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유의 글쓰기, 메타포라 3기 강좌 안내

[글쓰기의 최전선]

(# '감응의 글쓰기'와 별개로 제가 진행하는 글쓰기 모임 '은유의 글쓰기, 메타포라' 정기프로그램 입니다.)


관계, 사람, 기록 Ⅱ



산다는 것은 밀려오는 사건을 받아들이는 수락의 여정이다. 때로 어떤 일은 삶보다 커서 존재를 덮어버리곤 하는데 그럴 때 사람들은 말을 하고(기억하고) 글을 쓴다(기록한다). 글쓰기를 통해 나를 짓누르는 일이 내가 다룰만한 일이 되기 때문이다. 참혹한 사건들이 끊임없이 벌어지는 인류 역사에서 빛나는 기록이 남겨진 이유일 것이다. 인간은 그렇게 자기 존엄을 지켰다. 


재난의 일상화 시대는 우리에게 삶을 기억하고 현장을 증언하는 글쓰기를 요청한다. 사적 경험을 공적 언어로 어떻게 기록할까. 개별적 고통을 어떻게 보편적 진실로 해석할까. 공동체 구성원들의 목소리를 살려내고 표현하고 공유하며 동시에 만유를 끌어당기는 기예로써의 글쓰기를 배워본다. 그것은 어떻게 살것인가라는 물음에 대해 스스로 작성하는 답안지가 될 것이다. 




일시 : 9월 6일(화) ~ 1월 24일(화)까지 20차시. (*9/13 추석 휴강) 매주 화요일 7시 30분 ~ 10시까지

장소 : 어슬렁정거장 (서울메트로 2호선 홍대입구역 3분 거리)

수강료 : 45만원 + 매차 시 일인일메뉴 (최저가 아메리카노 4천원~)

정원 : 20명 / 하나은행 125-054652-00507 김지영  * 입금 후 댓글 달아주세요. 

         ----> 신청페이지 (마감)







1차시 : 자기소개 및 일정 안내 


(논픽션의 이해) 


2차시 : 나는 왜 쓰는가 / 조지오웰

3차시 : 글 합평 – 학교, 책 


(자전적 에세이) 


4차시 : 멀고도 가까운 / 리베카 솔닛

5차시 : 글 합평 – 엄마, 우연 

6차시 : 나를 대단하다고 하지 마라 / 해릴린 루소

7차시 : 글 합평 – 편견, 차별  


(평전, 르포) 


8차시 : 레드로자 / 케이트 에번스 

9차시 : 글 합평 – 좋아하는 인물 

10차시 :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11차시 : 글 합평 – 여자 인터뷰 


(문학적 증언) 


12차시 : 꽃잎 / 김수영

13차시 : 글 합평 – 자유 주제 

14차시 : 길, 저쪽 / 정찬

15차시 : 글 합평 – 성애, 슬픔 



(인문적 재현) 


16차시 : 사람, 장소, 환대 / 김현경

17차시 : 글 합평 – 장소, 환대  

18차시 : 타인의 고통 / 수잔 손탁

19차시 : 글 합평 – 폭력, 고통 


20차시 : 졸업에세이 발표 





수강 신청하기 전에...



▷ 카페 장기 대여 방식으로 공간을 마련했습니다. 매주 시간당 대관료를 내고 참석자가 일인일메뉴를 시키는 카페의 운영 방식에 따릅니다. 


▷ 3차시 이후 개인적 사정에 따라 그만둘 경우 환불이 되지 않는 점, 숙지 바랍니다. 


▷ 5개월 간 읽고 쓰는 장기 프로그램입니다. 개인 일정과 과제 수행 가능 여부를 찬찬히 점검한 후 결정하시기 바랍니다. 


신고

기죽지 않는 자기소개

[은유칼럼]



"저는 나이가 많습니다. 70살인데 결혼을 안 했고 자식이 없고 남들과 다른 삶을 살았습니다." 어느 지역 평생학습관 글쓰기 수업 첫시간, 한 여자 학인이 떨리는 음성으로 자기를 소개했다. 일흔 살에 비혼 여성? 내용의 희소성보다 그 사실을 서슴없이 터놓는 당당함에 처음엔 당황하고 곧이어 감탄했다. 


일정한 나이에 학교 가고 취업 하고 결혼 하고 자식 낳고 사는 인생 행로를 가지 않으면, 한국 사회에서는 시시때때로 불편을 겪는다. (중년 여성은 무조건 ‘어머님’으로 불린다.) 왜 남들처럼 살지 않는지 설명을 요구받는다. 그 번거로움을 그는 예사롭게 자처했다. 


