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장고, 꽹과리, 징’ 생김새도 소리도 울림도 다른 것들이 모여 신나는 ‘사물놀이’ 판을 벌린다. 저마다의 개성이 펄펄 살아나면서도 더 큰 에너지의 파장을 생성하는 사물놀이. 네 가지 타악기의 완벽한 울림은 한반도를 넘어 지구촌 곳곳에 감동을 선사하고 있다. ‘위대한 대한민국 신명’의 거장 김덕수 씨와 음악마니아 조원주 과장이 만났다.
서울 신당동 충무아트홀 지하 한울림예술단. 탁 트인 너른 마루에 북이며 장고 등 갖가지 악기가 꽃과 나무인양 옹기종기 늘어섰다. 가만히 놓인 악기건만, 여음이 탓인지 어디선가 흥겨운 가락 한 소절이 들리는 듯하다. 그 가운데 김덕수 씨가 마치 신선처럼 앉아 있다. 예의 그 너털웃음으로 일행을 반겼다. 조원주 과장은 “선생님을 뵙게 된 게 믿어지지 않는다.”며 수줍게 말문을 열었다.
“1987년 즈음이죠, 군대 가기 전에 선생님의 ‘사물놀이’ 음반을 듣고 반해버렸습니다. 그 전에는 사물놀이를 잘 몰랐습니다. 우연히 구입해서 듣게 됐지요. 강하고 센 소리를 내는 타악기인데도 네 가지가 어우러지니 신비한 소리가 나왔어요. 속된 말로 ‘이거 장난이 아니구나!’ 싶었지요.”
다시금 그 때의 추억이 살아나는 듯 가볍게 몸을 떨었다. 그는 ‘그 때 그 음반’을 시디로 구입해와 김덕수 씨에게 사인을 부탁했다. 이 음반은 현지 공연을 마친 후 미국의 유명한 레이블의 권유로 제작됐다. 음반 속지에는 미국인 관계자의 평이 쓰여 있는데 ‘타악기 중 이런 화음을 내는 건 사물놀이가 유일하다’는 극찬의 메시지가 담겨있다고 조 과장은 전했다. 시간을 거슬러 20년 전 상황으로 돌아간 두 사람은 군대생활과 음악이야기 등 화제를 공유하며 대화를 이어갔다.
“20년 전 ‘김덕수 사물놀이’ 듣고 반했다”
“강원도 홍천 11사단에서 활동했습니다. 몇 개월간 문선대 밴드에서 기타 연주를 맡았습니다. 고등학교 때부터 클래식음악을 들었습니다. 그 후 장르를 가리지 않고 음악을 들어서 음악 듣는 귀는 좀 있다고 생각하는데 ‘사물놀이’의 감흥은 유독 오래갔습니다. 어릴 때 시골에서 잠깐씩 접하던 농악하고는 차원이 다르더군요.”
김덕수 씨는 고개를 끄덕이며 사물놀이는 듣다 보면 절로 어깨가 들썩이고 손이 장단을 따라간다고 말했다. 특히 조 과장이 나고 자란 김천 구미 일대의 풍물은 대통령상을 받을 만큼 유명하다고 설명했다.
“삼팔선 아래 지역의 문화권은 크게 영남, 호남, 중부지방으로 나눌 수 있지요. 각 지역별로 풍물의 구조와 소리가 다릅니다. 영남지방은 대단히 남성적이에요. 북 사운드가 큰 역할을 하면서 저음을 냅니다. 호남지방은 북이 없어요. 대신 반북을 사용하고 장고가 화려하죠. 여성적인 풍물입니다. 조 과장님 고향인 김천 풍물은 영남지방에서도 대표적인 억양을 가진 ‘큰 맛’을 냅니다.”
음악만이 아니다. 김치의 종류는 또 얼마나 다양한가. 음악, 말씨와 음식 등 지형과 기후에 따라 독특한 지역정서를 형성한다. 김덕수 씨는 “어떻게 이 작은 반도국가에서 이렇게 다양한 표현이 있을까 신기할 정도”라며 “하지만 점차 지역의 소리가 사라지고 있어 안타깝다”고 말했다.
북은 기둥소리, 징은 감싸고 꽹과리는 부수고...
김덕수 씨는 대한민국 대표소리 ‘사물놀이’를 탄생시킨 장본인이다. 1978년, 농악의 네 개의 타악기를 무대음악화한 사물놀이의 등장은 온 나라에 일파만파의 충격을 던졌다. 조상대대로 이어져온 우리 전통음악의 숨결, 그 정겹고 유구한 리듬 감각을 사물놀이를 통해 멋들어지게 일깨워 놓은 것.
