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고를 처음 가봤다. 생후 40년 만에. 운동장에는 푸르딩딩한 수박색 추리닝을 입은 남학생들이 공을 차고 있다. 인조잔디가 깔리지 않은 흙바닥에 구름먼지가 인다. 전봇대만한 아이들의 그림자가 뒤엉킨다. 완전 어른이구나. 남고가 꼭 ‘군대’같다고 생각한다.
학부모 오리엔테이션을 위해 강당으로 간다. 넓은 공간이 꽉 찼다. 평일 오후인데 양복차림 남자가 많다. ‘요즘은 아빠가 아이들 교육에 관심이 많다더니 이런 자리에도 온단 말인가’ 새삼스럽다. 스크린이 내려오고 복잡한 도표와 통계치를 내민 입시현황을 보고한다. 서연고 정원이 몇 명 인서울 이과 문과 정원이 각각 몇 명. 그래서 우리학교 전교에서 몇 명이 서울소재 대학을 진학한다는 말씀이다. “이과는 2.5등급까지 경기권 대학에 들어갑니다. 문과보단 훨씬 나은 편이죠.”
지난 겨울방학 때 동네학원에 갔다가 들었던 얘기다. 충격은 덜하다. 다만, 고등학교 진학부장과 대형학원 입시실장이 판박이처럼 똑같은 언어를 사용한다는 점이 놀랍다. 강당에서 교실로 이동했다. 책상만 덩그마니 놓였다. 휑하고 퀘퀘하다. “아우~ 니네 교실에서 홀아비냄새나~” 어떤 엄마가 아들에게 전화해서 코맹맹이 소리로 따진다. 담임선생님 인사와 면담까지 마치고 나자 6시다. 무려 네 시간을 머물렀다. 공포영화처럼 서늘한 긴장을 놓을 수 없는 잔인한 오후였다.
“남고가 훨씬 좋은 거 같아요.” 군대 같은 학교를 아들은 신나서 다닌다. 3월 내내 들떠 말했다. 특히 학교에 매점이 있다는 사실에 열광한다. “엄마 학교 다닐 때도 매점이 있었어요?” -.-; 남자끼리 있으니 편하고, 반 아이들 성격이 좋단다.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조잘조잘 떠든다. 자기 짝꿍은 7번째 여친이라는 둥 나도 푹 빠져서 들었다. 며칠 지나서 눈치 챘다. 일 년 내 내 입시지옥인 목동을 벗어난 아들이 기가 살았음을. 아들에겐 특목고 진학률 1,2위를 다투던 중학교보다 차라리 지금의 고등학교가 더 해방감을 주는 것 같다.
아들 학교는 강서구 소재다. 목동과 타 지역 아이들이 반씩 섞였다. 수업시간에 어느 선생님이 비교분석 했단다. “목동아이들은 학습의욕이 높다. 인간성은 별로다. 이쪽 아이들은 학습의욕이 낮다. 인간성이 좋다. 선생님이랑 친해지면 와서 어깨동무도 하고 허물없이 구는데 목동 아이들은 그런 맛이 없다.” 이분법의 오류를 고려하더라도 꽤 설득력 있는 분석이다. 아들은 다른 지역 친구들과 어울리며 친밀감과 우월감을 동시다발적으로 만끽했다. 애들이 영어 수학을 자기한테 물어봐서 가르쳐준다며 으쓱한다. 묘한 권력감정을 느끼는 모양이다.
남고에 두 번째 가는 날, 아들 공개수업에 참관했다. 실수체계를 배우는 수학시간이다. 백년 만에 들어보는 켤레 복소수. 칠판 가득 공식이 적혔다. 어질하다. 42명 아이들의 등짝이 보인다. 3명이 꾸벅꾸벅 존다. ‘중학교에 기본을 닦지 못한 아이들은 이 시간이 얼마나 고문일까’ 안쓰러웠다. 수업이 끝나고 학교에서 담임선생님 말씀 듣는 동안, 아들이 도덕숙제 토론자료 만든다면 조원 4명을 데리고 우리 집에 갔다. 꽃수레 말대로 ‘좁고 낡고 초라한 이십 평 집’에 친구들 데려가다니, 나는 난감했다.
