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유와 함께 한 모든 날이 좋았다

[사람,기억,기록]

어제 학인들에게 받은 선물. 드물고 귀한 손그림과 편지.

나중에 혼자 이런 책을 내고 싶다. '은유와 함께 한 모든 날이 좋았다.' 

나도 그랬다. '은유'는 나에게도 은유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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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인 - 끼니와 끼니 사이에 명령과 복종이 있다

[은유칼럼]

'패스트푸드로 버티는 아이들.’ 인터넷 포털 화면에 뜬 기사다. 학원 시간에 쫓겨 5분 만에 허겁지겁 컵라면을 먹는 아이들 모습과 서울 대치동 일대 편의점·패스트푸드점 풍경을 스케치했다. 학원 다섯 곳을 다니고 과외 두 개를 한다는 한 아이는 초등학교 5학년부터 ‘이런 생활’을 했다고 증언한다. 역시 ‘이런 기사’의 마무리는 전문가 의견. 라면과 패스트푸드가 성장에 지장을 초래하니 채소나 과일 위주의 식단을 규칙적으로 섭취하라고 식품영양학 교수는 충고했다.


내가 전문가라면 일몰 이후 학원을 금지하고 아이들의 식사권과 수면권 등 기본권을 보장해야 한다고 말했을 텐데. 아니다. 실은 남 얘기가 아니다. 중3인 딸내미도 일주일에 두 번 수학 학원에 간다. ‘수포자(수학을 포기한 사람)’가 되기는 아직 이르다는 본인의 선택이다. 방과 후에 주먹밥이나 과자를 사먹고 밤 8시에 학원을 마치면 집에 와서 늦은 저녁을 먹는다. 나는 부랴부랴 돈가스 튀기고 국을 데워 늦은 끼니를 대령하면서도 나쁜 현실의 공모자가 된 듯해 착잡하다. 그것도 그때뿐. 월·수·금 오후 4~5시에 집에 와서 뒹굴거리면 또 그것대로 심란하다. 월화수목금금금 학원에서 시험에 단련된 아이들과의 성적 격차가 벌어지는 건 빤한 일이기에 그렇다.


남편이 목동의 학원이 밀집된 건물 편의점에서 야간 아르바이트를 했다. 학원 교사와 원생들이 주 고객이고 밤 10시부터 새벽 2시에 몰린다고 한다. 아이들이 새벽 1~2시에 교습을 마치고 와서 도시락이나 라면을 먹는데, 고3 수험생만 있는 게 아니라 중학생도 꽤 된다고. 아이들이 매일 같은 시간에 와서 같은 종류의 밥과 음료수를 사가니 나중에는 얼굴과 메뉴가 외워지더란다. 


심야 고속도 아니고 어쩌다 심야 학원이 생겼을까. 어른으로 치면 부실한 저녁 먹고 매일 야근하는 회사에 해당한다. 수당이 없는 야근이다. 아직 성장판도 닫히지 않은 10대 아이들이 제때 먹지도 못하고 시멘트 건물 형광등 불빛 아래 종일 묶여 있다니, 늘 그래왔으니까 익숙하지만, 익숙하다고 정당화되는 건 아니다. 심야 학원은 아무리 봐도 기괴한 풍속도다.


그즈음 <먹는 인간>을 읽었다. “고매하게 세상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오감에 의존해 ‘먹다’라는, 인간의 필수 불가결한 영역에 숨어들어 보면 도대체 어떤 광경이 펼쳐질까(347쪽).” 저자 헨미 요는 이 질문을 안고 탐식의 나라 일본을 떠나 세계 15개국을 누빈다. 독일 감옥을 방문해 수감자들의 밥을 먹고, 방글라데시에서 음식 찌꺼기를 사먹는 빈민들을 보고, 필리핀 산속에서 인육을 먹은 태평양전쟁 시기의 일본 잔류 병사들 얘기도 현장에서 검증한다. 대한민국 편도 있다. 청학동에서 예절의 맛을 음미하고,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에게 비통의 맛에 관해 듣는다.


“그 세계에는 ‘끼니와 끼니 사이’라는 것이 있었다. 아침 8시에 식사를 마치면 일반 병사들이, 오후에 점심을 먹고 나면 하사관들이, 저녁 식사를 끝내면 장교들이 찾아왔다. 병참부 군인들이 가져오는 퍼석퍼석한 밥과 된장국, 단무지를 미쓰코 같은 여자들이 허겁지겁 먹고 나면 끝도 없이 그것이 시작되었다(330쪽).”


한 존재를 ‘먹는 인간’으로 바라보면 아릿함이 더해온다. 전쟁이나 재난이든 일상이든 사람은 무릇 “허겁지겁 먹고 나면 끝도 없이 행해야 하는” 그것을 수행하고 산다. 먹는 일은 때론 위안이고 때론 치욕이다. 저자가 최근에 이 책을 썼다면 청학동 대신 대치동을 가지 않았을까. 아이들에게 밥버거의 맛을 물어보면 독일 감옥의 수감자처럼 말했겠지. “맛있지도 않고 맛없지도 않지(105쪽).”


