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고 보니 울어본지 꽤 오래 됐다. 난 수년간 눈물병에 걸렸었다. 슬픈 게 너무 많아서가 아니라 안 슬픈 일이 없었다. 난감함과 허무함이다. 세상이 온통 검은페이지였다. 미술시간처럼 그걸 칼로 긁어내고 눈물로 지우면서 조금씩 빛깔을 보곤 했다. 은근히 격렬했던 고통의 기억.
초면의 인터뷰이와 한정식 한 판 차려놓고 눈물이 쏟아져 그대로 남기고 온 게 생각난다. 색계 보고 나와서는 담배피는 어느 사내의 뒷모습이 눈에 밟혀 한 참을 앉아 있다가 갔다. 노래방에서 노래 신청해놓고 한 소절도 부르지 못한 채 반주만 듣곤 했다. 티슈통 옆에 끼고 코 풀어가면서 날이 밝는 걸 보기도 했다. '물에 불은 나무토막 위로 비가 내렸다.'
그 눈물이 그친 것은 대중지성 공부하면서 같다. 차츰 잦아들다가 이젠 안 울게 됐다. 눈물 다 말랐다. 서운할 정도다. 그래서 삶의 구체적 고통에 대해서 입을 열기 싫다. 까만 비닐봉지로 묶어놓았다. 매듭이 아니라 맺힘이다. 그래서 풀 수가 없다.
오랜만에 가슴 먹먹하다. 필통 속에 넣어가지고 다니던 만년필을 꺼냈다. 좋아하는 사람한테 선물로 받은 건데 아끼느라 잘 안 썼었다. 그런데 아낀다는 증거로 한번씩 써줘야할 것 같아서 그걸로 시를 한 편 베꼈다. 만년필이 잉크가 굳었는지 잘 안 나왔다. 혓바닥에다가 주사놓듯 콕콕 만년필을 찍어가면서 한 자 한 자 적었다. 피로 쓴 게 아니라 침으로 썼다.
..오래 고통받는 사람은 알 것이다
지는 해의 힘없는 햇빛 한 가닥에도
날카로운 풀잎이 땅에 처지는 것을
그 살에 묻히는 소리없는 괴로움을..
나를 울게 하는 것들만 사랑했는데 나를 울지 않게 한 것들에 대한 고마움도 깨쳤다. 세상에서 제일 화나는 건 헤어짐. 어떤 종료. B급 낭만파에겐 쥐약이다. 오며가며 보겠지만 그래도. 조촐한 형식이래도 이별은 이별이다. 이별의식을 생각하게 할 만큼 '정'을 준 두 스승에게 고맙다. 배움의 즐거움, 관계의 기쁨을 다시 깨우쳐준 친구들에게도.
아까 저녁에 밥 먹을 때.. 선배가 물었다.
"같이 공부하는 사람들 좋니?"
올드-걸은 두 번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