집에 오니 자기들끼리 자장면 곱빼기를 시켜버렸다. 나는 냉장고를 뒤져 부추를 씻고 호박을 썰어서 전을 부쳤다. 크게 세 장. 토마토를 썰고 브로콜리를 데치고 오이를 썰고 드레싱을 뿌려 샐러드를 만들었다. 대자 접시로 한가득. 양념간장을 만들고 김치를 썰어 자장면과 먹으라고 내주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말끔히 먹어치웠다. “오랜 만에 포식했다”며 배를 두드리는 아이들.
옆에다 의자 두고 앉아 한참을 쳐다봤다. 덩치만 군인이지 눈빛은 아직 애기다. 학원에서 고가의 성장촉진제 맞고 집단 배양되는 목동아이들 특유의 예민하고 각박한 기색은 안 보였다. 서글서글하고 순진한 표정들. 캐릭터 그려진 양말을 신은 한 아이의 발을 보자 슬며시 웃음이 났다. 한 놈 한 놈, 적어도 우울증으로 자살할 염려는 없어 보였다. 아들 친구들이 갔다. 방에서 사내냄새가 진동해서 창문을 열고 한참을 환기시켰다.
“아들아, 쟤네들 다 공부 못하지?” “네.” “그럴 줄 알았어. 큭큭. 애들이 해맑더라.” “엄마, 근데 왜 애들한테 그렇게 오글거리게 말해요.” “내가 뭘?” “너네에~ 이름이 뭐야아~ 아윽. 꽃수레한테 말하는 것처럼 닭살 돋게.” “예쁘고 귀여우니까 그렇지. 볼을 꼬집으려다가 참았다. 두 놈은 날렵하게 잘 생겼고 특히 뚱뚱한 애 엄청 귀엽더라. 곰돌이 같잖아.” 그 곰돌이 녀석은 선생님들한테도 인기라고 부연한다.
꽃수레 2학년 때다. 같은 반 여자아이를 집에 데려온 적이 있다. 그 애가 안방을 보고는 “꼭 오십 살 먹은 노인이 사는 방 같다”고 그랬단다. 이게 다 오래된 밤색 장롱과 화장대 때문이라며 가구교체를 주장하던 꽃수레는 그 뒤로 친구를 데려오지 않는다. 괜한 자격지심에 아들에게 물었다. 친구들이 우리 집 너무 좁다고 그런 건 아닌가 모르겠다고. 아들이 남자들은 그런 거 모른다며 말한다. “다른 동네 애들한테 목동아파트는 무조건 돈과 공부의 성지에요.”
돈과 공부의 성지. 거기서 ‘어떤 사람’이 길러지는가가 중요하다고 아들에게 말했다. ‘공부의 성지’ 카이스트의 잇단 자살 사건이 엄마는 남일 같지 않다고. 진짜다. 영어유치원 1세대인 아들 또래 친구들이 컸을 때는 우울증 환자가 더 많아질 것 같다. 꽃수레 친구들만 봐도 유아기를 누리지도 못하고 일찌감치 학원으로 내 몰린다. 진짜 가엾다. 태어나서부터 남들보다 더 잘 살기 위해서 놀지도 못하고 공부하는데 결국 그 공부가 삶을 중지시키면 그건 엄청난 이율배반 아닌가.
'남을 해치거나 나를 해치는 공부는 위험하다’고 설교를 늘어놓는데, 공부의 극한을 경험한 적이 없기에 허무의 극점을 알 리가 없는 아들이 대뜸 끼어든다. “엄마, 걱정 말아요. 난 안 죽어요.”-.-; “그래. 매점 가야지. 바쁜데 오죽하시겠어.” 돈과 공부의 성지에서 17년 평생을 살아온 아들, 목동을 벗어나 다양한 친구들과 섞여 살면서 더 자유롭고 건강해졌다. 비록 돈도 성적도 빈곤하지만 기죽지 않는다. 물기 머금은 표정으로 생을 긍정한다. 학부형이기 전에 엄마인 나는, 다행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