웅크린 말들 - "원하는 돈 줄테니까 덮고 가자"

[은유칼럼]

한강 다리는 서른한 개다. 하나씩 두 발로 건너보리라 언제부터 다짐했다. 아름다운 한강을 살뜰히 만끽하려는 서울내기의 욕심이고 목표였다. 성산대교, 양화대교, 한강대교, 원효대교, 마포대교, 잠실대교를 걷고 나선 진척이 더뎠다. 봄기운 깃드는 3월 6일, 반포대교를 건넜다. 삼성반도체 기흥공장에서 일하다 백혈병으로 숨진 고 황유미 11주기 ‘방진복 행진’에 참가했는데 그 구간에 반포대교가 포함돼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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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발지는 한남동 리움미술관 앞. 미술관 건너편에 붉은색 높은 담장이 보였다. 저 안쪽이 삼성 총수 일가 자택이라고 누군가 말했다. 저기가 대대손손 태평성대를 누리는 재벌보호구역이구나. 그 성벽 아래에서 백여 명이 일사분란하게 방진복을 입고 손에는 희생자의 영정을 들었다. 내가 든 영정에는 최호경, 1985~2013년, 뇌종양, 삼성LCD천안이라고 써 있다. 나이를 헤아려보니 스물여덟 생애다. 고 황유미가 스물셋. 다른 영정들도 거의 20, 30대에 생을 마감한 여성이다. 백혈병이나 뇌종양으로 세상을 떠났다.

 

“삼성은 직업병 문제 해결하라” “삼성은 산재 은폐 중단하라” 리움미술관을 나와 이태원 대로변을 구호를 외치며 걸었다. 길가에는 KUHO, 에잇세컨, Beaker, 빈폴 등 삼성그룹 의류브랜드 매장이 즐비하다. 바삐 걷던 파란 눈 외국인도, 카페를 나오던 젊은 연인도 걸음을 멈추고, 우편배달부 아저씨도 오토바이에 시동을 걸다가 힐끔 방진복 대열에 눈길을 준다. 지하철 6호선 이태원역 입구에서는 한 중년 아주머니가 나와 눈이 마주치자 나무라듯 말한다.

 

“삼성을 어여 나와요. 뭐 하러 있어. 사람이 이렇게 죽는데, 다른 데로 가면 되지.”

 

내가 삼성 직원인 줄 알았던 모양이다. “아, 저는 삼성에 다니지 않아요”, 말했더니 아주머니는 흠칫하며 “그럼 뭐 하는 사람이에요” 물었다. “삼성 직업병 문제 해결을 바라는 사람인데...” 웅얼웅얼 둘러대고 일행을 따라갔다. 녹사평역을 지나 용산구청 앞을 걸으며 생각했다. 내가 삼성 직원이었으면 직업병 문제가 있다고 해서 그만둘 수 있었을까, 나는 뭐 하는 사람이지. 왜 여기에 있지.

 

2010년 11월 8일, 내가 공부하던 연구공동체에서 삼성일반노조 위원장을 초대해 토론회를 가졌다. 삼성의 무노조 경영에 맞서 15년간 긴 싸움을 벌여온 위원장은 한 뼘 두께의 투쟁 백서와 눈물 없인 볼 수 없는 삼성 백혈병 노동자의 동영상을 보여주었다. 나는 충격과 혼란에 빠졌다. 조직폭력배들이 나오는 공포 영화처럼 끔찍했고, 전태일 평전을 읽었을 때처럼 비통했다.

 

이게 지금 우리나라에서 일어나는 일이라고? 삼성에서 노조 만들다 미행당하고 해고되고 감옥 가고 일하던 젊은 처자들이 병을 얻어 죽고 유가족이 회유와 협박에 시달리는 일들이 일어나는 것보다 그게 신문에 기사 한 줄 나오지 않았다는 게, 그러니까 1980년 5월 광주처럼 언론이 철저히 통제된다는 사실이 믿기질 않았다. 이 지독한 고립을 어떻게 견디고 싸웠느냐고 위원장에게 물으니 이렇게 답했다. 

 

“돈에만 매수되지 않으면 불가능한 게 없습니다.”

 

그날 토론회가 끝나고 밖으로 나오자마자 눈물이 쏟아졌다. 그냥 무서웠던 거 같다. 도대체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가. 아니, 이런 일이 일어나는 세상에서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나. 되물으며 걷고 걸었다. 연희동에서 목동까지 성산대교를 건너며 강물에, 하늘에, 거리에, 가슴에 내용 없는 결심들을 막 뿌렸던 거 같다. 다음 날 삼성일반노조에 월 2만 원을 후원하기 시작했다. 삼성 내부비리를 고발한 김용철 변호사의 『삼성을 생각한다』를 폈다. 삼성 백혈병 노동자를 돌보던 의사이자 활동가 공유정옥 씨를 인터뷰했다. 조금씩 알아갔고, 알게 되면 뭐라도 열심히 쓰고 썼다.

