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꾸준히 살아갈 것이다

[차오르는말들]

 #1

대한문 앞 함께살자 농성장에 있는 의자다. 고추장이 연구실 홈페이지에 올린 사진을 보고 뭉클해서 저장해놓았는데, 시청앞을 지나면서 실물로 봤다. 한 10분 앉아 있다가 오고 싶었는데 그러질 못했다. 춥고 용기가 없어서. 비닐 천막 앞에 저 의자에 새겨진 말이 그 어떤 구호나 걸개그림보다 육박해온다. 며칠 전 어떤 공연 뒷풀이에서 이곳 농상장에 계시는 분과 담소를 나누었는데 나는, 실없이 같은 말만 반복한 거 같다. "춥지 않으세요?" "추우시죠..." "추워서 어떡해요?" 그분은 "지낼만 하다"고 하셨다.

 #2

 

 

마포구립강서도서관에서 <올드걸의 시집> 강연회 사진. 나로서는 유명하지도 않은 작가와의 만남에 누가 올까 싶었는데 생각보다 많이 와주셨다.^^; 특히 할아버지가 세 분이나 오셨다. 질문도 활발히 해주시고. ㅎㅎ "은유가 본명입니까 예명입니까?" "시는 삶을 구원한다가, 구원이 불행을 행복으로 만들어준다는 겁니까?" "어려운 시가 좋은 시인것처럼 말씀하시는데 발전이 꼭 좋은 게 아니듯이 시도 어렵다고 꼭 좋다고 할 수 있는 겁니까?" 완전 예리하신 어르신 덕분에 강연회가 알찬 시간이 됐다. 시는 행복없이 사는 훈련이다. 불행이 그렇게 쉽게 행복으로 바뀐다면 왜 불행이겠는가, 감히 말씀드리고. 시는 무한한 혼돈에 로고스의 갈래를 부여하려는 노력이고 그것이 구원이다라고 풀어서 답했다. 어려운 시 쉬운 시가 있는 게 아니라 좋은 시 덜 좋은 시가 있다고, 기존의 사유 지반을 흔들어놓는 시가 좋은 시라고 했다. 

#3

언제부턴가 내 삶의 패턴과 호흡이 일년을 못가고 있다. 그저 하루하루가 저문다. 애매하고 어정쩡한 상태로 번번이 뭔가 하다가 말게 돼서 흐지부지한 상태가 내내 속상했다. 이 풍파와 곡절이 너를 강하게 만들 것이라고 누군가 위로했을 때 더 이상 강해지길 원치 않는다고 말했다. 심신이 피곤하니까. 지겹다. 누가 그랬다. 괴로울 때는고통의 키재기를 하라고. 나는 고통의 물타기를 택했다. 음악만 진탕 들었다.    

구하라 얻을 것이다. 긴급하게 일자리를 구했다. 복지정책 관련된 중요한 백서 만드는 일이다. 비중 있는 아르바이트 정도인데 모호한 고용 계약을 맺고 일한다. 우연에 기대기. 그래서 일주일을 하루씩 산다. 동시에 선배가 소개시켜준 다른 회사 면접도 봤다. 내가 원하는 급여 조건에 정규직으로 갈 선택지도 있었으나, 나는 우연과 모험을 택했다. 불안한 김에 이 불안 위에서 얼마나 견딜 수 있을지 더 가보고 싶은 오기 같은 것이 발동했다. 

#4

 연구실에 소포가 왔다. 글쓰기의 최전선 2기 3기 연속 수강했던 친구다. 3기 때는 엄동설한에 돌쟁이 아이까지 데리고 다니면서 공부에 열정을 보였다. 연구실이 해방촌으로 여름에 이사를 가는데 장소를 미리 구해서 인테리어를 하고 있다. 그 소식을 알고는 선물을 보내왔다. 산타할아버지가 주던 종합선물세트같이 사과상자 하나 가득.

가끔 전화해서 공부 고민을 터놓고는 했는데 나에게 예고도 없이 선물을 보내서 감동했다. 하찮은 선물로 큰 행복을 주는데 알찬 선물은 얼마나 큰 감격을 주는지...아아에게 전화해서 고맙다고 했다. 이런 선물 받고 나면 잘 살아야겠다는 마음 다잡게 된다. 쌓고 축적하기보다 덜어 나누는 걸 실천하는 배움이 되도록 더 노력해야지. 같이 시간을 보내주고 추억을 만들어주는 도반들에 힘입어 나는 꾸준히 살아갈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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