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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오르는말들

깨어나기


컨베이어벨트 돌아가듯 날마다 원고 찍어내던 때가 있었다. 재봉틀 드르륵 박고 (문장을 쓰고) 단추 달고 (제목 달고) 끝도 없이 나오는 실밥 뜯고 (교정하고) 그러다 보면 하루가 훌쩍 저물었다. 이젠 그 짓을 못하게 됐다. 몸이 녹슬었다. 아주 다행이다. 쉽게 글이 써진다는 사실이 반은 대견하고 반은 수치였다. 익숙한 생각, 진부한 표현들을 국수 가락처럼 쭉쭉 뽑아낸다는 것이 부끄러웠고, 노동을 통해 생산에 참여하고 아이들 입에 밥을 넣어준다는 점에서 고무적이었다.

이도 아니고 저도 아니고. 해도 좋고 안 해도 그만인. 그래서 아무 것 아닌 정지의 느낌. 인생은 너무 길다는 한탄이 나를 지배했다. 깨어 있는 것도 아니고 잠든 것도 아닌 불면의 감각으로 일 년 쯤 산 것 같다. 나 이제 사보에 글 쓰는 거 지겹다는 말을 친한 벗들에게 간간히 흘린 지는 이 년 정도 지났을 거다. 
 

내 삶의 거푸집에서 벗어나고자 하루에 적어도 삼십분씩은 꾸준히 몸부림쳤다. 나는 왜 쉽게 살지 못 하는가 이런 안달이 사치는 아닐까 입가심성 고민까지 막판에 10초씩 곁들였다. 내가 명품백을 탐하는 것도 아니고 세계일주를 간다는 것도 아닌데 삶의 존재양식에 관한 고민이 왜 삶의 사치가 되어야 하나 억울했다. 더디게 오가는 시간들, 세월은 꾸역꾸역 흘러주었다. 쉽게 살지 못하는 것, 그래서 쉽게 쓰지 못하는 것, 불면을 유발하는 이 괜한 증상이 나를 조금 다른 곳으로 데려다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