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차오르는말들

(110)
콜드플레이 -The Scientist (Acoustic) 18세기 후반에 와서 병사는 만들어질 수 있는 어떤 것으로 변했다. 형태가 갖추어지지 않은 진흙, 곧 부적격한 신체가, 요구하는 것은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기계(곧 인간기계)로 변했다. 자세는 조금씩 교정될 수 있는 것이었고, 계획적인 구속이 서서히 신체의 각 부분을 통하여 영위되었고 그것들을 자유롭게 지배하고 신체 전체를 복종시켜 항구적으로 취급 가능하게 만들고 그리고 자동적인 습관이 되어 암묵리에 남게 되었다. 요컨데 '농민의 요소를 추방하고' 그 대신 '병사의 태도'를 주입시킨 것이다. - 푸코 에서 신체는 정치적인 기술에 의해 얼마든지 조형하고 변형하고 길들일 수 있단 얘기. 국중고 시절 점심시간의 국민체조질은 국민건강증진보다는 조작가능한 신체와 순종적인 신체를 만들 목적이었다... - 귀로는 콜..
고등학생 아들에게 읽어주는 글 아들 입학식 날. 애들 학교 보내고 오전 내내 잤다. 긴긴 겨울방학, 늦잠형 인간으로 길들여진 몸이 자동적으로다가 나를 침대로 이끌었다. “엄마는 입학식에 오는 거 아니다”라는 아들 말을 덜컥 수용하고 집에서 게으름을 피운 것이다. 정말이지 나는 쉬고 싶다. 아들의 고등학교 진급에 심한 피로감을 느낀다. 며칠 전에는 교복을 사러 갔더니 다 팔리고 없어서 다섯 군데나 되는 교복매장을 순회했다. 마지막 매장에서 엄청 큰 재킷 하나 겨우 확보해 동네 수선집에서 사이즈를 대폭 줄였다. 하마터면 교복도 못 입혀 학교에 보낼 뻔 했다. 설마 교복이 품절됐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졸지에 ‘게으른 엄마’ 됐고 매장마다 "왜 이제야 사러 나왔냐"고 잔소리를 들어야했다. 교복 사는 것까지 속도경쟁을 해야 하나. 남보다..
Mendelssohn- Piano Trio No.1 Mendelssohn- Piano Trio No.1 in D minor, op.49 2월, 겨울밤이 깊어간다. 전축에서 흘러나오는 듯한 애수어린 느낌이 좋다. 오래된 것은 왜 위로가 될까. 200년 전 멘델스존이 남긴 음악이 피아노, 첼로, 바이올린 선율타고 눈발처럼 날린다. 서리낀 창틀 아래.. 사모바르가 하얀 입김 뿜으며 끓고 있는 그림이 그려지네.. 20년 전에 산 책, 누렇게 바랜 김현의 를 읽으며 나는 지금 우주의 조화로움을 경험한다. 오래된 음악과 책과 시간에 감사하며.
명절을 생각한다 * 생애를 생각한다 ‘오래 사는 일이 이렇게 어려운 줄 몰랐어요’ 며칠 전 아는 동생이 댓글로 달았다. 표현이 적절하고 절실해서 뭉클했다. 인생의 후반전에 들어선 나야 말로 산다는 것이 뭘까, 인생은 왜 이리 긴가, 상념이 많은 요즘이다. 아이들 밥 세끼 거둬 먹이다보면 어느 새 부엌 창문으로 어둠이 깔린다. 하루하루 먹고 사는 일에 급급한 하루살이. 앞으로도 큰 틀에서 달력의 질서를 벗어나지 못할 것 같다. 일상은 이리도 단조로운데 인생은 왜 이리 험난한가. 아이러니다. 엄마 뱃속에서 태어나 어릴 때 학교 다니고 어른 되어 일하고 사랑하고 결혼하고 자식 키우다가 병들어 죽는 인간의 일생. 이대로 살기도 벅차다. 고난도 기술과 에너지가 필요하다. 그렇게 쩔쩔매면서 내 한몸 챙기고 내 새끼들만 거두다가 저..
