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전 '밀양을 살다' 서울와우북페스티벌 어게인

[사람사는세상]

3년 전, 연구실과 한 공간을 쓰던 별꼴카페에서 김진숙 지도위원의 한진중공업 투쟁 사진전 '사람을 보라' 전시를 했었다. 과정이 쉽지는 않겠지만 어려울 일도 아니란 생각에 덥석 진행했다가 당황했다. 손 가는 일, 돈 드는 일이 많았다. 특히 사진작가들이 감당해야할 몫이 거의 다였다. 옆에서 괜히 일손 거들면서 미안함에 쩔쩔맸었다. 시간과 공을 들이는 걸 보자니 안타깝지 뭔가. 내가 초청전시를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전시를 뚝딱 대행할 능력도 없으면서 무리수 두지 말자 다짐했건만, 그걸 까먹고 또 '밀양을 살다' 사진전을 욕심 냈다. 비유가 거창하지만 첫애 낳을 때 산통을 망각하고 또 둘째아이 낳는 사람처럼 -.-;

 

오늘 밀양을 살다 사진전 세팅을 완료했다. 작가분들 5명이나 와서 완전 고생했다. 이사하는 집처럼 어수선한 풍경에서 이삿날 인부들처럼 땀 흘리는 작가들 볼 때는 미안하다가 모델하우스처럼 말끔하게 변신하는 과정, 벽에 사진이 걸리고 할로겐 램프가 켜지는 걸 보니 마술처럼 신기하고 뿌듯하다. 일전에 류가헌에서 했을 때보다 공간감이 더 깊고 너르니 여기가 밀양이라는 실감을 안겨주고 여느 전시회 못지 않은 기품까지 갖춰져 발걸음이 숙연해진다.이게 다 자본에 굴복하지 않는 밀양 할매할배들의 격조있는 삶의 힘 덕분이다.

 

"저희 3년 만에 다시 또 이렇게 뵙네요" 한 작가와 인사를 나누며 머쓱하게 웃었다. 세월이 흘렀는데 같은 자리에서 같은 임무를 갖고 재회했다. 한진중공업 사진전, 밀양 사진전, 누가 알아주지도 돈을 주지도 않는 현장을 가서 작업을 하고 그 사진을 여럿이 나누기 위해 품을 들인다. 고되고 치열한 현장을 기록하는 다큐멘터리 사진가들이 있어 든든하다. 안에 들어가지는 못하는 나는 주변을 맴돌며 이렇게라도 끈을 잇고 조금의 마음의 빚을 던다. 그렇게 별일 없는 삶에 가끔 별일 만들며 산다. 어쨌거나 세상은 마구 흘러갔지만 그도 나도 급류에 떠내려가진 않았다. 다시 만난 걸 보니 그간 아주 멀리 벗어나지는 않았구나 싶으니 밤중에 종아리 퉁퉁 부어 돌아가는 이런 삶에게 고마웠다.

 

# 전시만 하기 아까워서 도모한 잔꾀. 전시 안에 강연 있다~~~  

 

 

마지막 후기- 글쓰기와 건강과 축제

[글쓰기퍼주기]

우니님한테 여러 번 놀랐어요. 수업 중반이 넘어가도록 단 한번 도 과제를 안 해오면서도 어떤 죄의식도 없어서 신기했고, (대개는 빈말이라도 과제 못해 죄송하다는 말이나 왜 못했다는 변명 등을 하거든요) 막판에는 마치 줄곧 과제를 해온 사람처럼 천연덕스럽게 9, 10차시 글을 써내어 유종의 미를 거두는 점에 놀랐네요. 길들여지지 않았고 구김살 없는 성정이 부럽습니다. 글도 잘 썼어요. 일베; 친구들과 논쟁하는 부분 설득력 있고요. 선동적 어투가 글의 내용과 들어맞았어요. 감정과 이성의 분리적 사고에 대한 논파, 권력자의 입장에 자신을 대신하는 모순적 태도 등에 대한 대응논리는 평소 공부하고 논쟁하면서 가다듬어 진답니다. 논쟁에서 대해서 글을 써보는 건 사유의 균형을 잡는 데 있어서 참 좋은 방법이에요. 뒷심의 여왕, 우니님의 앞날을 기대하고 응원해요.