 

“애써 말해야 하는 삶들이 있다. 말해질 필요를 판단하는 것이 권력이고, 말해질 기회를 차지하는 것이 권력이다. 말하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권력과 거리가 먼 존재일수록 말해지지 않는다.”

(『웅크린 말들』 , 478쪽)

 

방진복 행진 쉬는 시간. 반포대교 북단 아래 벤치에서 강물을 바라보았다. 강남 강변 풍경이 낯설다. 낮은 병풍 같던 아파트 라인이 사라지고 주상복합 건물 네 채가 미사일처럼 우뚝하게 솟았다. 높고 높다. 며칠 전 부산 엘시티 공사현장 55층에서 일하던 노동자 네 명이 추락사한 사건이 떠올랐다. 저 휘황한 건물은 또 얼마나 많은 무명씨의 목숨을 삼켰을까. 내게 낭만의 상징이었던 한강의 서른한 개 다리들, 교각 공사라고 산재 예외 구역은 아닐 것이다.

 

다시 걸었다. 이재용을 풀어준 정형식 판사에게 항의하는 의미에서 법원 앞으로 가는 길이다. 뒤편에서 고 황유미 아버지 황상기 씨가 방송사 기자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죽어가는 딸을 뒷좌석에 태우고 달리던 속초의 택시운전사, 언제나 웃고 있는 동자승 같은 얼굴, 순한 억양의 강원도 사투리가 오늘따라 쟁쟁하다. 말하려고 노력하는, 권력에서 먼 존재의 목소리가 들린다.

 

“삼성은 저희 집에 찾아와서 ‘원하는 돈 다 줄 테니까 이 문제 덮고 가자’고 수없이 얘기해댔지만 전부 거절했어요. (...) 죽은 유미가 살아 돌아올 수 없고, 삼성에서 살기 위해 일하다가 많은 노동자들이 병에 걸리고 죽었고, 또 돌본 가족들은 가정은 파탄이 났어요. (...) 이 자리에서 일일이 나열할 수 없지만, 수많은 잘못을 저지른 삼성을 정부가 한번 제대로 처벌해본 적이 있냐고 묻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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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삼성그룹에서만 320명의 직업병 피해 제보가 있었고, 118명이 목숨을 잃었다. 2013년엔 삼성전자서비스에서 에어컨 수리기사로 일하던 서른두 살 최종범 씨가 ‘노조 인정’을 요구하며 자살한 사건이 발생했다. 유가족인 형은 말한다. “삼성 조끼를 입은 동생의 자부심도 컸습니다. (...) 동생은 개처럼 일했습니다. 스스로를 ‘여왕개미’(삼성)을 먹여 살리느라 죽어나는 일개미라고 동료들에게 말하곤 했습니다.”(125쪽) 그로부터 7개월 뒤, 염호석 삼성전자서비스지회 양산센터 분회장도 노조를 인정하라며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또 하나의 가족은 없다. 황상기 씨가 지적한대로, 삼성그룹 안에서 수많은 목숨이 사라져가는데도 경영진은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았다. 올림픽에서 스케이트 타던 선수가 팀워크만 해쳐도 60만 명이 청와대 국민청원으로 사회적 형벌을 내리는 ‘도덕의 나라’에서 삼성의 부도덕한 경영에는 죄를 묻지 않는다. 권력의 꾀임에도 굴하지 않고 존엄을 지키는 사람들, ‘돈에 매수되지 않’은 이들이 기적처럼 살아남아 삼성에서 벌어진 죽음의 진실을 전할 뿐이다.

 

오후 1시부터 5시까지 네 시간, 9킬로미터 걸어서 삼성본관 앞 반올림 농성장에 도착했다. 허물처럼 방진복을 벗고나자 갑자기 발바닥이 아려와 나는 황급히 택시를 탔다. 안락하게 앉아 건너는 한남대교는 그리 비관적이지 않았다. 일상으로 돌아가면 또 잊고 살겠지. 다리든 빌딩이든 산재 사고가 발생하면 자그마한 사망자 위령탑이 세워지면 좋겠다. 나는 삼성제품을 사용하지 않은 지 오래됐지만, 삼성 TV나 에어컨, 핸드폰 사용설명서 한 귀퉁이에라도 이 제품을 만들다가 돌아가신 이들 이름 석 자 새겨주면 좋겠다. 고인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우리 생활 터전이, 문명의 편리가 누군가의 죽음에 빚지고 있음을 기억하도록.

