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20 정상회의 포스터에 ‘쥐’ 그림을 그렸다가 경찰에 의해 구속영장이 신청됐다가 기각된 대학 강사 박모씨(41)는 3일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정부의 지나친 의미 부여가 낡고 촌스러워 보였다”며 “이런 우스꽝스러운 현실을 풍자해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쥐를 그린 이유에 대해서는 “G와 쥐가 발음이 같아서다. 별 뜻 없다”고 했다. 박씨는 “정상회의 자체를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면서도 “이번 일로 공안당국이 독기가 올라 더 잡아들일까 걱정은 된다”고 덧붙였다. 다음은 박씨와의 일문일답.
-그림을 잘 그렸다는 평이 많다. 미술을 전공했나.
“미술을 전공하지 않았다. 대학에서는 현대문학을 전공했다. 지금은 서울 소재 종합대학에서 교양과목 ‘문학과 사회’를 강의하고 있다. 수유+너머에서 공부를 하고, 위클리 수유+너머란 웹진을 만드는데 거기서 해치맨 프로젝트란 것을 소개했다. 해치맨 프로젝트란 서울대 디자인과 학생들이 ‘디자인 서울’에 대해 시민들이 의견을 낼 공간을 만들기 위해 마련한 캠페인이다. 서울시 캐릭터 해치가 웃으면서 ‘서울이 좋아요’하는 거에다 시민들이 물음표를 친다거나, ‘강남만 좋아요’,‘애들은 굶어요’ 등 다양한 패러디를 통해 자신의 의견을 내는 모습이 참 재밌었다. 자극을 받아 우리도 그림을 그려보자는 얘기가 나왔다.”
-경찰은 G20 방해 음모라며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G20 정상회의 자체를 반대하려는 것은 아니다. 미국의 서브프라임 문제로부터 시작된 세계금융위기를 국가간 협의로 해결하는 일은 당연히 필요하다. 문제는 G20 행사가 홍보되는 과정에서 의미가 과도하게 부여됐다는 점이다. 회원국들이 돌아가며 의장국을 맡을 뿐인데, 이를 대단하게 포장하여 마치 중진국에서 선진국으로 진입한 것처럼 강요하는 한편 국내적으로는 치안과 질서를 강조하는 모습이 지나쳤다. 그런 모습이 낡고 촌스럽다. 그 촌스러움을 풍자하고 싶었다.”
-구체적으로 어떤 게 촌스럽다고 느껴졌나.
“이번 G20 홍보 상징이 청사초롱이다. 인터넷에서 청사초롱을 쳐 봐라. 조선시대 정3품 이상 고관대작들의 밤길을 밝혀주는 것이 청사초롱이다. 그것을 상징으로 삼은 게 의아했다. 정상회의의 상징이라면 마땅히 정상회의가 추구하는 방향과 의제를 담아야 한다. 그런데 청사초롱은 결국 한국 정상이 외국 정부 고관을 불밝히며 영접한다는데 의미를 부여했다는 얘기 아닌가. 정상회의에서 세계가 나아갈 방향이 아니라 손님 맞는 우리 자세를 상징으로 삼는다는 것이 의아했다. ‘이게 뭐야, 국내용인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청사초롱으로 세계 경제의 빛을 밝힌다고 하는데, 결국 청사초롱의 의미를 생각해보면 ‘고관대작의 밤길’을 밝히는 것이다. 실제 사공일 위원장은 세계 ‘유지’ 국가란 표현을 썼다. G20 정상회의를 ‘세계 유지 국가들이 금융 위기 이후 자국 경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모였다’라고 표현한 것이다. 결국 유지국가들의 문제 해결이지 세계 경제 위기의 근본적 해결이 아니다. 과도한 금융을 규제하는 대신 IMF의 역할을 더 강화했다. 결국 이런 정신이라면 청사초롱을 들던 등롱꾼들, 즉 20개 국가에 포함되지 못한 나라들이나, 국내의 빈곤층 이런 사람들을 위한 빛은 아니다. 거기에 청사초롱이라. 솔직한건지 순진한건지, 이런 점들을 풍자하고 싶었다. ”
-이번에 함께 그래피티(낙서라는 뜻의 이탈리어·스프레이 등을 이용해 벽에 휘갈겨 쓰는 예술 행위) 작업을 한 사람들은 누구인가.
“같이 공부하던 사람들 5명이 모여 했다. 내가 그림을 그리자는 아이디어를 냈고 실제 그림은 원래 그래피티를 하던 다른 사람이 그렸다. 우리는 이걸 예술작품이라 생각했고 사진을 담아놔야 하니까 다른 사람들은 사진을 찍어주는 역할만 했다.”