 

 

답 없는 물음을 안고 사는 사람은 얼마나 고귀한가. 그걸 보여주는 글이었어요. 대개 생의 중요한 문제는 답이 없죠. ‘도대체 어떻게 살아야해같이 살아가는 법, 사랑하는 법, 공부하는 법. 숱한 시행착오를 거치는 과정에서 물음을 던지고 회의하고 방황하고 시도하고 좌절하고 또 꿈을 꾸고, 그러는 게 아닐까요. 세월호 사건 이후, 세월호 안을 살아가는 내복곰님의 심정이 잘 묻어나는 글이었어요. 뭐가 불편한지도 잘 드러났고요. 아이들과 잘 살아보려니 헷갈리죠. 이게 맞나 저게 맞나. 괴테가 그랬나요.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한다고. 답을 찾아야 슬퍼할 수 있는 게 아니라, 답이 없는 문제라는 걸 삶의 직관으로 아니까 슬픈 거 아닐까요. 사랑이 많은 내복곰님. 좌충우돌 아이들과 햄볶는 일상 이야기를 이제 못 본다고 생각하니 아쉬워요. 삶의 기예를 가르치는 교사 내복곰님 멋지고 존경스럽습니다.

 

 

실험정신이 뛰어난 나비님. 글쓰기에도 가 필요하다고 말하곤 했는데 그걸 잘 보여주신 분이세요. 남과 다르게 쓰겠다는 마음, 남들이 쓰는 건 쓰지 않겠다는 다짐이 글을 특별하게 해주니까요. ‘아무것도 달라져있지 않은 이곳이라는 말이 쿵했어요. 어쩐지 쓸쓸한 예감을 줍니다. 도발과 일탈을 꿈꾸지만 삶의 관성은 무서우리만치 견고하죠. 나비님 글에 언뜻 드러나는 생에 대한 욕망과 사랑에 대한 갈망. 푹풍전야 같은 긴장이 좋아요. 그런 긴장을 안고 살아가는 한 나비님만의 특별한 글을 쓸 수 있을 거예요. 플롯 포퍼머에 관한 글도 써보세요. 아무도 가지 않는 길, 권위에 갇히지 않는 예술을 실천하는 일들은 여러 사람들과 나눌만한 재밌는 글감이 될 것 같거든요. 마지막에 나비님스러운 글을 볼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연주를 못 들어서 아쉬웠지만 다른 곳에서 또 기회가 있을 것 같아요. 왠지 그래요.

 

 

포항막회 가서 막 뭉개버리라고 말한 게 제가 생각해도 웃기고 뻔뻔해서 미안하기도 하고 그러네요. 아줌마가 되면 원래 남의 인생에 간섭하길 좋아하게 되거든요. 그건 아니고, 톰슨가젤님이 행복하였으면 좋겠어요. 바늘 하나 들어갈 틈도 없는 완벽주의든 내성적이든 수동적이든 적극적이든 자기 돌봄의 방편이냐 아니냐가 관건이겠지요. 자기를 헤치는 완벽주의라면 문제고 자기를 살리는 그것이면 좋은 거고요. 어릴 적 자기와 대화를 지속적으로 해가면서 마음의 응어리 풀어가고 다독이고 친해지면 좋겠어요. 원래 자기 안에는 다양한 연령대의 자기가 살고 있다고 하잖아요. 또 성실함과 섬세함과 집요함과 분석력 등 훌륭한 덕목을 많이 가졌으니 저는 베짱이 근성도 가지셨으면 한 거고요^^ 암튼 그것들이 톰슨가젤님 삶과 연애를 돕도록 조형술을 발휘한다면 더없이 좋을 것 같습니다. 다음에는 멋진 연애담 소식 듣고싶어요.

