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윤리학2 - 양태로서의 자식

[스피노자맑스]

2. 양태로서의 자식

스피노자에 따르면 자식은 나의 분신이 아니라 신을 분유한 존재다. 여기서 신이란 세상을 임의로 만들고 심판하는 초월적 존재가 아니다. “자기 자신을 필연적으로 양태로 표현할 수밖에 없는 실체”로서의 신이다. 스피노자의 신개념은 수염 휘날리고 때로 인자하고 때로 근엄한 인격신이 아니다. 신은 모든 자연만물들을 산출하는 ‘능력’에 가깝다. 참 매력적인 개념이다. 아인슈타인이 나는 신을 믿는다면 스피노자의 신만 믿겠다고 했단다. 암튼 자연 안에 존재하는 것은 이미 ‘신의 능력’이 표현되었다는 뜻이다. 내재적 존재로서의 신. 이것이 그 유명한 ‘신즉자연’이란 언명이다. 그러니까, 내 몸을 빌려서 잠시 세상에 떨어진 양태로서의 자식도 ‘신의 능력의 표현’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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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윤리학1 - 제 정신으로 살기위해

[스피노자맑스]

스피노자의 <에티카>를 작년에 봤을 때 먹물 활자를 눈으로 훑는 거 같았다. 그런 책은 처음이었다. 공리. 정의. 정리. 주석. 보충 등등 번호를 매겨가며 논의를 전개하는, 철학책이라기보다 수학책에 가까웠다. 이과적 두뇌도 아니고 전자제품 사용설명서 1,2,3..만 봐도 판단중지가 일어나는 나로서는 현기증 나는 구성이었다. 그런데 섹시한 문장 몇 개가 눈에 들어왔다. 뭔가 중요한 얘기가 있었다. 끌림이겠지. 또 스피노자는 나의 사랑 니체오빠가 애정해마지 않는 철학자다. 고병권은 이렇게 말했다. “내가 철학자는 니체를 좋아하는데 니체의 모든 저서랑 에티카랑 놓고 최고의 책을 한권 고르라고 하면 ‘에티카’를 택하겠어요.” 그의 꼬심에 넘어가서 에티카에 다시 도전했다. 7주에 걸쳐 읽었다. 처음 읽었을 때보단 훨씬 보이는 문장이 많아졌다. 흐릿하게나마 대략의 밑그림은 그려진다. 아래 인용해 놓은 김수영의 글을 보는 순간, 이건 에티카를 다섯줄로 요약한 것이라며 무릎을 쳤다. 에티카에 나온 개념으로 '엄마의 윤리학'에 대해 사유해보았다.

<제 정신>을 갖고 산다는 것은, 어떤 정지된 상태로서의 <남>을 생각할 수도 없고, 정지된 <나>를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이다. 엄격히 말하자면 <제 정신을 갖고 사는> <남>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그것이 <제 정신을 가진> 비평의 객체나 주체가 되기 위해서는 창조생활(넓은 의미의 창조생활)을 한다는 전제가 필요하다. 그리고 이러한 모든 창조 생활은 유동적이고 발전적인 것이다.
여기에는 순간을 다투는 어떤 윤리가 있다. 이것이 현대의 양심이다.

- 김수영전집2 ‘제 정신을 갖고 사는 사람은 없는가’

0. 제 정신으로 살기 위해

한 때는 이런저런 '직업'을 꿈꾸기도 했지만 살수록 바람이 소박해진다. 직업군을 택하기보다 삶에 임하는 태도가 중요함을 느낀다. 남에게 멋져 보이는 직업을 고르고 거기에 성실히 복무하며 사는 게 아니라, 나의 ‘좋음’을 성찰하고 몰두한 결과물로 나에게 맞는 직업이 찾아지는 거 같다. 이미 선택지가 주어진 익숙한 세계에서 적당히 타협하지 않고 제 정신으로 살아가기. 나만의 고유한 삶의 창조. 여기엔 순간을 다투는 어떤 윤리가 필요하다. 그것을 스피노자는 기하학적 방법에 따라 증명했다. 운명에 휩싸이지 않고 자유인으로 사는 법을 촘촘히 엮어 <에티카>로 정리했다. 또 다른 한 사람. 약동하는 현실에서 끊임없이 의심했고 안주를 거부했던 김수영은 시를 썼다. 유독 몸과 육체가 많이 등장하는 김수영의 시편은 그의 ‘에티카’였던 것이다. 

나의 에티카는 어떻게 쓰일 수 있을까. 아이를 낳는 순간, 나의 에티카는 엄마의 에티카가 됐다. 결혼/출산 전에는 나의 선택에 따른 (불행한) 책임을 나 혼자 지면 그만이다. 그런데 엄마가 되니까 식구들의 삶이 밀접하게 맞닿아 나의 좋음이 식구들의 나쁨(불편)이 되기도 한다. 항시 2-3인분의 인생을 합해 총체적 좋음을 고려하며 삶의 순간순간 크고 작은 결단을 내려야한다. 6개월짜리 루니 강의 듣는 것, 소소한 친교활동까지. 나의 선택이 차곡차곡 쌓여 아이들의 인생의 향배에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면 아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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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마주침과 나쁜 마주침

[비포선셋책방]


우리는 살면서 대수롭지 않게 선악을 판단한다. 좋은 날씨, 나쁜 날씨. 좋은 학생, 나쁜 학생. 좋은 노래, 나쁜 노래. 하지만 이것은 사물 그 자체의 본성이 아니다. 예를 들어 눈 오는 날은 거동이 불편한 사람들에겐 나쁜 날씨이고, 눈싸움을 학수고대하는 꼬마들에겐 좋은 날씨일 것이다. 치매 걸린 시부모를 봉양하는 며느리는 시댁 식구 입장에서는 좋은 며느리이고, 그렇지 않으면 나쁜 며느리이다. 이처럼 사람들에게 일차적으로 주어지는 것은 원인이 아닌 결과들이고, 사람들은 그 결과가 자신들에게 유용한지 여부에만 관심을 두고 판단할 뿐, 그것의 원인에 대해서는 알고 싶어 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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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티카> 능력이 곧 자유다

[비포선셋책방]

니체는 자기보다 300년 전에 태어난 스피노자를 벗으로 삼는다. 니체는 한 편지에서 스피노자는 자신의 선구자이며 그로 인해 이제 자기 혼자의 고독은 두 사람의 고독이 되었다고 열띤 어조로 고백했다고 한다. 다른 듯 닮은 두 사람. 니체는 신을 부정하고, 스피노자는 신을 긍정했는데, 공통적으로 삶을 사랑했다. 스피노자 철학 역시 삶을 왜곡시키고 파괴하는 모든 초월적 가치와 도덕에 반대하는 내재성의 철학을 전개했다. 니체가 우레와 같은 호통과 아름다운 은유의 방식으로 역설한다면 스피노자는 점잖고 집요하고 치밀한 학자스타일이다. 주석달고 증명하고 정리한다.


“자연(신)은 아무런 목적도 설정하지 않았다” 자연은 인간이 자연에 부여한 목적과는 무관하게 존재한다. 우리는 인간에게 얼마나 유용한가에 따라 좋은 날씨와 나쁜 날씨를 구분하고, 해충과 익충을 가른다. 어린이는 자라서 어른이 돼야하는 ‘미’성년이다. 이처럼 하나의 목적에 갇히면 사물은 언제나 고정된 하나의 본질만을 갖고 그러한 본질을 향해 나아가는 미완의 존재가 된다. 목적론적 사고는 지극히 인간중심적인 사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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