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모뚜 이주노동자 - 스탑크랙다운, 끝나지 않는 노래

[행복한인터뷰]

버마의 어느 작은 마을, 부챗살로 퍼지던 햇살이 몸을 접는 시간이면 기타를 멘 청년들이 하나둘 거리로 흘러나온다. 저마다 벤치 하나씩 차지하고 앉아서 딩딩 기타를 매만진다. 가슴에 고이 접어두었던 오선지가 서서히 펴지고 감미로운 선율이 날개 달고 훨훨 허공으로 떼 지어 난다. 부르고 또 부르고, 여기서 한 소절 저기서 한 소절. 섬처럼 떨어져 노래하던 청년들은 어느새 따로 또 같이 화음을 맞춘다. 어스름 밤공기 타고 골목골목 휘돌아 울려 퍼지는 노랫소리는 청량한 바람 되어 동네사람들의 마음을 적신다.

# 소모뚜, 노래하다

“버마 젊은이들은 기본적으로 기타를 다룰 줄 알고 노래도 잘해요. 밤새 기타를 쳐도 아무도 시끄럽다고 얼굴 붉히거나 신고하지 않아요. 거리를 지나는 행상은 노래를 불러줘서 덕분에 쉴 수 있다고 생각하죠. 노래 한 곡씩 듣고 가요. 매일 그 자리에서 노래하던 청년이 안 보이면 동네 사람들은 어디 아픈지 안부를 묻고요.”

날마다 새벽 2시까지 하얗게 밤을 지우던 그. 노래책을 탑처럼 쌓아두고 손끝 부르트고 목청 터지도록 노래하던 청년 소모뚜. 그는 스무 살에 정든 고향을 등졌다. 부모님의 생계와 여동생들의 학업을 위해 ‘이 한 몸’ 헌신하기로 마음먹었다. “TV가 필요하면 전자제품 가게에 가고 밥을 먹기 위해 식당을 가는 것처럼” 꿈을 찾는 그에게 ‘아시아의 호랑이’ 한국행은 자연스러운 선택이었다. 돈 벌어 효도도 하고, 민주화 투쟁의 선배격인 한국에서 버마를 도울 일을 배울 수 있겠다고 판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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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노동자 '미누'의 구속이 나와 무슨 상관일까

[사람사는세상]

한 사람의 이주노동자가 잡혀간다는 것이 나에게 무슨 의미일까. 수다체로 “대체 나랑 무슨 상관일까.” 13일 오전에 세미나 하러 연구실에 갔다가 정수샘에게 미누씨가 잡혀갔다는 얘길 들었다. 연구실과 한 공간을 쓰는 이주노동자방송국 MWTV에서 일하는 분이고 17년간 문화활동가로 열심히 일한 친구인데 어제 출근길에 연구실 앞에서 강제연행 됐다는 것이다. 나중에 사진을 보니까 낯은 익은 분이었다. 안타까웠다.

하지만 사실 요즘이야 천인공노에 어이상실할 사건사고가 하루걸러 터지는 지라 솔직히 말하자면 “나쁜 놈들이 참 가지가지 한다. 미누씨 불쌍하다.”는 탄식이 나오는 정도였다. 정수샘이 글 한번 써보라고 말하는데 마음이 동하지를 않았다. 만약 정수샘이 잡혀가면 성명서 한바닥 절로 나오겠지만 난 그에 대해 아는 것도 추억도 없으므로, 미등록 이주노동자에 대한 탄압에 대한 지극히 상식적인 반응만 할뿐이다. 

다음 날, 친구이자 식구를 빼앗긴 고병권샘이 일필휘지로 써내려간 규탄의 글을 보았다. 미누의 구속에 항의하는 기자회견에서 읽을 것이라고 했다. 그것을 보니까 ‘친구의 상심’이 읽혔다. 미누가 잡혀간 현실이 구체적으로 와 닿았다. 미누는 내 친구의 친구였다. (내가 이래서 글을 사랑한다. 프로이트 말대로 확실히 언어에는 마법의 기능이 있다) 마침 기자회견장인 서울출입국사무소가 집 근처여서 가려던 참에 "아무래도 가봐야 할 것 같다"고 해피에게 연락이 와서 같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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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노동자소설> 이주노동자는 삶의 선택권이 있는가

[비포선셋책방]

3. 이주노동자로 살아가게 하는 힘은 무얼까

소설 속에 그려진 이주노동자는 “한 달에 오십만 원을 벌어 반쯤 저축하고 딱 삼년만 참으면 된다는 순진한 믿음”을 갖고 대한민국의 후미진 공장지대로 모인 사람들이다. 그런데 계획대로 돈을 모아 나간 사람은 “딱 한 사람”뿐이다. 쥐도 새도 모르게 죽고, 열악한 시설의 공장에서 불이나 단체로 죽고, 돼지우리 축사 개조한 집에서 살고, 산업재해 당해 불구가 되는 등 아주 참혹하다. 한마디로 인간의 삶이 아니다.

