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사진 한장

[사람,기억,기록]

제주에 강연 갔다가 손석희 씨를 만났고 사진을 찍어서 페이스북에 올렸더니 좋아요가 일천개, 댓글이 일백개가 되어가고 있다. 뭇사람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는 그는 거의 국민적 영웅인 거 같다. 실물 대면 전에 막연히 생각한 것보다 더 괜찮은 기운이 나오는 그에게 호감을 느낀 나는 새로운 책을 홍보할 겸 사심을 갖고 같이 사진을 찍었으나, 마음 한켠 꺼림칙함이 가시지 않아 생각을 정리해보았다. 


# 신체의 계급성 

손석희씨랑 사진 찍기까지 많이 주저했습니다. 일단 영웅적으로 추앙 받는 사람에 대한 근원적인 거부감이 있어서고요. 사람은 누구나 허물과 결핍을 가진 '깨진 꽃병'인데 신비화가 가능하고 필요한 사회는 건강하지 못한 사회같아요. 한 사람이 수십년 한국 언론인의 상징적 지위를 누리고 있다면 그건 당사자의 탁월함도 있겠지만 그것을 뒷받침하는 유형무형의 힘도 클 것입니다. 그는 이성애자 중산층 비장애인 기혼 남성으로서 비교적 안전지대에서 차별이나 배제의 위험으로부터 손상당하지 않을 수 있도록 보호받고 살았음을 그의 너무도 완벽한 신체-이미지가 증명합니다. 

'맥락 저널리즘'을 만들어내는 뉴스룸의 브리핑을 위해서 서너명의 작가가 투여된다는 얘길 들었어요. 그전에 14년 간 진행한 라디오 '시선집중'도 그렇고, 방송이라는 협업의 결과물이 궁극에는 전부 보여지는 한사람으로 수렴되는 구조가 저는 이상합니다. 방송작가들은 소모품처럼 계속 교체되어 문제가 되기도 했는데, 그런 것들에 대해 방송에 오래 몸담은 그는 문제의식을 얼마나 갖고 있을까 싶으면 마냥 좋아하기 힘들었습니다. 

이런저런 생각들로 손석희라는 사람에 대해 마음이 복잡했어요. 근데 막상 실제로 보니까 사람이 뿜어내는 기운이 부드럽고 사려깊었어요. 자기 좋다는 사람에게 다정하지 않을 사람 없겠지만요. 또 워낙 상식적인 태도를 보이는 존경할만한 공인이 없어서 그가 더 돋보이는 것일테지만 잘 나이 든 근사한 어른을 보는 것 같아서 마음이 설렜습니다. 자기 업에 자부심 있고 개혁가의 면모도 돋보였고요. 수십년 한길을 간 언론인 손석희는 존경받을 만한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수십년 오직 한 길을 간 구두 장인은 손가락이 굽고 허리도 휘어 동안이 절대 될 수 없으며 월급 200만원도 안 되는 사회라는 것을 잊지 않고, 그와 찍은 사진, 추억을 기념하려 합니다. (웃으며 찍은 사진에 정색하고 각주 달아서 죄송합니다. -.-;;)


채널예스 인터뷰 "책 만드는 사람도 발언했으면 좋겠어요."

[사람,기억,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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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3월 29일은  『출판하는 마음』 이 출간된 날이다. 이틀이 채 지나지 않아 주변 사람들로부터 리뷰가 쏟아졌다. “아마 출판계 사람들이라면, 특히 마케터라면 이 책 다 읽고 있을 걸요? 서점 MD 마음 공약법으로요.”, “친구가 읽던 걸 뺏어 읽었는데, 두 장 읽고는 사야겠다고 생각했어요.” 하기야 나도 책이 서점에 풀리기도 전, 출간 소식을 듣자마자 미리 인터뷰를 청했다. 일주일을 보내며 책을 읽었다. 단숨에 읽을 수 있는 책이었지만 일부러 천천히 읽었다. 다 읽고 난 후 평을 하자면, “대한민국 출판인이 1만 명이라면, 1만 명이 이 책을 읽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이 책의 초판 발행 부수를 물었다. 2천 부라고 했다. 부수를 굳이 밝히는 이유는 출판계의 현실을 독자들이 알았으면 하는 마음에서다. 은유 작가에게 말했다. “이 책은 적어도 올해 안에 1만 부는 팔렸으면 좋겠는데요.” 작가는 그럴 리가 없을 거라는 표정으로 작게 웃었다. (계속)


http://ch.yes24.com/Article/View/35848

"돋는 해와 지는 해는 반드시 보기로"

[은유칼럼]

글쓰기 수업 시간, 연예인 지망생 아들을 둔 엄마가 글을 써왔다. 아이가 고등학교 시절 연극영화과를 지망한다고 했을 때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우리 집안에 그런 피 없다”라고 말했고, 엄마인 자신만 홀로 지지했다고 한다. 진로, 연애, 취업 등 인생의 모든 선택에서 ‘엄마는 무조건 네 편’이라는 응원에 힘입어, 아이는 원하는 대학에 들어갔고 엄마는 아들의 공연에 초대받는 유일한 혈육이자 비밀 없는 친구가 되었다는 훈훈한 일화였다. 

