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노동은 일흔 넘어도 계속된다

[은유칼럼]

“여자는 박쥐나 올빼미같이 살며 짐승처럼 일하다가 벌레처럼 죽는다(마거릿 캐번디시).” 장송곡 같은 인용문으로 시작된 글을 읽어나간다. “남자 셋을 부양하기 위해 컴컴한 새벽길을 나서는 일이 서럽고, 아무도 눈 맞춰주는 이가 없는 낯선 건물을 닦고 화장실을 청소하는 일이 고됐을 것이다.” 엄마의 신산한 노동은 일흔이 넘도록 끝나지 않는다. 


오십 대 딸이 인터뷰한 엄마 이야기다. 나는 글쓰기 수업에서 학인들이 써오는 부모님에 관한 글을 읽으며 ‘남자는 돈 벌고 여자는 살림한다’는 가부장제 성별 분업 구도가 허위는 아닐까 자주 의심한다. 자식들 증언에 의하면, 아버지가 생계를 맡았지만 온전히 책임지지 못하곤 했다. 엄마는 식당 아줌마로, 목욕탕 매점 이모로, 백화점 의류판매원으로, 똥 치우는 간병인으로 일했고, 농사짓거나 장사했다. 그러고도 당연히 살림까지 도맡았다. 


작년에 간첩조작 사건 피해자를 인터뷰했다. 일곱 명을 만났는데 그중 여성 피해자가 두 명이다. 김순자씨는 결혼 후 잦은 외도로 ‘집 나간’ 남편을 대신해 보험설계사로 일하며 생계를 꾸리다가 간첩조작 사건에 연루돼 5년 옥살이를 마치고는 여관 청소와 식모살이를 전전했다. 삼 남매를 혼자 키웠다. 박순애씨는 당시로는 드물게 대학 교육까지 받았으나 12년 수감 생활 끝에 경력단절 여성이 되었고, 선택할 수 있는 직업은 파출부뿐이었다. 


남성 피해자들도 투옥과 낙인으로 생활고가 심했음은 잘 알려진 사실. 그 가장 노릇의 빈자리를 채운 것도 아내인 여자였다. 반찬가게나 분식점을 차려 다리가 퉁퉁 붓도록 일했고, 십수 년 생선 행상으로 자식들 공부 뒷바라지부터 남편 옥바라지까지 묵묵히 해냈다. 광주리를 하도 이고 다니는 바람에 정수리 머리카락이 다 빠졌다며 “눈물 흘려서 한강수 되고 한숨 쉬어서 동남풍 된다”라고 말하는 피해자 아내의 사연을 역사는 기록하지 않는다. 

ⓒ연합뉴스

나의 주변에서 대강만 추려도 이 정도. 여성 노동 잔혹사가 고구마줄기처럼 끝도 없이 나온다. 앞치마 두른 전업주부는 드라마나 CF에서 나올 뿐 현실에서는 드문 거 같다. 여성의 노동은 왜 기록되지 못했을까. 나부터도 여성은 임노동자 이전에 엄마나 아내로 먼저 인식했다. 노동자는 전태일이다. 노동자는 택배기사다. 남성은 허드렛일을 해도 일하는 주체로 인정받는다. 이 남성 중심의 노동사에서 여성의 노동은 늘 주변화한다. 


한번 초점이 맞춰지니 보였다. 열아홉 개 섬 사람들 이야기를 잔잔히 풀어낸 산문집 <섬>을, 그래서 나는 여성 노동 생활사로 읽었다. 계집애로 태어나 윗목에 버려졌던 딸내미, “나나 마나 한 거라는 이름을 받아 ‘쬐그만 몸뚱이’로 평생 갯일, 부엌일, 피붙이들 바라지로 살아온(98쪽)” 형도의 나 할머니. “국민학교 졸업하자마자 갯바닥으로 나갔(186쪽)”다는 우도 해녀 공명산 할머니. 웅도의 박경분 할머니는 “웅크리고 조개를 캐니까 몸이야 항상 아프지유. 오늘 갔다가 내일 앓더라도 일단은 나가게 돼유(86쪽)” 한다. “나이 들어서 물일은 못해도 손 노릇은 할 만항께(164쪽)” 칠순을 넘기고부터는 비탈밭에 약초 가꾸기로 용돈벌이 하는 세 할머니가 만재도에 살고 있다. 

