어진 석탄을 삽으로 치우는 사람. 2㎞ 넘는 동선을 오가며 일명 ‘낙탄 작업’을 나 홀로 처리하던 스물넷 청년은 기계에 빨려들어가 몸이 분리된 채 숨을 거둔다. 태안화력 노동자 고 김용균씨의 사고 당일 폐회로텔레비전(CCTV) 장면이다.

오웰은 같은 책에서, 해마다 광부 900명당 하나꼴로 사람이 죽어갔다며 오랫동안 광부생활을 한 이라면 누구나 자기 동료가 목숨을 잃는 광경을 보게 된다고 보고한다. 김용균씨가 일하던 작업장도 다르지 않다. 태안화력이 속한 한국서부발전에서 지난 7년간 산업재해로 9명이 목숨을 잃었다. 모두 하청업체 노동자다.

이 통계가 섬뜩한 것은 죽음의 누적이 아닌 죽음의 허용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평소 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떨어진 석탄을 손으로 줍지 않도록 개선해달라, 어두워서 위험하니 조명을 밝게 해달라, 요구했으나 번번이 묵살됐다고 한다. 이 의도적 외면은 죽어도 되는 사람과 죽지 않는 사람이 갈리는 원인이자 결과가 됐다.

왜 그들에겐 대낮처럼 자명한 ‘위험’이 보이지 않았을까. 그간 사망사고를 보고받았을 안전담당 책임자, 원·하청 관리자가 눈감고 지나친 그 현장을 최초로 ‘본’ 사람은 김용균의 어머니 김미숙씨다. ‘내가 이런 데 아이를 보냈구나’ 넋이 나가 중얼거린다. “아들이 일했던 현장을 직접 가보니 전쟁을 치르는 아수라장 같았다.” “아직도 우리 용균이보다 험악한 곳에서 일하고 있는 아들들이 많이 있다. 우린 지금 이상한 나라에 살고 있다.” 초조하게 호소한다.

탄광지대 체험 후 조지 오웰은 “그런 곳이 있는 줄 들어본 적 없이도 잘만 살아가는” 사람들을 향해 말한다. “우리가 누리는 품위는 모두 그들과 같은 밑바닥 인생들의 혹독한 노동현장과 일상적 가난에 빚진 것이라는 점을 깨달았노라.” 아울러 그는 보통사람이 지닌 근원적 품위와 잠재력을 누구보다 신뢰했다. 보통사람들이 눈을 떠서 대세에 저항하기만 하면 역사는 바뀔 수 있다고 믿었다.

어머니 김미숙씨를 보면서 오웰이 말한 ‘눈뜬 자’의 힘을 느낀다. 김용균법으로 일컫는 산업안전보건법이 28년 만에 개정됐지만, 어머니는 누워 있지 않고 광장이나 현장에 있다. 지난 주말 ‘고 김용균 3차 범국민 추모제’에서도 다른 죽음을 막아내자고 목소리를 냈다. 안타깝게도 이 기사에는 이런 댓글이 최다 추천을 받았다. “나라 구하다 죽은 위인도 이렇게 길게 추모하지 않는다. 이제 그만하라.”

이제 그만하라고 해야 할 것은 무고한 죽음을 양산하는 이 잔인한 체제다. 성실하게 일하다가 죽는 청년이 더는 없도록 하는 게 나라 구하는 일이다. 하나뿐인 자식을 잃은 어머니 김미숙씨는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부모에게 자식은 햇빛이다. 그 빛을 이렇게 허무하게 잃고 나면 산산이 부서지는 느낌이다. 단지 이 느낌을 다른 부모가 겪지 않게 해주고 싶은 게 지금의 바람이다.”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878066.html?_fr=mt5&fbclid=IwAR3A9KYzYRS1L0R5Gb2QKagU1r9rm85fEqRo-UarB2TbUc6vlV2qusG6LYw#csidx0b35705ae20fe8788f451e046acbbb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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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응의 글쓰기 14기

[글쓰기의 최전선]

그렇게 당사자가 된다

[은유칼럼]
찬 바람 불자 동네마트 앞에 미니트럭이 등장했다. 붕어빵집인 줄 알고 들어갔는데 호떡집이다. 호떡을 사며 혹시 붕어빵은 안 팔 계획인지 물었다. 아저씨는 고개를 젓더니 “에유, 반죽하면 어깨 나가요. 그거 못해서 이제 호떡이랑 핫도그만 팔아” 한다. 게다가 붕어빵이 다 프랜차이즈라서 떼고 나면 남는 게 없단다. 핫도그랑 호떡에 승부를 걸고 있으니 꼭 맛을 평가해달라고 아저씨는 신신당부했다.