그런데 그들은 왜 왔을까. <이무기사냥꾼>의 설정대로 누가 네팔에서는 ‘천문학’을 공부한 아버지를 한국에서 ‘전구공’으로 살게 했을까. 돈 인가? 돈/행복에 대한 참을 수 없는 욕망인가? 그럴 것이다. 더 많은 돈을 벌려고 만리타국으로 왔다. 전 지구적으로 ‘돈’은 최고의 권위를 누리고 있다. 무한경쟁의 신자유주의 체제 하에서 ‘돈/행복’을 향한 인간의 ‘욕망’은 무한대로 커져 가니, 높은데서 살던 사람도 낮은 데로 임하면서 ‘개처럼 벌기’를 각오한다. 게다가 개인적 욕망에 대한 존중은 쿨함의 상징이고 더없는 배려이고 예의로 인정된다. 그것을 가족도 동료도 말리지 못한다. 권장한다. 그런데 이 욕망은 애초에 어떻게 생겨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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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대는 어떻게 가능한가> 타자를 사유한다는 것

[비포선셋책방]
이 가을, 문학을 벗삼아 '타자성과 소통'을 사유하고 있다.  오랜만에 소설도 읽고 김현선생님 책도 뒤적여 본다. '문학'이란 말에선 고색창연한 느낌이 우러난다. 우러르고 싶어지는 저 먼 나라. 문학평론가 고봉준이 민족문학과 아시아에 대해 쓴 글 <연대는 어떻게 가능하가>를 읽었다. 훌륭한 글이었다. 내용을 정리해보았다.

타자성만 재확인하는 소통, 위험하니 하지 말까?
“먼 곳에 대한 상상력이 증가할수록 가까운 곳에 대한 모멸감은 커지고, 가까운 곳에 대한 모멸감이 커지면 커질수록 먼 곳에 대한 상상력은 확장된다.”(복도훈) 
눈먼 연대, 위험한 연대가 있다. 상호 타자성을 재확인하는 방식으로 귀결되는 경우다. 하지만 이러한 위험이 곧 연대의 불가능성을 정당화하는 것은 아니다. 가능성과 불가능성을 말하기 이전에, 이 어떻게 라는 물음을 성실하게 사유하는 것이 중요하다. 소통의 가장 큰 낭패가 바로 ‘너는 상행선, 나는 하행선’을 확인할 경우다. 대다수가 소통에 좌절하는 지점이기도 하다. 위험한 소통. 이를 소통의 불가능성으로 여기지 말고 거듭 시도하고 숙고할 것. ‘위험함’이 그것을 피하는 논거는 될 수는 없다는 것에 동의한다. 교통사고를 당할 위험은 차를 피하는 순간에 가장 높다. 소통도 그것을 피하려 할 때 가장 큰 위험에 봉착한다고 본다.  

관계의 소통을 이끄는 힘은 무얼까? 공통의 경험을 갖고 있다 해서 소통이 수월한 건 아니다. 공통사가 없는 개체들 사이에서도 연대는 가능하다. 공통의 경험은 연대의 한 매개일 뿐, 그 자체로 동력을 갖진 못한다. 참다운 기억의 연대든 낯선 것들 간의 연대이든, 관계를 이끄는 구성적 힘은 따로 있다. 바로 ‘이해와 소통’에 따른 교류다. 이해를 바탕으로 교류할 때라야 상대도 변하고 나도 변하는 소통이 가능하다. 또 소통의 출발점으로서 이해와 교류는 중심을 부정하는 방식이 아니라 각각의 특이점들이 강력한 중심일 때 시작될 수 있다고 얘기한다. 문제는 ‘단일한 중심’이지 중심 그 자체가 아니기 때문이다.

안산시에는 이주노동자들을 위한 동사무소 개념의 공공기관이 크게 건립되었는데 그곳에서는 이주노동자와 안산시민의 다양한 교류가 펼쳐지고 있다. 이주노동자 밀집지역이 게토화 되는 것을 막고 다문화중심지로 키우겠다는 안산시의 야심찬 프로젝트다. 나는 현명했다고 본다. 이웃 주민이 컴퓨터 배우는 이주노동자 여성의 아이를 돌봐주고, 한글을 가르치고, 또 그 나라의 문화를 배운다. 함께 무언가를 뚝딱 만들고 해내고 부딪치면서 그들이 자연스레 어우러지는 것을 보았다. 또 아시아인권문화연대에는 동남아시아권 언어가 가능한 사람들이 통역할 수 있는 참여의 기회도 있다. 몇 시간 같이 있다고 무슨 대단한 소통이 있으랴 싶겠지만, 일단 일상이 섞여야 소통의 판이 짜여 지는 건 맞다. 

