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와 항상 함께한다는 느낌

[은유칼럼]


반올림(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엠티에 ‘시간이 되면’ 같이 가자는 문자가 ‘콩(공유정옥 활동가)’에게 왔다. 삼성 직업병 문제 해결을 위한 1023일 농성을 마친 기념으로 농성장을 지켰던 이들이랑 강릉 바닷가에서 2박3일 편안하게 쉬다 올 예정이란다. ‘시간이 되나’ 머리를 굴려본다. 시간과 돈을 거래하는 시대. 시간이 화폐다. 이 자본주의 시스템에서 나도 예외는 아니라서 돈으로 보상되는 일 위주로 시간을 살뜰히 썼구나 싶다. 그건 잘 살았다기보다 초조하게 살았다는 느낌에 가깝다. 이건 다르다. 사적 여행도 아니고 공적 활동도 아니다. 작가 초청 강연 말고 그냥 같이 놀자니까 좋아서 짐을 쌌다.

“아유, 바쁠 텐데 어떻게 시간이 됐어?” 삼성 직업병 피해자 한혜경씨의 어머니 김시녀씨가 활짝 웃으며 반긴다. 시간이 뭐길래. 왠지 부끄러웠다. 어머니는 몸이 불편한 딸 혜경씨를 휠체어에 태우고 1000일이 넘도록 매주 시간을 내어 춘천에서 서울을 오가며 한뎃잠을 잤다. 고 황유미의 아버지 황상기씨도 속초에서 강남역을 묵묵히 오갔다. 농성장 해단식 날 물었다. “3년을 하루같이 어떻게 다니셨어요? 오기 싫진 않았어요?” 그는 주저 없이 말했다. “힘든 적은 많았지만 가기 싫다고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었어요.”

위인전에 나오는 어떤 인물보다 커 보였다. 그분들 삶의 자리에 나를 놓아보면 난 그렇게 살 자신이 없다. 구체적으로 승산 없(어 보이)고 기약 없(어 보이)는 싸움에 매일매일 ‘시간을 낼’ 배짱이 없다. 싸운다고 죽은 자식이 돌아오는 것도 아니고 병이 낫는 것도 아니라는 판단을 뒤로하고 삶을 통으로 내어 싸운다는 건 어떻게 가능한가.

언젠가 광화문 집회에서 혜경씨가 무대에 올라가 발언을 했는데 그걸 지켜보는 이종란 노무사 눈에는 금세 눈물이 차올랐다. 십몇 년 수천 번은 들어서 다 아는 얘기일 텐데 진심으로 마음 아파했다. 엠티에서도 혼자 힘으로 화장실을 가거나 씻을 수 없는 혜경씨를 활동가들이 너도나도 나서 휠체어를 밀었다.

드물고 귀한 관계. 같이 보내는 시간을 물 쓰듯이 써야만 가능한, 무심히 밥을 먹고 곁을 지킨 인연이 갖는 한가함과 안정감이 그들 사이에 있었다. “누군가와 항상 함께한다는 느낌이야말로 진정한 사랑이 주는 가장 값진 선물(211쪽)”이라고 했던가. 아마도 한 사람이 마냥 담대하고 무모해질 수 있다면 그건 사랑을 믿기 때문인 거 같다.

엠티 첫날 밤, 흰 파도 까불고 별 총총 박힌 바닷가로 ‘민중가요 노래집’과 기타를 들고 우르르 나갔다. 어느 페이지를 펼쳐도 가사가 막힘없고 노래가 자동 재생되는 이종란과 콩과 나는 ‘올드 제너레이션 시스터즈’라는 놀림을 받았다. 30대 농성장 지킴이가 신기한 눈으로 물었다. “대학 때 노래만 했어요?” 콩은 공강 시간마다 과방에서 노래를 불렀다고 했다. 나는 노조 사무실에 한 시간 일찍 출근해 기타 코드 어설프게 잡아가며 시간을 보냈다. 자격증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누가 시키지도 않은 일에 왜 그토록 열심을 다했는지 설명할 순 없지만, 사랑과 신념이 가슴에 출렁대던 시절임은 분명하다.

에리히 프롬은 <사랑의 기술>에서 자본주의 사회를 지탱하는 근본 원칙과 사랑의 원칙은 결코 양립할 수 없다고 말했다. 자본주의의 급류에서 부서진 삶을 복구하는 사람들, 그러는 사이 그들은 사랑의 원리를 깨우쳤다. “삶은 상호 의존적이라는 점은 무시되고, 개개인은 고립된 채 자기 이익을 챙기는 것에 최상의 가치를 두(111쪽)”도록 세상이 우리를 길들이고 있기에, 무가치하고 무의미해 보이는 일에 무모하게 시간을 보낸 것들만 곁에 남아 있다. 무던한 사람, 철지난 노래, 변치 않는 신념, 짠 눈물 같은 것들.