편지 지금 파리는 새벽 한 시 반이고 남자친구도 강아지들도 다 잠이 들었어요. 공부하던 책을 내려놓고 멍하니 앉았다가, 잠 안 오면 한잔씩 마시려고 사다둔 술을 병 채로 마시고 있어요. 그러니까 새벽이고 술을 마셨으니까 감정적이어도 이해해달라고 자기변명을 하는 중이에요. 아니 이렇게 해야 누군가에게 마음을 터놓을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쓸데없는 어리광을 부려보는 중이에요....떠나...온...거 후회해요. 이제는 밤에 잠도 잘 이루지 못할 만큼. 왜 그때 떠나왔을까. 뭘 배우겠다고 떠나왔을까. 나 살던 공동체에서도 못 찾던 답이 여기에 있을 리 만무한데. 전 이제 비판 따위 할 자격도 없는 놈인 거 같아요. 언니는 자본주의가 뭐라고 생각해요? 소작농들의 처절한 일 년 농사를 다 앗아가는 지주나 노동자들의 노동의..
꽃수레의 사랑으로 그저께 남편이랑 싸웠다. 오랜만의 심각한 다툼이다. 무릇 부부싸움이 그렇듯이 사소한 안건이 싸우는 동안 인격 자체를 문제 삼는 전면전으로 확대됐다. 남편의 감정 그래프는 원래가 잔잔한 해수면이고 나는 파도치는 유형이다. 그래서 싸움의 러닝타임은 길게 가지 않는다. 내가 폭풍 분노를 퍼부으며 눈물을 찍어내다 보면 남편은 쿨쿨 자고 있다. 허탈하다. 나 홀로 분노의 뒤안길 어슬렁거린다. 하나둘 케케묵은 원한감정이 안개처럼 스멀스멀 피어오르기 시작하고 마치 버스가 흙탕물 튀기고 지나간 것처럼, 순식간에 기억의 오물을 뒤집어쓰고서 나는 맹렬히 후회한다. ‘그 때 결판을 내렸어야 하는데......’ 남편이 ‘꼴도 보기 싫어서’ 마루에다 이불을 폈다. 평소에 아빠의 코 고는 소리가 들려야 잠이 잘 온다며 아빠 곁을..
발렌티나 리시차와 함께 한 일요일 오후 Valentina Lisitsa - 베토벤 피아노소나타 월광 3악장 '소낙비를 맞고 나면 우산이 필요없지' 여고생 때 팬시노트를 모았다. 내 책상서랍은 메모지와 편지지까지 가을날 낙엽이 쌓인 곳간이었다. 만년필로다가 시집이나 책에서 본 아름다운 글귀를 옮겨적었는데 거기에 써 놓았던 문구다. 어린 나이에 왜 저 말이 좋았을까. 겉으론 얌전한 아이였지만 안으론 폭풍같은 삶을 꿈꾸었는지 모른다. 우산도 없이 소낙비를 맞으며 거리를 떠도는 장면은 노래방 뮤직비디오 배경화면으로도 쓰지 못할 삼류영상이겠지만, 가끔 꿈꾼다. 소낙비에 흠씬 젖은 나. 그러고 나면 마음에 풀썩이는 먼지가 싹 가라앉고 비갠 뒤 아침처럼 미풍 살랑이는 평화로운 날들이 펼쳐질 것같다. 그런데 원할 때 비가 내리지 않으니까, 또 남의 시선이 ..
방황이 끝나갈 무렵 어느 토요일 오후. 밖에 있는데 꽃수레에게 전화가 왔다. “엄마, 집에 오니까 가스레인지에 불이 켜져서 수레가 껐어. 뚜껑을 열려고 행주를 댔더니 치익~ 소리가 나서 무서워서 안 열었어.” 그 얘길 듣고서야 불현 듯 가스불을 켜던 순간이 생각났다. 그런데 문제는 ‘무엇’을 올려놓았는지 떠오르지 않았다. 국도 아니고 찌개도 끓이지 않았다. 도대체 가열해서 요리할 것이 없는데 뭘까? 집에 가서 냄비를 보고서야 알았다. 오랜만에 보리차를 끓인다고 물을 한 냄비 가득 올려놓았음을. 냄비가 외롭게 몸을 데우다가 태우고 있었을 시간을 헤아려보니 무려 1시간 반이다. 냄비가 잿빛으로 변했다. 조금만 늦었으면 불이 났을까. 그 생각을 하자 한숨이 나왔다. 안도의 한숨이 아니라 나의 허술함을 개탄하는 한숨이다. 이틀 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