연대는 과연 다양성 인정의 문제일까? 종종 보편의 폭력성을 극복하기 위해 다양성이 동원되는 경우를 목격한다. “문학이 하는 일은 차이와 다양성을 지닌 생명체를 호명하는 것”이라는 발언처럼 말이다. 그러나 ‘인정은 일방적일 때 위계화 되고, 쌍방향일 때 자유주의로 전락한다.’ 다양성에 대한 인정은 이미 존재하는 개체들의 실체성을 정당화함으로써 연대의 불가능성을 재확인할 뿐이다. 또 고유문화의 인정논리도 함정이 있다. 고유문화라고 해서 모든 것이 인정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아랍여성들에게 강요ㅚ는 가부장적 억압은 고유문화임이 분명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그것을 긍정해야 하는 것은 아니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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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산외국인주민센터] 이주노동자 위한 '연중무휴' 동사무소

[좋은삶공동체]

국내 체류 외국인 백만 명 시대다. 우리는 외국인노동자를 ‘그들’이라고 부르지만, 그들은 이미 ‘우리’가 되었다. 그중에서도 안산시는 58개국 3만 명의 외국인노동자가 먹고 자고 일하고 있다. 이러한 시대의 변화에 발맞추어 안산시 원곡동에 ‘외국인주민센터’가 지난 3월 전국 최초로 문을 열었다. 은행, 보건소, 동시통역센터 등 행정시설과 문화공간이 갖춰진 최첨단 ‘외국인 동사무소’다. 울타리도 문턱도 없다. 두 팔 벌린 그곳으로 성큼 들어가 보자.  


다문화중심지 "부라보! 안산!" 
5월의 미풍 따라 네팔, 중국, 스리랑카 등 형형색색 국기가 펄럭인다. 대리석 분수대 뒤편 아담한 무대 벽면에는 각국 언어로 된 인사말이 새겨져 있다. 넓은 앞마당을 낀 벽돌색 3층 건물은 새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늠름한 자태를 뽐낸다. 주변조경이 작은 공원이나 다름없으니, 가까이만 가도 마음이 트이고 발걸음이 가벼워진다. 안산시의 26번 째 동사무소, 안산시 외국인주민센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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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도서관] '책도 있고 친구도 있다' '이주노동자들의 사랑방

[좋은삶공동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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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부천시 도당동 강남시장 끝머리, 이곳에 자리한 '꼬마도서관'은 돌 틈 사이 핀 들꽃같은 책방이다. 재래 시장통의 들쑥날쑥 간판 사이 숨어 있어 지나치기 일쑤지만, 마음 기울여 발견하면 쉽사리 지나치기 어렵다. 원래 '책과 사람'만한 풍경이 없는 데다 이색문화가 어우러져 향기 또한 그윽하다.


꼬마도서관은 아시아인권문화연대(대표 이란주)가 운영하는 이주노동자를 위한 도서관이다. 이 곳에는 네팔·베트남·파키스탄·태국 등 12개국과 우리나라 책을 포함해 6000여 권이 구비돼 있다. 이주노동자와 지역 주민에게 책을 무료로 대여해 준다. 1월의 마지막 날, 꼬마도서관을 찾았다.


"책도 있고 친구도 있다"... 이주노동자들의 사랑방

"이주노동자가 책을 다 보느냐고 의아해하세요. '이주노동자' 하면 대개가 일만 하는 줄 알죠. 조금 나은 경우가 '불쌍하다'고 생각하고요. 하지만 그 분들도 우리와 똑같은 생활인입니다. 자기 나라를 떠나서 일하는 것뿐이죠. 삶의 한 부분으로 노동을 하는 거고, 당연히 여가를 즐기고 문화적 욕구를 충족할 권리가 있죠."

상임일꾼 신순영씨는 꼬마도서관을 '이주노동자의 사랑방'이라고 소개했다. 주 이용자는 도당동 근처에 밀집한 중소업체 이주노동자들이다. 가끔 멀리 평택이나 구리, 일산에서 오는 이들도 있다. 몰라서 못 올 뿐 일단 알면 한달음에 달려온다. 다음번에는 친구를 데려오기도 한다. 그렇게 알음알음으로 찾아오는 이들이 꾸준하다.

꼬마도서관은 공장의 잔업이 없는 수요일과 토요일은 오후 8시까지, 평소엔 6시까지 문을 연다. 이용자가 평일에는 십여 명이지만 주말이면 몇 배로 늘어난다. '인도네시아 3인방' '태국 3인방' 등 단골 이용자도 있다고.

"최근에는 국제결혼이 늘면서 2세 아이들을 동반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이 동네에 사는 우리나라 아이들이 만화책을 보러 오기도 하고요. 도서관이니까 책 나눔이 중심이지만 이주노동자들은 좀 더 애틋하세요. 시간 나면 갈 곳이 있고 또 찾아가면 친구들이 있고 자국의 책이 있다는 사실에 큰 기쁨과 위안을 얻으시거든요. 매일 문 닫는 시간이면 와서 돕고 가는 분도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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