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차시- 헛소리가 참말이 될 때의 경이

[글쓰기퍼주기]

수업 시작하기 전에 테이블에 모여 앉아 잠시 수다를 떨었습니다. 남산에서부터 불어오는 선선한 가을바람 맞으며 현재 상황 그분과 밀땅중이신 나방님의 고민을 듣고 말을 나누었는데요. 남자는 다 그래! 남자는 왜 그래? 결혼은 하는 게 나은가 아닌가하는 참으로 젠더적 규범적 편견에 얽매인 허망한 말들이었죠. 자기가 살아봐도 모르는 어려운 문제, 김수영의 표현을 빌자면 헛소리에 불과했지만 헛소리도 반복하면 진실의 문으로 들어갈 수 있다고도 김수영은 말했습니다. 그렇죠. 우리 삶이 매양 공회전하고 중구난방이고 헛발질 같은데 삶을 표현하는 말들이 그와 같지 않다면 거짓이겠지요. 그래도 그런 삶에 질서와 의미와 향기를 부여하기 위해 균형을 잡기 위해 김수영은 글을 썼고, 우리도 글을 씁니다. 몸부림이죠. 안간힘 제 9라운드가 시작되었습니다.

 

시크하고 인정 많은 도시여자 맑음님의 글. 글도 그렇습니다. 랩처럼 툭툭 내뱉는 문장들이 삐딱한 시선이 있어서 긴장하면서 읽게 돼요. 그런 관점이 어디서 기인한 건지, 구체적으로 필자의 문제의식이 무언지가 알 수 없고 난데없이 자기혐오로 마무리되어서 글이 맥이 탁 풀려요. 그걸 고백투의 문장으로 구구절절 표현하라는 게 아니라, 자기에 대한 정보나 누설이 너무 없습니다. 그 부분에서는 너절해진다’ ‘지켜냈다’ ‘혐오한다같은 감정적이고 추상적인 단어로 숨어버리는 듯한 느낌이 들고요. 사건에 대한 묘사를 뒷받침 해주는 자기 생각이나 판단의 부분에서 더 물고 늘어지세요. 삶에 내재된 긴장이 글에 반영된다면 글 전체에 힘이 돌 것입니다.

 

목울대의 떨림과 일시정시가 매력인 이슷의 낭독. 글자 빽빽한 4페이지짜리 글을 읽고 났더니 같이 긴 여행을 한 것 같아요. 가파른 계곡도 만나고 넘어지고 그 김에 숲에서 큰 대자로 누워 하늘의 별도 바라보고 검고 시커먼 것이 나와 냅다 뛰기도 하고 그리고 오롯이 걸으며 끝났네요. 6기 때 처음 쓴 글에서 행간에 맴돌던 힘이 불쑥불쑥 힘줄처럼 튀어오르는 게 보였는데 이번 글은 그 맺힘을 전체적으로 고르게 잘 녹여냈습니다. 한 가지 주제로 오래 붙든 집념과 시도가 일궈낸 거죠. 자기 느낌과 생각, 문제의식을 표현하는 게 한결 매끄럽고 독창적이에요. 폴리우레탄 폼. 누구나 손쉽게 막을 수 있는 구멍과 균열. 사람 사는 집집마다 저것이 필요하다는 해석과 비유는 참 탁월하고 적절합니다. 꾸준한 글쓰기가 이슷을 어디로 데려갈지 보고 싶습니다.

 