<섬>박미경 지음봄날의책 펴냄

기록되지 못한 여성 노동 잔혹사 

<섬>은 숙박시설과 맛집 안내, 역사 유적 소개로 채운 여행서가 아니라 그곳에 터를 잡고 사는 이들의 목소리가 담긴 민중 자서전이다. 그리 사는 할머니들은 섧지 않다는데 읽는 나는 섧다. 퇴근이 없고 정년이 없어 평생 몸을 가만두지 못하면서도 노동자로서 최소한의 보상과 보호도 받지 못한 여성들. 자식 돌봄, 부모 봉양, 가사 노동, 남성 부양 의무까지 이중 삼중 노동을 수행하는 쪼글쪼글한 그녀들로 인해 나는 여자는 ‘고생한다’는 막연한 통념을 벗고 ‘노동한다’로 인식을 바로잡았다. 


아무려나, 제 몸 써서 일한 사람들이 갖는 삶에 대한 통찰력, 남의 몫 가로채지 않고 자기 손 놀려 ‘저금통’ 같은 갯벌 일구어 살아온 이들의 가뿐함, 그 와중에도 기역 자로 굽은 허리를 펴 “누부리 곱과(노을이 고와)(98쪽)”라며 감탄할 줄 아는 우아함을 배운다. 이 책의 최고령 97세 소무의도 윤희분 할머니는 이렇게 말했다. “농땡이가 최고야. 젊어서 일 많이 하지 마시오. 늙어서 이렇게 아플 줄 알았으면 그렇게 안 했어. 젊었을 때는 뼈가 나긋나긋하니까 물불 안 가렸지. 농땡이가 최고야(220쪽).” 


짐승처럼 일하다가 벌레처럼 작아진 몸피에서 나온 사리 같은 말, 인간다움을 추구하기에 너무도 혁명적인 그 입말을 곱씹는다. 



저작자 표시
신고

채널예스 - 하찮은 만남들에 대한 예의

[은유칼럼]

먼저 오는 버스를 탔다. 초봄 꽃샘바람이 사정없이 볼을 때리니 견디지 못해 올라탔다. 중간에 환승할 심산으로 옷에 붙은 바람을 털며 통로 안쪽에 자리를 잡던 중, 한 사람과 시선이 얽혔다. K? 어! 여기 웬일이냐며 우린 멋쩍은 웃음으로 상황을 눅였다. 우연한 상봉, 물러설 곳 없는 마주침, 기승전결의 대화를 나누기 어려운 어정쩡한 시공간. 이 불리한 조건의 만남이란 강제된 소개팅처럼 어색하다.

 

“저 이 버스 백 년 만에 탔어요.” “저도 거의 안 타는 버스인 걸요.” 어머 이럴 수가. “어디 갔다 오는 길이에요. 영화 한 편 봤어요.” “무슨 영화요? “〈맨체스터 바이 더 씨〉.” “영화 좋나요?” “네. 초반엔 좀 졸다가 울면서 봤네요.” “어디서 오는 길이세요?” “서촌에 미팅이 있어서요.” “그랬구나. 아직 거기 살죠?” “작업실 냈어요.” “와, 번성하네요.” “간간이 소식은 듣고 있었어요. 이번에 작업한 거 좋던데요.”

 

K는 디자이너다. 5년 전 작은 잡지를 만들 때 같이 일했다. 편집주간까지 뭉쳐 낮밤으로 술 마시고 말을 나눴다. 흥이 잘 통했다. K는 젠틀하고 익살맞다. 엉뚱하고 단정하다. 색깔이 다른 양말을 신되 셔츠의 단추는 반드시 목 끝까지 채웠다. 남자 사람이지만 자기 얘기를 앞다투어 꺼내지 않았으며, 가만히 듣다가 한 번씩 재치 있는 대사를 쳤다. 섬세한 개인주의자인 K는 좋은 동료였다. 일하기에도 놀기에도. 가끔 보고 싶었지만 굳이 연락은 하지 않고 그리운 대로 흘려보낸 지 어언 2,3년이다.

 

버스에 대롱대롱 매달린 K와 나. 말의 시속이 30킬로미터를 넘지 않는 대화가 끊기다 이어지다 했다. K가 입을 뗐다. “영화 보고 나서 눈물까지 흘리셨잖아요, 조용히 감동을 안고 가야 하는데 제가 괜히 방해한 거 아니에요.” 두 눈을 껌뻑이며 미안함을 표하는 K는 여전했다. 난 손사래를 치고 고개까지 흔들었다. 선의도 호의도 없이 우린 목적지로 향하는 버스를 탄 것뿐이다. 게다가 난 극장을 나와 카페에 들러 비엔나커피 한 잔 마시고 오는 길이었다. 영화를 음미했으니 괜찮다고 했다. K는 다음 정류장에서 내렸다. 제 역할이 끝난 연극배우처럼.

 

이 짧은 해후가 삼삼했다. 우연히 만난 이들의 모범 답안 같은 그것. 버스 장면을 몇 번 돌려봤다. 언제 밥 한번 먹자고 말하지 않아서 좋았다. 흔해 빠진 관용구로 인연을 복제하는 건 시시하니까. 자기가 나의 고요를 침탈한 거 아니냐고 물어봐주어 고마웠다.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사람의 말씨는 다정하니까. 기억에 검은 발자국만 남기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다음에 또 만났을 때 싫음이 올라오면 곤란하니까.

