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대 청소노동자 농성장에서

지난 월요일에 홍대 앞에서 약속이 있었다. 아주 오랜만에 3년 만에 연락이 닿은 과거 동지들과의 모임이었다. 1월 2일 청소노동자 170명 해고된 후부터 홍대 앞은 더 이상 나의 놀이터일 수만은 없었다. 원래 계획은 일찍 나서서 홍대 농성장에 들르려했으나 여의치 않았다. 회포를 풀기 위해 만난 선배들에게 빨리 밥 먹고 가보자고 할 수도 없었다. 여태 뭐하다가 이제 와서 유난 떠는 거 같아서. 암튼 차일피일 하다가 오늘 저녁에 홍대 근방에 아는 언니와 일이 있었다. 밥을 먹으면서 눈치를 보다가 슬쩍 운을 뗐다. “잠시 가보자. 월급이 75만원이었대. 점심갑은 한달에 9000원이래. 홍대 총학생회장이 외부세력 운운하는 헛소리 들었어?” 난 괜스레 흥분해서 횡설수설 떠들었다. 다행히 언니가 동의해서 편의점에서 휴지 사고 음료수 사서 양손에 들고 정문을 통과했다.  

왼편 건물에 자보가 덕지덕지 붙어있었다. 저긴가 보다 하고 들어갔더니 아니었다. 경비아저씨께 “농성장이요?” 여쭸더니 웃음 띤 얼굴로 학교지도 펴놓고 볼펜으로 콕콕 짚어가며 알려주셨다. 정문에서 볼 때 약간 오른 편 ‘홍익대학교’라고 새겨진 가장 높은 건물 1층이란다. 농성장 가는 길. 양쪽으로 현수막이 꽃길을 이루었다. 한예종 등 다른 대학 총학생회에서도 청소노동자 농성 지지한다는 내용이 붙어있었다. 모처럼 대학캠퍼스다운 풍경으로 그야말로 안구호강했다. 농성 초기에 비운동권 총학생회와 마찰에 대해 다른 학생들이 사과하는 듯 ‘어머님들 오해푸세요.’라는 애교 섞인 글귀도 눈에 띄었다. 민노당, 민주노총, 진보신당 현수막은 고딕체로 틀에 박힌 문구가 새겨져있었다;; 저것이 생활속의 보수. 좀 유머러스하고 유연하면 안 될까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아유, 추운데..왜 이런 걸 갖고 와.” 문을 열고 들어갔더니 농성장 입구에서 어머님 두 분이 휴지랑 음료수를 받으면서 자식처럼 반기신다. 인상도 수더분하고 키도 작고 보글보글 파마머리다. 전형적인 대한민국 (시골)엄마의 얼굴. 대뜸 손을 잡고 차 한 잔 하라고 권하신다. 그러더니 조심스레 어디서 오셨냐고 물으신다.

“시민이에요. 지나가다가 들렀어요.”
어머님 두 분이 감동으로 눈가가 촉촉이 젖어들어 서로 바라보신다.

“세상에, 그냥 왔대.”
“그러게 말이야. 난 이런 거 하기 전엔 이런 거 전혀 몰랐다니까!”

민망하면서도 웃음이 났다.
어머님이 말씀하시는 ‘이런 거’는 뭘까. 우리 업계 용어로 연대겠지. 남끼리 보듬는 거.

한 어머님이 우린 방명록 없다며 벽에 붙어 있는 커다란 전지를 가르키셨다. 저기에 이름을 써달라고 했다. 사람들이 꾸민 예쁜 벽지들로 벽면이 채워졌다. 장삼이사. 반가운 이름들. 나 역시 ‘퇴근길에 들렀다’고 적힌 어느 시민의 글에 눈이 갔다. 뭐라고 쓸까 궁리하면서 기분이 설렜다. '따뜻한 겨울을 기다리며...'라고 쓰면서 푸근해졌다. 다행이지 뭔가. 막상 와 보기 전에는 나이가 50-60대 어르신들이고, 북극의 추위에 차가운 콘크리트바닥에서 이십일 넘게 지내시니 걱정했는데, 현장 분위기는 훈훈했다. 어머님들 표정이 밝고 사람들 흔적이 많아 든든했다. 살아 있음, 그리고 엮여있음의 위대함.  

농성장 안에 둘러보니 마침 수유너머N 친구들이 1박2일 숙박투쟁 한다고 와 있었다. 김미례감독님 영화 ‘외박’ 상영회를 한다고 했다. 반갑게 인사 나누고 아쉬운 발걸음을 돌렸다. 나오는 길에 어머님이 두 손을 또 꼭 쥐고는 거듭거듭 너무 고맙다고 하신다. 난 그동안 투쟁현장을 많이 다녔어도 이렇게 또 환대 받기는 처음이었다. 죄송스럽고 머쓱해서 웃으니까 어머님도 웃으셨다. 치아 틈새가 숭숭 벌어지셨다. 해맑은 아이같은 표정이라니. 난 엄마들은 원래 불쌍한데 눈 앞에 계신 어머님이 안쓰러우면서 존경스럽고 만감이 교차했다. 이 나이까지 편히 쉬지 못하고 삐걱거리는 육신을 끌고 일하러 나와야 하는 고단한 삶, 새해 벽두부터 하루아침에 길바닥에 내쳐진 삶이 얼마나 기가 막힌가. 하지만 뒤늦은 나이, 그간 무지랭이처럼 핍박 받고 살다가 삶의 주체로 나서서 싸우는 해방감, 더불어 함께 하는 재미는 또 얼마나 꿀처럼 달콤할까.  

(홍대 청소노동자를 방문한 배우 김여진씨)

“어머님, 근데 어디서 뵈었죠? TV에 자주 나오신 분 맞죠?”
나는 왠지 친숙한 인상이 기사로 본 것 같아서 넘겨짚었더니, 옆에 계신 어머님이 끼어든다.

“이 사람 TV에 자주 나와. 유명인이야. 사인 받아야하니까 어여 어서 볼펜 꺼내~”
“아이~ 뭘~ 왜 이래~ 지금은 안 돼. 내가 사인 연습이 안 됐다니까~호호호호”

옥신각신 하하호호 소녀처럼 얼굴이 발개지시더니 웃음꽃이 터진다. “어머님. 제가 오늘은 어디 가다가 들른 거고요. 다음에 또 올 테니 그때까지 멋진 사인 연습해두세요.” 알았다면서 어서 가라더니, 지금까지 밥 먹고 왔다고 세 번 넘게 말씀드렸는데도 “저녁이라도 먹고 가면 좋을 텐데” 하면서 끝까지 밥에 미련을 두신다. 나도 엄마지만 어머니들의 밥에 대한 애착은 못 말린다. 습관이다. 아니 본능일지도 모르겠다. 생명을 거두는 자의 생의 의지랄까. 참으로 무모하고 질기다. 그래서 마음이 놓였다. 우리 어머님들이, 언제든 해고될 수 있다는 전제하에 고용되는 노동현실에 조금씩 균열을 내리라. 내몰린 그곳에서 자유를 찾으리라. 끈끈한 밥심과 순박한 웃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