“우리문화는 북방계의 유목생활과 남방계의 수렵, 농사생활이 어우러져 형성됐습니다. 거기서 우리민족의 신명이 나왔지요. 조상님이 물려준 우리민족의 DNA가 형성된 것이 1만 년 전인지, 2만 년 전인지 알 수 없지만 ‘리듬’은 분명 그것의 시작입니다. 엄마가 아이를 재우는 자장가에서부터 단오, 정월 등에 즐기던 농악과 탈춤까지, 우리네 삶에는 늘 리듬이 깃들어 있었지요.”
우리민족의 그 울림이 사물놀이 소리에 담겨 있다고 김덕수 씨는 말했다. 조 과장은 “우리의 귀중한 문화유산의 가치를 모르다가 요즘에 숭례문이 불타고서야 조금씩 생각하는 분위기인 것 같다.”며 안타까워했다. 이어 그는 장고, 북, 징, 꽹과리 등 각 악기마다 소리의 특징이 어우러져 큰 화음을 내는 비결에 대해 물었다.
“징은 여음이 가장 깁니다. 전체를 감싸주는 역할을 하죠. 기둥을 지켜주는 게 북입니다. 꽹과리는 소리를 잘게 나눠주죠. 서양음악으로 치자면 리드기타에 해당합니다. 장고는 양면에서 소리가 나옵니다. 꽹과리와 만났을 때, 징과 북과 만났을 때 다 다릅니다.”
사물놀이 악기는 동물성, 식물성, 광물성 등 우리 삶의 재료로 만들어졌다. 징, 꽹과리 같은 쇠악기 제작은 연금술에 가깝다. 쇠로 만든 타악기가 조율이 가능한 것은 놀라운 점이다. 또 나무는 오동나무를 쓰고 가죽은 우리의 토종 소와 말의 가죽을 사용한다. 우리 민족이 사는 곳에 오래 전부터 가장 많이 있었던 자연물에서 재료를 얻어 악기를 만든다. 그러니 자연처럼 아름답게 조화를 이루는 것 아니겠느냐고 김덕수 씨는 말했다.
사물놀이, 우리 기운과 신명에 세계가 놀란다
“맞습니다. 신명나면서도 웅숭깊다고 해야 할까요. 각 나라마다 전통음악이 있지만 우리 것과는 다른 것 같습니다. 선생님은 세계무대에서도 많은 공연을 하셨는데 외국에서 반응이 대단하다고 들었습니다. 올림픽, 월드컵 같은 국제적인 행사는 물론 UN 사무총장 취임식에도 가셨잖아요. 어떤 점이 세계적으로 어필한다고 생각하시는지요.”
질문이 떨어지자 김덕수 씨는 몸소 의자에서 일어나 흥겨운 장단을 선보였다. “두둥 둥둥 두우웅 다당당 둥두루루 둥~~” 지그시 눈을 감은 사물놀이 거장의 소리는 아득하게 끊일 듯 말듯 이어졌다.
“여기까지가 한 장단입니다. 삼바 같은 리듬도 흥겹지만 구조가 단순합니다. 우리 것은 리듬 구조가 혼합박으로 돼 있지요. 개념이 다릅니다. 우리만의 기질과 문화의 근본은 자연미입니다. 곡선을 이루지요. 우리 리듬을 들으면 자연스럽게 어깨춤이 절로 나오지 않습니까. 부드럽게 넘어가고 신명을 만듭니다. 우리 것은 끝없이 감싸 안는 소리입니다. 징 소리를 들으면 외국인들은 일 분간은 입을 다물지 못합니다. 긴 파장을 내는 울림이 놀랍다고 말해요.”
사물놀이를 탄생시킨 김덕수 씨는 보급과 전파를 위해서도 살신성인의 자세로 임한다. 세계무대에서 가치를 인정해주는 사물놀이가 막상 우리나라에는 홀대를 받는 바람에 하나부터 열까지 그가 열정과 신념으로 일구어놓았다. 사물놀이의 기초, 사물놀이 교칙본 등을 직접 저술했다. 영어 불어 일어 등으로 번역해 세계 각국에 보급했다. 아직 우리나라에 사물놀이 DVD 한 장 제대로 된 게 없다며 곧 제작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조원주 과장은 사물놀이의 가치와 깊이에 대해 깊이 배우고 느꼈다며 김덕수 씨에게 큰 감사와 존경을 보냈다. 퍼내고 또 퍼내도 마르지 않는 ‘신명의 샘’을 가진 김덕수 씨는 어느새 그와 앉아 한 판 소리를 빚어냈다. “덩 덩 덩 더러러러러 덩기덕 쿵덕~” 김송지영.