 

예정된 후배의 결혼식에 갔다. 재작년 다른 결혼식에서 만났던 후배의 동기들 서넛이 보인다. 그중에 Y도 있다. 지난 번에 이혼 의사를 내비쳤던 Y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궁금했다. 궁금한데도 연락 한번 안 하는 일이 살다보니 가능해지고 있다. 어쩐지 미안해서 직접 묻지 않고 옆에 있던 C에게 넌지시 물었다. 귀에 대고 손으로 막고 소곤소곤. “Y말야, 이혼했어?” C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때 했지” 한다. 그러더니 잠시 후 저쪽에서 다가오는 Y에게 말한다. “언니가 모르고 있어서 네 소식 업데이트 해드렸다.”

 

순간 난 뒷담화하다가 들킨 사람 마냥 저 혼자 무안했다. Y는 결혼하든 이혼하든 슬기롭고 자유로운 주체로 살아갈 여성이지만 그렇다고 이혼이 비옷에 묻은 빗방울 털 듯 간단한 문제는 아니니까, 말 꺼내는 자체가 아직 괴로울 수도 있으니까, 여기는 결혼식장이고 난 교양인이니까 조용히 말한 건데 나 빼고 아무도 조심하지 않았다. 신여성들 사이에서 나만 동그마니 구여성이다.

 

그 어중간한 만남, 결혼식 장면이 자꾸 떠올랐다. 나는 평소 ‘결혼은 행복, 이혼은 불행’이란 관습적 사고의 척결을 주장했다. 결혼식은 일생의 화창한 하루일 뿐 평생의 맑음을 보장하는 의례는 아니고 이혼은 비감한 일이지만 앞날의 불행을 예비하는 생의 절차는 아니다. 비 오는 날도 해 뜨는 날도 그냥 날씨인데 인간의 관점에서 좋은 날씨 궂은 날씨 구별한다는 스피노자의 말대로, 삶의 어떤 국면을 좋음과 나쁨으로 가르는 것도 지극히 관습적이고 현재중심적인 판단이라고 여겼다. 그런데 결혼은 축하로 이혼은 염려로 몸이 자동 반응한 것이다. 앎은 몸을 이기지 못한다.

 


일본 사회학자 기시 마사히코의 『단편적인 것의 사회학』에서 내 고민과 비슷한 상황이 나온다.

 

“우리는 좋아하는 이성과 맺어지는 것이 행복하다고 생각한다. (…) 그래서 축복한다. 결국 여기에는 좋아하는 이성과 맺어진 일이 당사자뿐만 아니라 세상 일반에 행복한 일이라는 사고방식이 전제로 깔려 있다. 이러한 사고방식, 어법, 축복의 방식은 동시에 좋아하는 이성과 맺어지지 못한 사람들은 불행하다든가, 아니면 적어도 이 두 사람만큼 행복하지 않다는 의미를 필연적으로 띠고 만다.”(111쪽)

 

저자는 두 사람의 결혼을 축복한다는 것 자체가 독신이나 동성애자에게는 저주가 된다며 “좋은 것과 나쁜 것을 나누는 규범을 모조리 갖다 버려야 한다. 규범이란 반드시 그것에 의해 배제 당하는 사람들을 산출하기 때문이다”(112쪽)라고 일갈한다. 뭔가 후련했다. 좋음과 나쁨의 전복이 아닌 규범의 용도 폐기. 누구도 소외되지 않으니 배려도 필요치 않은 상태. 누가 결혼했든 이혼했든 합격했든 실직했든 발병했든 서툰 연극 배우처럼 구는 짓은 이제 그만이다.

 

나이 들면서 체지방이 늘 듯 안 쓰는 핸드폰 번호가 쌓인다. 번호는 정리해도 인연은 삭제되지 않고 내가 피해도 삶이 만나게 한다. 사는 동안 운명을 뒤바꿔놓을 결정적인 만남은 거의 일어나지 않겠지만 신상 정보의 업데이트가 안 된 지인들과의 애매한 만남, 아니 마주침은 종종 일어날 것 같다. 

 

“우리의 인생은 (…) 어릴 적에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잘고, 협소하고, 단편적이다.”(116쪽)

 

이 단편적 만남, 하찮은 우연에 잘 임하고 싶다. 안색을 살피고 고요를 챙길 것. 앞으로 수 차례 결혼식과 장례식 그리고 무수한 대중교통의 탑승 기회가 남았다.