 

 

해방촌 화제작. 저예산 청년영화-시선이탈. 제출일로부터 무려 56일 전 상영. 진심으로 고맙습니다. 경선씨 역시 이례적으로 첫 시간과 마지막 시간에 글을 발표했는데 그 사이 글이 밀도가 생기고 문제의식도 표현되는 등 좋아졌어요. 독자를 의식하고 썼다는 말에 비밀이 있었네요. 독자를 생각한다는 건, 나 아닌 남을 고려하는 윤리적인 행위입니다. 내 안에 또 다른 나를 깨우는 일이기도 하고요. 이 글이 세상에 나와서 남에게 어떤 작은 가치와 도움이라도 줄 것인가, 하는 인식의 환기를 계속 가져간다면 경선씨는 개성 넘치고 유머러스하고 멋진 글쓸 수 있어요. 글은 삶을 담으니까요. 이처럼 남이 나를 보는 시선은 약이기도 하고 독이기도 하죠. 그 판단을 잘 하는 게 어른스러운 것일 테고요. ‘사회에서 살아있는 사람이고 싶다는 경선 씨의 외침, 터널을 달리는 기개, 어디든 연극무대로 만드는 프로정신과 천진난만함 꼭 잊지 말아요.

 

 

수학을 잘하는 사람은 많지만 수학에 대한 학문과 사람 등 폭넓은 글을 쓸 수 있는 삶은 흔치 않아요. 어떤 구체성이 담보될 때 초롱샘 글이 초롱초롱 빛나곤 했어요. 나눗셈이 수포자의 관문이라는 것도 그렇고, 수학공부 하는 엄마들의 리얼한 이야기도 그랬고요. 반면에 큰 이야기를 듬성듬성 하는 일반론은 누구라도 글을 맥 빠지게 하죠. 재밌게 매일매일 시간을 정해서 하는 습관을 가져야한다, 는 것보다는 왜 수학이 습관적으로 공부하기가 힘이 드는지가 글감이 되어야 합니다. ‘라고 생각하고 아이들을 관찰해서 사례를 수집하고 변화를 기록한다면 초롱샘의 군더더기 없는 문체가 가장 수학적인 글로 만들어줄 거예요. 선생님이 수학공부에 흥미를 느꼈던 과정도 궁금해요. 가장 좋은 글감은 자신. 초롱샘의 수학에 대한 글부터 찬찬히 써보세요. 어떤 영감을 얻을 수 있으실 거예요.

 

 

예술가의 시선과 감각의 아름다움을 보여준 벌꿀님. 스케치하듯 슥슥 그려내는 것 같은 말들이 때로는 몽환적인 때로는 사실적인 어떤 세계로 데려다주곤 했습니다. 다른 세계를 경험하게 해주는 건 예술가의 몫이죠. 고마웠어요. 인식의 섬세함, 감각의 정교함은 분명 벌꿀님만의매력이자 미덕인데 그것이 또 어느 지점에서 툭 끝나버리는 아쉬움도 드는 것 같아요. 예전 일기와 인용구절이 마치 벌꿀님의 그것처럼 자연스럽게 녹아내리긴 했지만, 한 호흡으로 벌꿀님의 언어로만 길게 써내려간 글도 한번 보고 싶다고 생각해봅니다. 어머니들은 어떻게 자식의 몸을 닦는 법을 배웠을까. 같이 울컥 한 시절을 건드리는글을 양껏 보고 싶은 욕심이랍니다. 영혼 정화되는 글 같이 읽을 수 있어서 행복했어요.

 

 

집과 관련된 글을 자주 쓰고 잘 쓰는 이슷. 고시원 문학의 박민규처럼 이슷도 자기세계가 있어요. 사회적인 문제의식도 있고 개인적인 울분도 있어서 글이 파닥파닥 하죠. 자기 삶의 기반에 근거해서 글을 쓴다는 것, 늘 마주하는 것에 대해 예민한 눈을 갖는 건 좋은 미덕입니다. 근데 한번 꼬아서 말하고 비유해서 말하는 이슷만의 어법이 개성이 강해서 그게 적절하게 표현되면 멋진 글이 되고 그렇지 않으면 지저분한 글이 되는 거 같네요. ‘네 알겠습니다. 잡놈아는 통쾌하고 너는 이 자유로운 세계의 도덕을 뼛속까지 익힌 우등생이로구나는 헷갈려요. 자유로운 도덕이라는 말이 모호하거든요. 차라리 자유주의자의 도덕이 맞는 게 아닐까. 다음에 나오는 저들의 애티튜드계몽발언에도 그렇고. 표현을 조금 정확하고 정교하게 하는 연습을 해보길 권해요. 세상에 단 하나 폴리우레탄 폼 같은 이슷의 글이 부글부글 끓어오르다가 아름답게 마무리되는 장면을 상상해봅니다.