이후 수업에서 그는 오육십년 전 시골에서 난치병을 앓는 여자 아이로 성장한 이야기, 건강과 배움을 박탈당했다가 되찾아가는 이야기를 여러 편의 글로 썼다. 그의 생애는 늦깍이 학생으로 대학졸업장과 사회복지사 자격증까지 획득한 '인간 승리'의 주인공이거나 장애를 딛고 열심히 살아가는 '희망의 증거'가 될 만한 내용이 가득했다. 


하지만 그는 자기생애 서사를 휴먼스토리로 일반화 시키지 않았다. 개인의 의지와 무관하게 주어진 정체성의 규정 요소들- 건강, 계급, 성별, 나이, 지역 등-을 부정하거나 떼어버리려 하지 않았다. 아픈 몸을 치료하는 노력들, 외롭던 시간들, 가족 아닌 동료들과 배우고 놀며 성장하는 일상을 그려냈다. 아프니까, 여자니까, 늙었으니까 등등 매 순간 걸림돌이 됐을 요인들을 자기 삶으로 통합해냈다. 그 연장선상에서 거침 없는 자기소개가 가능했던 것이다. 


"25살 동안 글을 모르고 살았다." 위의 평생학습관 수업에서 한 남자 학인이 발표한 글의 첫 문장이다. 이토록 강렬한 서두라니. 난 또 움찔했다. 그는 안마시술소, 때밀이, 막노동꾼, 공장노동자, 모텔 종업원 등을 전전하다가 “직업을 당당하게 말하고 싶어서” 공부를 시작했다고 한다. 검정고시학원에서 한글 공부를 하며서 중장비 기술 자격증을 15개나 땄다. 안정적인 일자리를 얻은 후 맘처럼 늘지 않는 글쓰기와 독해력을 높이고자 인문학 공부를 시작했다며 이렇게 썼다. 


"책을 읽으면 똑똑해지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고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게 되고 공감 능력이 좋아졌다. 내가 바라는 것은 똑똑한 인간이 되는 건데 참 이상했다." 그는 이어 고백한다. “글을 몰랐을 때는 항상 움츠리고 사람들과 소통하는 능력도 없었고 자신감 없이 살았다. 글을 오랫동안 배우면서 내 생각을 당당하게 이야기할 수 있고, 공감할 수 있고, 자신감도 생기고, 인간으로서 성숙한 삶을 살아가는데 도움이 됐다.”


나는 이곳 평생학습관 수업을 결정하기까지 망설임이 컸다. 왕복거리가 4시간, 집에 오면 자정이 되기 때문이다. 10주의 여정을 마치고 나니, 여길 안 왔으면 어쩔 뻔했나 싶다. 평생학습관에서 수업은 ‘평생’학습의 본디 뜻을 상기시켜주었다. 사람은 왜 공부해야하는지, 읽고 쓰기는 어떻게 내면의 힘을 기르는지, 타인의 삶에 눈 떠가게 하는지. 


인류학자 김현경은 “정체성에 대한 인정은 특정한 서사 내용에 대한 인정이 아니라, 서사의 편집권에 대한 인정이다.”라고 했다. 자기자신에 대해 가장 잘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자기자신이라는 것이다. 


어떤 이들은 평생 배우고 쓴다지만 자기 생애를 지배 규범의 주어진 틀 안에서 되풀이하고, 어떤 이들은 뒤늦게 배우고 쓰면서 자기 인생의 저자가 된다. 자기가 누구인지 ‘기죽지 않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평생학습이 유행처럼 번지는 시대, 모두가 공부해야한다면 이 특권적인 힘을 기르기 위해서가 아닐까. 


(두달 전 방통대에 기고한 글)


신고

'은유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기죽지 않는 자기소개  (4) 2016.07.13
사랑 절대로 하지 마  (5) 2016.07.03
김제동의 말  (0) 2016.05.31
그렇게 안 하고 싶습니다  (6) 2016.05.16
그렇게 장애인 아버지가 된다  (0) 2016.05.03
기록되지 않은 전태일을 기록하며  (0) 2016.04.15

사랑 절대로 하지 마

[은유칼럼]

‘자유로운 영혼 뒤에는 울부짖는 처자식이 있다.’ 넥타이 맨 사람보다 기타 든 사람에게 쉬이 매료되던 내게 선배가 해줬던 충고다. 연애 상대자의 미덕이 결혼하면 악덕이 될 수도 있다는 그 생활 격언에 따라 기타 치는 직장인과 결혼했고, 아이를 둘 낳았다. 가족제도 울타리에 들어앉은 나는 애 낳고 사는 일상이 갑갑할 때마다 영화나 문학(같은 삶)으로 도피했다.