한 페이지짜리 글에서 몇 번을 키득거리게 하는 게 내복곰님 글의 매력입니다. ‘마치 앞 쥐는 뒷 쥐가 달려오니까 앞으로만 뛰는북유럽 들쥐 레밍의 이야기 같은 표현이요. 또 불평이 품격 있어 보였다, 스스로 할 수 있는 힘을 길러주는 게 아니라 스스로 무력해지도록 만드는 방치다, 같은 인식은 날카롭고요. ‘인권부장님 왜 저렇게 해맑게 앉아계셔. 화장 하나도 안 번졌어.’는 감정표현이 살아있습니다. 아이들의 파닥거리는 날개짓이 눈에 선연해요. 그 아이들과 더 멀리 더 높이 자유하고 싶어하는 내복곰님의 고민, 소심함도 재미납니다. 그 인권부장님과의 갈등이 고조되어 흥미롭게 따라갔는데 마지막에서 그래도 나를 보면서 흐뭇하게 웃어주신다. 어른이시다.’라고 끝나니까 너무 가파르다는 느낌. 아름다운 급마무리 같아요. 이 부분을 갈등인 채로 남겨두는 열린 결말도 괜찮아요. 내복곰님은 아이들과 동료 교사들 사이에 벌어지는 일들. 시트콤의 발랄함과 다큐의 진지함이 공존하는 혁신학교 이야기를 오마이뉴스에 연재해보실 것을 권합니다. 이번 글이 그동안 글 중에 가장 완성도가 높습니다.

 

수민이, 성수, 건이의 이야기. 학원을 다니는 건 아이들인데 아이들의 영혼이나 목소리는 없고 십인십색 엄마들의 요구가 드세네요. 누구는 과제를 빼달라, 누구는 또 더 내달라. 이런저런 사례들이 나열된 것만으로도 한국사회 교육문제, 사교육의 현실, 엄마들의 욕망이 적나라하게 드러납니다. 학원 다니는 엄마들, 이라는 제목으로 시리즈물 한번 써보시죠. 흥미로울 것 같습니다. 한명 두명 아이나 엄마와의 개성과 특성을 잘 살려보세요. 성급히 판단하기보다 관찰을 기록하면 좋은 르포르타주가 될 거예요. 다만 초롱샘의 사유의 호흡이 조금 더 길어야합니다. 나를 장사치로 생각하는 걸까, 피곤하고 고독하다에서 더 나아간 무엇. 유사한 사례의 정보나 인식이나 그 현실에서 사유를 확장시켜 나가는 연습을 한다면 글이 더 탄탄해지겠지요.

 

오랜 침묵 끝에 나온 글. 나는 왜 글쓰기 강의를 신청했는지는 자신에게 궁금할 정도로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이 없다는, 우니님의 선언은 무척 도발적입니다. 그런 깡다구와 솔직함이 좋아요. ‘글쓰기에 필요한 집요함과 결핍이 없다, 는 자기분석까지. 근데 좀 불친절 합니다. ‘떠나버린 그분에 대한 이야기가 빠져있고요. 현장에서의 반짝거리는 날들에 대한 진술은 홍은전 선생님에게 빼앗겼다고 해버리는 건 독자에 대한 배려가 없는 태도입니다. 진실함이 안 와 닿으면 섭섭합니다. 만약 누군가의 글에서 내가 하고픈 말 괴테가 다했다, 그러고 끝나면 장난하는 거 같을 것입니다. 더군다나 우니님의 일상과 생각과 느낌을 공유하기 위해 턱 고이고 있는 동료들에게 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 쓰느라 욕보셨고요. 마지막 편, 기대합니다.

무려 몇 건의 이별이 나오는 글인데 선유님 특유의 잔잔함이 있네요. 가슴을 압박하는 통각이라고 하셨는데 글이 좀 지독하면 좋겠어요. ‘있던 사람이 없어진다는 것. 내 삶에 아직 그 사람이 있는데 없다고 하는 것이게 강력한 순간이었다는 게 설명이 아니라 독자도 통각이 느껴지게요. 나는 생애 최초로 내가 가지고 싶은 것을 정말로 가지기 위해 노력했다.’ 역시 사례를 들어주어야 합니다. 정말 노력했구나, 이번에는 이별을 만들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구나 느낄만한 단서가 이 글에서는 부족합니다. 그걸 촘촘히 그리고 세세히 다시 한 번 써본다면 선유님만이 쓸 수 있는 글이 될 것 같아요. 그리고 전화를 건 그와 존재를 다한 사랑을 할 수 있겠지요. 그러면 좋겠어요.