세가지 사실에 놀랐다. 붕어빵에까지 자본 시스템이 침투했으며, 누런 주전자에서 수도꼭지의 물줄기처럼 흘러나오는 흰 반죽은 극한 어깨 노동의 산물이었고, 호떡 레시피도 계속 업데이트된다는 것. 세상에 쉬운 일 없다고 말하면서도 난 붕어빵 장사를 만만하게 여긴 듯하다. “퇴직하고 농사나 짓겠다”는 말이 농사에 문외한이어서 가능하듯, 관용구처럼 쓰는 “붕어빵 장사라도” 역시 무지에 기반한 소행이었다.

며칠 후 찬 바람 뚫고 ‘성 착취 피해 아동·청소년 오늘’ 전시회 토크콘서트에 갔다. 전시를 주최한 십대여성인권센터 조진경 대표는 피해자에 대해 양육자와 눈 맞추고 말을 배우지 못한 아이들, 그래서 처음엔 뭘 물어봐도 “싫어” “재수 없어” 두마디로만 답하는 아이들이었다고 표현했다. 어려서부터 가정폭력이나 학대를 당하던 아이들이 ‘살려고’ 집을 나와 먹여주고 재워주는 사람을 따르다가 피해를 입는 구조라는 것.

그런데도 아이들은 보호받기는커녕 ‘쉽게 돈 번다’며 비난받고 낙인찍힌다. 조 대표는 말했다. “아이들을 돌보는 것이 어렵지 않으냐고 물어보는데 현장을 모르는 행정부 어른들과 싸우는 게 더 어려워요.” 심지어 단속에 적발된 성 구매자가 억울함을 호소하러 센터에 직접 찾아오는 일까지 있다며 “어째서 구매한 놈이 당당한가” 분통을 터뜨렸다.

이날 내가 배운 것도 세가지다. 첫째, 소위 원조교제나 조건만남으로 불리는 십대 성매매는 동등한 입장에서 거래가 이루어진다는 착각을 주는데 한쪽이 취약한 처지이므로 성 착취라는 말이 합당하다. 둘째, 전세계는 아동·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성 착취 범죄에 대해 엄격하게 가해자를 처벌하고 피해자는 보호하는 추세로 발전하고 있는 데 반해 우리나라에서는 범죄라는 인식조차 미약해서 그들이 외려 당당하게 군다. 셋째, 성 착취라는 말이 일반화되면 “당당한 놈들도 바퀴벌레처럼 숨을 것”이며 성 착취도 사라질 것이다.

십이일간의 전시가 끝났다. 난 더 많은 이들이 보기를 바랐다. 교복과 모텔 가운이 나란히 걸린 쓸쓸한 사진을, ‘용돈 급히 필요한 여성분 경제적인 도움 드릴게요. 수수하고 담배 안 피우는 분 뵙고 싶어요’라는 성 구매자의 역겨운 메시지를, 아이들이 방탕하거나 불쌍하기만 한 게 아니며 알록달록 천개의 마음이 있음을 표현한 미술 작품을 같이 나누고 싶었다. 주변에 열심히 권했다. 너도 꼭 가봐. 왜 가야 하느냐고 물으면 뭐라고 해야 하나 고민했는데 아무도 묻진 않았다.

지금도 답지를 쓰는 중이다. ‘당장 붕어빵을 안 먹어도 붕어빵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알아야 타인의 노동을 함부로 폄하하지 않을 수 있다. 성 구매자들이 “내 돈 내고 내가 한다는데”라며 죄책감 없이 취약한 아이들의 몸과 마음에 대한 통제권을 행사하려 들 수 있는 건, 피해자를 비난하고 구매자를 숨겨주는 ‘언어 관습’을 믿기 때문이겠지. 한마디로 공동체의 무신경함. 그렇게 우린 성 착취 산업의 당사자는 아니지만 성 착취 문화의 당사자가 된다. 찬 바람이 부는 건 막을 수 없지만 찬 바람을 막는 단단한 언어의 집을 지을 수는 있지 않을까. 당사자라서 가는 게 아니라 가서 보면 내가 당사자라는 걸 알게 될지도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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