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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슈비츠, 상처의 철학

[비포선셋책방]

인간이 겪는 고통과 기억, 언어의 관계에 관심이 생겼다. 아직은 막연하다. 글쓰기수업 할 때 과제를 내주면 대부분 고통스런 기억을 긁어내 언어로 담아온다. 잘 안 담긴다. 흩어진 나날들. 자기로부터 객관화가 어려운 기억인데 털어버리고 싶을 때 알맹이 없는 글이 나오기 마련이다. 그런데 그 빈 중심에 들어찬 진실이 있다. 말하고 싶지만 말하여질 수 없는, 잊을 수도 기억할 수도 없고 당할 수밖에 없는 일들, 삶에서 떼어버리고 싶지만 자기를 형성한 결정적인 부분인 삶의 어두운 이면들. 누구나 있다. 사회면에 나오는 흉흉한 뉴스들. 그 자체로 야만을 떠올리게 하는 끔찍한 일들을, 외부에 드러나지 않아서 그렇지 인간이 참 많이도 겪고 산다 

이 범람하는 고통 앞에서 나는 앎이 삶을 구원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다시금 던져보는 중이다. 공부를 하면 훌륭해질 가능성과 이상해질 가능성은 반반이다. 이상함이란 삶을 떠난 유려한 말의 성찬과 관념의 유희만 남는 경우를 뜻한다. 삶의 중력이 사람을 향하기보다 인식을 향하는 것은 한 순간이다. 인식의 매혹은 그만큼 크다. 그래서 벤야민은 꿈을 꾸는 것만큼이나 꿈에서 깨어나기도 중요하다고 역설했으니. 나는 책에 탐닉하면서도 책을 내려놓는 연습을 끊임없이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아울러 늘 공부를 열심히 하고자 안달이면서도, 행여 열심히 할까봐 걱정도 같이 한다. 제때에 필요한 공부를 게으르지 않게 하기가 목표이며, 필요게으름의 척도가 나에게 있음은 물론이다. 

아우슈비츠 혹은 상처의 철학제목을 보는 순간 내가 꼭 해야 할 공부라는 강력한 느낌이 왔다. 인문숲에서 김진영 선생님이 하는 강좌다. 아우슈비츠는 아감벤, 아도르노, 아렌트 등 현대철학에서 워낙 핵심적 키워드로 다뤄지고 있는데 대략적으로 알고 있어 답답했다. 좋은 기회가 왔고, 역시나 기대이상의 수업이 진행 중이다. 첫 시간 첫 마디가 이랬다. “아우슈비츠 강의에 웬 여자 분이 이렇게 많이 오신 겁니까?” 반가운 듯 쓸쓸한 웃음을 지으시더니 약자의 문제이기에 여자가 관심이 많은 건 당연한지도 모르겠다고 했다. 3회 차 수업을 마쳤고 7회가 남았다. 혼자만 알면 무슨 재민겨 사상에 입각하여 배운 내용을 정리를 해보려 한다 

우선 증언의 문제. (너무나게 직접적인 책제목이 마음에 들지 않는) <이것이 인간인가> 저자 레비의 증언내용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두 가지 중요한 사실. 첫째는 아우슈비츠의 목적은 집단학살이 아니었다. 그것은 인간에게서 인간됨을 남김없이 탈취하는 것. 탈인간화 시키기. 유대인은 사람이 아니라는 증명을 하는 게 목적이다. 둘째는 아우슈비츠는 나치만의 작업인가. 아니다. 시스템으로 돌아갔다. 학살 가담자가 50만에서 70. 당대 독일사회 전체가 가담해야 가능한 작업이었다. 아렌트가 말한 악의 평범성 

