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으로 바꾸다

[차오르는말들]

새해 들어 두 가지를 바꾸었다. 핸드폰과 안경. 핸드폰 매장 옆이 안경점이다. 순식간에 처리했다. 폴더폰에서 스마트폰으로. 흘러내리는 안경에서 흘러내리지 않는 안경으로. 안경 바꾼 거는 남들이 잘 모르고, 핸드폰 바꾼 거는 소문이 다 났다. 나보다 더 간절히 엄마가 스마트폰을 갖기를 바랐던 딸아이는 바로 내 스마트폰에 카카오톡을 깔았다. 그랬더니 상대방 폰에 내가 '새로운 친구'로 이름이 뜬 모양이다. 지방에 사는 사촌 언니에게 몇 년만에 전화가 왔고, 아들 한 살때 윗집 살던 언니한테도 "놀러 오라"고 연락이 왔다. 무슨 유적 발굴도 아니고, 오랜 인연의 부활에 나는 적잖이 당황스러웠다.

"스마트폰으로 드디어 바꾸었구나!" 며칠 동안 메시지가 답지했다. 웃음이 났다. 내가 마치 감옥에라도 있다가 풀려난 듯한 이 환영의 물결은 뭐지? ㅎㅎ 왜 바꾸었는지를 물어본다. 가장 큰 이유는 아들과의 교신이다. 아들이 핸드폰이 없고 인터넷 강의용 아이패드가 있는데, 그걸로 카톡이 된다. 근데 내가 카톡이 안 되는 폰이다보니 아들과 연락할 길이 없다. 답답하고 아쉬웠다. 예비 고3 엄마로서 크게 해주는 일은 없지만, 밥은 먹고 다니는지 연락은 해야했다. 딸아이도 엄마랑 카톡하는 게 소원이라고 노래를 부른다. 그 다음은 업무때문. 인터뷰에 휴대용 녹음기와 카메라가 필요했다. 나의 구폰은 카메라가 고장났고 녹음기는 없다. 

마지막으로 호기심.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나 빼고 거의 다 이어폰 끼고 스마트폰에 얼굴 묻고 있다. 개별화되는 방식으로 동일화되고 집단화되는 그런 현상이 신기했다. 나도 스마트폰이 생기면 그럴지 궁금했다. 폰이 고장나면 바꾸려했는데 시기를 조금 앞당긴 것이다. 나름 유연화 정책이다. 나이들수록 옹고집 같은 사람이 될까봐 나는 나를 걱정하고 있다. 다양한 문화를 접촉하면서 신체를 변화 확장 시키려고 노력한다. 누가 좋다고 하면 음악을 듣는 것처럼 스마트폰도 주위에서 권하니 귀가 솔깃했다. 이것저것 손 닿는 데까지 얘기 듣고 수용하고 발 가는 곳으로 가면서 적당히 뒤따라 가는 중이다.

스마트폰 기종은 아이폰5. 사무실 사람들이 죄다 아이폰이다. 친구들도 거의가 아이폰이다. 그래서 만날 때마다 개인레슨 받고 있다. 그들도 베풀기를 좋아하는 영혼처럼 유용한 어플이라며 친히 깔아준다. 오타 작렬하던 문자메시지도 이제 제법 정확하고 속도가 붙었다. 그래도 한글 자판 치기가 귀찮을 때면 이모티콘으로 퉁쳐버리는 여유까지 부린다. 그러다가 이모티콘의 탈맥락적인 쓰임을 들킨 한 선배로부터 "내 카톡 상대 중에 이모티콘 최대 과잉"이라는 지적질도 받았다. 겨우내 움츠렸던 꽃망울이 터지는 거 같데나 뭐래나. 

스타벅스는 스벅, 페이스북은 페북, 훼미리마트는 훼마 등 왜들 그렇게 약자를 사용하나 했더니 스마트폰 사용하면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거 같다. 문자메시지도 말풍선이 뜨니까 짧게 토막글로 끊어져 온다. 나조차 그런다. 2G폰일 때는 마치 시 짓는 기분으로 한 화면을 함축적인 말로 채우곤 했는데 스마트폰 환경에서는 그게 영 어색하다. 아마도 문장으로 사고하는 훈련은 덜 될 거 같다. 종이 편지와 이메일의 차이처럼 그렇게 감각과 정서가 바뀔 테지. 그리 큰 위험으로 인식되지는 않는다. 기기가 어떻든 생각하는 사람은 하고 안 할 사람은 안 하니까. 단어와 표현에 집착하는 사람은 하고 안 하는 사람은 안 할 것이다.

오늘은 스마트폰으로 바꾸고 처음 맞는 일요일. 아이폰이 잠잠했다. 집에서 하루 종일 원고 쓰고 일했더니 주말 같지도 않은데 말이다. 어쩐지 좀 쓸쓸한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이대팔 가르마로 머리 질끈 묶은 면상에 목 늘어난 티셔츠 입은 삼순이 포즈로 셀카 찍고 놀았다. 며칠 전 후배가 '제목만 보고 반해서 샀다'며 <당신 집에서 잘 수 있나요?> 라는 김이강의 시집을 선물해줬다. 좋은 사람 생기면 제발 이 대사를 써먹으라는 당부의 말과 함께. 책상에 뒹굴던 그 시집의 표지를 일단 카메라에 담아두었다. 이영애의 '라면 먹고 갈래요?'보다 더 무서운 말. '당신 집에서 잘 수 있나요?' -.-; 누구한테 보낼까, 궁리하면서 몽상모드로 잠시 이탈. 그런 내가 처량하면서도 재미나다.아이폰에 자꾸 손이 간다. 태엽 감으면 움직이는 인형처럼 동선이 뻔하지만 그 예측가능함에 끌린다. 내 뜻대로 움직여주는 게 별로 없는 세상이라 그런가.

개인적으로 S그룹 불매 중이다. 가전제품 전자기기 옷가지 아무 것도 사지 않는다. 이마트도 안 간다. 몇년 전 S그룹 사보일도 호기롭게 끊고 잘난척 하고 다녔다. 꽤나 정치적으로 올바르고 윤리적인 인간이라도된 양. 그런데 지난주에 전화가 왔다. 예전에 같이 일하던 에디터가 회사를 옮겨서 지금 S그룹 사외보를 만다는다고 했다. 중요한 일이라 그런다며 원고를 부탁했다. 개인적으로 친하지는 않지만 워낙 신실하고 착한 친구였다. 예의 그 착한 목소리에 마음이 흔들렸고 결정적으로 원고료가 다른 데 두 배였다. 그래봤자 한 달 난방비다. 집이 커지니까 난방비가 하도 많이 나와서 동절기 알바라고 명분을 만들었다. 한다고 했고, 하고 왔고, 원고까지 썼다. 그랬더니 꼭 죄를 지은 것 같다. 원고 보내면서 다음에는 사정이 있어서 못한다고 말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다. 실천의 노력이 인간 존재를 특징짓는 법이거늘. 핸드폰 바꾸고 안경 바꾸고, 가치관까지 바꾸게 되면 안 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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