<올 어바웃 러브> 벨 훅스 지음, 이영기 옮김, 책읽는수요일


※ 이번 호로 ‘은유 읽다’와 ‘김현 살다’ 연재를 마칩니다. 수고해주신 필자와 애독해주신 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자소설 쓰는 어른들

[은유칼럼]

얼굴 안 본 지 십년 넘은 지인한테 전화가 왔다. 첫 에세이집을 낸 다음해 일이다. 지인은 네가 책 냈다는 소식을 들었다며 어색한 축하 인사를 건네고는 용건을 꺼냈다. “조카가 고3인데 수시 원서에 넣을 자기소개서를 봐줄 수 있을까?” 특목고에 다니는 공부 잘하고 예쁜 아이이며 “자식과 다름없는 조카”라고 했다. 느닷없는 연락과 부탁에 이중으로 당황한 나는 횡설수설 거절 의사를 밝히고 통화를 종료했다.

지인은 몰랐지만 당시 내 아이도 고3이었다. 그때 난 손가락이 저릿하도록 집필 노동을 하느라, 또 복잡한 입시제도를 따라갈 여력 부족으로 소위 고3 엄마 노릇은 포기한 상태였다. 그 전화가 날 서럽게 했다. 다른 입시생은 이모까지 나서는 판국에 너무 무심했나 싶은 게 전쟁터에 아이 혼자 내버려둔 것 같아 미안했다. 한 아이를 대학에 보내기 위해 온 집안의 티끌만한 자원이라도 동원되는 현실, 글은 얼마든지 기만의 도구가 될 수 있음을 확인한 것도 씁쓸함을 가중시켰다.

자소서의 세계는 알수록 놀라웠다. 글쓰기 수업에 온 취준생이 “이번엔 꼭 붙어야 한다”며 자소서 봐주길 간청했다. 한번 읽어보았다. 종교를 언급한 단락에서 글의 톤이 깨진다고 했더니 지원하는 곳이 기독교 기업이라 신앙생활을 부각했단다. 실은 교회를 안 간 지 오래됐다고 했다. 그래야만 했으니까 그랬겠지만 말리고 싶었다. 거짓이 통하는 회사에 합격해도 위장하고 살아야 하니까 문제, 자신을 속이기까지 했는데 낙방해도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몇 년이 흐른 지금은 ‘자소설’이란 단어가 포털사이트 국어사전에 버젓이 등재됐다. 자기소개서와 소설의 합성어로 실제로 없던 일을 꾸며 쓰는 자기소개서를 가리킨다. 과한 경쟁이 낳은 비릿한 단어다. 현장은 정말 소설처럼 전개되는 모양이다. 자소서 컨설팅 업체에 수백만원을 갖다 바쳤다는 취준생의 한탄도, 일용직 노동자 아버지를 건설회사 대표로 포장했다는 후회 어린 고백도 들린다. 학교에 강연을 가면 교사들은 자기소개서 지도의 어려움을 토로하고 꿀팁을 묻는다.

그럴 때면 나도 묻고 싶다. 자소서가 자소설이 된 공공연한 현실에서 거짓 자아의 전시장이 된 글이 얼마나 공정한 변별력을 갖는지. 기능인이 개입한 노회한 글이 당사자가 쓴 거친 글보다 낫다고들 보는지. 자소서를 도움받을 만한 자본이나 관계 자원이 없는 수험생들은 어떻게 되는 건지가 제일 궁금하다. 입시제도가 계급 격차를 벌리는 국가 장치가 된 건 알았지만 자소서마저 거기에 일조하는 현실은, 글의 인간인 내겐 유독 비극으로 다가온다.

자기소개서는 과거 경험에 의미를 부여하고 자기만의 서사를 만드는 뜻깊은 작업이다. 그것이 자소설이 된다는 건, ‘살아온 나’가 아니라 ‘평가받는 나’로 자기를 바라본다는 말이다. 강요된 가치로 자기 삶을 평가하고 타인의 시선에 길들여지면 나란 존재는 늘 부족하고 초라해 보인다. 제아무리 스펙을 쌓아도 자존감은 낮은 ‘불안한 어른’은 그렇게 만들어진다.

지금처럼 사회적 위계가 공고한 풍토에선 아이들 자소서에 어른이 나서고 어른들 자소서가 돈벌이가 되는 현실을 막을 수 없을 거다. 시몬 베유는 “밭을 가는 농민이 자기가 농민이 된 것은 교사가 될 만한 능력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면 그 사회 체제는 깊이 병든 것이다”라고 <노동일기>에 썼다. 먼 꿈 같지만, 궁극적으로는 농민도 교사도 정비공도 비슷한 임금을 받고 동등하게 사람 취급 받는 사회가 될 때라야 ‘자소설’이란 단어가 소멸할 수 있으리라.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863180.html?_fr=mt5#csidx6bf59ba0f94e30aac574cb66a39c8e2 

서울와우북페스티벌 10월3일 19시 - 출판하는 마음

[글쓰기의 최전선]


신청페이지

http://wowbookfest.com/index.php?mid=lecture2017&category=9195&document_srl=108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