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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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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니체인가 # 어느 날, 니체 그날도 서점을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가 눈에 띄었다. 내용이 양호했다. 습관처럼 샀고 한달음에 봤다. 본문에 인용된 숱한 멋진 말들은 삶에 지친 나를 위한 처방전 같았다. 원문이 욕심났다. 한약 짓는 기분으로 니체 전집을 질렀다. 딱 녹용 한 재 값인 삼십여 만원을 결제했더니 사과상자 크기의 박스에 니체 전집 21권이 배달되었다. 설레는 마음도 잠시. 한 페이지를 채 읽기가 어려웠다. ‘무리수’를 두었음을 직감적으로 알았다. 방구석에 처박아두길 두어 달. 오랜만에 들어간 수유너머 홈페이지에 마침 니체 강의 공지가 떴다. 수업을 들었으나 들리지 않았다. ‘외국어’ 같기는 마찬가지였다. 진심 어려웠다. (그 강의는 자퇴생 및 행불자가 속출했다) 수업시간이 괴로웠다. ‘아는 이 전혀 없는 ..
니체와 함께 한 11월 금요일 아침 커피가 달다. 목요일 저녁에 니체 수업을 끝내고 마시는 첫 커피이기에 그렇다. 어제로 2강이 지났다. 한 고개 넘고 바위에 앉아 쉬는 느낌. 발아래 출발지점이 보인다. 차라투스트라-글쓰기 강의라는 발상. 아무도 기획하지 않은 일이다. 우월한 니체전문가 많은 연구실에서 니체강의 한다고 나서려니 민망하기도 했다. 그래도 꼭 해보고 싶었다. 내 조건에서 열심히 할 자신은 있었다. 잃을 것도 지킬 것도 없는 인생, 해보고 싶은 일은 해야 한다. 설령 망해도 별로 나빠질 게 없다는 게 엄청난 자유를 준다. ㅋㅋ 위대한 사상과 수려한 문체의 원천 ‘차라투스트라’를 읽고 밑줄을 긋고 생각을 뒤척이고 그 인식의 거울로 자기 삶을 비추어 글을 쓰고. 그러자고 공지를 내놓고는 조마조마했다. 누가 동조를 해줄 ..
글쓰기의 최전선: 니체편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썼다" 니체의 글은 시적입니다. 삶에 대한 통찰과 인간에 대한 사랑이 특유의 운율에 녹아있습니다. 짧은 경구와 비유, 강렬한 아포리즘으로 풀어냅니다. 그것은 니체가 독자를 선별해내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그렇게 시(詩)는, 시적인 니체의 글은 내가 원한다고 읽을 수 없습니다. 삶에 대한 물음을 가졌을 때만, 그 절실함의 강도만큼 문장들이 화살처럼 날아와 꽂힐 것입니다. ‘나는 니체를 읽었다’가 아니라 “니체가 나를 습격해왔다! " 니체와의 만남은 내가 낯설어지는 체험이고 삶을 창조하는 실험입니다. 니체에게 글을 쓴다는 것과 삶을 바꾼다는 것은 하나입니다. 그런 점에서 는 좋은 글쓰기 교과서입니다. 모든 가치의 전환이라는 메시지, 치밀한 비유와 유려한 문체는 “폭풍과도 같은 자유로운 느낌”을 선사합니다. 이 책은 ..
시, 삶의 입구 “시 낭독회 풍경을 기사로 써보세요.” 지난시간 돌발과제를 내주었다. 그랬더니 수업시간에 엄청 조용했다. 한 사람이 시를 낭독하고 소감을 발표할 때면 사각사각 볼펜 지나가는 소리만 들렸다. 침묵을 깨는 말말말. 그렇게 생각한 특별한 이유가 있느냐, 당신에게 여행은 무엇이냐. 중저음으로 깔리는 물음들. 잔뜩 긴장한 표정들. 지금 청문회 아니니까 편하게 대화하라고 말하는데 웃음이 났다. 처음엔 다들 토시 하나 안 놓치고 열심히 적더니 나중엔 손놀림이 점점 느려졌다. 남의 말을 경청하는 것은 무척이나 기운 빠지는 일. 듣기도 어렵고 쓰기도 고되다. 나는 조심스레 예측했다. 같은 시간에 같은 이야기를 들었지만 기억의 편집은 저마다 다를 것이라고. 반만 맞았다. 의외로 대동소이한 글들. 예비작가들은 자기 육성을 ..
