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를 안 낳아봐서 그렇다는 말

[차오르는말들]


세월호 사건이 발생하고 유가족이 동의할 만한 진상규명이 이루어지지 않자 국정 최고책임자인 대통령에 대한 원성과 비난이 높았다. “대통령이 애를 안 낳아봐서 그렇다”는 말까지 돌았다. 기사에 달린 댓글로만 보다가 나는 얼마 전에 직접 듣게 되었다. 하필 ‘애를 안 낳아본 친구’가 있는 자리에서 그 사실을 모르는 다른 여성이 대뜸 말했다. 박근혜가 엄마가 되어 보지 못해 생때 같은 아이들의 죽음에 공감하지 못하고, 그래서 세월호 문제가 미궁에 빠졌다는 것이다. 나는 조마조마했지만 모두가 무안해질까봐 어물쩡 넘어갔다. 

다시 생각해도 참 무심한 논리다. 한 사람의 지적·정서적 무능이 출산 경험의 부재에서 왔다는 발상. 다산할수록 성불한다는 말인지 뭔지 모르겠다. 그건 애 낳지 않은 여자들에 대한 집단적 모독이고, 애 낳은 여자들에 대한 편의적 망상이다. 

타인에 대한 공감 능력 형성은 ‘출산’ 유무와 상관이 없다. 인간적 성숙이 ‘군필’ 유무와 무관한 것과 같은 이치다. 내 주변에서 세월호 문제에 꾸준히 관심을 갖고 광화문 광장에라도 한번 나가는 사람은 비출산 여성이 더 많다. 육아 부담이 없어 저녁이나 주말에 시간이 나기 때문이고, 세월호 이전에도 세상일과 자기 삶을 분리시키지 않고 살았기 때문이다. 

애 낳고 가족 이기주의에 빠지는 경우는 얼마나 많은가. 나부터도 출산 이후, 즉 육아집중기에는 신문을 챙겨볼 시간도 행동하는 시민으로 살 기운도 없었다. 

나에게 엄마로 사는 건 인격이 물오르는 시간이 아니었다. 외려 ‘내 안의 야만’과 마주하는 기회였다. 태아가 물컹한 분비물과 함께 나오는 출산의 아수라장을 경험하는 것부터 그랬다. 그 생명체가 제 앞가림 할 때까지 나는 혼자 있을 권리, 차분히 먹을 권리, 푹 잘 권리, 느리게 걸을 권리 같은 기본권을 몽땅 빼앗겼다. 그런 전면적이고 장기적인 실존의 침해를 감내하다보면 피폐해진다. 성격 삐뚤어지고 교양 허물어진다. 육아의 보람과 기쁨을 위안으로 삼기엔 그것과 맞바꿀 대가가 너무 크고 길다. 그 사실을 경험하기 전에는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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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뚜라미나 여치 같은 큰 울음 사이에는 
너무 작아 들리지 않는 소리도 있다 
(…)
그 통로의 끝에 두근거리며 매달린 여린 마음을 생각한다. 

- 김기택 ‘풀벌레들의 작은 귀를 생각함’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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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적 성숙은 낯선 대상을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혼란과 갈등을 겪으며 자기와 세상에 대한 이해가 깊어질 때 일어나는 것이다. 엄마라는 '생태적 지위'는 성숙에 이르는 여러 기회 가운데 하나일 뿐, 저절로 성불하는 코스가 아니다. 그나마 (출산-육아) 고통의 자산화가 가능하려면 어느 정도 문화적 자원이 있어야 한다. 애 키우고 먹고사느라 하루하루 허덕이는 여성은 그럴 겨를조차 없다.

요즘은 소신 있게 출산을 거부하는 이들이 많지만 불임 여성도 느는 추세다. 그래서 애 낳은 여자, 애 안(못) 낳는 여자의 일상의 구체적 고통을 외면한 ‘모성의 이상화’는 참 나쁜관념이다. 논리적으로도 맞지 않고 윤리적으로도 옳지 않다. 

박 대통령이 세월호 사건을 해결하지 못하는 것은 애를 안 낳아봐서가 아니라 해결하지 않아도 권력 유지에 지장이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권력을 떠받치는 것은 온갖 나쁜 관념에 휩싸여 주변의 여린 소리를 듣지 못하고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이다. 

* 한국방송통신대학보에 실림


열일곱 살의 버킷리스트 - 2학년 7반 소년들이야기

[사람사는세상]

'열일곱살의 버킷리스트 - 2학년 7반 소년들 이야기' 공연을 어제 홍대 롤링홀에 보러 갔다. 33명 아이들 중에 한명만 살아온 그 반. 이지혜 선생님이 기간제 교사라 순직 처리에 난항을 겪는 그 반 아이들을, 클럽 공연과 함께 기억하는 새로운 형식의 추모자리. 슬프게 울다가 신나게 놀다가, 기대 이상이었다. 


인디밴드 다섯 팀 중 (내 기준으로) 발군의 실력을 선 보인 밴드 스팟라이트. 베이스랑 리드기타, 세컨기타가 동시에 터져나올 때 그냥 기타 소리에 묻혀서 죽고 싶을 만큼 황홀했다. 이게 얼마만인가. 요즘 아들이 '밥상머리'에서 아이패드로 공연실황 보면서 밥 먹는데 아침마다 콜드플레이 뽐뿌질. 공연에 너무 가고 싶었는데 그런대로 원 풀었다. 


'열일곱살의 버킷리스트' 공연이 올해 12월까지 롤링홀에서 열린다니 앞으로 별일 없으면 매달 마지막 금요일엔 롤링홀에 가는 걸로. 금요일엔 돌아갈래. 참신한 밴드들 음악 접하는 것만으로도 신선하고 충만하다. 아이들 잊지 않고 기억하는 시간이라 좋다.


"아들을 단 한시간만 보고싶다. 만나면 밥 한끼 먹여서 보내고 싶다"는 희생자 아이 아버님 말씀이 가슴에 남는다. 스팟라이트 보컬이 중간에 멘트하면서 울먹이느라 말을 잇지 못했다. 무대 끝나고 이런 영상이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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