끼니와 끼니 사이 벚꽃이 난분분한 봄날, 딸아이는 말한다. “벚꽃 꽃말이 중간고사래.” 해마다 벚꽃 시즌이면 다가올 중간고사에 대비해야 하는 중·고등학생들 처지를 빗댄 말이다. 꽃을 놓치고 밥을 거르며 자란 아이들 몸에 무엇이 남을까. 패스트푸드에 길들여지는 것은 자발적 자기 착취에 길들여진다는 것이고 명령과 복종의 속도에 익숙해진다는 것이다. ‘먹는 인간’으로서 아이가 통제의 맛에 길들여지느니 부모가 초라한 성적표에 길들여지는 게 백번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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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유의 다가오는 것들 - 인공자궁을 생각함

[은유칼럼]

        “저 엄마 왜 울어?” 

        “몰라. 아까부터 울더라.”


간호사들 목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가 멀어진다. 새벽 4시 32분 아이를 낳고 나는 분만실 침대에 누워 있었다. 예닐곱 시간 산통 끝에 몸통은 거죽만 남은 듯 너덜너덜했다. 혀가 껄끄러워 입 안에 손가락을 넣었는데 노란 모래 가루 같은 입자가 묻어나왔다. 물 좀 달랬더니 간호사가 적신 거즈를 준다. 그걸 입술에 대고 있는데 눈물이 흘렀다. 무슨 스위치를 켠 것처럼 느닷없고 하염없이. 흐느낌도 통곡도 아닌 조용한 눈물의 방류를 간호사들이 본 모양이다.


이렇게 아픈데 엄마는 오빠를 낳고 어떻게 나를 또 낳았을까. 첫 아이 출산 때 정신이 돌아오고 처음 든 생각이다. 몸을 초과하는 통증에 몸서리쳤다. 그래 놓고 나는 또 둘째를 낳은 것이다. 동이 트자마자 남편이 양가에 전화를 드렸고, 엄마는 아침 7시 병실 문을 열고 뛰듯이 들어왔다. 침대에 누워 있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 얼굴 근육이 제멋대로 실룩거리던 엄마. 왈칵 눈물을 쏟으며 말한다. “고생했다. 애 낳는 게 얼마나 아픈데…”


삼칠일이 지나 산후도우미 아주머니가 가고 남편은 회사 일로 바쁘고 혼자 남겨졌다. 밤낮으로 두 아이 사이를 오가며 쩔쩔매던 어느 날, 아이를 재워놓고 방문을 닫는데 아이가 뒤척였다. 다시 토닥토닥하고 재우면 또 깨고 그러길 수차례. ‘잘 자라 우리 아가’를 입으로는 흥얼흥얼 등을 두드려주는데, 빨리 자라 좀 제발 하면서 손에 힘이 들어갔다. 등짝을 세게 한 번 내리쳤다. 손바닥에 꽉 차는 조그만 등의 느낌. 후끈했다. 그런 난폭함이 내 몸 어디에서 나왔는지 놀랐고 더 놀란 아이는 자지러지게 울었다.


“아이는 분유도 이유식도 거부했다. 끼니마다 전쟁이 벌어졌다. 제발 한 입만 먹어라, 제발. 애원은 분노로 바뀌었다. 나는 분노에 못 이겨 소리를 지르며 손에 잡히는 대로 벽에 던졌다. 아기는 놀라 비명을 지르며 울었다. 모든 게 지옥이었다.” 

한 여성이 산후우울증을 호되게 앓았던 경험을 글쓰기 수업에서 발표했다. 저 대목에서 멈칫, 까맣게 잊고 있었던 오래 전 화의 기운이 나를 덮쳤다. 행여나 들킬세라 과제물에 시선을 두었다. 낭독이 끝나고 고개를 들었더니 세상에나, 여기저기서 훌쩍훌쩍 손으로 눈물을 찍어내고 휴지를 꺼내 코를 푼다. 각기 다른 연령 대 여성들이 운다. 침묵을 깨고 한 명이 말문을 열었다. “남들은 척척 해내는 육아가 나는 왜 이렇게나 힘이 들까.” 이 문장이 특히 공감이 간다고, “그 말을 저는 남편에게 들었어요”라며 말끝을 흐렸다. 


그날 수업을 마치고 가는 길, 이 집단적 슬픔의 광경이 떨쳐지지 않았다. 지금도 육아의 고통을 자신의 모성 부족으로 탓하며 속울음 삼키는 이들이 얼마나 많을까. 내 안의 폭력 성향이 불쑥 나타날 때 어떻게 잠재울까. 문득 엄마들을 모아서 ‘봉기蜂起’를 일으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난 충동적으로 페이스북에 봉기 단상을 올렸고 댓글이 줄줄이 달렸다. 이토록 고된 육아를 불평 한마디 없이 묵묵히 수행한 선배 엄마들에 대한 원망, 육아로 인한 일상의 압박과 인격의 왜곡에 대한 토로가 족자처럼 펼쳐지는 와중에 한 줄 의견이 외롭게 버티고 있었다. ‘저도 봉기에 참여하고 싶습니다.’