 

수많은 벼랑을 상상했고, 자신을 벼랑에 내몰았던 이야기. 글은 벼랑까지 온 것 같아요. 이제는 인식을 멈추고 떨어지지 않게 뒤돌아 달려가는 모습을 보고싶네요. 팽팽한 긴장의 끈을 내려놓고 세상이 주는 기울기에 몸을 맡겨보는 주인공. 마음이 편안할 수도 있고 불안할 수도 있겠지요. 희망이 근거 없는 것처럼 절망도 근거가 없음을 몸으로 확인할 수 있지 않을까요. 과거내재아인 그 아이가 맷집이 단단해진 톰슨님의 품에서 마음껏 발 구르고 뛰어놀 수 있게요. 글 자체만 본다면 고치기 이전 것, 처음에 몸을 구르는 나를 본 장면으로 시작한 글이 더 긴장감 있고 좋았어요. 치밀함과 성실함은 글쓰기에 좋은 미덕이죠. 내면을 향하는 이 섬세함의 미학이 자신과 연결된 세계를 넘나들며 글이 더 활개치고 넓어지면 좋겠어요.

 

김수영문학관에서 얘기한 그 말들에 대한 건가요. 말들에 대한 정보가 없이, 나를 벼랑으로 몰아세웠다고 하니 글과 독자가 연결될 매개가 없습니다. 화났고, 외롭고, 슬펐고, 갑갑했고 같은 설명적인 단어는 나르시스적 감상에 빠지기 쉬우므로 피해야합니다. 가슴에서 회오리치는 말들, 나를 상처주고 간 사람들을 하나씩 차례로 쏟아놓고 헤아려보세요. 한해 한해 사람사이가 어려워지는 것은 관계가 넓어지고 자아도 혼란스러워지면서 생기는 현상이므로, 자연스러운 성장통이죠. 당시는 힘들어도 단단해질 거예요. 새로운 세계로 호기심 안고 나아가고 심연을 확인하고 절망하고 고민하게 되는 상황들을 겪으면서요. 토론연극에 대한 정보와 설명 기쁨은 충분히 전달되었습니다. 그 단락은 글에도 힘이 있어요. 토론연극을 배우면서 생겨난 갈등을 토론으로 봉합하지 못하는 아이러니도 글의 긴장감을 주고요. 그런데 마지막에 물음들이 커요. 나는 누구인가, 나는 상대방과, 이 세계와 어떻게 관계 맺고 싶은가, 본인이 말한대로 큰 물음으로 도망가는 현실 회피는 이것으로 끝이길.

 

 

 

축제전야

[차오르는말들]

사람은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지 자신은 모릅니다. 알고 있다고 믿었는데 모르고 있는 것은 얼마든지 있어요. 그런데 모르고 있다고 믿었는데 실은 알고 있는 것도 있거든요. 이 영역이 제가 글을 쓰는 장소라고 생각합니다. (후루이 요시키치)

요새 바쁘구나, 글을 잘 안 쓰는 걸 보니. 라고 친구가 말했다. 바쁜 건 맞지만, 내가 글을 가장 왕성하게 쓸 때보다 바쁘지는 않다. 그 때는 바쁜 게 글쓰는 이유였고, 지금은 바쁜 게 글 안 쓰는 핑계다. 그 때는 왜 썼는지, 뭘 쓰는지도 모르고 쓰는 행위에 열중해서 썼던 거 같다. 지나고 보니 그렇다. 지금은 글을 쓰려고 하면 생각이 개입한다. 시시하고 지루하다. 내가 하려는 말들이 시시하고 떠올랐다 가라앉는 생각들이 지루하다. 왜, 꼭, 굳이, 뭘, 또, 하면서 눕는다. 책을 들고 십분쯤 누워 있다가 책장 몇 장 넘기고 핸드폰 만지작거리다가 피곤과 권태에 지쳐서 잔다. 내 안에서 생각이 성숙해지기를 기다리는 마음도 있다. 알고 있다고 믿은 것을 모르고 있었고, 모르고 있는 것도 당연히 모르고 있었으니, 불능의 밤이 길 수밖에.  