 

 

준혁샘 막판에 바쁘셔서 글 못 봐서 아쉽습니다. 뭔가 조금의 방향전환이 일어나고 있었는데 말이죠. 일단 꼼꼼하고 성실한 분들은 글이 계속 나아지므로 걱정하지 않습니다. 혼자 쓰지 마시고 합평하는 기회를 가지세요. 엄격한 틀이 있는 회사 일에 갇히기엔 아까운 젊음. 더 넓어지는 준혁샘의 모습을 기대합니다.

 

 

무릎 꿇고 헤어진 남친 집 앞에 죽치고 있는 강여사님이 상상되지 않아요. 누구 말대로 천사 같은 얼굴을 하고; 미저리처럼? 글에도 그런 반전이 있으면 훨씬 매력적일 텐데요. 글은 현실에 비해 너무 조신하고 고상해요. 더 끼를 부려보세요. 더 솔직하게 써내려간다면 강여사 표정처럼 훨씬 풍부한 느낌이 살아날 거예요.

 

 

교양있는 우리아이를 위한 세계명화집에 나오는 그림 속에서 나온 듯한 선유님. 말씀이 많이 없으시고 늘 긴 머리에 시선을 아래로 늘어뜨리고 앉아있으시니 유화로 그린 소녀 같았답니다. 그 모습이 없는 마지막 시간은 섭섭하고 허전했습니다. 초반에는 문장과 문단이 다소 어수선했는데 중후반으로 갈수록 말끔하고 섬세해져서 놀랐어요. 선유님만의 냇물같은 문체가 냇물같이 이어지면 좋겠어요. 계속 글 쓰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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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제는 못해왔지만 뒷풀이까지 자리를 지킨 선미샘이랑 의리 있는 밀애님. 문자로 안부를 전해온 효진님이랑, 격주로 얼굴 보여주고 잊지 못할 김밥 싸주신 맑음님. 마지막 인사 못 나누어 아쉬운 천연나방님. 어딘가에서 수줍게 미안해하고 있을 것 같은 민지님이랑 민혜님이랑 해터님, 더 앞서 다리님, 인연은 짧거나 아쉬웠지만 같이 수업하면서 나눈 말들, 눈빛들, 글들 고맙습니다. 덕분에 무심코 지나칠 것들을 느끼고 사람에 대한 이해도 배울 수 있었습니다.

 

 

뒷풀이 할 때 벌꿀님이 물으셨죠. 매 기수마다 사람이 바뀌는데 어떠냐고요. 매번 새로 사람과 연애하는 바람둥이 같은 느낌이 들어요. 어떤 존재에 몰입하고 집중하고 상황이 변화가 많고 설렌다, 빈자리가 크게 느껴진다는 점에서 글쓰기는 사랑과 유사성이 있거든요. 9기는 어떠냐고 묻기도 했는데 딱 떠오르는 느낌은 '조용하고 착하다입니다. 글쓰기 수업이 갖는 공통적인 정서인 진지함 친밀감 정서의 파고가 있는데 이번에는 전체적으로 사려깊고 오순도순 했던 듯해요. 말씀이 없으시고 댓글을 잘 안다는 특징? ㅋ 엠티를 못 가서 아쉬운데요, 엠티를 제가 같이 신경 쓸 수 있는 상황이 못 되고 반장한테 과부하가 걸리는 일이라서 선뜻 추진하지 못했어요. 저 축제 끝나면 언제 날 잡아서 봐요. 이슷 졸라서 번개치자고 할게요. 뒷끝 있는 만남. 늘어지는 인연 좋습니다. ^^ (얼굴을 오밀조밀 마주한 모습, 저 뒤에 벌꿀님도 보이나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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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이번주 계속 야근하고 주말에도 일이 있어서 이대로 가다간 후기를 한달 지나서 쓰는 불상사가 생기겠구나 했는데 오한과 근육통이 생기는 몸살이 나버렸어요. 어젯밤 9시부터 오늘 오후 5시까지 회사도 못가고 병원도 못가고 침대에 찰싹 붙어있었어요. 몸이 안 일어나져서 내리 잠만 잤어요. 계속 아프면 축제 못할 거 같아서 병원에서 근육주사; 한 대 맞고 약 먹고 정신이 좀 들어서 밥도 먹고 후기도 씁니다. 두통이 심하니 머리를 들 수가 없었고 책도 못보겠더라고요, 책상에 앉을 수 있는 게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새삼 알게 되었네요. 그간 그래도 건강해서 글쓰기 수업도 9기까지 할 수 있었고 책도 읽을 수 있었구나 감사한 마음이 들었답니다. 건강하게 지내다가 우리 또 만나요.

