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날 아침, 물고기자리 - 이안

[차오르는말들]

 

 

...

저기 하늘 끝에 떠있는 별처럼

해뜨면 사라지는 그런 나 되기 싫어요

 

사랑한다면 저 별처럼 항상 거기서 빛을 줘요

그대 눈부신 사랑에 두 눈 멀어도 돼

... 

 

 

나타나기만 하면 무슨 소원이든 이루어지는 요정은 누구에게나 존재한다. 그러나 자기가 무슨 소원을 빌었는지를 기억해 낼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리하여 나중에 그것이 이루어졌다는 것을 깨닫는 사람도 거의 없다.

 

-벤야민, <베를린의 어린시절> '겨울날 아침' 중에서

 

 

추위가 살짝 누그러진 겨울날 아침, 물고기자리를 듣는다. 책을 뒤적거린다. 이슬 한 모금 마시고 별 한번 쳐다보는 사람처럼 그런다. 노랫말이 별같다. 사랑한다면 저 별처럼 항상 거기서 빛을 줘요. 초겨울이었을까. 술 마시는데 노래가 부르고 싶어져서 불렀다. 당신도 울고 있네요. 아주 옛날 노래인데 문득 가사가 전면적으로 떠올라서 충동적으로 흥얼흥얼 한 것이다. 무반주로. 올드한 그 노래를 영한 나의 친구들이 좋아라했다. 가사 예쁘다고. 어제 그가 말했다. 십팔번을 바꿔요. 그 노래 말고 이 노래로. 나는 뒤끝 긴 이별의 정서가 좋은데 이 노래는 지나치게 투명하다. 이슬처럼 맑은 이별도 있을까.

 

주간님은 인쇄소 가고 나는 사무실에 혼자 남아서 할일은 하지 않고 있다. 노래 딱 한 곡만 들으려고했는데 끝나지지가 않는 거다. 끝나지지가 않는 것은 나에게 큰 고민이다. 뭐든. 음악이든. 생이든. 연민이든. 집착이든. 외부의 강제에 의하지 않으면 영원히 계속될 것 같다. 참 길다는 생각이다. 나는 최소한으로 살다 가고 싶어요. 그게 이번 생의 목적이에요. 라고 그가 말했다. 한번 들여다보고 가는 생, 최소한의 접점으로 살고 싶다고 했고 얼마간은 그렇게 살고 있다. 나는. 나라고 해서 최대한의 삶을 꿈꾸지 않는다. 최소한, 그 최소한 살아가기가 왜 이렇게 버거운지 모르겠다. 최소한으로 살기엔 이미 인연의 고리를 많이 만들어놓아서, 자체 증식하는 정념의 고리를 막을 길이 없어서 그럴 것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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