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 권태_단 하나의 흥미진진한 생각 하나

[글쓰기의 최전선]

기원을 알 수 없는 바람처럼, 어디서 불어와서 제 마음에 감겼는지 모르는 글쓰기 잠언들이 꽤 있습니다. 많이 읽고 많이 말하고 많이 생각하고 많이 적용하다보니 제 생각처럼 되어버린 건데요. 그것들이 제 말에서 또 흘러흘러 여러분들 손끝에 이르면, 그래서 글 쓸 때 어떤 염력을 발휘하면 좋겠어요. 가령, 지난시간 내내 강조한 부분, “주제를 좁혀라하고 말이죠. 관련 글이 있어서 옮겨봅니다.

 

누구도 무언가에 대한책이나 글을 쓸 수는 없다. 톨스토이는 전쟁과 평화에 대한 책을 쓸 수 없었고, 멜빌은 고래잡이에 대한 책을 쓸 수 없었다. 특정한 시간과 장소, 그리고 그 시간과 장소에 있는 특정한 인물들에 대해서만 쓴 것이다. 모든 글쓰기는 시작하기 전에 먼저 범위를 좁혀야 한다.너무 부담스러운 과제는 열의를 고갈시킨다.좋은 글은 하나같이 독자에게 한 번도 해보지 못했던 흥미진진한 생각 하나를 던진다. 두 가지나 다섯 가지가 아니라 단 하나의 생각이다. 그러므로 독자의 마음에 어떤 점 하나를 남길 것인지 결정해야 한다. 그러면 여러분이 어떤 길을 따라가야 할지, 그리고 어떤 목적지에 도달해야 할지 더 잘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더불어 어조와 태도를 정하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다. 어떤 점은 진지하게, 어떤 점은 차분하게, 어떤 점은 유머를 써서 강조하는 것이 좋다.'

 

단 하나의 생각. 흥미진진한 생각 하나. 이상 수필을 읽으면서 글에 몰입하고 자극받을 수 있었던 이유도 이것이겠지요. '권태'의 압권인 지천이 초록인 자연 풍광. (녹음을 보고 '일망무제의 초록, 조물주의 몰취미'라고 한 것) 안경 쓴 학동들, 환자를 둘러싼 의사들의 회진 장면 등, 사진 찍듯이 한 장면을 찍어서 깊고 흥미롭게 파고듭니다. 아마, 이상이 글을 쓸 때 나는 꼭 완벽하게 써야지라고 마음먹었을 것 같지는 않아요. 그냥-일단 쓰기 시작해서 내용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한 문장이 다음 문장을 부르는 끝말잇기 문장버전 같은 느낌이었어요. 너무 걱정하지 말고 써야한다는 것, 그리고 하나의 문제의식으로 좁혀가는 것, 그런 방향성만 품고 써보는 게 좋겠습니다.

 

자기 삶에 대해서는 누구나 권위자이고 전문가죠. 내가 내 삶을 캐스팅하는 겁니다. 수업시간에 밤밤님이랑 라피스님을 주축으로 환경과 건강이라는 분리불가능한 주제로 이야기를 나눌 때, 우리만 듣기가 참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건강은 공동체-환경의 문제인데도, 식습관이나 운동 같은 개인의 의지와 실천의 문제로 귀속시키려 한다는 것, 방송에서 커트된 정보를 더 널리 공유하고 진실을 알리고 제도화해야한다는 것, 크게 공감했습니다. 반면에 건강-위험사회는 개인의 경제력이나 주의력으로 돌파하기는 불가능합니다. 계급적 접근과 실천의 문제도 고민해봐야 할 지점이고요. 아무튼 우리는 삶에서 보고 듣고 느끼고 경험한 것을 기록할 의무가 있음을 다시 한 번 확인했습니다. 건강과 존엄을 뺏기지 않고 살기 위해서, 두루두루 모든 존재가 어우러지는 더 나은 조화로운 삶을 위해서요. 귀한 얘기 나눠주신 분들에게 감사드려요. 수업시간이 끝나가니, 아쉬워서 애틋해서 사진 또 찍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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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과노동에 시달리는 ㅇㅈ, 노트필기 황제 한준, 감기 낳으시고 스타일 변신한 ㅎㅂ사랑,

봄처녀 스카프를 맨 의약업계의 잔다르크;; 밤밤, 새초롬 이요르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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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개숙인 남자 열공모드 백납, 양복빨 댄디즘의 구현 박님, 날쌘돌이 탐험가 정신의 부반장 조리퐁, 세살 젊어진 학구파 멜로님, 지구를 구할 환경파수꾼 라피스님,

