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년 전 현민을 마지막으로 보았다. 위클리수유너머 창간 파티에 꽃처럼 예쁜 화과자 세트를 들고 왔다. 청년이 좀처럼 고르기 힘든 선물을 그는 섬섬옥수 긴 손가락으로 건넸다. 이리도 섬세한 감성의 소유자가 거친 옥살이를 어찌 견뎌낼까 안타까웠다. 겨울이 지나고 꽃샘추위가 한창인 3월에 현민은 병역거부자의 옷을 입었다. 돌아오지 않는 화살이 되어 권력의 심장부로 날아가는 전사가 아니라 자유를 갈망하는 한 마리 새가 되어 비상하다 갇혔다. 여름 즈음 현민의 면회를 다녀온 수유너머R 친구들이 이구동성 착찹한 심정을 토로했다. “면회 끝날 때 민이가 울어서 마음이 안 좋다”고.
현민이 군대를 거부한 것은 ‘군대가 싫어서’라고 했다. 평화운동가로서의 대의나 여호와의 증인처럼 종교적인 신념 때문이 아니며 그냥 싫다는 것이다. 그런 건가. 그냥 좋은 게 가장 좋은 것이고 간과 쓸개를 홀랑 빼줄 수 있듯이, 그냥 싫을 때 온 몸으로 저항할 수 있는 걸까. 현민은 위클리수유너머 <영장찢고 하이킥>을 통해 꾸준히 소식을 전해왔다. 병역거부에 대해 그는 ‘지배적 남성성과 거리두기’라고 규정했다. ‘내가 병역을 거부한 것은, 당연하게도, 군대로 표상되는 세상의 권력, 질서, 관계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의미야. 하지만 별반 다르지 않은 (어쩜 더 가혹한지도 모르는) 권력의 복판에 놓여있자니 기분이 참 이상했어.’
영등포교도소. 개봉역에서 5분 거리. 서울의 복판에 낮은 담벼락의 교도소를 보자니 기분이 참 이상했다. 현민은 생각보다 무척 가까운 곳에 살고 있었다. 며칠 전 면회를 다녀온 동욱이가 고추장에게 전했다. “선생님 미국 가기 전에 꼭 오래요.” 2월 23일. 현민의 부름을 받은 고추장이 면회 가는 길, 동행했다. 신분증을 제시하고 정문을 지나 동사무소 같이 생긴 사무동엘 들어갔다. 접견신청서를 썼다. 만날 사람은 1216번 박현민. 주민번호와 주소를 적었다. 관계는 친구. 고추장과 나는 지갑을 털어서 영치금과 사식을 넣었다. 자멸치 2봉지, 참치 3개. 잠깐 TV를 보면서 기다렸다. 스피커에서 안내방송이 나온다. “1216번 2번 접견실로 가십시오” 사무동을 나와 접견동으로 건너갔다. 핸드폰을 보관함에 넣고 부랴부랴 2번방으로 갔다.
현민이 다소곳이 앉아있다. 눈이 마주치자 웃는다. 반가운 함박웃음. “너 얼굴 좋아졌다” 오랜만에 만난 동창들처럼 쓸데없는 안부를 주고받는다. 두꺼운 유리를 통과해 안색을 살피고 마이크의 울림으로 퉁퉁 불은 말을 건넨다. 아무려나, 현민과 고추장은 낱말 맞추기 퀴즈프로 출연자 마냥 쉴 새 없이 분과 초를 쪼개서 말들을 집어넣었다. 현민은 한 방에서 세 명이 잔다고 했다. “지내기는 괜찮니?” 무어라 웅얼웅얼 ‘물리적 불편’을 호소한다. <영장찢고 하이킥>에서 언젠가 보았던 얘기. 더불어 살기의 만만치 않음에 관한 내용이다. 같은 방에서의 만남이 너무 전면적이라고 당혹스러워했는데 여전한 모양이다.