무슬림. ‘무슬림이 되는 과정은 굶기의 기아의 과정을 따라간다...기아가 더 심해지면 종기들은 온몸으로 번져서 몸 전체가 흐르는 고름과 진액으로 덮힌다. 그럼 심한 설사가 시작된다. 이 때가 되면 수용자는 감각이 둔해져서...자기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과의 관계가 끊어지면서 고립상태에 빠진다. 걷는 일은 느려지고 보행법도 무릎을 굽히지 않으면서 걷는 모습으로 바뀐다. 체온이 현격히 떨어져서 언제나 몸이 덜덜 떨리는 일을 멈추지 못한다. 이런 사람들을 멀리서 보면 마치 기도를 하는 아랍인들처럼 보인다. 그래서 SS나 수용자들이나 모두가 그들을 무슬림이라고 불렀다.’ 그는 정신도 육체의 품위도 모두 빠져나가서 다만 숨 쉬는 뼈와 살만이 되어버린 존재다. 무슬림은 삶과 죽음의 경계가 아니라 인간과 인간 아님의 경계에 선 존재다. 인간에 관한 모든 정의-개념 다시 생각하게 하는 커다란 물음표...

홀로코스트. 유대인 청소정치. 600만 명의 유대인 학살. 그중 100만은 정치범, 집시, 동성애자 등. 수용소는 인간 조건이 무효화되는 곳. ‘인간과 인간 아님을 나누는 실험의 공간이었다. 그런데 홀로코스트가 나치만의 작업이었을까. 유대인 분리-추방-수송-수용-학살의 과정. 직접 참여자는 나치정당원, SS부대, 게슈타포 등이 있고 간접적으로는 군대, 경제산업단체. 수용소 짓고 부수고, 게토화 하고 추방하고 운송하는 과정에서 기간산업이 필요로 했다. 독일의 고속도로 정밀공업, 건축산업 등. 또한 오스트리아, 폴란드, 헝가리 등 식민정부의 도움을 받았다. 일반 공무원들. 유대인 문제로 도장을 한 번도 안 찍은 사람이 없다고 한다. 식민정부와 경찰, 사무원이 마구 사인한 결과는 무엇이었나 

아카데미, 학자들은 이데올로기를 제공했다. 인문적, 법적 이데올로기. (유신헌법처럼) 민족학, 종족학, 인간학 등이 유대인 학살에 동원됐다. 교회들. 교회에서는 나치에게 신도들의 인적기록을 제공하고 신도들에게는 면죄부를 팔아서 수익을 남겼다. 종교적 합리화 신의 뜻이라며 고해하면 용서해주는 방식. 그리고 일반인들. 앞 장 서서 고발한 이들. 사업경쟁자 옆집 가게 사람이 잡혀가면 경제적 이익을 취했다. 또 유대인 끌려가서 집이 비면 그 빈집이 독일인에게 제공되었기에 외국 살던 독일인 사이에 고향 회귀운동이 일어났고 집을 쉽게 얻을 수 있었다. 홀로코스트는 나치 정권만의 문제가 절대 아니다. 당대 사회 전체가 공장이었다. 저마다 이권에 따라 의무를 수행하고 유대인 학살에 가담한 집단범죄, 총체적 범죄다 

아우슈비츠 수용소 소장 루돌프 회스는 가스 살인 총 책임을 부여받았다. 가장 직접적 학살 행위를 저지른 자. 정신감정을 했더니 아주 정상적이었다. 사디스트적이지도 않고 질서와 자연을 사랑했다고. 커다란 권위가 부여한 업무에 열성과 자부심을 가진 사람. 전범자 재판받을 때 유대인들을 죽어야할 이유가 있느냐고 묻자, “질문 자체가 불필요하다. 나는 원칙대로 수행했을 뿐이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문제는 임무인데, 왜 인간성 문제를 끌고 오느냐는 식으로 자기정당화를 시킨 것. 임무의식 > 인간감정. 그에게는 인간성보다 임무가 중요했다 