소설 <마담 보바리>류의 몰락 서사는 늘 매혹적이었다. 사랑하다가 죽어버리는 인생이라니. 사진가 앨프리드 스티글리츠와 화가 조지아 오키프의 사랑은 또 어떤가. 여자는 아이를 원하지만 남자는 출산에 반대한다. 스물세살 연상 남편이 ‘핏줄’을 거부하고 아내의 일을 독려하는 이국 문화는 낯설고 부러웠다.


여성이 책을 낼 수 없었던 19세기, 남편의 폭력에 못 이겨 애 둘 데리고 이혼한 뒤 뭇 예술가들과 자유연애를 구가한 스캔들의 여왕이자 쇼팽의 뮤즈였던 소설가 조르주 상드에서 1930년대 파리지앵과 바람나서 이혼당하고 행려병자로 죽은 우리의 신여성 예술가 나혜석까지. 금기와 위반의 서사는 사랑, 자유, 욕망, 존엄 같은 큰 물음 앞에 나를 세워놓았다.


어설픈 몽상가 아줌마를 현실로 데려온 건 홍상수였다. 술과 말이 흥건한 그의 영화는 지적이고 자유로운 영혼을 가장한 울부짖는 중년 남자의 민낯을 전시했다. ‘불쾌한 사실을 직시하는 능력’을 가진 그의 영화를 난 꼬박꼬박 챙겼다. 그는 사랑의 위대함이 아닌 집착, 질투, 미련, 지배욕망 같은 지지하고 시시하고 이중적인 감정들을 보게 했다. 사랑과 사랑 아닌 것을 자꾸만 생각하게 했다.


얼마 전 공개된 홍상수와 김민희 연애 소식을 나는 스크린 바깥으로 흘러넘친 영화라고 보았다. 그들이 일에서 보여준 존재감 그대로다. 길들여지지 않는 눈빛을 가진 배우다웠고 영화와 현실을 뒤섞는 능청스러운 감독다웠다. 역시 어느 시대나 다르게 살 수 있는 사람은 다르게 사는구나 싶었다. 안전한 삶보다 모험적 사랑에 존재를 던지는 선택은, 지리멸렬한 관계의 파고를 넘는 평범한 삶만큼 존중받고 보존해야 할 사랑의 역사가 아닌가.


일각에선 단죄 여론이 들끓었다. ‘전지적 홍상수 부인 시점’으로 접근한 기사들은 한 사람을 온전한 사랑의 주체가 아닌 작정한 가정파괴범으로 지목했다. ‘나이 어린 년’은 어떤 이슈에서도 약자다. 실제로 아버지나 남편의 외도를 경험한 주변인들이 자신은 이런 사건을 ‘쿨하고 힙하게’ 받아들일 수 없음을 고백했다. 그런데 그들은 또한 가장의 부재로 생존에 위협을 느꼈던 자기 고통을 진술하고 남겨진 자의 아픔을 헤아려야 한다고 말한다. 자유로운 영혼 뒤에는 내적 성숙을 이뤄가는 처자식도 있는 것이다.


“이유(EU)도 해체될 거 같은데 우리는 해체 안 해?” 기타 치는 일보다 차트 보는 일에 골몰하는 남편이 묻는다. “언제든”이라고 나는 눙친다. 결혼도 이혼도 인연의 방편이자 나은 삶을 위한 선택이라고 여기면서도 삶의 관성을 깨지도 못하고 사랑의 물음을 놓지도 못하고 나는 살고 있다. 좋은 영화, 좋은 문학이 품어온 사랑과 자유의 가치가 일상의 문화 감각으로 승인되는 일은 요원할까.


합리성과 익숙함으로 최적화된 세상에서 인간 정신은 갈수록 쪼그라들고 있다. 그러니 ‘사랑을 목발질하며’(기형도) 살아가는 희귀종들을 그냥 살게 두면 안 될까 싶다. 홍상수는 <옥희의 영화>에서 사랑 꼭 해야 하냐는 질문을 던지고 이렇게 답한다. “사랑 절대로 하지 마. 정말 안 하겠다고 결심하고 딱 버텨봐. 그래도 뭔가 사랑하고 있을걸?”



<한겨레> 삶의 창, 2016. 7.1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750579.html?_fr=mt5



신고

'은유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기죽지 않는 자기소개  (4) 2016.07.13
사랑 절대로 하지 마  (5) 2016.07.03
김제동의 말  (0) 2016.05.31
그렇게 안 하고 싶습니다  (6) 2016.05.16
그렇게 장애인 아버지가 된다  (0) 2016.05.03
기록되지 않은 전태일을 기록하며  (0) 2016.04.15

티스토리 툴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