내가 구상하는 봉기는 단순하다. 벌떼처럼 모여서 윙윙윙 떠들기다. 자기 공격의 악순환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다른 해석이 필요한 법이니, 내 목소리를 내보내고 내 삶에 다른 목소리가 흘러들게 하는 것이다. 육아의 기쁨만큼이나 슬픔을, 어린 생명이 주는 충만함만큼이나 자멸감을 저마다 말하기만 해도 자신이 비정상이 아님을 알고 적어도 자기 억압의 굴레에서 빠져나올 수 있다.


        나는 또 엄마들이 한 자리에 모인다면 슐라미스 파이어스톤의 『성의 변증법』을 펼쳐서 읽어주고 싶다. 그간 젠더 불평등은 근원적으로 해소될 수 있을지 난 회의적이었다. 그러니까 아무리 깨인 남자, 페미니스트 배우자를 만나더라도 여자의 몸에서 임신과 출산이 이뤄지는 한 양육에 따른 최종 책임은 마치 자연의 섭리처럼 여자에게 귀속되더라는 것이다. 여자의 몸이 무거워지는 순간 필연적으로 삶도 무거워진다. 비출산 경향도 그걸 인지한 여성들의 선택일 거다. 이에 대한 여성의 구제 방안을 『성의 변증법』 이 제시한다.


“남자는 땀 흘려 일하고 여자는 고통과 산고를 참아야 하는 이중 저주는 처음으로 인간적 삶을 가능하게 하는 테크놀로지를 통해 해소될 것이다.”(292쪽) 저자가 말하는 테크놀로지는 인공 생식의 완전한 발달을 뜻한다. 즉, 인공 자궁에서 태아를 잉태함으로써 남성도 임신과 출산이 가능해지도록 하자며 “모든 가능한 방법을 통하여 여성을 생식의 압제로부터 해방시키고 양육의 역할을 여성뿐 아니라 남성, 즉 사회 전체로 확산시킬 것.”(294쪽)을 요구한다.


스물다섯 살의 저자가 일필휘지로 써내려간 이 급진적 주장에 처음엔 놀랐지만 읽을수록 빠져들었다. 시험관 아기처럼 인공 자궁을 통한 임신과 출산이 가능한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다. 그래도 “인류의 반이 그들 모두의 아이를 낳고 길러야 한다”(293쪽)는 것에 근본적인 회의와 물음을 던진 점, 피임법이 개발되기 전 계속되는 출산으로 여성들이 끊임없는 부인병, 조로, 죽음을 겪는 현실의 단절을 꾀한 점, 온갖 지력과 상상력을 동원해 대안을 제시했다는 사실이 귀하게 다가온다.


         『성의 변증법』은 1970년에 발간됐다. 40년이 흐른 지금, 남성 양육 역할 확대는 남성 육아휴직제로 논의, 실천되고 있으니 파이어스톤의 ‘혁명적 요구’가 비현실적인 대안이라고만 일축할 수 없다. 이 책을 통해서 나는 자기가 처한 상황을 고정 불변의 현실로 여기지 않고 다른 삶을 그려보는 태도를 배웠다.


가끔 생각난다. 분만실 침대 위에서 천장의 사나운 형광등 불빛에 시선을 고정한 채 눈물짓던 내 모습이. 귓속에 흘러들던 미지근한 눈물이. 무에 그리 서러웠을까. 애 낳은 게 뭐 대수라고 ‘저 엄마는 왜’ 눈물 한 바가지 흘리는지 나도 잘 몰라서 더 서글펐다. 그런 내게 “임신은 야만적이다. (…) 임신은 종을 위하여 개인의 육체가 임시로 기형이 되는 것이다”(287쪽)라는 말, 자연분만의 신화화를 비판하는 문장은 구원 같았다.


그날 나는 여자의 몸에서 발생하는 고통, 임신 출산 육아로 이어지는 외로운 노동을 딸에게 고스란히 대물림한다는 사실이 아득하고 미안했던 것 같다. 엄마가 몸을 푼 나를 보자마자 울었듯이 나 역시 막 탯줄 끊어낸 딸에게 본능적으로 눈물을 바친 게 아닌가 싶다. ‘생식의 기계화’를 주장하는 극단적이고 급진적인 언어가 내 초라한 눈물의 이유를 밝혀주었다. 그러니 점점이 흩어져 홀로 고행하던 여성들의 입술이 말할 때, 나만 힘든 게 아니었다는 사실을 공유할 때, ‘고통의 언어화’로 자기 억압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면 엄마들의 봉기는 인공자궁에 버금가는 혁명이 되지 않을까 나는 상상한다.




- 채널예스 '은유의 다가오는 것들' 에 실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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