 

*채널예스에 실림



여자들은 왜 늘 반성할까

[은유칼럼]

북토크 자리에서 한 20대 여성이 질문했다. 친구들과 수다 떨다 보면 남자들 외모 평가를 하게 되는데 페미니즘을 공부한다는 사람이 그래도 되는지 양심에 찔린다는 거다. 나는 우선 드는 생각을 얘기했다. “이렇게 자기 행동을 객관화하는 분이라면 타인을 대상화할 가능성은 적어 보이는데요.” 이성애자가 이성에게 관심을 갖고 표현하는 행위는 자연스럽다. 다만 허벅지, 가슴, 허리, 다리, 입술 등 ‘신체 부위별’로 쪼개서 사람을 보다 보면 ‘통합적 인격’으로 보지 못하고 사물화하게 된다. 단톡방에서, 술자리에서, 컴퓨터 앞에서 외모 평가를 일삼다가 실제로 만난 사람을 사람으로 존중하지 못하고 그 사람에게 (성)폭력을 휘두르는 일까지 발생한다. 

이것이 문제다. 쟁점은 외모 평가 자체라기보다 ‘누가 외모 평가를 하느냐’ ‘그 외모 평가가 무엇을 파생시키느냐’다. 미국에서 총기 사용이 전 국민에게 허용되지만 가해자의 90%는 남성이라는 통계를 일례로 들려주었다. 페미니즘이 외모 평가를 금지하는 매뉴얼이 아니라 어떤 말과 행동이 놓인 상황과 맥락을 다층적 관점으로 헤아리는 공부라고 할 때, 외모 평가라는 행위 자체만 떼어놓고 죄의식을 갖는 건 올바른 접근이 아닐 것이다. 

ⓒ시사IN 신선영

사실, 그날 내가 느낀 문제점은 따로 있었다. 여자도 외모 평가를 한다는 사실이 아니라 그조차 왜 여자는 반성을 할까 하는 점이다. 여성은 ‘자기 처벌’ 정서에 익숙하다. 아버지들의 경제적·정서적 무능, 가정 폭력에 대해서도 어머니들은 뒤돌아 가슴을 치며 ‘내 팔자다, 잘해주면 돌아온다, 남편 복이 없어서 그렇다’고 말했다. 성폭력 피해를 입은 여성들도 ‘밤늦게 술자리에 있어서’ ‘여지를 주어서’라며 자기 행실을 먼저 되돌아본다. 외모 평가를 당할 땐 참아도 외모 평가를 행할 땐 가책을 느낀다. 나도 젠더 이슈로 불화를 겪으면 내 언행부터 점검한다. 말이 공손하지 못했나, 너무 민감했나 수없이 자책한다. 

여성의 신체는 거의 자동 반성 모드다. 왜들 그럴까. 남성 지배적 문화에서 여성은 불합리한 상황에 자주 노출된다. 그때마다 시비를 가리고 싸우고 상황을 바꿔내려면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든다. 남자는 원래 그런 종족이고 여자는 원래 그렇게 사는 거라고 배웠다. 원래 그런 것을 두고 왜 그런지 뿌리부터 따지자니 어렵고 복잡한데, 문제의 원인을 자신에게 돌리는 건 쉽고 간단하다. 자기반성으로 상황을 무마하고 또 일상을 살아가고, 그랬던 게 아닐까 싶다. 

왜 여성은 ‘자동 반성 모드’여야 하는가 

홍성수 지음, 어크로스 펴냄

이 같은 여성의 습관적 반성과 침묵으로 다져진 성차별의 역사에 균열이 일고 있다. 여자도 말을 한다. 남자의 외모와 언행을 평가하고 되갚는다. ‘김치녀’라는 공격에 ‘한남충’으로 맞불을 놓는 일명 ‘미러링’이라는 흐름도 생겼다. 이는 후련함과 통쾌함도 주지만 앞서 질문한 여성이 느끼는 것처럼 혼란과 불편도 남긴다. 나도 처음에는 여성들이 구사하는 거침없고 도발적인 말들이 낯설고 어색했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미러링은 혐오가 목적이라기보다 뒤집어 보여주기 (213쪽)” 위한 수단이다. “여성들의 저항이 중요한 것이지, 미러링이라는 형식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이제 반성과 검열의 삶과 작별하고, 욕이 섞여 있든 비논리적이든 울먹이든 막무가내든 말하는 주체의 탄생에 박수칠 때다. “비하적인 혐오 표현에 대해 웃어넘기거나 침묵하지 않고 조목조목 문제점을 따지(222쪽)”는 목소리가 ‘정상’이고 ‘일상’이 되는 현실에 모두가 길들여져야 한다. 섣부른 반성과 침묵으로 복잡한 삶의 문제에서 도망가지 말아야지 다짐한다. 