처음 해보는, 은근 적성에 맞는 놀이. 책축제프로그램 기획. 서울와우북페스티벌이 임박했다. 4월에 입사해서부터 줄곧 10월에 있을 10주년 축제를 준비중이다. 씨앗을 뿌리고 여기저기 던져놓고 그것이 여러사람들의 지지와 동조와 호응 속에서 여물고 하기까지 많은 시간과 정성이 필요하다는 걸 배웠다. 수십번의 전화와 이메일, 미팅과 간절한 염원이 깃들어야 성사가 된다. 주제설정과 참가자 섭외가 무척 힘들었던 국제포럼 외에도, 몇 가지 사심가득 프로그램을 추진하고 있다.

가장 우선은 시. 시다. 캐리어포임carry a poem 캠페인을 위해 시수첩을 만들고 시심토크를 계획했다. 존중과 품위의 황현산선생님, 아름다운 시를 쓰는 김소연 시인, 인정많은 도시남자 시인 심보선, 젊은 활력 황인찬 시인과 함께 한다. 셰익스피어450주년 기념해서 연극강연도 있다. <햄릿>과 <베니스의상인>으로 기억, 채무, 복수의 문제를 재해석하는 강연인데 입체적 재미를 위해 연극을 넣었다. 요즘 <법 앞에서> 공연으로 바쁜, 연극인으로 변신한 은영이랑 같이 한다. 처음해보는 시도. 영문학 전공한 교수님들 강연원고를 읽고 있는데 어렵고 재밌다. 가치있는 난해함의 재미를 공유하고 싶다.

지난 봄에 서울국제도서전에 갔다가 나오는 길. 클라우드 맥주가 출시했는데 메드포갈릭에서 프로모션으로 클라우드 생맥주를 2천원에 판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마시러 갔다가 너무 맛있어 감동하고, 술을 찬미하다가 떠올린 기획. 술을 사랑한 작가들. 마신다면 모름지기 삼백잔이지 두보랑 취해라, 취하여야 한다 보들레르랑, 젊은이들이 목로집에서 술을 마시지 않는 사회의 미래는 없다고 말한 김수영이랑. 술과 작가는 서로를 잉태한다. 칼럼니스트 임범이랑 곧 신간이 나오는 백가흠 작가가 문학과 술, 혹은 술 자체를 이야기하는 자리다. 합정동 자음과모음 빌딩 5층, 운치있는 하늘카페처럼 생긴 공간을 빌렸다. 술만 협찬 받으면 땡. 무한대로 기분 좋아지는 기획.

개인적으로 글쓰기의 스승으로 삼고 지적 능력을 흠모하는 정희진선생님도 모셨다. '좋은 사람과 좋은 글'이란 주제의 강연. 명쾌하고 날카로운 소장파 사회학자. 정리되지 않은 글을 본 적이 없는 것 같은 박권일과, 한윤형, 김완 셋이서 '20대는 왜 연애상담에 열광하는가'를 주제로 하는 강연도 추진 중. 홍대앞 주차장길에서 열리는 거리도서전에 일인출판사를 위한 기획부스와 강연을 마련했다. 이것은 신념으로 추진하는 일. 작은 것들과 큰 것들이 어우러져야 진짜 축제지. 근데 참여출판사의 정산, 책의 취합 배분, 부스운영 등등 현실적 문제가 산 너머 산. 안그래도 행정처리에 우둔한 내 머리가 더 작동이 마비되니 답답하다. 나의 하소연을 들은 친구가 그랬다. "처음 가는 길이니까 힘들거야. 그래서 사람들이 가던 길로만 가려는 거야." 에라 모르겠다. '눈을 감고 간다.' 윤동주 시구처럼.   