경청신공 보여주시는 소녀같은 모범생 나무와강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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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살아가야할 이유, 내고향 만두. 박님의 회사 앞에서 파는 맛난 만두!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

 

 

 

박님

혼자살이의 보릿고개가 있었다. -> 이게 첫 문장으로 오는 게 더 긴장이 생겨요. 호주에서의 일이다, 는 평이하죠. 첫 문장은 가능한 팽팽하게. 그 다음, 가난한 유학생으로서 가져온 돈도 바닥나고 생계의 압박이 조여들었다, 라고 이어지면 흥미롭겠죠. 이번 글의 리드문단이 좀 어수선했습니다. 정보제공에 충실하고 친절해야 독자가 안 읽어버리는 일이 없겠지요. 어쨌든 좋은 글은 (고싶)합니다.

끊어치기가 글쓰기의 경제성의 원리를 잘 구현한 것이기는 하나, 자칫 조밀한 맛이 없어 글이 헐거워지기도 하죠. 박님이 문장을 감각적으로 잘 쓰시는데 항상 글 호흡이 짧아요. 조금 더 문장과 문장 사이에 문장을 채워 넣어보세요. 이런 이색체험을 주제로 원고지 20매도 못 채우면 아깝잖아요.

 

-넘어보지 못했던 벽이 있다. 어느 순간에고 그 벽을 넘고 싶었다. 이게 맞다 틀리다 옳다 그르다를 논하기 앞서 그래 난 할 거야라고 말하고 싶었다. 이제와 생각하니 '한다'가 아니라 '한다고 말하고 싶어'였구나.

 

 

나무와강

자기성찰적 글쓰기, 자기탐사의 재미에 푹 빠져든 나무와 강님. 지난번 글의 속편처럼 느껴지기도 하네요. 제목도 노골적으로 내면의 얼굴. 일단 글을 써놓고 여러 번 소리 내어 읽으면서 늘어지는 부분은 줄여주세요. 중요한 부분 직접인용으로 글의 시각적 지루함을 덜어주시고요. 문단을 주제별로 가르면서 쓰면 훨씬 글이 구조적으로 보입니다. 퇴고가 쉬워지고, 다듬으면 갈수록 좋아질 것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 무엇에 대한 글은 아무 이야기도 전하지 못합니다. 그러니 내면의 얼굴이 드러나는 지점, ‘공적인 일’ ‘사적인 일이라는 추상적인 표현보다는 구체적으로 어떤 장소 어떤 사람과의 일인지 알려주셔야 글이 실감나고 주제가 부각되겠지요. 주제문장에 밑줄 긋는 연습도 해보시면 도움 될 것입니다.

 

-누구를 만나느냐, 어떤 상황이냐에 따라 마음과는 다르게 필요에 따라 얼굴 표정만 바꾸며 카멜레온처럼 변신했었다. 얼마 전 불쾌한 일이 있어서 어두운 표정으로 마트에 다녀오는데 아는 사람과 우연히 마주쳤다. 그러나 얼굴 표정이 빨리 수습되지 않아서 내 진짜 얼굴을 들킨 것 같아 뜨끔했다. 내면의 얼굴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만들어지고 드러난 것이다.

 

 

한준

조금 못생기고 삐뚤하고 투박한 글을 쓸 각오를 하고, 한준은 글을 써야한다 생각해요. 글 쓸 때 어깨에 힘을 빼라. 글쓰기의 중요한 원칙이에요. 잘 쓰고 싶다는 의욕은 독이죠. 필자의 사유의 몰입을 방해하니까. 필자가 몰입하지 않으면 독자도 몰입하지 않는 것은 당연지사. ‘사람이 견딜 수 없을 때, 헐어버린 마음에 어떤 것도 담을 수 없을 때, 여행을 떠난다.’ 이런 선언적 문장 앞뒤에는 허물어져서 남루하고 엉망인 구체적 일상이 나와야 힘을 발휘하는데 계속 일반론으로 이어지니까 붕뜬 글이 됩니다. 잠언투로 된 글이 성공하기는 힘들지만(법정스님, 니체 같은 종교인의 경지), 일상어투로 좋은 글을 쓸 가능성은 훨씬 높답니다.

 

-영화는 말한다. 아무도 듣지 않는다고 해서 외치지 않으면 절대 살 수 없다고. 외치다보면 누군가 듣게 되서 살 수 있다. 그것이 본능으로 주어진 삶을 살아갈 방법이다.

