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이 다섯 살 때쯤이다. 연산력 강화를 위해 눈높이 수학을 시켰다. 그런데 매일 반복적으로 풀어야하는 게 안쓰러워 두어 달 하다가 끊었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들이 모여서 금연에 관한 얘길 나누었다. “누가 담배를 끊었는데 어쩌구 저쩌구..” 그랬더니 아들이 물었다. “엄마, 눈높이도 아닌데 담배를 어떻게 끊어?” -.-
학습지도 아닌데 끊어야할 것이 있으니, 내겐 택시였다. 하지만 늘어난 백양 면팬티 고무줄처럼 이미 커진 씀씀이를 줄이기는 좀처럼 어렵다. 카드대금사용서 내역을 받아볼 때마다 뜨끔하다. 조금 서둘렀거나 참았으면 발생하지도 않았을 지출일 텐데 싶어 반성한다. 특히 이번 동절기엔 한파 강타와 건강 악화로 지출 급증이다. 후회하면서도 ‘빈차’의 빨간불만 보면 손이 번쩍 올라갈 때는 대략 두 가지 정당화 논리가 동원된다. ‘피로누적으로 큰 병이 생겨 나중에 병원비 드는 것 보다 낫다’ ‘택시기사님에게 기쁨을 드리자’
후자의 논리에는 하나의 사건이 계기가 됐다. 몇 해 전이다. 인천공항을 가는데 리무진을 타기에 시간이 촉박했다.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던 중, 구멍가게 앞 택시에게로 슬며시 눈길이 갔다. 자판기 앞에서 기사님 두 분이 종이컵을 들고 담소를 나누고 계셨다. 나는 다가가서 물었다. 인천공항까지 요금이 얼마나 나올까요? 5만 원 정도라고 했다. “가주세요” 거침없는 결정에 기사님 얼굴은 로또 당첨자 표정으로 활짝 피어났다. 심지어는 맞은편 기사님과 하이파이브를 하더니만 호탕한 목소리로 말하셨다. “내일 점심 내가 살게!”
그 장면을 보면서 생각했다. “내가 태어나서 누굴 이렇게 기쁘게 한 적이 있던가?” -.-; 그 순간만큼은 ‘그까이꺼 오마넌’ 소리가 절로 나면서 생의 보람까지 느껴질 지경이었다.
택시를 자주 타서 기사님과의 추억이 많다. 한번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택시노동자의 열악한 근무조건을 알게 됐다. 월급이 70~80만원 밖에 안 된다는 거였다. 난 ‘설마’ 하면서 귀를 의심했다. 목적지에 와버려서 더 묻지 못하고 내려야했다. 근데 똑같은 얘길 또 들었다. 그저께 꽃수레랑 연구실에 갔다가 밤이 늦어 택시를 타고 지나가는데 서부역 쪽으로 택시가 줄줄이 늘어서 있었다. 나는 늘 보는 장면이라 무심코 지나쳤지만 꽃수레는 신기했던지 물어보았다.
“엄마 저기 택시가 왜 저렇게 많아?” “손님 기다리는 차란다. 기차가 도착하면 손님이 많이 내리니까 그 때까지 기다리는 거야”
기사님이 대신 대답했다. 꽃수레는 어둑한 창밖을 멍하니 바라보다 잠이 들었고 나는 기사님과 대화를 이어갔다.
“보통 몇 분을 기다려야 손님을 태우나요?” “짧게는 20분 길게는 40분에서 50분도 기다리죠.” “기다리는 게 더 영업에 도움이 되시나요? 생각 같아선 달리면서 한 분이라도 더 태우는 게 나을 것 같은데...”
“그건 운이에요. 삼사십 분 기다려서 아산병원도 가고 양재동도 가고 일산도 가고 그러면 이만 원 가까이 나오니까 그거 보고 기다리는 거죠. 어떤 때는 실컷 기다렸는데 두 정거장 앞에 가자고 하기도 해요. 속으론 화가 나죠. 나도 사람이니까. 안 그래요? (그렇죠!) 그래도 가야지 어쩌겠어요. 그런데 싫은 내색하면 택시가 손님 골라 태운다, 불친절하다 욕하잖아요. 그런 사정이 있어요. 무작정 기다리는 거죠. 누가 탈지 앞일은 알 수 없어요.”
응어리를 풀기라도 하는 듯 기사님은 열변을 토했다. 개인택시를 한지 2년이 넘었는데 택시가 힘든 일이다. 왜 힘드냐. 노동한 것에 비해 벌이가 적기 때문이다. 그래도 어떻게든 벌어보려고 애쓴다고 했다. 신호등이 걸리자 기사님은 팔을 뒤로 제쳐 무슨 표를 보여주셨다. 서울역 기차 도착시간표다. 이걸 보면서 기차가 토해낸 손님을 기다리는 거였다.
"그래도 나는 나아요. 회사택시 하는 사람들은 한 달에 80만원 밖에 못 벌어요.“ “월급이 그렇게 적나요?”
“월급은 120만원인데 손님이 너무 없어서 사납금을 못 채우니까 자기돈 박고 그러면 실제로 가져가는 돈은 그거밖에 안 돼요. 그래서 택시가 어렵다는 거예요. 예전엔 이렇지 않았다고 하더라고요. 택시가 잘 됐대요. 요즘은 영업하기가 아주 안 좋아요.”
구구절절 설명해주셨다. 지하철 노선이 거미줄처럼 늘어나고 버스 전용차선으로 환승이 쉽고 편하고 마을버스가 구석구석까지 다 지나가고, 광역버스가 새벽 2시까지 다니고 집집마다 자가용 한두 대 씩 있으니 택시 승객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는 거였다. 또 LPG가스요금도 천원이 넘어 수지타산이 안 맞는다고 했다.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여지면서 택시업계가 어렵다는 말이 쏙쏙 이해가 갔다. 아무 힘이 없는 내게 하소연하시니 고맙기도 하고 괜시리 죄송했다.
새해 첫날부터 해고당한 홍익대 청소노동자 아주머니들이 하루에 11시간 일하고 월급 70만원에다가 한 달 점심값이 9천원이라고 해서 놀랐는데, 택시 기사의 월급도 잔인하긴 마찬가지였다. 최저생계비에도 못 미치는 금액으로 어려운 삶을 살아가면서 연대의 매개나 저항의 기력조차 없는 분들이 늘어간다. 가난할수록 섞여 살고 뭉쳐야 하는데 우리사회가 뿔뿔이 흩어지고 서로에게 무관심해지는 구조다. '없는 사람'은 이중으로 살기 힘들다. 택시는 끊어도 관심은 끊지 말아야지.
당장의 실천방안 한 가지는 배웠다. 택시 탈 때 가까운데 갈 거면 지나가는 택시를 세워서 타고, 기다리는 택시는 타지 말아야 한다는 것. 서로의 입장이 되기 전엔 알 수 없는 것들이 참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