2014국제포럼을 앞두고 사사키아타루 책을 다시 꼼꼼하게 읽고 있다. 명문이다. 유려한 사유의 세계가 부러울 따름. 손홍규 작가의 발제문은 어찌나 훌륭한지 글 읽다가 오랜만에 눈물이 났다. 글을 쉽게 쓰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가 믿음직했고 선택했는데 기대이상이다. 사려깊고 우직한 소설가가 있어서 고마울 따름. 고병권의 글은 워낙 명품이고. 김소연 시인과 함돈균 평론가의 토론문을 설레는 맘으로 기다린다. 이 글들을 한 자리에 첩첩이 엮어 예쁘고 고급진 자료집으로 만들 생각에 들뜬다. 요며칠은 자기전에 A4용지 뭉치를 들고 눕는다. 홍보작전이 필요해. 온갖 기획서와 강연원고를 손에 들고 이 좋은 사유와 글월의 세계를 어떻게 알리고 나누고 드널리 향유할 수 있을까를 궁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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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뺄 것이 없어야 좋은 글

[글쓰기퍼주기]

 

시간의 파도가 삶에 어떤 무늬를 만들어놓는가를 생각하면, 참 신비롭습니다. 얼마 전까지 눈에 들어오지 않던 것들이 보이고, 없던 욕망이 생겨나고, 이랬는가했던 마음이 저렇게 돌아누워 버리는 게 순식간이고. 이 알 수 없음과 불확실성으로 인해 우리는 글을 쓸 수 있는 거겠지요. 이런 생의 얄궂음이 아니라면, 그동안 인류보고서에 의해 확증된 경우의 수가 삶의 전부라면 시시해서 살 수 없을지도 몰라요. 포도송이 하나에 매달린 포도알의 모양이나 빛깔도 똑같은 게 없다는 데 말이죠. 각자성으로 존재하는 삶. 어설픈 느낌, 부서진 기억을 복구해나가면서 글을 써나가다 보니 마음만큼 뜻한대로 써지지 않는 게 당연하겠지요.

 

 

천연나방님의 수줍고도 당당한 글이 인상적이었어요. 알고보면 남친으로 인한 사유의 변화들. 40년 간 성처럼 쌓아왔던 사적소유-관계정성에 대한 가치의 흔들림을 발표하면서 고개를 조금 비켜서는 예전엔 안 그랬어요.”하는 모습이 새색시처럼 예뻐 보이셨어요. 아직 혼돈의 와중이라 그런지 글의 전개가 반복적입니다. ‘소유개념이 크고 헐거워서 메시지 전달이 명료하게 되지는 않았지만 그 혼란스러움이 이 글의 매력이자, 필자의 상태를 있는 그대로 반영한 것일지도 모르겠어요. 병원()의 외적 성장, 남친의 아이들과의 조우. 이것을 바라보면서 시간과 정성을 기울이지 않으면 얻을 수 없는 것들로 정의내리고 눈여겨보는 시선이 신기하고 좋습니다. 앞으로 10. 건강한 소유, 관계의 돌봄으로 생의 정원을 가꾸어나가는 천연나방님 모습을 그려봅니다.

 

 

맑음님의 글은 특유의 정서가 있어요. 글에서 배어나오는 서늘함의 서정. 나긋한 광기 같은 느낌. 연기파 악역배우 같기도 해요. 어느 것도 거짓은 아닐 것 같은 여러 표정들의 공존. 이번 글이 좋습니다. 8월의 크리스마스 보는 것처럼, 적막함의 흐름이 좋네요. 숨죽이며 조용히 따라 읽었어요. “나는 저 미친듯한 날갯짓이 참을 수 없어진다.” “저렇게 아무 기회도 없이 죽으려고 살아남은 건 아니어야 한다. 이번엔 내가 미친 듯 수조를 흔들어댄다.” “사는 일도 죽는 일도 소름이 끼친다. 나는 뭐에 홀린 듯 수조 안 단단히 붙은 알들을 정신없이 긁어낸다.” 여기까지 밀어붙이는 힘이 돋보입니다. 마지막 중얼거린다는 좀 작위적인 느낌이 있어 아쉽고요. 계속 일상의 단편을 모아본다면 21세기를 사는 도회여성으로서 개성 있는 인물상이 그려질 것 같아요.