 

 

짱아치

장애인활동보조에 대해서 막연히 짐작했는데 이 글을 통해 조금은 알게 되었네요. 끝에서는 괜히 같이 가슴이 콱 막히기도 하고요. 정보적 가치, 정서적 가치가 있는 글입니다. 삶이 삶을 보조한다는 것, 칼 같이 금 그을 수 없는 애매한 경계가 있을 거 같아요. 그것에 대한 덕규의 어지러운 마음 한 자락 잘 나타나요. 이런 사례가 일상의 다른 경우에는 없었을까요? 남편과 집안 일로 신경전 벌이는 제 모습도 떠오르고, 직장에서 일할 때 역할 소재가 모호해서 할 수도 안 할 수도 없어 속상했던 일도 떠오르네요. 생의 모든 고민은 이렇게 살 수도 저렇게 살 수도 없는데서 오겠지요. 이런 감정들이 단지 찝찝함과 고단함은 아니지 않을까 싶어요. 이 글에 살 붙이면 아주 좋은 글 되겠어요. 덕규만이 할 수 있는 경험의 고유성을 더 차분히 밀고나가서 완성시켜 보길.

 

그리고 난 덕규 글에 하지만이 너무 많다고 생각해요. ‘하지만이 많으면 글이 어딘가 감정적인 느낌을 주고, 억울함을 호소하는 듯한 해명하는 뉘앙스가 발생해요. 접속사 없는 글에 도전해보는 것도 권하겠음.

 

-장애인이 취직한 직장에서 장애인의 상사가 활동보조인도 자신의 직원인 마냥 부리려 한다는 이야기는 활동보조인의 업무 경계와 관련하여 흔한 충돌 사례이다. 그 집사는 교회청소도 나의 업무로 생각하는 것이 확실하다. 그렇다면 나는 그에게 그것은 나의 일이 아니라고, 당신이 전산실을 청소해야 한다고 말해야 하는 것일까?나는 나의 일도 아닌 것을 가지고 태업을 하는 것과 비슷한 감정을 느낀다. 바닥에서 올라오는 먼지가 숨을 막는다.

 

 

배롱

바람이 전하는 말, 이라는 조용필의 노래가 생각나네요. 바람이 주된 소재로 쓰이는 글 같아요. 휴게소와 바람, 운구차, 하얀 양복. 제천휴게소라는 이름도 어쩐지 바람이 부는 것처럼 스산하게 느껴져요. 정서적 느낌을 자아내는 점은 좋습니다만, 바람의 등장이 비율적으로 좀 과하지 않나 싶습니다. 대략 추려보았더니, 다음과 같습니다.

 

죽령을 타고 올라온 바람이 갈 길을 잃은 채 휴게소 마당을 마구 할퀴어 대고 있었다.

바람이 자신 주변으로만 더욱 성가시게 부는 것 같아 괜히 짜증이 났다.

아저씨……, 우리 엄마 모자 좀 찾아 주세요. 바람에 날아갔는데 아무리 찾아도 없어요.”

소녀의 말소리는 바람에 이리저리 흩어졌다.

바람은 혼자 다니는 법이 없다. 거부하면 할수록 더욱 거칠게 머리채를 휘어잡고 끌고 다닌다. 때로는 묵직한 것을 들어 올리려고 휘몰아치지만 십중팔구 머리채를 휘어 잡히는 것은 바스라져 사라지는 것들이다.

봉쇄된 문을 따고 들어온 바람은 여기저기에 진을 치고 점령군의 위세를 한껏 떨치며 매점 안을 약탈하고 있었다.

오늘따라 바람이 더 세게 부는 것 같다며 칠흑 같은 바람 속으로 삿대질을 해댔다.

여자는 하얀 양복들의 말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모자를 갖고 숨기에는 바람 속이 참 안성맞춤이었다고 생각했다.

 

이 문장들은 표현의 생생함에서 좋은 문장을 추려놓은 것으로 봐도 무방합니다. 소설가의 내공이 엿보이기도 하는데, 그래도 과유불급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단지 양적으로 많아서 문제라기보다는, 바람이 머리칼을 헝클어서 앞이 잘 보이지 않는 것처럼 저는 내용파악이 약간 어렵네요. (제 문제가 아닌가 싶기도 해서 말씀드리기 조심스럽고요.) 아무튼 워낙 배롱님이 추리소설적 기법으로 직접적 메시지 전달보다 단서를 던지는 글을 쓰시는데, 왜 이 글이 쓰여져야 하는가, 조금 친절한 힌트 부탁드릴게요. 저도 주제파악을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조리퐁, 지난번에 올린 글감 목록으로 틈틈이 글쓰기 해보아요. 뒷풀이에서 한 얘기들,노동의 경험들, 활자로 변환된 글을 기다리겠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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