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책 왔숑~ 새책 왔숑~"
박정수 수유너머R연구원의 책이 나왔어요. 제목은 <청소년을 위한 꿈의 해석> 바로 어제.
3월 15일 (화) 이날은 수유너머R 화서회 있는 날.
<마주한 화서회> 라고 ㅋㅋ 연구원들이 모여서 책 읽고 회의하고 수다 떨고 그럽니다.
지난 겨울, 박정수가 말했죠. "우리 화서회 하는 날, 하루라도 밥 같이 해먹자~"
그래서 시작됐습니다. 화서회 밥회동.
첫 메뉴는 산채비빔밥. 연구실 주방시설이 열악한 관계로 각자 집에서 나물을 준비해왔죠.
고사리, 콩나물, 시금치, 무나물, 오뎅볶음, 멸치, 묵은 김치 등등. 풍성한 밑반찬이 오르고.
현식이는 난로 위에서 계란후라이를 했다죠.
소꿉놀이에 들어있는 모형보다 더 정교한 계란후라이로 산채밥의 화룡점정을 찍었습니다.
(비빔밥에) '색감이 살아있다!' 탄성을 지르며 참기름 한방울 떨어뜨려
슥슥 비벼서 완전 스님공양주발처럼 깨끗하게 비웠습니다.ㅋ
그 다음, 카레, 떡국, 만둣국... 매주 화요일 저녁, 일품요리가 메뉴로 올랐어요.
이 모든 요리는 당번을 정해서 하지 않고 한 사람이 해냈는데요,
그 주인공이 <청소년을 위한 꿈의 해석> 저자, 박정수랍니다.
오후 5시면 책 읽다가도 벌떡 일어나서 알작은방으로 향해서 요리를 합니다.
혼자 애쓰는 게 미안하고 안쓰럽고. 죄의식을 유발하기에 밥 당번 정하자고 했더니
박정수가 말합니다.
"일주일에 한 번인데 그냥 내가 할게.(방긋) 힘들면 내가 주부우울증 왔다고 말할게"
대인배 박정수의 발언에 움찔했습니다. '그대 앞에만 서면 나는 왜 작아지는가.'
그 후로도 화요일 오후에 연구실 테이블에 가끔 까만 봉지가 있더라고요.
뭐냐고 물어보면 박정수가 시장봐온 것입니다. 저녁 반찬 하려고요.
근데 이남자, 어제는 경동시장에서 온갖 봄나물을 잔~뜩~ 사왔지 뭡니까.
"모야, 모성신 강림했어. 경동시장까지 갔어?"
"산업대에서 강의하고 오는 길에 들렀어. 가깝거든. 시장 가니까 좋더라고."
"재래시장 가니까 사는 거 같구나?ㅎㅎ "
"응~ 값도 무척 싸고. 푸짐해서 너무 좋아. 트럭에 파 가득 놓고 팔고.."
정수샘이랑, 단단이랑 셋이서 '봄나물 대제전' 요리를 준비했어요.
간장, 고춧가루, 식초, 설탕 넣고 양념장 만들어 달래 무치고.
마지막에 참기름+참깨로 감칠맛있게 마무리하는 센스.
그가 된장 넣고 허연 뿌리 드러난 파릇한 냉이를 조물조물 무쳤습니다.
또 대지의 기운이 흠뻑 배인 보릿대를 넣고 된장국을 끓였죠.
저는 반도의 딸로 태어나 전라도 담양출신 엄마가 해주는 음식 먹고 컸는데
보릿대를 어제 처음 봤습니다. (근데 봄기운이 지나쳐서 좀 질기더군요.ㅋ)
두부 부치고 봄나물 서너개 늘어놓고 보릿대국까지..
식탁에 잔디 깔아놓고서 또 스님들처럼 다- 먹었습니다.
그가 요리한 것은 봄나물이지만, 우리가 먹은 것은 진정 봄내음이었다죠.
화서회 시간에 맞춰 온, 그래서 밥을 못 먹은 죠스가 묻습니다.
"오늘 뭘 먹었길래 다들 맛있는 거 먹었다고 그래요??"
"그것은, 밝힐 수 없는 밥회동 ㅋㅋ"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선 침묵해야겠지만,
근데 어제 밥 먹을 때 "행복하다"는 생각 참 오랜만에 들었습니다.
이번학기부터 복학해서 체감학점 30점을 호소하는 송이가 힘들다고 재잘재잘 떠들고.
여일이는 일본 걱정해가며 밥을 넘기고. 규호랑 헌이랑은 밥을 두 그릇씩 뚝딱 비우고.
손 안 닿는 반찬 앞에다가 서로 옮겨다 놓아주면서 밥을 먹는데
80년대 양촌리 마을 못지 않는 부럽지 않은 다복한 분위기.
재래시장도 아닌데, 살아있는 느낌이 들었달까요. 난로도 없는데 마음 더워졌습니다.
이 모든 성찬이 가능하도록 손수 재료 준비해준, 박정수에게 고마웠죠.
이런 생각하면서 알큰방에 갔더니 책상에 갓 출고된 <청소년을 위한 꿈의 해석>이 있는 겁니다.
"책 나왔구나. 완전 축하해~"
그간 지젝 번역서와 공저로는 여러권 냈지만, 박사논문 책으로 낸거 말고는
박정수의 첫 책입니다. 그가 말합니다. "이 책에 내가 아는 거 다 넣었어."
한 사람의 삶과 앎의 정수가 담긴, 정수가 쓴 책입니다. ㅋ
아직 표지만 매만지고 있지만, 그 물질감만으로도 충분히 복되고 좋았습니다.
옆에 있는 사람 편하게 해주고, 배부르고 해주고, 공부하고 싶게 만드는
하루이틀 아니고 수년간 그래온 신뢰할 수 있는 나의 스승이자, 친구.
누군가를 신뢰하는다는 것은 그 사람의 판단을 믿는다는 것.
손맛과 판단을 신뢰하는, 박정수의 책 출간을 마음을 담아 축하합니다.
그리고.
이제 박정수의 <앙띠오이디푸스> 리라이팅을 기다리렵니다.
내달아 <욕망의 정치경제학>까지 쓸 수 있도록 옆에서 지속적으로 질문하려고요.
'푸코가 뭐래는 거야? ' '들뢰즈 이 개념 쉽게 설명해줘." "라캉은 독해불가야. 답답해."
십년 후가 기다려지는 친구 있다는 것은
드물고 귀한 일입니다.
R동지들, 그리고 쥐그래피티에 감동받은 사람들, 알라딘에 별점과 서평 써주세요. ^^
언제든 화요일 오후 6시 수유너머R 을 찾아주시면
봄나물요리 종결자 박정수의 손맛이 살아있는 맛난 밥 한끼 대접하며 결초보은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