-쥐를 그린 이유는.
“G발음이 쥐랑 똑같아서다. 패러디다. 별 생각 없다.”
-경찰이 출동하니 도망치다 붙잡혔는데
“원래 그래피티라는게 그런 거다. 허용·불허용의 경계에서 허용의 경계를 넓히는 것이다. 그래서 풍자적인 내용을 담고 밤 중에 몰래 그린다. 외국에서는 그래피티를 하나의 예술로 인정해서 이것을 철거하면 시민들이 항의하기도 한다.”
-정치색을 띤다고 보는 시각도 있는데.
“모든 예술은 정치적이다. 우리는 ‘정치적’이란 말을 너무 좁게 사용한다. 우리의 삶 자체가 다양한 권력관계 안에 놓여 있고, 일상생활에서 형성되는 의견자체가 정치적 갈등과 합의의 과정이다. 정치는 일상생활에서부터 성적 관계까지 모두 우리 삶 안에 들어있다. 정치는 국회의원들이 하는, 사회에서 따로 떨어진 뭔가라고 생각하는 것은 하나의 정치적 편향에 불과하다. 그것도 보수적 편향이다.”
-그래도 국가적 행사인데 협조하는 게 성숙한 시민의식이 아니냐는 의견도 있다.
“그건 시민의식이 아닌 관변의식이다. 시민사회는 국가의 정책이나 행사에 대해 독자적 의견과 목소리를 자유롭게 낼 수 있을 때 성숙하는 거다.”
-선거벽보 처럼 G20 포스터를 훼손해서는 안 된다고도 한다.
“이건 그저 정부 홍보물이다. 사실 기업마다 내거는 현수막도 불법이다. 일정 면적 이상은 포스터를 내 걸지 못하게 돼 있다. ‘나라에서 하는 것은 뭐든지 옳으니 법도 초월한다’는 것은 개발독재의 논리다.”
-구속영장 신청을 예상했나.
“그럴 리가…. 공공기물훼손 정도로 입건 될 것이라 생각했고, 경찰서 담당 형사도 그렇게 생각한 것 같다. 당혹스러웠다. 이 정도 유머도 이해하지 못하면서 국격을 높인다고 말할 수 있나.”
-구속영장이 신청됐을 때 기분이 어땠나.
“이런 걸 공안 시선으로 받아들이다니…. 영장심사를 받고 오는데 경향신문 기자가 기다리고 있어 살짝 안도감이 들었다. 잡혀들어 가도 좀 괜찮겠구나 싶었다. 검사가 이런 말을 했다. 사안 자체는 구속 감이 아니지만, 이것은 단순한 예술적 행위가 아니라 반정부 운동 일환이다. (이것을) 풀어주면 그래피티 자체보다 G20 행사를 훼방놓는 운동을 용납하는 논리가 되는 게 문제고, 추후 이런 일 또 벌어진다고….”
-왜 이런 시선이 존재한다고 생각하나?
“이 정부가 가진 인격의 크기 아니겠는가. 불안한 것이지. G20 멋지게 치러내 정부를 홍보해야 하는데 그게 안 될 까봐 불안하고 초조한 거다. 좀 더 여유로웠으면 좋았을텐데.”
-운동권 출신인가.
“평범하게 공부하던 학생이었다. 시위해서 한 번 잡혀는 가봤다. 우리 때는 80년대라 거의 누구나 시위는 다 참여해봤던 때다. 학회 등을 열심히 한 것은 아니었다.”
-앞으로도 이와 유사한 행동을 할 계획인가.
“(웃음) 또 하면 진짜 잡혀들어가겠지. 나는 원래 이런 거 잘 하는 타입이 아니다. 다른 사람들이 더 많이 할텐데 공안 당국이 이번 일로 독기가 올라 더 잡아들일 거 같아서 그게 좀 걱정된다.”
<박홍두기자>
*** 평범하게 공부하던 학생(일까) 출신 대학강사 박모씨가 주말에 창살있는 감옥신세를 졌다. 그래피티-대성공했다. 우리 위클리수유너머에 글을 못 쓰고 잡혀가서 완전 비상이었는데 박모씨가 원고에 쓰려던 얘길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전부 전달했다. 절묘하다. 한겨레에는 뒷모습 찍힌 동영상까지 나온다. ㅋ 웃음과 공포와 스릴이 공존했던 이박삼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