겨우 끼어들어 한마디 물었다. 추운 겨울 어떻게 났는지. 현민은 옷을 다섯 겹 껴입고 여름 이불을 서너 장 깔고 잤다고 그래도 견딜만 했다고 한다. 건물이 낡아 외풍이 심해서 무척 춥단다. 현민은 영치창고에서 재소자들의 물품을 관리하고 접견객이 넣어준 물건을 배달하는 일을 담당한다. 1월에는 동상 연고를 방마다 많이 배달했다고 한다. 수인의 겨울. 나의 칼 나의 피, 김남주 시인은 ‘기막힌 나이 환장할 청춘’의 겨울옥살이를 ‘수인의 잠’으로 견뎌냈다고 노래했다. 현민이 그렇게 살고있었다.
겨울이다 감옥의
해는 짧고 흙바람이 와서
벽을 친다
벌거숭이 나뭇가지 위에서 논다
그것은 흡사 주린 아이 울음소리와도 같다
그것은 흡사 지아비 빼앗긴 지어미 곡성과도 같다
아, 자자, 자자, 자자
얼음장 같은 마룻장 위에
한 장 가마니떼기 깔고 그 위에 다시
어머니가 넣어준 잿빛 담요 깔고 그 위에 다시
마누라가 넣어준 밤색 담요를 깔고
푸른 옷에 싸여 자자
아무 생각말고 아무 생각말고
눈 꼭 감고 귀 꽉 감고
현민은 9월에 출소 예정이다. 감옥에서의 또 한 번의 징역살이. 무더운 여름을 견뎌야 한다. 어쩌면 성실복역으로 한두 달 줄어들지 모르겠다. 징한 무더위의 8월엔 같이 팥빙수라도 먹으면 좋으련만. 면회시간이 녹는다. 시간의 극빈자들. “1분 남았네” 서둘러 작별을 고하는데 마이크가 꺼진다. 야속하다. “괜찮아. 들리니까 말해” 거의 절규에 가까운 고추장의 말. “밖에 나가서 멸치 좀 넣어주세요. 같이 먹게.” “응 넣었어. 참치도 넣었어.” 잠시 침묵이 고인다. 발설되지 않은 몸의 말을 읽어내느라 서로 온 신경을 모은다. 유리벽을 사이에 두고 대칭놀이를 하듯 동시에 의자에서 일어선다. 문 밖으로 나가는 1216. 나는 복도 너머로 가 닿을 듯 손을 크게 흔든다. ‘조심해. 잘 지내고’ 열렬한 발화. 아니, 수화. 시력이 좋지 않은데도 선명히 보인다. 파란 옷에 형광조끼를 입은 민이의 붉게 차오르는 눈시울.
통곡하지 못하는 청춘. 굽힐 줄 모르는 강골. 몸 안으로 흘려보낸 속울음만으로도 이미 가슴복판에 시커먼 우물이 생겼을지도 모르겠다. “감옥은 어둠의 부재, 그것은 울 수 있는 공간의 부재라는 의미로 다가왔다”는 현민의 말이 엉엉 울린다. 레비나스의 말대로 고통은 존재가 오그라드는 현상이다. 살아온 대로 말하고 말한대로 살아가기의 지난함이 새삼 사무친다. 감옥에서 일 년을 살아냈으니, 나머지도 잘 보내리라 믿으며 애써 마음 다독인다. “굉장히 고통스러워 보이는 일도 막상 직면하면 또 생각만큼 그렇게 고통스럽지는 않은 거 같아요.” “네. 맞아요. 그러니 사는 거겠죠.” 고추장과 대화를 주고받으며, 사람이 사는 일이 참 모질다고 생각한다. 영등포 교도소를 등지고 나오니 신호등이 서있다. 현민이 보고싶다던 신호등. 횡단보도를 황망히 건넌다. 현민이 ‘신호등이 껌벅이는 횡단보도를 사람들 틈에서 종종걸음으로 걷고 싶다’고 했던 빗금쳐진 그 길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