짙은 보라색 어둠이 칠해진 거리. 군데군데 간판에서 희미한 불빛이 새어나오고 황량한 대로변엔 삶의 배설물이 낭자하다. 바람이 불 때마다 캔이 구르고 비닐이 저 홀로 춤춘다. 옷깃을 세운 남자가 단역배우처럼 구부정한 뒷등을 보이고 사라진다. 정지화면 같은 적막함 뚫고 어디선가 쓰륵쓰륵 싸리비질 소리가 들려온다. 그것은 산사의 정적을 깨우는 목탁소리 같기도 하고 아침밥을 짓는 어머니의 쌀 씻는 소리 같기도 하다. 반복적인 만물의 기척에 산새가 파닥거리고 아이들이 눈 뜨듯이, 연두색 빗자루가 지나간 이곳 거리도 서서히 잠에서 깨어난다. 새벽 5시 반, 해님보다 먼저 찾아온 환경미화원으로부터 명동의 하루가 시작된다.
“새벽 4시 넘어 일어나서 첫차 타고 나와요. 겨울이 추우니까 제일 힘들죠. 더운 게 낫긴 한데 여름엔 또 아이스크림, 음료수 쓰레기가 많아요. 명동은 원래 유명해요. 정말이지 너무 지저분해서... 유동인구가 많아서 그렇지 뭐. 짐승이 지나간 자리는 표시가 안 나도 사람이 지나간 자리는 표시가 난다고 하잖아요. 다 먹고 입고 버린 것들이죠.”
퇴직을 일 년 앞둔 환경미화원 정춘례(59)씨. 23년째 거리에서 새벽을 맞이하지만 베테랑인 그에게도 생활쓰레기가 넘쳐나는 명동은 고달픈 근무지다. 동료들 6명과 구역별로 나눠 작업을 진행하는데 일인당 100L짜리 쓰레기봉투 7~10장을 꽉꽉 채워야 거리가 깨끗해진다. 토, 일, 월요일이 절정이다. 밀물처럼 밀려온 인파가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주말이면 명동은 마치 휴가철이 지난 바닷가처럼 쓰레기로 몸살을 앓는다.
번화가의 운명이다. 언제나 사람과 상품이 넘쳐나는 곳, 명동은 대도시 서울의 얼굴이 아닌가. 세월 따라 유행 따라 인상도 변해갔다. 6.25 전쟁 이후 명동은 통기타의 낭만이 흐르는 문화예술의 거리였다. 70년대 경제의 고속성장기에는 한국의 월가로 명성을 날렸고 80년대에는 명동성당을 중심으로 독재에 항거하는 민주화 운동의 산실이었다. 시대정신이 잦아든 새천년의 명동은 다양한 욕망과 감각이 꽃피는 패션1번지로 화려하게 부활했다. 최근엔 저가 화장품과 패스트 패션(fast fashion)매장이 대다수를 차지했다. 10대~20대 젊은이와 외국인 관광객이 붐비는 한류거리다.
“토스트~ 오이시~(맛있어요)” 아침 일찍 채비를 서두른 일본인 관광객을 불러 세우는 목소리의 주인공은 토스트 노점을 운영하는 윤연희(65세, 글라라)씨. 겹겹이 껴입은 스웨터만큼 푸근한 웃음과 고소한 버터 냄새로 명동의 아침 공기를 훈훈하게 데운다. 매일 오전 6시부터 오전 11시까지 30년째다.
“출근하는 사람들 아침식사용이죠. 30년 전엔 토스트를 450원에 팔았어요. 그 다음엔 650원, 800원, 1000원하다가 지금은 1500원이에요. 다른 데는 1800원으로 다 올렸는데 난 못 올리고 있어요. 마음이 약해서.(웃음) 여길 지나는 사람은 계속 바뀌는데 오랜만에 단골도 만나요. 며칠 전엔 조흥은행 본점에 다녔다는 분이 아직도 있냐고, 사원시절에 자주 사먹었다고 그래요. 그럴 땐 너무 반갑죠.”
이 토스트 노점에는 한국여행정보 사이트에 소개된 것을 보고 찾아오는 일본인도 꽤 된다. 헌데 유명세에 비해 겉모습은 밋밋하다. 비닐 천막에 ‘토스트’ 세 글자가 전부다. ‘원조’ ‘30년 전통’ 등 세월 마케팅을 하지 않는 이유를 묻자 손을 휘휘 젓는다.
“아유, 유별난 게 싫어요. 여기서 나 모르면 간첩인데 뭐(웃음). 옛날엔 명동에 네온사인이 퍼덕퍼덕 거리고 참 순수하고 예뻤어요. 칠성제화, 엘칸토, 구두방도 많고. 챔피온 다방도 있고. 그 때가 재밌었어. 아무래도 내가 젊었으니까 활기가 돌아서 그랬겠죠.”
고급 수제화점에서 하이힐을 사 신던 아가씨가 이제는 조금만 서 있어도 다리가 저리는 나이가 됐지만 변화무쌍한 거리에서 변하지 않는 인심으로 삶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명동의 아침이 훤히 밝았다. 신작로처럼 말끔히 닦인 명동대로가 드러나고 그 길로 납품차량들이 속속 진입한다. 차 없는 거리가 시작되는 오전 10시 전까지 각 상점에선 영업 준비를 완료해야 한다. 셔터를 올리고 진열대에 물건을 정리하고 쇼윈도를 닦는다. 그 사이 아침식사와 휴식을 마친 환경미화원들은 오전 11시에 다시 명동거리로 나온다. 마지막으로 오후 1시까지, 하루에 총 세 번 출동하여 거리를 정비한다.
22년 차 환경미화원 송진희 씨(49세)는 요즘 들어 명동거리에 담배꽁초가 하얗게 깔렸다며 안타까워했다. 원래는 서울에서 담배꽁초 무단 투기 시 5만원의 벌금이 부과되지만 외국인 관광객에겐 적용되지 않는다. 한 사람이 버리면 옆 사람도 따라 버리고 순식간에 쓰레기장으로 변해버린다고 전한다.
“그러니까 아무리 몸이 아파도, 병원에 실려 가기 전엔 일하러 나와야죠.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내가 힘들다고 빠지면 동료들이 고생하잖아요.” 직업적 보람을 말하기엔 명동은 넓고 할 일은 많고 몸은 고되다 싶지만, 그가 싱긋이 웃으며 말한다. “그래도 요즘은 사람들이 우리를 대하는 인식이 많이 좋아졌다”고. 매일 새벽, 요술지팡이 같은 마법으로 명동의 어둠을 걷어내는 그들은 아름답고 생기 넘치는 명동의 낮에게 자리를 내어주고 무대 뒤로 총총히 사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