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더플 비혼, 너에겐 친구가 있잖아

[은유칼럼]

전주에는 친구 봄봄이 산다. 봄봄은 5년 전 전주에서 서울까지 오가며 내가 하는 글쓰기 강좌 16주 과정에 참여했다. 비혼 여성 공동체 ‘비비’를 운영하는데 강의료와 교통비를 동료들이 지원해주어 자기가 ‘대표’로 유학 오는 거라 했다. 그녀의 자기소개는 멋지고 대단하게 들렸다. 수업에 오는 기혼 여성 중 일부는 (자격증도 나오지 않는) 자기 공부를 위해 돈과 시간을 쓴다는 사실에 죄책감을 갖거나 배우자를 설득하기 곤란하다는 고민을 터놓곤 했다. 그렇기에 봄봄이 들려주는 고만고만한 일상을 넘어선 삶, 결혼 제도 바깥에서 이뤄지는 존중의 반려 관계는 듣는 것만으로도 숨통을 틔워주었다.

봄봄은 멀리서 오는 사람이 으레 그렇듯 가장 먼저 강의실에 와 있었다. 늘 수줍게 웃었고 성실히 글을 써냈다. 십년지기 네댓 명이 주축이 되어 비혼 공동체를 꾸리는데 살림집은 따로 있는 1인 가족 네트워크 형태라는 것, 각자 특성에 따른 역할 분담과 활동들, 갈등을 어떻게 풀거나 뭉개며 사는지 찬찬히 기록했다. 내용은 흥미로웠지만 낯선 도시의 지도처럼 복잡해 보이기도 했다. 부딪치고 고심하며 나은 삶을 빚어내는 과정이기에 유토피아 보고서는 아니었다. 그래도 문장마다 힘이 넘쳤다. “시도의 에너지는 정지의 안정성보다 위대하”므로(134쪽).


ⓒ시사IN 윤무영

올해 초 봄봄에게서 초대장이 왔다. “여성생활문화공간 비비협동조합은 비혼 여성들의 space&link를 목적으로 시작되었지만, 현재는 기혼 여성들도 함께 참여하는 공간으로 자연스럽게 폭이 넓어졌습니다.” 거기서 봄봄은 글쓰기 모임을 꾸리고 있는데 매번 읽기와 쓰기가 여성에게 얼마나 중요한지 느낀다며, 작가와의 만남에 나를 부르고 싶다고 했다. 강연 주제는 ‘여성에게 글을 쓴다는 것의 의미’였다.


산수유 꽃망울 터지는 3월 셋째 주 금요일, 한달음에 전주로 달려갔다. 봄봄은 여전히 잔꽃무늬 옷을 입고 잔잔한 미소로 나를 반겼다. 강연장에는 여성 30여 명이 자리를 꽉 채웠다. 맞은편 벽면에는 ‘원더풀 비혼-너에겐 친구가 있잖아’라는 현수막이 붙어 있다. 가슴이 콩콩 뛰었다. 여자들만의 신나고 친밀한 세계. “나는 말도 부드러워지고 생각도 부드러워져서 상기한다. 모든 것이 머지않아 다른 모든 것이 된다는 걸(146쪽).” 하나를 말하면 열을 알아듣고 열을 논하다 보면 속 깊은 질문 하나는 반드시 던져주는 여성들과 함께하는 강연은 내게 치유의 시간이 되어주었다.


나는 강연 전날 내려가 봄봄의 집에서 묵었다. 봄봄의 벗들과 둘러앉아 담소를 나누었다. 지역에서 비혼 공동체를 꾸린 지 10년이 되어가지만 여전히 남성들에겐 이해받지 못한다고 했다. 사소하게는 “여자들끼리 있으면 짐을 나르거나 험한 일은 누가 하느냐”라고 묻거나, 진지하게는 “그렇게 폐쇄적으로 살지 말고 바깥으로 나오라”고 충고한다는 말에 우리는 깔깔 웃었다.

메리 올리버 지음
민승남 옮김
마음산책 펴냄




살뜰한 챙김에서 상상하는 다른 삶

대로변에 공간을 갖춰 10년 가까이 유지하는 단체를 불완전하거나 폐쇄적이라고 보는 건 무엇 때문일까. 남자 없는 삶을 상상하지 못하기 때문이 아닐까. 강연을 앞두고도 문의가 왔단다. “남자인데 가도 됩니까?” 여성 생활 문화 공간이라서 여성이 우선이며 정원이 이미 차서 받지 못했다고 한다. 당혹스러웠을 거 같다. 남자가 남자라는 이유로 거절당하는 것이 한국 사회에서 흔한 일은 아니니 말이다.


충만한 1박2일을 보내고 집에 와서 봄봄이 들려준 선물상자를 열었다. 쌀·멸치·깨소금·들깻가루·양말·수첩이 옹기종기 붙어 있다. 이런 살뜰한 챙김에서 깨닫는다. 다른 삶을 상상하라고 말하지만, 그러한 “세상은 우리의 깊은 관심과 소중히 여김의 소용돌이와 회오리 없이는 만들어질 수 없다는 것(124쪽)”을.







* 시사인 '은유 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