무한 글감을 가진 초롱샘. 수학공부 하는 엄마, 라는 제목 좋아요. 영재교육 현장에 몸담은 초롱샘만 쓸 수 있는 글이고요. 소재와 주제를 잘 담아냈습니다. 초롱샘의 글은 군더더기 없는 문장이 단점인데 자칫 단조롭게 느껴지기도 하죠. 샘이 글이 늘지 않고 재미도 없는 거 같다고 고민하는 지점이기도 하고요. 그렇지 않습니다. 조금만 더 깊이를 만들어가면 됩니다. 사유의 넓이와 깊이는 금세 형성되지 않으니 꾸준함으로 임해야겠지요. 이 글에서는 현아 엄마에 비해 현아의 캐릭터 묘사가 아쉬워요. ‘수업시간에 현아의 태도를 생각하면 어떻게 뽑혔는지 자못 궁금해진다.’ 하셨는데 태도가 어떤지, 표정, 말수, 신체적 특징 같은 것들이 주어져야겠죠. 수학문제를 외우려고만 한다는 정보만으로 아쉽습니다. 엄마의 풀지 못한 한과 욕망이 어떻게 광기로 변해가서 아이를 날마다 조금씩 시들게 하는지 아프게 보았습니다. 현아가 너무 가엾습니다.

 

 

뭐라도 해야겠는데, 뭐라도 해야겠어서 시작했어요.’ 선미샘 글의 첫 문장이 좋은데 중간에 몇 번 더 나오네요. 이 글은 중복된 내용을 빼버리고 날렵하게 만드는 게 관건입니다. 강북의 수유역에서 1인 시위를 하고 있는 김진영씨만 가진 고유한 특징과 정보로 글을 구성해주세요. 가령 시민단체 '리멤버0416'의 회원이며 세 자녀를 둔 워킹맘이며 퇴근 후 매일 한 시간씩 1인 시위를 했다고 한다는 것. 그녀만이 겪는 일들이 있습니다. 남자 (신웅철)씨에 비해 시비를 걸고 위협을 가하는 남자가 많다는 거. 중학생 아들과 같이 시위하면서 겪은 일화, 친언니의 죽음으로 인한 인식의 변화는 글을 무척 생생하고 뭉클하게 합니다. 반면에 마지막 문장, 자식의 죽음에 대한 일반적인 비유- 심장을 밖으로 꺼내놓는 일이다-는 사족입니다. 다음 문장으로 마무리하면 되겠어요. “내주변의 누군가 고통 받고 눈물 흘릴 때 침묵하고 외면만 한다면 내가 고통으로 눈물 흘릴 때 과연 누가 나와 함께 해줄까하는 생각을 많이 해요. 그래서 더 열심히 참여하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자고 일어나니 벽이 없어지고, 기막힌 일이 다 있군요. 기댈 곳, 숨을 곳, 울타리는 삶의 기본 테두리인데 말이죠. 이슷 글의 공간적 배경이 늘 흥미로워요. 살지 않으면 시선이 닿지 않는 곳. 도시의 좁은 골목에 붙어있는 집에서 일어나는 일들. 세입자의 분노를 구조적으로 풀어내려는 노력 등이 진지하고 재미져요. 언젠가 썼던 월세 잔혹사; 비슷한 글이랑 이 글이랑 이어붙이면 월세르포르타주 나오겠어요. ‘이 휴지는 포장에서 교묘하게 대기업 상품의 이미지를 내고 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그래 어쩌면 이것이 이 문제의 본질이다 싶다.’ 이 부분은 뭐죠. 대기업 이미지 도용이 왜 이 문제의 본질인지는 이해가 어렵네요. ‘그놈들은 왜 하필 휴지를 생각해냈을까? 보드라움 때문이다. 보드랍게 입을 틀어막을 수 있으니까. 얇디얇은 경계면, 이웃, 정 같은 보드라운 것들을 연상시키는 그것.’ 이 해석은 독창적이라 좋고요. ‘법적절차라는 말에 시작된 벽을 둘러싼 싸움이 어떻게 진행될지, 연속극 보듯 속편을 기다립니다.