이 글을 본 20대 취업준비생 학인이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현실에 없는 엄마 같다, 이렇게 자식을 믿어주고 밀어주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엄마 학인은 수줍은 표정을 지으며 너무 사소한 이유라서 굳이 글에 쓰지 않았다고 했다. 사연인즉, 대학 시절 친구들 넷이 월미도에 해 지는 걸 보러 갔는데 귀가 통금 시간에 걸려 자신만 일몰을 놓치고 발걸음을 돌려야 했으니 그때 눈물을 삼키며 결심했단다. 나중에 자식을 낳으면 자유롭게 살게 하리라. 삶의 한 장면도 놓치게 하지 않으리라. 

ⓒ시사IN포토

엄마 학인의 수줍은 고백과 달리, 일몰을 볼 권리는 결코 사소하지 않다. 한 사람의 세계관을 바꿔놓을 만큼 강력하지 않은가. 직장인은 해 지는 거 보자고 벼르다가 휴가를 낸다. 안면도로 달려가고 지중해로 날아간다. 푸른 하늘 한갓지게 감상하는 것도 서툴러, 여행을 가서도 전지훈련 온 선수처럼 빼곡한 일정을 짜서 새벽부터 경치 좋은 곳을 필사적으로 찾아다닌다. 하늘, 구름, 바다, 나무, 꽃, 석양은 일 년 내내 소처럼 노동한 보상으로 접할 수 있으니 어찌 사소하다 할까. 

자연을 벗할 권리가 기본권으로 보장되면 좋겠다. 소파 방정환 선생의 글 ‘어린 동무들에게’에도 “돋는 해와 지는 해를 반드시 보기로 합시다(182쪽)”라는 구절이 있다. 물론 지금처럼 도시화된 환경에선 실행하기 어려운 일이다. 서울서 자란 나는 일출과 일몰을 주로 텔레비전의 애국가 영상으로 보며 컸다. 두 아이도 온갖 ‘체험학습’으로 돈 내고 자연에 노출시켰다. 갯벌 체험, 밤 줍기 체험, 고구마 캐기 체험 같은 것들. 그런데 푹 빠져들 틈도 없이 우르르 가서 시늉만 하다가 김밥 먹고 시간 맞춰 돌아오는 게 얼마나 부자연스러운 행위인가 이제야 알겠다. 

“무엇엔가 멈추어본 아이만이 자기 삶을 만날 수 있다. 자기 삶을 만난 아이만이 자세히 볼 수 있고, 자세히 볼 때 놀라운 삶의 경이를 만날 수 있다. (중략) 자기를 만난다는 것은 자기 흥을 만나는 것이고 그때 그 무엇에 정신을 팔았다는 말일 것이다(190쪽).” 

“좀 노는 것같이 놀아보자”

<그림책이면 충분하다> 김영미 지음, 양철북 펴냄

나는 논두렁 밭두렁 뛰어다니며 놀지는 못했지만 시멘트 바닥에서 고무줄놀이하며 엄마가 저녁 먹으라고 부를 때까지, 애들 얼굴 안 보일 때까지 ‘정신 팔며’ 놀았다. 아마 내가 그 마지막 세대가 아닐까 싶다. 시간을 잃어버리고 놀 기회를 너무 일찍 박탈당한 아이들에게 미안하다. 자기 흥을 발견할 기회도 없이 무엇에 쫓기듯 정해진 일과표 속으로 아이를 밀어넣는 부모가 나는 아니라고 말할 수 있나. 엄마 학인의 글을 보면서 뜨끔하기도 했다. 

올해 고등학생이 된 딸아이는 5월에 수학여행을 가는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수련회였다며 가지 않겠다고 했다. 놀 시간도 안 주고 극기 훈련이랑 교육만 시키는 수련회는 딱 질색이라며 다른 애들도 그러기로 했단다. 나는 무조건 지지한다고 했다. “아이들의 세계는 먹고 노는 세계(235쪽)”다. 2008년 일제고사 거부 투쟁에 나선 청소년들의 구호는 “잠 좀 자자, 밥 좀 먹자”였다. 그로부터 10년 뒤 사적 저항에 나선 딸아이의 구호는 “좀 노는 것같이 놀아보자”다. 그래, 노는 것이면 충분하다. “세상 어떤 것도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말고 관찰하라(3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