 

 

, 이번 축제 추천 프로그램. 103일 금//일 삼일간 100여개 출판사가 참여하는 거리도서전이 열려요. 오시면 책 싸게 살 수 있어요. 3일 금요일 3~5시에 상상마당 4층에서 정희진선생님의 좋은 사람과 좋은 글의 관계강연 있고, 저녁 6~8시에는 같은 장소에서 황현산, 심보선, 김소연, 황인찬 시인이 시심토크를 엽니다. 이때 오시면 이번 축제를 위해 특별히 제작한 예쁜 시집 드려요.104일 토요일 2~6시에는 책읽기가 혁명이다, 국제포럼 열리고요. 여기도 좋은 글 담긴 자료집 나가요. (제가 이 책 두권 만들고 뻗은 거임) 암튼, 서울와우북페스티벌 검색하면 사이트에 프로그램 와르르 나오니까 골라서 보러 오세요. 전화주시면 제가 뭔가 좋은 거 챙겨두었다가 전해드릴게요. ^^

 

9차시- 헛소리가 참말이 될 때의 경이

[글쓰기퍼주기]

수업 시작하기 전에 테이블에 모여 앉아 잠시 수다를 떨었습니다. 남산에서부터 불어오는 선선한 가을바람 맞으며 현재 상황 그분과 밀땅중이신 나방님의 고민을 듣고 말을 나누었는데요. 남자는 다 그래! 남자는 왜 그래? 결혼은 하는 게 나은가 아닌가하는 참으로 젠더적 규범적 편견에 얽매인 허망한 말들이었죠. 자기가 살아봐도 모르는 어려운 문제, 김수영의 표현을 빌자면 헛소리에 불과했지만 헛소리도 반복하면 진실의 문으로 들어갈 수 있다고도 김수영은 말했습니다. 그렇죠. 우리 삶이 매양 공회전하고 중구난방이고 헛발질 같은데 삶을 표현하는 말들이 그와 같지 않다면 거짓이겠지요. 그래도 그런 삶에 질서와 의미와 향기를 부여하기 위해 균형을 잡기 위해 김수영은 글을 썼고, 우리도 글을 씁니다. 몸부림이죠. 안간힘 제 9라운드가 시작되었습니다.

 

시크하고 인정 많은 도시여자 맑음님의 글. 글도 그렇습니다. 랩처럼 툭툭 내뱉는 문장들이 삐딱한 시선이 있어서 긴장하면서 읽게 돼요. 그런 관점이 어디서 기인한 건지, 구체적으로 필자의 문제의식이 무언지가 알 수 없고 난데없이 자기혐오로 마무리되어서 글이 맥이 탁 풀려요. 그걸 고백투의 문장으로 구구절절 표현하라는 게 아니라, 자기에 대한 정보나 누설이 너무 없습니다. 그 부분에서는 너절해진다’ ‘지켜냈다’ ‘혐오한다같은 감정적이고 추상적인 단어로 숨어버리는 듯한 느낌이 들고요. 사건에 대한 묘사를 뒷받침 해주는 자기 생각이나 판단의 부분에서 더 물고 늘어지세요. 삶에 내재된 긴장이 글에 반영된다면 글 전체에 힘이 돌 것입니다.

