쥐그림 그래피티 제 3차 공판이 있던 지난 금요일, 교대방면 녹색열차에 몸을 실었다. 전화벨이 울린다. 어제부터 나의 핸드폰은 24시간 재난대책본부다. 친구다. 어디 가느냐고 묻는다. “법원 가.” “어멋, 거긴 왜?” “서태지랑 이혼하러.” 잠꼬대가 아니다. 지난 1박 2일 간 나는 이지아에 빙의될 정도로 기사를 읽고 또 읽었다. 손가락으로 덧셈과 뺄셈을 해가며 연도별로 서태지의 타임라인을 짜맞춰보았다. 일련의 정황이 맞아떨어지나 현재의 상황은 논리적으로 독해불가다. 사랑하다 헤어지는 건 이해되지만 왜 하필 지금 ‘소송’까지 이르렀을까. 고심의 와중에 ‘전(前) 남편 서태지’ 이런 기표가 참으로 성가시고 불쾌했다. 처자식 딸린 유부남 서태지는 몰라도 이혼과 태지의 순서쌍은 단 한 번도 그려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항상 그랬듯이, 내가 요만큼을 생각하면 이만큼을 보여주는 사람이 태지다. 지금은 그 간극을 논리든 욕이든 애정이든 어떻게든 채워 넣어야 한다. 무릇 남녀관계는 어느 한 쪽이 정서노동을 포기하면 종료되므로.
법정에서. 안 그래도 마음이 무거운데 실내의 엄숙한 공기가 어깨를 짓누른다. 공판이 시작됐다. 검사가 가판대에 붙어있던 G20 포스터 그래피티 원작을 증거물로 제시한다. 사진으로만 보다가 나도 실물을 구경하긴 처음이다. 푸핫. 방청객에서 돌발적으로 웃음이 터졌다. 판사한테 주의 받았다. 법정에서는 조용히 해야지 누가 웃어요. 한다. 검사가 심문을 시작한다. 국가의 중요한 행사를 알리는 포스터에 “쥐와 같이 ‘불길한 존재’를 그려넣는 의도가 뭐죠?” 추궁했다. 쥐가 불길한 존재라고 대놓고 말하는 검사는 이 시대의 진정한 용자! 몹시도 불길한 저 쥐가 그 쥐라고 생각하니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여간 고역이 아니었다.
목소리 큰 검사는 무식하기까지 했다. 공판에 나왔으면 그래피티 공부를 좀 할 일이지 영국의 유명한 작가 뱅크시와 관련지어 이상한 심문을 해댄다. 박정수에게 “뱅크시의 권위에 기대어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 하려 한다”고 호통을 치다시피 하다가 말이 꼬여버리는 불상사가 발생했다. 애초에 뱅크시는 권위에 저항하는 작가이다. 일단 익명으로 활동하고 그의 작품에 엄청난 고가에 거래되지만 그러한 풍토에 반대하며 금전적 이익은 한 푼도 챙기지 않는다. 박정수는 “뱅크시가 만약 자기 작품이 누군가에게 영감을 주고 있다는 것을 알면 좋아할 것”이라며 “예술이 법보다 위에 있다는 게 아니라 그래피티는 법의 기준이 아니라 시민사회의 기준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응수했다.
검사 옆에 그야말로 ‘산더미’ 같은 서류뭉치가 쌓여있다. 금전적 손실이 50만원도 채 되지 않는 일, 오밤중에 잠깐 가판대에 붙어 있던 쥐 그림 포스터가 무슨 국가에 큰 위협이 되는 정치적 이데올로기적 사건이라고 저렇게 고생을 사서할까 생각에 잠기는 찰나, 검사가 마지막으로 진술한다. “원래 포스터에는 누가 청사초롱을 들고 있는지 나와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자리에 있는 것이 누구인지, 누구여야 하는지 알고 있습니다. 그것은 G20대회를 통해 선진국으로 도약하고 국가의 번영을 이루겠다는 우리 국민들, 우리의 아이들이 있어야 할 자리입니다. 피고 박정수는 우리 국민들과 아이들로부터 청사초롱과 번영에 대한 꿈을 강탈하였습니다. 빼앗아갔습니다. 피고인 박정수에게 징역 10개월을 구형합니다!”
강탈? 빼앗겨?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도 아니고. 이건 뭐. 이쯤되면 희극성은 절정에 이른다. 방청객에서 몇 사람이 웃음을 밀어 넣느라 고개를 숙이고 입을 틀어막았다. 선진국 도약의 꿈을 빼앗아가고 강탈해간 죄. 징역 10개월. 박정수는 최후진술에서 “포스터에 쥐를 그려넣었다고 징역 10개월이 구형되니 겁이 납니다. 국가가 하는 일에는, 앞으로는 아무 것도 하지 않겠습니다." 고 말했다. 비장하지도 비굴하지도 않은 음성이 묘한 여운을 자아냈다. 오호. 열 올리는 검사의 태도와 대조를 이루는 고수의 태도였다. 냉소로도 반성으로도 접수할 수 없는 이 무기력 전술. 최고의 응수였다는 생각이 든다. 뒷풀이 자리.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이 법정드라마를 꼭 연극으로 재현해 보자고 결의했다. 검사의 핏대신. 주옥같은 명대사들. 아깝다. 판사구형은 5월 13일 10시에 진행된다.
법정은 이미 일어난 사건의 공정한 판결이 이뤄지는 장소가 아니다. 사건이 새롭게 만들어지는 정치 공작소다. 서태지의 14년간의 결혼드라마는 어떻게 탄생할까. 시시하게 느껴졌다. 나랑 같이 사는 사람의 생각과 처지를 나는 잘 몰랐고 지금도 모를 것이다. 하물며 태지의 그것을 알고 싶지 않고 알 수도 없다고 생각한다. 법적 권리 차원이 아니라 정서적 친밀감이 컸으므로 섭섭하긴 하다. ‘서태지가 미국 LA에 공연 갔던 6월 12일이 이지아랑 결혼식 올린 날과 일치한다’는 순애보 기사를 보면 ‘그래, 알콩달콩 예쁘게 살아서 다행이다’ 싶다가도 ‘결혼은 안 할 것이고 음악이랑 결혼했다’는 예전 인터뷰 기사를 보면 황급히 창을 닫는다. 씁쓸하다. 애들이 태지를 이해하려 안간힘 쓰는 모습을 보면 애잔하고 답답하다. 무슨 정신승리법도 아니고. 너도 태지처럼 행복하게 살라고 모진 소리 해준다.
그는 무엇을 지키기 위해 무엇을 포기한 걸까. 지금까지의 정보와 나의 오감과 지성과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어렵다. 존경스럽긴 하다. 이번 일을 통해서 태지에게 배울 점이 있다면 그가 자기 삶을 사랑하는 굳건한 태도이다. 은퇴하고 싶을 때 떠나고, 결혼하고 싶으면 식 올리고, 돌아오고 싶으면 나타나고, 잠적하고 싶으면 숨는다. 언제든지 음악하고 싶으면 다시 노래 할 것이다. 아이들과 눈 맞추고 너희 밖에 없다고 말할 것이다. 맑스의 말대로, 남이야 뭐라든 제 갈 길을 가는 사나이다. 그는 오직 ‘자신’을 중심에 놓고 ‘순간’의 진실에 충실한 채 모든 선택을 내리고 평가를 감내한다. 돈? 명예? 팬? 태지는 자기 삶의 자리를 그 무엇에도 내어주지 않는다. 이 같은 태지의 행보에서, 복되게도 그의 좋음이 나의 좋음과 일치할 때도 있지만, 더러는 아닐 때도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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