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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지 않을 권리 자유기고가 시절 ‘프리랜서’라는 명함을 파서 일했다. 있어 보인다고 남들은 말했고 나는 비정규직도 아니고 무정규직이라고 둘러댔는데, 이번에 정식 용어를 찾았다. 호출형 노동계약. “노동시간을 미리 정해두지 않고, 필요할 때 ‘호출’하면 달려가야 하는 노동 형태. 고용주는 노동시간을 보장할 의무가 없으며, 노동자는 실제 노동한 시간에 대해서만 임금을 받는다(59쪽).” 호출형 노동자는 시간 관리가 생명이다. ‘시간은 돈’이므로, 돈이 되는 시간 창출을 위해 주도적으로 머리를 싸매야 한다. 나는 취재를 위한 왕복 시간, 원고 집필 시간을 측정해 일을 수주받았고 조금의 오차도 없이 진행했다. 마감 기계로 일하다 보니 나를 호출하는 곳이 불어났고 그럴수록 내 속도에 발맞추지 않는 동료를 견디지 못했다.프리랜서 ..
감응의 글쓰기 12기
어떤 사진 한장 제주에 강연 갔다가 손석희 씨를 만났고 사진을 찍어서 페이스북에 올렸더니 좋아요가 일천개, 댓글이 일백개가 되어가고 있다. 뭇사람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는 그는 거의 국민적 영웅인 거 같다. 실물 대면 전에 막연히 생각한 것보다 더 괜찮은 기운이 나오는 그에게 호감을 느낀 나는 새로운 책을 홍보할 겸 사심을 갖고 같이 사진을 찍었으나, 마음 한켠 꺼림칙함이 가시지 않아 생각을 정리해보았다. # 신체의 계급성 손석희씨랑 사진 찍기까지 많이 주저했습니다. 일단 영웅적으로 추앙 받는 사람에 대한 근원적인 거부감이 있어서고요. 사람은 누구나 허물과 결핍을 가진 '깨진 꽃병'인데 신비화가 가능하고 필요한 사회는 건강하지 못한 사회같아요. 한 사람이 수십년 한국 언론인의 상징적 지위를 누리고 있다면 그건 당사자의 탁..
채널예스 인터뷰 "책 만드는 사람도 발언했으면 좋겠어요." 2018년 3월 29일은 『출판하는 마음』 이 출간된 날이다. 이틀이 채 지나지 않아 주변 사람들로부터 리뷰가 쏟아졌다. “아마 출판계 사람들이라면, 특히 마케터라면 이 책 다 읽고 있을 걸요? 서점 MD 마음 공약법으로요.”, “친구가 읽던 걸 뺏어 읽었는데, 두 장 읽고는 사야겠다고 생각했어요.” 하기야 나도 책이 서점에 풀리기도 전, 출간 소식을 듣자마자 미리 인터뷰를 청했다. 일주일을 보내며 책을 읽었다. 단숨에 읽을 수 있는 책이었지만 일부러 천천히 읽었다. 다 읽고 난 후 평을 하자면, “대한민국 출판인이 1만 명이라면, 1만 명이 이 책을 읽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이 책의 초판 발행 부수를 물었다. 2천 부라고 했다. 부수를 굳이 밝히는 이유는 출판계의 현실을 독자들이 알았으면 하는 마음에..
"돋는 해와 지는 해는 반드시 보기로" 글쓰기 수업 시간, 연예인 지망생 아들을 둔 엄마가 글을 써왔다. 아이가 고등학교 시절 연극영화과를 지망한다고 했을 때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우리 집안에 그런 피 없다”라고 말했고, 엄마인 자신만 홀로 지지했다고 한다. 진로, 연애, 취업 등 인생의 모든 선택에서 ‘엄마는 무조건 네 편’이라는 응원에 힘입어, 아이는 원하는 대학에 들어갔고 엄마는 아들의 공연에 초대받는 유일한 혈육이자 비밀 없는 친구가 되었다는 훈훈한 일화였다. 이 글을 본 20대 취업준비생 학인이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현실에 없는 엄마 같다, 이렇게 자식을 믿어주고 밀어주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엄마 학인은 수줍은 표정을 지으며 너무 사소한 이유라서 굳이 글에 쓰지 않았다고 했다. 사연인즉, 대학 시절 친구들 넷이 월미도에 해 지는 ..
남을 아프게 하는 착한 사람들 오빠가 서른 초반에 병을 얻은 뒤, 엄마는 모임만 다녀오면 눈물지었다. 특히 명절이나 생일 등 가족 행사에서 다른 친척이 자식 얘기 하는 걸 견디지 못했다. 오빠 또래의 사촌들이 취직하고 결혼하고 아이를 낳았다는 평범한 얘기는 그런 평범한 삶에서 멀어진 (듯 보이는) 자식을 둔 엄마를 소외시켰고 스스로의 처지를 비관하게 했다. 운명의 얄궂음일까. 유독 공개적인 자식 사랑으로 엄마를 힘들게 했던 한 친척의 생일날, 엄마는 갑자기 돌아가셨다. 장례를 치른 후 외숙모가 말했다. 엄마가 외숙모에게도 하소연을 종종 했다고 한다. 유일한 기댈 곳이었을지도 모른다. 외숙모는 짝 채워 장가까지 보낸 외아들을 사고로 잃는 큰 아픔을 겪었다. 그렇지만 그 후 친지 누구도 당신 앞에서 자식 얘기를 일절 하지 않았다면서, 가..
원더플 비혼, 너에겐 친구가 있잖아 전주에는 친구 봄봄이 산다. 봄봄은 5년 전 전주에서 서울까지 오가며 내가 하는 글쓰기 강좌 16주 과정에 참여했다. 비혼 여성 공동체 ‘비비’를 운영하는데 강의료와 교통비를 동료들이 지원해주어 자기가 ‘대표’로 유학 오는 거라 했다. 그녀의 자기소개는 멋지고 대단하게 들렸다. 수업에 오는 기혼 여성 중 일부는 (자격증도 나오지 않는) 자기 공부를 위해 돈과 시간을 쓴다는 사실에 죄책감을 갖거나 배우자를 설득하기 곤란하다는 고민을 터놓곤 했다. 그렇기에 봄봄이 들려주는 고만고만한 일상을 넘어선 삶, 결혼 제도 바깥에서 이뤄지는 존중의 반려 관계는 듣는 것만으로도 숨통을 틔워주었다. 봄봄은 멀리서 오는 사람이 으레 그렇듯 가장 먼저 강의실에 와 있었다. 늘 수줍게 웃었고 성실히 글을 써냈다. 십년지기 네댓..
출판하는 마음... 알면서 '외않사' 신청은 여기로 https://goo.gl/forms/yC5dWQ4vXyJwn8xy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