저작자 표시
신고

레즈비언 부부와 놀다

[은유칼럼]

여자 다섯이 짧은 여행을 갔다. 나이는 삼사십대. 농부, 활동가, 직장인, 백수 등 하는 일도 제각각. 레즈비언 부부와 이성애자 셋. 이성애자들 중 둘은 기혼, 하나는 비혼이다. 아무래도 커플이 있다 보니 중심이 그들에게 쏠렸다. 서로 자기가 맞다고 티격태격할 때는 여느 부부 같았고 손잡고 걷는 모습에선 흔한 연인이 떠올랐다. 아득한 바다보다 다정한 사람 풍경에 눈이 시렸다. 곤한 일정을 마친 밤, 술이 한 순배 돌자 사랑 얘기가 나왔다.


둘이 어떻게 처음 만났어요? 아직 연애의 꿈이 짱짱한 비혼 친구가 물었다. 십년 전 모임에서 봤어. 사람들이 스무명 정도 있는데 눈에 띄더라고. 어떤 점이? 얼굴이 동그랗고 예뻐서. 세상일에 관심이 많고 사고가 유연했어. 2차는 우리끼리 따로 가자고 했지. 얘기가 잘 통해서 시간 가는 줄 몰랐어. 자취방에 가자고 했는데. 어머, 라면 먹고 갈래요? 그날은 그건 아니었고…. 그로부터 7년째 그들은 연인이다.


사연이 한 보따리다. 친한 동창들한테 최초로 커밍아웃을 했을 때의 반응. 어떤 친구가 그러지 말고 남자랑 한번 자보라고, 그러면 달라질 것이라고 하더란다. 그래서 네가 먼저 여자랑 한번 자봐라. 네가 가능하면 나도 남자랑 자겠다고 했다고. 딸의 성정체성을 모르는 양가 부모는 ‘시집 안 간 딸’ 때문에 속 끓이다가 마흔이 넘자 포기한 거 같다고 했다. 한데 걱정이 사라진 자리에 새로운 걱정이 들어섰으니 파트너의 존재를 ‘죽고 못 사는’ 오랜 지기로 아는 엄마가 하루는 그러더란다. ○○가 너 두고 먼저 결혼하면 어떡하니?


웃기엔 슬프고 울기엔 다행인 상황. 엄마의 바람이 자식의 결혼이 아니라 자식의 행복이라면 그건 엄마가 모르는 상태로 충족되고 있으니 말이다. 독실한 기독교 집안에서 자란 그들은 커밍아웃은 포기한 상태다. 누구를 탓할까. 부모 세대는 물론 우리도 태어나면서부터 학교, 종교, 매스컴을 통해 이성애 중심의 교육을 받았다. 남녀의 결혼관계를 제외한 나머지 섹슈얼리티를 일탈이나 변태로 몰아가는 ‘강제적 이성애’를 비판 없이 수용한다. 그들 역시 자기 앎을 의심하지 않았기에 자기 정체성을 부정하는 혹독한 시기를 거쳤고 자기 몸-삶과 화해한 후에야 비로소 짝을 만난 것이다.


‘공짜 숙소’가 있다는 전갈을 받고 이틀 만에 성사된 여행이다. 차 한 대에 끼여 타고 가다가 경치 좋으면 걷고 배고프면 먹고 수시로 셔터를 눌러대는 별다를 것 없는 여정이었다. 그럼에도 은밀하고 넉넉했다. 어딜 가나 귀 따갑게 반복되는 자식 얘기, 입시 얘기, 돈 얘기, 연예인 얘기 같은 레퍼토리를 벗어나 안으로 파고든 대화들 덕이다.


일명 내면 탐사 여행. 그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이성애 가족 중심 제도에서 벗어난 레즈비언 부부와 함께 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서로를 엄마, 아내, 딸, 노동자 같은 역할의 수행자로 보지 않는 사람들과 마주앉아 존재에 관한 수다 삼매경에 빠지는 자리. 정체성이나 성욕 같은 단어를 두서없이 내뱉어도 어색하지 않고, 나는 누구이고 어떻게 살아야 좋은지 중얼거려도 민망하지 않은 배치 덕에 익숙한 나로부터 떠날 수 있었다.


집으로 돌아오니 2017년 퀴어문화축제 기사가 뜬다. ‘나중은 없다, 지금 우리가 바꾼다!’로 슬로건이 정해졌단다. 나중으로 유보될 수 없는 삶이 어디 그들뿐이랴. 인생이라는 책에서 접어두었던 존재 물음의 장. 사랑, 존재, 관계, 편견, 욕망의 페이지를 넘기도록 자극을 준 내 친구들을 만나러 오월에는 퀴어 축제로 떠나야겠다.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787903.html#csidx956910baa66b9b194d896a92ff45896 

저작자 표시
신고

티스토리 툴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