참담한 확인. 아이들이 날마다 죽어나가는 우리 사회를 홀로코스트로 볼 때. 어떤 거대한 이 횡행하고 일반인의 삶까지 휘저어 놓는 원인은 교육정책만의 문제가 아니다. 특목고, 자사고, 자율고, 국제고 등을 끊임없이 만들면서 이득 취하는 교육관료들, 대학들, 학원재벌, 영어 특수를 노리는 업체들, 영어 유치원, 참고서 출판사, 일선 교사들. 그리고 관련 법안을 통과시키는 의원들, 아동학자, 교육학자, 심리학자 등 이데올로기를 제공해주는 아카데미, 우리학교 전교1등 공부비법 전해주면서 무한경쟁이데올로기 생산하는 언론 등의 암묵적 동의하에 일어나는 일일 것이다. 단지 밥 먹고 살기 위해 성실하게 사는 생활자들이 아무 생각 없이, 성찰 없이 행하는 일들이 세상을 살만하지 못한 곳으로 만들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말들의 풍경 시즌2 '여자의 시집'에 초대합니다

[올드걸의시집]

시를 읽고 싶다. 그렇게 생각한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시를 읽으면 왜 좋은 것일까.  이유를 모른 채 읽기 시작했습니다.
낯선 이국의 언어처럼 막막한 그것들을 저마다의 경험과 입김을 통해 더듬더듬 번역하였습니다.
시어 하나 하나, 한 행 한 행을 우리는 풀어나갔고 시 한편으로 세상이 환해지는 환희를 맛보았습니다.

가을과 겨울. 두 계절이 가는 사이 시즌 1 '올드걸의 시집'이 끝났습니다. 열 세권을 시집을 읽었지요. 
그 과정에서 알았습니다. 시는 약자의 언어다. 세상에 존재하는 다층적인 억압의 결을 섬세하게 살려낸 고운 언어!
지배언어로는 도저히 설명 불가능한 현실과 감성을 오래오래 들여다보고 써내려간 기록이, 바로 시였습니다. 

그래서 시를 읽으면 위로받았나봅니다. 
어느 시인의 말대로 '누가 내 머릿 속에서 오래 멈춰 있던 현을 고르고 있다'는 느낌이었으니까요.

시즌 2에서는 '여자의 시집'을 읽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육아집중기를 거치면서 폭풍고독에 시달릴 때 달디단 술처럼 원샷드링킹하던;; 시편입니다.
여자라서 싫다기보다 여자의 몫으로 주어지는 일들이 싫었고 그렇다고 남자가 되고싶다기보다 
그냥 인간이어서는 안 되고 항상 여자 아니면 남자이어야 하는 게 갑갑하고 원통했던 날들. 
이런 부조리한 세상을 온몸으로 통과하면서 어떤 '여백'을 만들어낸 여자-시인들 시집 12권을 골랐습니다. 

이 시적인  '애이불비의 연대'에 함께 하실 분들 기다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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뱅뱅클럽 - 삶의 딜레마를 안고 가는 힘

[극장옆소극장]

니체를 읽는다고 인생은 달라지지 않는다
. 삶에 관한 엄청난 유용성 전략들을 담은 가슴 뛰는 잠언들이 살아 숨 쉬지만, 그 말이 현실에서 작동하기는 몹시 힘들고 드물다. 몇 몇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읽고 나니 더 혼란스러워진다고 말했을 때 나의 무능을 책망하면서도 조금은 안도했다. 그 혼란스러움이 니체가 준 선물 같다며 잘 읽은 거라고 말해주었다.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동굴과 속세와 바다를 오르고 내리고 다양한 캐릭터를 만나면서 자기 깨달음을 전달한다
. 그 과정이 녹록치가 않다. 예기치 못한 상황에 차라투스트라는 실망하고 병들고 회복하고 고뇌하고 방황하고 의심하고 성찰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길을 떠난다. 이 같은 상승과 하락의 과정에서 자기 확신에 찬 목소리들이 팽팽히 대립한다. 차라투스트라와 동물들, 차라투스트라와 보다 높은 인간들은 같은 듯 다른 얘기를 말하면서 무척이나 헷갈리게 만든다. ‘그래서 니체가 말하고 싶은 게 뭐야...’ 불만스러울 정도로 개념과 가치를 흔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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