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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오르는말들

돌아나오다

아르바이트를 끝냈다. 4개월이 지났다. 사계절 같이 길고 변화무쌍했던 시간을 철수하기 위한 준비는 삼사일 전부터 시작되었다. 사무실에서 신던 신발을 집에 갖다 놓고, 컵을 치웠다. 렌즈보존액도 가방에 챙겼다. 벽에 붙여 두고 보던 '불취불귀' 시도 떼었다. 마지막 날엔 사무실에서 쓰던 다이어리와 수첩과 명함을 버렸다. 나의 필체와 기록과 신상정보가 적힌 그것이 휴지통에 들어가 있는 것을 보노라니 기분이 처량했다. 컴퓨터를 열고 문서를 정리했다. 기존에 있던 것, 내가 작업했던 것으로 자료를 나누었다. 작업폴더의 문서 100여 개를 일일이 열어보고 필요와 불필요를 구별해서, 불필요 판정이 난 것은 휴지통으로 직행. 처음에 몇 번은 클릭해서 휴지통까지 드래그하는 길이 멀게만 느껴졌다. 내가 하루를 다 바쳐 준비하고 자료를 찾아 작성한 문서들. 마른 행주 짜는 심정으로 쥐어 짜냈지만 무가치한 글들이 순식간에 폐기됐다. 나의 노동 시간의 버려짐은 나의 버려짐, 국소적인 죽음이 눈 앞에서 자행되고 있었다. 막판에는 신경질적인 버려짐의 의식이 되어버렸고 곧 속도가 붙었다. 홀로코스트 속에서 겨우 문서들을 추려서 가지런히 분류해놓았다. 투입 대비 산출의 결과물만 놓고 보면, 을은 시간 낭비, 갑은 인건비 낭비다.   

컴퓨터를 끄고 의자를 밀고 하트 거울 하나는 책상에 놓아두었다. "저 이제 안 나와요." 사무실에 있는 분들에게 깎듯하지만 어색한 인사를 드리고 돌아나왔다. 어느 새 돌아나오는 일에 능숙한 나를 본다. 지난 번 사무실을 그만둘 때는, 은행 가는 것처럼 대문을 열고 조용히 나갔다. 구질구질하게 눈물이 쏟아지지 무언가. 골목길을 돌아나오는 길에 주간님께 문자를 드렸었다. 신파 영화 찍기 싫어서 슬며시 나왔노라고 말씀드렸다. 그는 나의 설움을 알 테니까.

 

 

사무실 앞. 낮은 언덕길을 내려와 버스를 기다렸다. 버스정류소 의자에 할머니와 아이가 앉아있었다. 외출하는 차림도 다급한 표정도 아니었다. 그 옆에 슬그머니 엉덩이를 붙였다. 두손 내려놓고 있자니 셋다 멍하니 앞만 바라보는 형국이 되었다. 할말 있는데 삐진 사이마냥 긴 침묵이 흘렀다. 나는 고개를 돌려 옆을 보았다. 할머니랑 눈이 마주쳤다. "얘가 버스 타는 걸 그렇게 좋아해. 돈 아깝게 그냥 버스를 탄다고. 심심하니깨 타야지 뭐." 묻지도 않은 얘기를 구구절절 늘어놓으신다. "버스 타는 거 재밌니?" 꼬마 아이의 손에 내 손을 슬쩍 올려놓고 물어보았다. 아이가 시선은 여전히 앞에 두고 고개만 끄덕인다. 아차 싶었다. 이건 대답이 예, 아니오만 가능한 닫힌 질문이다. 아이야, 왜 버스를 타고 싶니? 다시 물어보고 싶었지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원래 대답이 두려울 때는 묻지 않는다.

큰 아이 키울 때가 생각났다. 나만 빼고 바쁘게 흐르는 세상을 멍하니 바라보며 저들 조손커플처럼 세상에서 동떨어진 사람마냥 의자에 앉아 시간을 하염없이 보내기도 했다. 가방에 넣어둔 시집을 꺼내 읽겠다며 억척을 부리다가도 어떤 날은 이게 다 무슨 소용인가 싶어 두손 놓았드랬다. 할머니는 차비 낭비를 한탄하시지만, 젊은 엄마는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청춘을 애도했다. 삶이 길고 지루한 낭비놀이라는 것을 그 때는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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