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수레 한가득 짐 꾸러미를 이고 지고 밀고 끌고 분주히 오가는 사람들. 화사한 신혼여행 커플이 가장 먼저 눈에 띈다. 효도관광 떠나는 어르신들도 있고 출장길에 오른 비즈니스맨, 인식의 지평을 넓히려는 유학생, 그리고 무라카미 하루키가 그랬듯이 멀리서 들려오는 북소리에 이끌려 긴 여행을 떠나는 이들도 섞여있을 것이다. 목적은 달라도 표정은 닮았다. 설렘이 가득 괸 눈망울과 시간을 재촉하는 걸음걸이, 아마도 심장은 둥지를 떠나는 어린 새처럼 팔딱팔딱 뛰고 있으리라. 삶의 진풍경을 연출하는 이곳은 인천국제공항 여객터미널 출국층이다.
“근무한 지 10년째이지만 지금도 여기만 오면 덩달아 떠나고 싶다”는 김기민 인천국제공항공사 홍보팀 과장. 그의 바람이 말해주듯이 2001년 3월 29일 개항한 인천국제공항은 지난 십년간 수많은 이들에게 빠르고 안전한 ‘꿈의 비상구’가 되어주었으며 동북아 교통과 물류의 중심지로 자리 잡았다. 운행규모부터 어마어마하다. 인천국제공항에서는 매일 630여대의 비행기가 우리 전통문양 부챗살처럼 지구촌 곳곳을 향해 쭉쭉 뻗어나간다. 계류장 관제팀 김여진 대리(33세)는 이들 항공기의 원활한 이동을 책임진다. 계류장은 자동차를 세워두는 주차장처럼 비행기가 대기하는 곳이다.
“항공기가 시동 걸고 이동하고 정지할 때에는 반드시 관제사의 지시를 받아야합니다. 세계 각국의 항공기가 질서정연하고 안전하게 이동하도록 관제탑에서 교신하면서 신호를 보내는 거죠.” 사방이 유리로 둘러싸인 80미터 높이 관제탑에서 헤드셋을 낀 미모의 항공교통관제가 유창한 국제관제용어로 지시를 내린다니, 영화의 한 장면을 연상시킨다. 계류장에는 또한 항공기 외에도 급유, 청소, 짐 하역 등을 맡은 조업사 차량도 수시로 오간다. 비행기와 차량들의 흐름이 뒤엉키지 않도록 이착륙과 주행을 유도하는 것이다.
“날씨가 안 좋을 때가 가장 힘들죠. 안개도 문제지만 눈이 내릴 때는 활주로 평면이 미끄럽고 기체에 쌓인 눈을 치워야하니까 기본적으로 한 시간, 길게는 두 세 시간씩 지연되거든요. 항공기 한 대당 이삼백 명의 승객이 탑승하고 있어서 안전에 대한 책임감이 큽니다.”
지난겨울 60년 만에 폭설이 내렸을 때, 일각에서는 공항폐쇄와 결항을 예상했으나 인천국제공항은 첨단 장비와 전문 인력이 합심하여 무사히 운행을 마쳤다. 이처럼 인천국제공항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최고의 전문가’라는 자부심이 남다르다고 김여진 관제사는 말했다. 그럴만 하다. 인천국제공항은 국제공항협의회가 실시하는 공항서비스 평가에서 5년 연속 세계 1위 최우수 공항에 선정되었다. 24시간 불이 꺼지지 않는 대한민국의 관문을 365일 안전하게 지키고 진심어린 서비스를 베푼 덕분이다.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는 안전. 하늘에 계류장관제팀이 있다면 땅에는 운행안전팀이 있다.
“안전이란 개념이 포괄적입니다. 항공기에는 여객이 타고 있으므로 주위는 다 멈춰야겠죠. 지나가는 새조차도 잠시 멀리 쫓아야하고요.(웃음) 활주로에 작은 이물질이 있어도 안 되고 비가 와서 웅덩이가 파이면 메워야하죠. 안전운행을 위해 총괄적인 계획을 짜고 관련 부서에 업무 협조를 요청하는 등 안전코디네이터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마음씨 좋은 키다리 순경아저씨를 닮은 황명석(39) 안전운행팀 과장. 그는 실제로도 경찰이나 다름없다. 계류장에서 운행하는 각종 차량의 속도측정과 계류장전용 면허증 검사, 운전자의 음주측정을 도맡는다. 매일 네 차례 네 군데의 활주로를 돌아보는 것도 중요한 일과다.
“활주로 길이가 4000m에요. 광활한 지평선을 뚫고 해가 뜰 때, 그리고 캄캄한 밤이나 새벽에 사방에서 아무 소리도 안 들릴 때 세상도 조용하고 저도 조용하고 참 좋죠. 또 매일 활주로를 달리다보니까 인생을 멀리 내다보게 된달까요. 생각이 여유로워져요.” 가슴이 뻥 뚫리는 활주로 주행의 특권을 부여받은 그는 안전으로 보답한다. 작은 부속이나 자갈 하나라도 엔진에 들어가서 과열될 경우 큰 사고로 이어지기 때문에 볼트나 너트를 발견했을 때 “오늘도 삼백 명을 구했다”고 안도한다며 활짝 웃는다.
티끌하나 없는 활주로 덕분에 우리는 지역과 문화의 경계를 넘어 미래로 비상한다. 고맙고 놀라운 일이다. 옛날 우리 조상들은 걸어서 시간당 4㎞, 말을 달려서 20㎞쯤 갈 수 있었다고 한다. 지금은 자동차로 1백㎞, 비행기로 8백㎞ 쯤은 거뜬히 주파한다. 선조들이 괴나리봇짐 짊어지고 이웃 마을을 다녀오는 시간에 현대인은 낡은 외투 걸치고 국경 넘어 마실 다녀오는 일이 가능해졌다. 국경의 울타리가 사라지고 문화의 교류가 활발해지면서 ‘지구촌시대’가 열렸다. 육체 위에 덧입혀진 이데올로기, 피부색, 질병, 국가의 편견을 넘어 사람 사이의 경계선도 허물어졌다. 그렇게 하늘을 난다는 것은 생각을 가로지르는 것과 같다.
세계로 향하는 관문, 인천국제공항에는 공사 직원 외에도 법무부, 세관, 항공사, 은행, 음식점 등 3만 5천여 명이 종사한다. 누군가에게는 스쳐가는 꿈의 문턱이 어떤 이에게는 반복되는 삶의 터전이기도 하다. 일상과 여행, 설렘과 회한, 시작과 마침, 상승과 하강, 실험과 도전, 추억과 상상의 에너지가 약동하는 인천국제공항. 드넓은 품안으로 오늘도 인류의 꿈을 담은 희망의 파랑새가 날아들고 떠나간다.
* 야곱의 우물 2011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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