중력의 악령에 대하여 살아가는 일이 버거울 때, ‘등이 휠 것 같은 삶의 무게’라는 표현을 쓴다. 세상의 짐을 혼자 걸머진 듯한 절망감에 휘청댄다. 이렇게 나를 자꾸 주저앉게 만드는 것, 차라투스트라는 이를 ‘중력의 악령’의 소행이라고 한다. ‘날지 못하는 사람은 대지와 삶이 무겁다고 말한다. 중력의 악령이 바라고 있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삶이 무겁고 고된 이유는 “우리가 요람에 있을 때부터 사람들이 지참물로 넣어준 이것” 때문이다. 바로, 선과 악이라는 지참물. 정확히 말하면, 선악을 척도로 하는 가치관 - 도덕이다. 어려서부터 공기처럼 받아들여 온 ‘착하게 살자’의 기치 아래 펼쳐지는 나날들. 아이 때는 부모에게 순종하는 착한 자식으로, 선생님에게 고분고분한 착한 학생으로, 사회로 나가면 조직의 룰과 상사에 복종하는 ..
고통의 구원에 대하여 우리는 살면서 시간이 역류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분해한다. 실연, 실패, 사고, 암 등 나에게 닥친 끔찍한 우연, 수수께끼 같은 사건들을 질질 끌고 다니며 부여안고 운다. 그렇게 고통은 과거에서 오고, 또 미래에 대한 불안에서 온다. 자식이 나중에 밥 굶을까봐 조금 더 좋은 대학에 가고 좋은 일자리를 얻길 바라는 부모의 마음은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자식과 불화하며 현재를 고통으로 몰아간다. 이는 인간의 한계일까.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사람살이는 다 그랬던 가보다. 현존의 의미, 즉 ‘산다는 것’이란 근본물음에 천착했던 철학자들은 사는 동안 벗어날 수 없는 이 고통이란 놈에 나름대로 고민하고 해법을 제시한다. 농부철학자 피에르라비는 ‘이전에 나는 언제나 과거에 대한 억압으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그것들은 나를..
신체를 경멸하는 자들에 대하여 ‘몸은 관념에 비해 쉽게 바뀌지 않는다. 그러므로, 가령 “당신만을 사랑할 테야”라는 사적 고백의 그 빛나는 초월도 끝내 비루한 안일의 체계 속으로 내재화하고 만다. 일상은 무엇보다 몸이고, 그 모든 고백과 의도는 잠시의 부유를 끝내면서 그 몸속으로 가라앉는다. 결심은 잦고 의도는 선하지만, 그런 식으로 세상은 결코 바뀌지 않는다.’ - 김영민 몸은 껍데기고 정신이 알맹이라고 생각하던 시절이 있었다. 길었다. 나는 생각했고, 고로 존재했다. 그런데 살수록 아니었다. 몸은 정신의 말을 듣지 않았다. 몸은 지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있었다. 학원 가 있어야 할 시간에 떡하니 극장에 가 있다거나 공부하려고 책을 폈는데 잠을 자고 있거나 위장이 아파도 커피는 식도를 타고 내려갔다. 드라마에서도 알콜상태의 주인공이..
들을 귀가 없는 이에게 말하는 건 위험하다 는 니체의 대표작이다. 단테의 처럼 읽어본 사람은 별로 없어도 제목은 거의 다 아는 ‘고전’이다. 그런데 니체가 궁금해서 이 책을 펼쳤다면 당황하기 십상이다. 니체에 대한 예비적 이해가 없을 경우 는 제대로 읽을 수 없다. 니체를 이해하는 사람은 를 이해할 수 있지만, 하나만으로는 니체를 이해할 수가 없다고 보임러A.Baeumler는 말했다. 이는 가 니체철학의 입문서가 아니라 그의 사상을 집대성한, 마지막에 읽어야 좋을 작품이라는 뜻이다. 의 이야기 구조는 간단하다. 차라투스트라는 서른 살에 산속으로 들어가 10년 간 수행을 마쳤다. 잔이 넘치면 흐르듯이, 자신의 풍요를 나누기 위해 인간세상으로 내려온 차라투스트라가 복음을 전하는 과정의 파란만장 스토리다. 차라투스트라는 사람들에게 ‘신의 죽음’을 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