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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오르는말들

여자의 한살이


주말에 옷정리를 했다. 집이 좁은 관계로 일년에 두번 치러야하는 일. 서랍장에 있던 동절기 옷을 꺼내서 수납합에 넣어 장롱 위에 올려놓았다. 나풀나풀한 봄옷과 컬러풀한 여름옷이 대방출됐다. 옷가지를 챙기면서 '입지도 않을 쓸데 없는 옷, 앞으로도 입을 일 없는 옷들'에 눈길이 갔다. 확 버리고 싶은데 본전생각 땜에 이고지고 산다. 3년째 보관중인 새원피스를 입어보았다. 흐린 분홍과 연보랏빛이 감도는 미니멀하고 여성스런 스타일인데 몇번 입고 현관을 나가다가 되돌아오곤 했다. 어색하고 오글거려서 집밖으로 한 걸음도 나갈수가 없었다. 왜 샀느냐하면 '변신욕망' 때문인데 그 때 뿐, 문턱을 넘지 못한다. 한번 입어나 보자 싶어서 원피스를 무슨 푸대자루마냥 뒤집어 쓰고 거울 앞에서  어정쩡하게 서 있는데 그런 나를 보더니 딸내미가 "엄마 예쁘다! 귀족같아~" 호들갑스런 찬사를 보낸다. "진짜야?" 반색하며 물었더니 그렇단다. 나는 도무지 부끄러워서 입을 수가 없노라고 중얼중얼 고민을 터놓았다. 딸내미가 타이른다.


"엄마, 자신감을 갖고 당당히 입어봐. 뭐가 부끄럽다는 거야? 예쁘기만 하구만. 매일 청바지만 입고 초라하게 하고 다니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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