 

 

 

 

나는 인기척만으로 그녀의 행적을 알 수 있게 되었다.’ ‘우리는 가까웠지만 가깝지 않았다.’ ‘나는 그녀 덕분에 자본주의와 노동에 대한 강의를 듣기 시작했다.’ ‘그 기간 동안 어떤 연애 상대보다 더 깊이 그녀에 대해 생각했다.’ ‘회사의 모든 사람들은 그녀와 나를 한 세트로 여겼다.’ ‘그녀의 세상 속에서 나는 어떤 위치이고 존재일까.’ 이런 진술만 모아놓고 보면 흡사 연인에 관한 글이죠. 한 사람을 극도로 예민하게 만들고, 공부하게 하고, 고민하게 하고 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게 하는 사람. 애와 증의 관계가 사실적으로 감정적으로 무척 잘 드러납니다. 나직한 톤으로 글을 끌고 가는 힘이 있어요. 흐리게 웃는 선유님 표정처럼 글도 매력적입니다. 한 사람에 대한 오랜 탐구는 곧 자신에 대한 성찰이기도 하지요. 배에서 재빠르게 탈출하지 않고 살아남아서 인간이해를 실천하시니 선유님의 견딤은 헛되지 않았다고 감히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이런 내면탐사의 전문가가 여름날 동창생과 등산로의 글을 쓰자니 그렇게 겉을 맴돌았나봅니다. 톰슨가젤님의 등호의 나열 같은 고요한 자기진술의 문장들이 쓸쓸하다가 섬뜩하다가 그러네요. ‘모든 글자가 균일해야 했다. 펜의 종류도 잉크의 농도도 달라서는 안 됐다.’ 이 대목은 읽는 것만으로도 숨이 탁 막힙니다. 자기자신을 들여다보고 글을 쓰는 과정이 불안과 집착에 휩싸인 자기에게서 빠져나오는 과정일 것입니다. 이미 나왔고요. ‘상처가 나와 다른 세계가 만나면서 생기는 것이라면, 나는 그게 싫어서 자꾸 내 안으로 빠져든 게 아니었을까.’ 이런 자기진단을 보면요. 영화 속 주인공에서 자기를 발견하고 연결지어 글로 풀어내는 솜씨가 좋습니다. ‘거짓과 속임수는 삶을 풍요롭게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진실에의 의지를 비판하고 가상의 힘을 말한 니체가 생각나는 대목입니다. 가상이든 진실이든 자기 삶을 위해서, 삶의 유용성 전략으로 택해야지 그것에 짓눌리면 안 된다는 뜻이지요. 마지막 마무리 아쉬워요. 삶의 맷집은 나이로 생겨나는 게 아니므로, 나는 이제 잃을 것도 없으니 몸을 던져볼 때도 됐다는 다짐은 공허하게 들립니다. 다짐은 아무 것도 아닙니다. 그 무엇도 달라지게 하지 못하니까요.

 

 

 

 

세상은 석연치 않은 일들로 가득 차 있다. 얼마 전 지하철 역 엘리베이터 증축 공사현장 앞에서 처음 그를 만났을 때 이런. 이 세상에 석연찮음이 하나 더 늘었군 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공사장의 로봇에서 틱장애를 발견하는 안목이 놀랍습니다. 사물에 대한 투명한 시선. 벌꿀님의 동화적 언어구사가 정말 매력적으로 드러난 글입니다. 그간의 글들을 돌이켜보고 계열을 만들어 본다면, 그 글들의 모음이 어떤 표정을 지질까 궁금합니다. 단순히 문체와 사유의 고유함에서 밀고 나아가, 이 글이 세상에서 어떤 자리를 얻을 것인가. 누군가 너는 세상에 하고 싶은 이야기가 뭐냐고 물었을 때, 한마디 벌꿀처럼 투명하고 끈적하고 뜨듯하고 늘어지고 달디단 어떤 말이 나올 수 있을까요. 그 말에 대한 대답의 단서를 만날 수 있는 글을 아직은 못 본 것 같습니다. 구지가를 불러봅니다. ‘머리를 내어라. 만약 내어놓지 않으면 구워서 먹으리.’

 

 

수업이 두 번 남았습니다. 그동안 더 친하게 지내요. 9차시, 10차시 수업 후 데이트 신청합니다. 같이 밥 먹고 이야기 나누기. 남은 정 살뜰히 소진하고 헤어지고 싶네요. 우선은 달맞이 잘 하시고, 잘 쉬시고요, 914일에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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