 

목울대의 떨림과 일시정시가 매력인 이슷의 낭독. 글자 빽빽한 4페이지짜리 글을 읽고 났더니 같이 긴 여행을 한 것 같아요. 가파른 계곡도 만나고 넘어지고 그 김에 숲에서 큰 대자로 누워 하늘의 별도 바라보고 검고 시커먼 것이 나와 냅다 뛰기도 하고 그리고 오롯이 걸으며 끝났네요. 6기 때 처음 쓴 글에서 행간에 맴돌던 힘이 불쑥불쑥 힘줄처럼 튀어오르는 게 보였는데 이번 글은 그 맺힘을 전체적으로 고르게 잘 녹여냈습니다. 한 가지 주제로 오래 붙든 집념과 시도가 일궈낸 거죠. 자기 느낌과 생각, 문제의식을 표현하는 게 한결 매끄럽고 독창적이에요. 폴리우레탄 폼. 누구나 손쉽게 막을 수 있는 구멍과 균열. 사람 사는 집집마다 저것이 필요하다는 해석과 비유는 참 탁월하고 적절합니다. 꾸준한 글쓰기가 이슷을 어디로 데려갈지 보고 싶습니다.

 

한 페이지짜리 글에서 몇 번을 키득거리게 하는 게 내복곰님 글의 매력입니다. ‘마치 앞 쥐는 뒷 쥐가 달려오니까 앞으로만 뛰는북유럽 들쥐 레밍의 이야기 같은 표현이요. 또 불평이 품격 있어 보였다, 스스로 할 수 있는 힘을 길러주는 게 아니라 스스로 무력해지도록 만드는 방치다, 같은 인식은 날카롭고요. ‘인권부장님 왜 저렇게 해맑게 앉아계셔. 화장 하나도 안 번졌어.’는 감정표현이 살아있습니다. 아이들의 파닥거리는 날개짓이 눈에 선연해요. 그 아이들과 더 멀리 더 높이 자유하고 싶어하는 내복곰님의 고민, 소심함도 재미납니다. 그 인권부장님과의 갈등이 고조되어 흥미롭게 따라갔는데 마지막에서 그래도 나를 보면서 흐뭇하게 웃어주신다. 어른이시다.’라고 끝나니까 너무 가파르다는 느낌. 아름다운 급마무리 같아요. 이 부분을 갈등인 채로 남겨두는 열린 결말도 괜찮아요. 내복곰님은 아이들과 동료 교사들 사이에 벌어지는 일들. 시트콤의 발랄함과 다큐의 진지함이 공존하는 혁신학교 이야기를 오마이뉴스에 연재해보실 것을 권합니다. 이번 글이 그동안 글 중에 가장 완성도가 높습니다.

 

수민이, 성수, 건이의 이야기. 학원을 다니는 건 아이들인데 아이들의 영혼이나 목소리는 없고 십인십색 엄마들의 요구가 드세네요. 누구는 과제를 빼달라, 누구는 또 더 내달라. 이런저런 사례들이 나열된 것만으로도 한국사회 교육문제, 사교육의 현실, 엄마들의 욕망이 적나라하게 드러납니다. 학원 다니는 엄마들, 이라는 제목으로 시리즈물 한번 써보시죠. 흥미로울 것 같습니다. 한명 두명 아이나 엄마와의 개성과 특성을 잘 살려보세요. 성급히 판단하기보다 관찰을 기록하면 좋은 르포르타주가 될 거예요. 다만 초롱샘의 사유의 호흡이 조금 더 길어야합니다. 나를 장사치로 생각하는 걸까, 피곤하고 고독하다에서 더 나아간 무엇. 유사한 사례의 정보나 인식이나 그 현실에서 사유를 확장시켜 나가는 연습을 한다면 글이 더 탄탄해지겠지요.