딸 없으면 공감 못하나

[은유칼럼]

여자들과 달리 남자들은 동성 친구에게 힘든 얘기를 잘 안 한다고 남자 지인이 말했다. 그 자리의 네댓 명이 대체로 동의했다. 내 아버지나 남편, 동료들을 봐도 결정적인 고민은 남들과 공유하지 않는 눈치였다. 나는 힘든 일이 생기면 친구랑 전화통 붙들고 운다. 친구의 긴급 호출도 물론 온다. 이런 차이가 어디서 오는지, 왜 그런지 토론했다. 한 중년 남성은 사회생활의 경쟁 시스템에선 하소연이 곧 약점이 되어 불리하니까 숨긴다고 했다. 

여자들의 고민 공유, 즉 수다는 약자들의 연대라고 나는 말했다. 말해봐야 잃을 것도 없고, 말이라도 해야 후련하니까. 일종의 궁여지책이다. 품앗이처럼 말하고 들어준다. 그러면서 나만 그런 게 아니구나 타인의 처지도 공감하고 현실을 받아들이고 또 하루를 살아간다. 난 어려서부터 엄마가 친지랑 전화 통화하는 걸 엿들으며 여자의 일생을 배웠다. 이런 소소한 일상의 누적이 여성의 공감 능력을 신장시켰을 거다. 반대로 ‘센 척’하느라 말하고 듣는 과정을 의도적으로 생략한 남성은 공감 능력을 학습할 기회가 없었을 테고. ‘수다’를 떨지 않는 아버지들은 풀어내지 못한 자기 고충을 ‘주사’로 토한 것도 같다. 

모든 존재의 행위는 저 살려고 하는 일. 여성학자 벨 훅스가 말한 ‘감정적 자기 절단’이 남자들 생존에 유리한 시대가 있었다. 그 긴 세월 부작용이 일상의 폭력을 낳았음을 미투운동이 증명한다. 미투운동이 일자 술렁이는 여자들에 비해 남자들은 잠잠했다. 참회하느라 그런다, 켕겨서 그런다, 조심하느라 그런다 의견이 분분하지만, 내가 볼 땐 몸치처럼 주춤했던 거 같다. 타인의 고통에 깊게 개입하고 슬픔의 장단을 맞춰본 적이 없기에 언제 어떻게 끼어들어야 할지 모르는 상태. 

그 와중에 딸 키우는 아빠로서 미투운동을 지지한다는 글을 봤다. 어딘가 궁색하고 근원이 수상쩍다. ‘아무 남자에게 내 딸 못 준다’는 말이나, 티브이 자막에 박히는 ‘딸바보’ 인증이 거북살스러운 것과 유사한 맥락이다. 자식을 소유물로 여기는 가부장 정서와 내 핏줄의 안위가 중한 가족주의에 기반한 발언이다. 그냥 단독자로서 어른 남자이기만 해서는 남의 아픔에 공감하고 연대하는 건 많이 어색하고 어려운 일일까.

평창겨울올림픽에서 헬멧에 세월호 리본을 부착한 김아랑 선수가 화제였다. 환한 미소만큼 인품이 돋보였다. 속사정을 알진 못하지만 김아랑 선수의 공감이 적어도 부모나 누이로서, 즉 혈연을 매개로 한 반응이 아니었음은 분명하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동료 시민으로서 슬퍼하고 슬픔의 인파가 빠져나간 자리에서도 묵묵히 애도했기에 울림이 더 컸다. 

한 사람의 공감 능력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계속 질문하는 중이다. 여자라서, 아이를 키워봐서, 딸이 있어서처럼 저절로 주어지는 것들이 계기가 될 순 있어도 공감의 지속 조건이 될 순 없다. 배움이 필요하다. 글쓰기 수업에 오는 어른들도 느끼는 능력을 갈구한다. 남 일에 무관심하면 ‘더 빨리 더 높게’ 사회적 성취를 올릴지 모르겠으나 자신과의 서먹함, 관계의 무능함으로 삶의 다른 한쪽이 허물어지는 탓이다. 

내가 아는 공감 방법은 듣는 것이다. 남의 처지와 고통의 서사를 듣는 일은 간단치 않다. 자기 판단과 가치를 내려놓으면서, 가령 왜 이제 말하느냐 심판하는 게 아니라 왜 이제 말할 수밖에 없었을까 이해하려 애쓰면서, 동시에 자기 경험과 아픔을 불러내는 고강도의 정서 작업이다. 온몸이 귀가 되어야 하는 일. 얼마 전 엽서에서 본 문장으로 정리하면 이렇다. ‘당신이 할 말을 생각하는 동안 나는 들을 준비를 할 거예요.’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835429.html?_fr=mt5#csidx3a639e46adcb520a719e3ecd68f74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