 

오랜 침묵 끝에 나온 글. 나는 왜 글쓰기 강의를 신청했는지는 자신에게 궁금할 정도로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이 없다는, 우니님의 선언은 무척 도발적입니다. 그런 깡다구와 솔직함이 좋아요. ‘글쓰기에 필요한 집요함과 결핍이 없다, 는 자기분석까지. 근데 좀 불친절 합니다. ‘떠나버린 그분에 대한 이야기가 빠져있고요. 현장에서의 반짝거리는 날들에 대한 진술은 홍은전 선생님에게 빼앗겼다고 해버리는 건 독자에 대한 배려가 없는 태도입니다. 진실함이 안 와 닿으면 섭섭합니다. 만약 누군가의 글에서 내가 하고픈 말 괴테가 다했다, 그러고 끝나면 장난하는 거 같을 것입니다. 더군다나 우니님의 일상과 생각과 느낌을 공유하기 위해 턱 고이고 있는 동료들에게 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 쓰느라 욕보셨고요. 마지막 편, 기대합니다.

무려 몇 건의 이별이 나오는 글인데 선유님 특유의 잔잔함이 있네요. 가슴을 압박하는 통각이라고 하셨는데 글이 좀 지독하면 좋겠어요. ‘있던 사람이 없어진다는 것. 내 삶에 아직 그 사람이 있는데 없다고 하는 것이게 강력한 순간이었다는 게 설명이 아니라 독자도 통각이 느껴지게요. 나는 생애 최초로 내가 가지고 싶은 것을 정말로 가지기 위해 노력했다.’ 역시 사례를 들어주어야 합니다. 정말 노력했구나, 이번에는 이별을 만들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구나 느낄만한 단서가 이 글에서는 부족합니다. 그걸 촘촘히 그리고 세세히 다시 한 번 써본다면 선유님만이 쓸 수 있는 글이 될 것 같아요. 그리고 전화를 건 그와 존재를 다한 사랑을 할 수 있겠지요. 그러면 좋겠어요.

 

수많은 벼랑을 상상했고, 자신을 벼랑에 내몰았던 이야기. 글은 벼랑까지 온 것 같아요. 이제는 인식을 멈추고 떨어지지 않게 뒤돌아 달려가는 모습을 보고싶네요. 팽팽한 긴장의 끈을 내려놓고 세상이 주는 기울기에 몸을 맡겨보는 주인공. 마음이 편안할 수도 있고 불안할 수도 있겠지요. 희망이 근거 없는 것처럼 절망도 근거가 없음을 몸으로 확인할 수 있지 않을까요. 과거내재아인 그 아이가 맷집이 단단해진 톰슨님의 품에서 마음껏 발 구르고 뛰어놀 수 있게요. 글 자체만 본다면 고치기 이전 것, 처음에 몸을 구르는 나를 본 장면으로 시작한 글이 더 긴장감 있고 좋았어요. 치밀함과 성실함은 글쓰기에 좋은 미덕이죠. 내면을 향하는 이 섬세함의 미학이 자신과 연결된 세계를 넘나들며 글이 더 활개치고 넓어지면 좋겠어요.

 

김수영문학관에서 얘기한 그 말들에 대한 건가요. 말들에 대한 정보가 없이, 나를 벼랑으로 몰아세웠다고 하니 글과 독자가 연결될 매개가 없습니다. 화났고, 외롭고, 슬펐고, 갑갑했고 같은 설명적인 단어는 나르시스적 감상에 빠지기 쉬우므로 피해야합니다. 가슴에서 회오리치는 말들, 나를 상처주고 간 사람들을 하나씩 차례로 쏟아놓고 헤아려보세요. 한해 한해 사람사이가 어려워지는 것은 관계가 넓어지고 자아도 혼란스러워지면서 생기는 현상이므로, 자연스러운 성장통이죠. 당시는 힘들어도 단단해질 거예요. 새로운 세계로 호기심 안고 나아가고 심연을 확인하고 절망하고 고민하게 되는 상황들을 겪으면서요. 토론연극에 대한 정보와 설명 기쁨은 충분히 전달되었습니다. 그 단락은 글에도 힘이 있어요. 토론연극을 배우면서 생겨난 갈등을 토론으로 봉합하지 못하는 아이러니도 글의 긴장감을 주고요. 그런데 마지막에 물음들이 커요. 나는 누구인가, 나는 상대방과, 이 세계와 어떻게 관계 맺고 싶은가, 본인이 말한대로 큰 물음으로 도망가는 현실 회피는 이것으로 끝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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